가즈 나이트 – 192화
린스는 팔짱을 낀 채 자신보다 훨씬 큰 리오를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리오는 황당한 듯 웃으며 되물었다.
“예? 제가 무슨 죄를 저질렀는데요?”
케톤이 나서서 그 ‘억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리 레프리컨트 왕국에선 떠돌이 기사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고로, 공주님과 저는 당신을 탈주한 기사로밖에 볼 수가 없습니다. 관청이 있는 마을까지 같이 가 주셔야 하겠습니다.”
리오는 머리만을 긁을 뿐이었다. 그런 태연함을 본 린스의 머릿속엔 자신의 눈앞에서 날아가는 고블린들의 머리통과 기절한 케톤의 모습이 지나쳐 갔다. 그가 케톤보다 강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깜빡 잊은 것이 실수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흐음… 그냥 같이 가달라고 하시면 가줄게요. 괜한 억지는 부리지 말아요.”
둘은 속으로 뜨끔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귀신같이 그들의 속을 꿰뚫어 본 리오에게 둘은 속으로 감탄하였다. 린스는 빨개진 얼굴을 돌리며 리오에게 말했다.
“아, 알았어. 같이 가주지 않겠어?”
리오는 잠시 주위를 둘러본 후, 고개를 끄덕이며 부탁을 들어주었다.
“어차피 저도 심심했으니까 잘됐군요. 그럼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짐을 가지고 나올 테니까요.”
리오는 오두막으로 다시 들어갔고 둘은 이상하다는 듯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니, 이 오두막을 다 들고 갈 생각인가?”
하지만 그 예측은 틀렸다. 리오는 옅은 회색 헝겊에 싸인 무엇인가를 들고 나올 뿐이었다.
“그, 그게 짐이야? 다른 거 없어?”
리오는 그 ‘짐’을 어깨에 메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 오두막도 어차피 빌린 것이니까 상관은 없어요. 자, 출발하죠.”
린스는 당황한 듯 말을 더듬으며 되물었다.
“무, 무기 같은 거 안 들고 가도 괜찮아? 기사인데?”
그 질문에 리오는 태연히 웃을 뿐이었다.
“전 같이 가기만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나설 만한 일인지, 아닌지 확실히 알아야 전투에 가담하지요.”
린스는 리오의 말을 들은 순간 인상을 찡그렸다.
“뭐? 네가 뭔데?”
리오는 순간 움찔하며 머리를 긁적일 뿐이었다.
“아… 어쨌든 전 길 안내만 해 드릴 겁니다. 그렇게만 알아주세요.”
둘은 어쩔 수가 없었다. 안전하게 가려면 이 정체불명의 건달에게 도움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쳇, 알았어. 하지만 위험에 처해도 우린 널 도와주지 않을 거야, 알았지?”
리오는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훗, 뜻대로.”
그렇게 해서, 리오 스나이퍼란 괴한이 가담한 린스 일행은 기나긴 여행의 첫발을 내디뎠다.
얼마만큼 힘든 일이 생길 것인가는 일행의 머릿속에 들어있지 않았다. 얼마만큼 안전하게 레프리컨트 여왕이 내려준 임무를 이행할 것인지가 들어있을 뿐이었다.
펠튼 고원을 벗어난 린스 일행은 생각보다 안전하게 고원을 빠져나간 것에 매우 기뻐하고 있었다. 물론 안내자인 리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그 악몽 같은 고블린들의 소굴을 빠져나간 것 하나만으로 린스와 케톤은 기분이 좋은 것이었다.
산길을 내려오느라 약간 피로를 느끼고 있던 린스와 케톤은 자신들의 앞에서 걷고 있는 리오를 슬쩍 바라보았다. 따가운 햇살과 좋지 않은 지형 때문에 숨을 헐떡이고 있는 자신들과는 달리 그는 아무런 상태 이상이 없었다. 오히려 하이킹을 가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 이봐! 좀 쉬었다가 가자구!”
