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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199화


“남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건 예의에 어긋나잖아요. 식사나 하세요 아가씨.”

리오는 케톤의 옆에 앉으며 조용히 수프를 떠먹기 시작했다.

린스는 사실 리오의 나이가 30대 정도 된다고 생각했었으나 면도를 한 지금은 20대 초로 보이는 것이었다. 궁금증을 가슴에 쌓아두는 체질이 아닌 린스는 숟가락을 놓고 리오에게 물었다.

“꺽다리는 나이가 어떻게 돼?”

단도직입적인 그 질문에 리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흐음… 스물넷이요. 너무 늙어 보이나요?”

“아, 아니야. 식사나 하자구.”

남자들은 수염 하나에 얼굴이 정반대로 달라질 수 있구나 라고 린스는 잠시 생각했다. 지금까지 느꼈던 지저분한 리오의 이미지가 싹 달아났기 때문이었다. 왕성 안의 깔끔한 생활과는 너무도 다른 지금이 어쩐지 린스에겐 더 즐겁고 재미있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일지도 모른다.

“모두들 식사하고 계시네요?”

다른 사람들보다 약간 늦은 트리네였다. 간단한 차림이어서 그런지 그녀의 훤칠한 키가 더욱 커 보이는 것 같았다. 린스의 옆에 앉은 그녀는 조용히 식사를 시작하였다. 식사를 제일 빨리 마친 리오는 물을 한잔 들이킨 후 페릴을 보며 말했다.

“어이, 형씨는 뭐하러 검술을 익히려고 하는 거요? 식사도 마쳤는데 이유나 들어 봅시다.”

오후의 일은 잊은 것 같다고 생각한 페릴은 한숨을 쉬며 얘기를 시작했다. 사연이 꽤나 긴 듯하였다.

“굳이 말하자면… 강해지기 위해서? 그럴 거요 아마…. 정처 없이 혼자 여행하던 도중 예전에 알고 지내던 트리네를 다시 만나게 되었고 지금은 나보다 검술이 뛰어난 그녀에게 검술을 가르침 받는 중이오.”

리오는 감탄하듯 트리네를 바라보며 자신의 턱에 손을 가져갔다. 항상 만지던 수염이 없어 허전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호오… 검술에 능하시다고요? 아, 그러고 보니 소검을 사용하는 다른 엘프 여성들과 달리 장검을 사용하시더군요. 꽤나 수련을 하신 것 같은데….”

트리네는 부드럽게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페릴씨의 아버님께도 가르침을 받았었고, 그 전에도 여러 검객들에게 가르침을 받았었어요. 딱 한 분만이 절 가르쳐주시지 않았지만요.”

케톤은 순간 움찔하며 트리네를 바라보았다. 예전에 그의 조부에게 들었던 얘기와 상당히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이상하리만치 검에 열을 올리고 있는 엘프족 여성을 옛날에 만난 적이 있었는데, 자신이 추구하는 검술과 너무나 다른 기본기를 몸에 익히고 있었기 때문에 가르치기를 거부했었다는.

하지만 둘 다 그 사람이 누군지 애써 밝히려고 하지 않았다.

“그쪽도 검술에 능하시던데요? 아, 성함이….”

트리네의 눈이 탐구심에 반짝인 것을 느낀 리오는 빙긋 웃어 보이며 자신의 이름을 또박또박 말하였다.

“리오, <리오 스나이퍼>라고 합니다. 이 자리에서 서로 소개나 하지요. 이쪽에 앉아 계신 여자분은 <린스 레피니스>라고 하십니다. 레피니스 가의 외동딸이시지요. 그리고 저쪽에 있는 예쁘게 생긴 젊은이는 <케톤 프라밍>. 레프리컨트 왕국의 기사랍니다.”

페릴 쪽도 자신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전 <페릴 자이판>. 아까 전에 밝혔듯이 검사요. 이쪽에 앉은 엘프족 미녀는 <트리네 크로니드>라 하오.”