린스는 결국 자리에 주저앉으며 리오에게 소리쳤고 리오는 머리를 긁적이며 뒤를 바라보았다.
“아니, 뭐가 힘들다고 그래요. 케톤도 별로 힘들어 보이지 않….”
리오의 말에 불만이라도 있다는 듯, 케톤은 린스의 옆에 앉아 있었고 리오는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 훗, 마음대로 하세요. 하지만 이런 계곡 지형에선 코볼트들이 나올 수 있으니까 알아서 하시길….”
불길한 말을 하며 곁에 앉은 리오를 케톤과 린스는 동시에 쏘아보았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케톤은 리오가 쉬는 동안 그가 지고 있는 짐을 만져보았다. 약간 거친 질감의 헝겊 안에 딱딱한 물체 두 개가 느껴졌다.
“이봐, 뭐하는 거야?”
리오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케톤을 슬쩍 노려보았고 케톤은 무안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앞을 바라보았다. 궁금했지만 후일이 두려운 탓이었다.
그렇게 일행이 쉬고 있을 무렵, 갑자기 리오가 벌떡 일어서며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하자 일행은 흠칫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다.
“이것은! 엎드려 모두! 지진이야!”
둘은 리오가 갑자기 소리치는 바람에 반사적으로 엎드렸고 리오의 말을 따르는 듯 계곡 주위에 대지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쿠쿠쿠쿠쿵!
몇 분간에 걸친 대진동으로 인해 낙석들이 발생하였고 리오는 둘이 바닥에 얼굴을 묻고 있는 것을 확인한 다음 자신들에게 떨어지는 돌들을 향해 자신의 짐을 움켜쥐고 날아올랐다.
“흐읍!”
짧은 기합성과 함께, 리오와 리오의 기다란 짐은 공중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리오가 휘두른 짐에 의해 낙석들은 아래에 있는 린스와 케톤으로부터 이리저리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린스와 케톤은 소음 때문에 자신들의 위에서 리오가 고생하는 것을 둘은 알지 못하였다.
곧 지진은 멈추었고 리오는 엎드려 있는 둘을 툭툭 건드려 일으켜 세웠다.
“자자, 일어서요. 지진은 끝난 것 같아요.”
흙먼지를 털어내며 둘은 자리에서 일어섰고 주위에 떨어져 있는 거석들을 보며 순간 간담이 서늘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휴우… 저희는 운이 좋군요 공주님. 저런 낙석들에 하나도 맞지 않았으니까요.”
린스는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리오는 빙긋 웃을 뿐이었다.
“이상하다? 펠튼 고원에서 지진이 일어났다는 건 처음인데?”
케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지도 책자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그의 말과 같이 책자 어디에도 펠튼 고원에서 지진이 발생한다는 글귀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럼 이번이 처음인가 보지 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어서 내려가자고요 공주님.”
리오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일이 발생한다고 하면 열이면 열, 거의 일이 발생한 탓에 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행동을 빨리했다.
“아, 알았어. 빨리 가자 케톤.”
케톤 역시 행동을 빨리하였고 리오를 따라 둘은 서둘러 계곡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 인위적인 지진이었어… 이 세계에도 무슨 일이 있는 건가?’
리오는 순간 인상을 찡그리며 생각했다. 누가 보았다면 그 표정에서 뿜어지는 진지함에 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린스와 케톤은 보지 못했지만.
그렇게 빠져나가는 도중, 리오가 우려하던 ‘일’이 일행에게 어김없이 발생하고 말았다.
“꺄아아앗! 살려주세요!”
중년 부인들의 비명 소리였다. 린스와 케톤은 순간 불안감에 휩싸였고 리오는 이를 악물며 둘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날 따라와요! 제가 먼저 사람들을 도와주러 갈 테니까요!”
“뭐, 뭐!?”
린스가 상황을 묻기도 전에 리오는 비명이 들려온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고 케톤과 린스는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리오를 따라 달렸다. 린스는 여느 때보다도 더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거야!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