살짝 목례를 올린 트리네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엘프 치고는 검에 꽤 관심이 있다고 리오는 생각했다.

“리오 씨는 검술뿐만 아니고 보디 컨트롤도 굉장하시던데요? 동작 하나하나에 힘이 담겨 있어 보통의 검이나 방패로는 리오 씨의 검을 막아내기 어려울 것 같더군요. 어떻게 검술을 연마하셨죠? 스승님이 계신가요?”

리오는 머리가 빙빙 도는 것만 같았다. 검술에 대해 이렇게 토론을 벌이려는 인물을 만나기는 꽤 오래간만이어서 그럴 것이다.

“스승님이 계시긴 하지만요, 그분은 저에게 힘쓰는 방법을 가르쳐주셨을 뿐입니다. 검술은 제가 스스로 터득한 것이지요.”

트리네의 눈은 점점 더 초롱초롱 빛났고 리오를 비롯한 사람들은 꽤나 이야기가 길어질 것을 예상하기 시작했다.

“예에… 그럼, 검을 사용하실 때 어떤 손을 사용하시죠? 오른손? 왼손?”

“양손이요. 한 손으로 잡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 양손으로 같이 잡기도 합니다. 아, 촌장님, 저녁 잘 먹었습니다. 그럼 전 이만….”

리오는 촌장이 방에서 나오자마자 인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서서 방으로 도망치듯 사라져갔다. 트리네는 아깝다는 듯 한숨을 쉬었고 케톤은 이상한 불안감을 느끼며 촌장에게 인사를 한 후 방으로 들어갔다.

“… 자아, 우리도 들어가자고요 트리네. 어서요.”

반말이 입에 달라붙어 있는 린스로서 트리네에게 존댓말을 쓰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겨우겨우 말을 한 린스와 트리네는 접시 등을 다 정리한 후 방 안으로 들어가 다시 잠을 청할 준비를 하였다.

“아앙~ 먹은 후에 곧바로 자면 얼굴이 부어 버리는데, 트리네는 좋겠어요.”

린스는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며 침대에 앉아있는 트리네에게 말했다. 트리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좋다니요?”

“살이 찐 엘프는 못 봤거든요. 인간 여자들은 먹으면 먹는 대로 살이 붙어 버린다구요.”

트리네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저어 보였다.

“후훗, 엘프라고 그렇진 않아요 린스. 살이 붙긴 하지만 잘 눈에 띄지 않는 것뿐이에요. 엘프끼리는 금방 아는걸요?”

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잠자리에 누웠다. 누워서도 둘은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으음… 트리네는 나이가 몇이에요? 엘프 나이로….”

린스의 짙은 푸른색 눈을 바라본 상태에서, 트리네는 천천히 대답했다.

“엘프의 나이로는… 243세에요. 인간의 나이로 치면 23, 4세 정도 되겠군요.”

“그래요? 그럼 리오랑 거의 동갑이라고 보면 되겠군요. 그럼 케톤이 가장 어린건가…?”

“케톤 씨가요? 그렇게 나이가 어리신가요?”

린스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18세밖에 안 된 녀석이에요. 나이에 비해 강한 것이지요. 리오보다 약한가…? 어쨌든요.”

“아, 그러고 보니 정말 뜻밖이었어요. 프라밍 가의 비전승 검술의 유일한 전승자를 이곳에서 볼 줄은… 정말 오늘은 행운의 날이군요. 후훗….”

린스는 트리네가 어지간히 검에 미쳤다고 생각하며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조금 후, 서로 아무 말이 없던 둘은 곧 깊이깊이 잠들게 되었다. 열심히 대화를 나눈 이유도 있었고 저녁을 먹은 지 얼마 안 된 이유도 있었다.

달도 서쪽 산에 거의 가려졌을 깊은 밤, 엣센 마을에선 정체불명의 검은 그림자가 재빠르게 가옥 사이를 움직이고 있었다. 발소리도 나지 않았다. 꽤나 숙달된 사람임에 틀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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