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201화
매캐한 냄새와 함께 집 밖으로 나온 여성은 그을음이 묻은 자신의 갈색 머리를 털면서 한숨을 쉬었다.
“또 실패하다니… 유감이군요, 콜록콜록…!”
린스와 케톤은 그녀를 본 순간, 도저히 자신들의 눈을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노, 노엘 선생!!!”
린스는 뛸 듯이 기뻐하며 자신의 커다란 무테 안경을 닦고 있는 노엘에게 달려갔다. 안경을 쓰지 않으면 눈이 보이지 않는 노엘은 흠칫 놀라며 옆으로 살짝 몸을 틀었고 그녀를 안으려던 린스는 그만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노엘은 다시 안경을 쓴 후에 넘어진 린스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기겁을 하며 린스를 일으켜 주었다.
“리, 린스 공… 아니, 아가씨!? 어떻게 이런 곳에!!!”
린스는 바닥에 긁혔는지 약간 붉어진 자신의 코를 매만지며 노엘을 바라보았다. 노엘은 사실 린스가 15세 때 그녀를 가르쳐준 궁중 선생이었다. 그러다가 린스가 18세가 되던 해에 자신의 연구를 하기 위해 어디론가 떠난 것이었다. 3년간 린스를 가르친 탓에 노엘은 린스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고 이제 당연한 듯 닥쳐올 고함 소리에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노엘! 노엘 맞지, 으아아아앙–!!”
그러나 노엘의 예상과는 달리, 린스는 노엘에게 안겨 엉엉 울기 시작했다. 노엘은 더더욱 놀라며 린스와 함께 온 케톤을 바라보았다.
“케, 케톤! 무슨 일이 있는 거예요?”
케톤 역시 노엘과 절친한 사이였었다. 케톤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선 말씀드리기 곤란하군요 노엘….”
노엘은 고개를 끄덕였고 아직도 울고 있는 린스를 다독거리며 연기가 채 가시지 않은 자신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환풍기로 급히 연기를 제거한 노엘은 린스와 케톤에게 자초지종을 듣기 시작했다.
“젠장, 어디로 도망간 거야….”
겨우 실랑이를 끝내고 도시 안에 들어온 리오는 다크엘프를 경관들에게 넘긴 탓에 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러나 린스와 케톤을 다시 찾아야 했기 때문에 마음속은 그리 후련하지 못했다.
“걸음도 빠르지, 그건 그렇고 난 일행도 아닌가? 기다리지도 않고….”
결국 도시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시장까지 오게 된 리오는 인파에 떠밀리며 더더욱 인상을 구기게 되었다. 이리저리 떠밀리던 리오는 결국 시장 구석의 한적한 곳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심심했는지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리오는 방금 전의 자신과 똑같이 사람들에 밀려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한 사람을 볼 수 있었다. 검은색의 굉장히 긴 장발을 곱게 빗은 여자…인 듯했다. 하지만 입고 있는 옷은 흰색에 펑퍼짐한 스타일이어서 눈에 바로 띄었다.
“나도 저랬단 말이지…?”
리오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런데 갑자기 리오가 주시하고 있던 여자가 점점 다가오는 것이었다. 리오는 그녀도 피하는 거라 생각하고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저어… 노엘 선생님의 댁이 어딘지 아시는지 모르겠군요.”
문법을 무시한 굉장한 말이었다. 리오는 인상을 약간 찡그리며 자신에게 말을 건 사람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주시했던 특이한 옷의 여성이었다. 옷의 흰색과 짙고 얇은 눈썹,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듯한 검은색 눈동자가 굉장히 대조적인 청초한 미인이었다. 리오는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글쎄요? 노엘 선생이 누군데요?”
그녀는 여전히 무표정인 얼굴로 리오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와 같이 살고 계시는 분이시라고 저는 말할 수 있습니다.”
“네…?”
문법도 문법이었지만 바로 듣기엔 완전히 말장난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장난기는 아니었기에 리오는 진지하게 그녀를 도와주기 시작했다.
“어디에 사시고 계셨는데요?”
그녀는 눈을 껌벅이며 리오에게 되물었다.
“누구… 말씀이십니까?”
“아가씨 말이에요 아가씨. 집 근처에 뭐 없었나요?”
그녀는 자신의 갸름한 턱에 검지를 가져간 채 잠시 생각을 하다가 기억이 난 듯 대답했다.
“아, 배들이 들어가고 나가는 곳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뭐라고 하는지 잊어서 죄송합니다.”
한마디로 항구였다. 리오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항구 말이지요? 그럼 절 따라오세요, 제가 찾아드릴게요. 근데 이 도시에 사시는 건 확실하죠?”
그녀는 고맙다는 듯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하고 리오의 질문에 대답하였다.
“저는 항구도시 트립톤에 살고 있습니다. `이’ 도시에는 살고 있지 않습니다.”
리오는 머리를 오른손으로 감싸며 오히려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예예~어서 가시지요. 후훗….”
이상한 말투의 미녀와 길을 걸어가며 리오는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항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꽤나 규모가 큰 항구여서 눈이 심심하진 않았다.
계속 길을 걸어갈 무렵, 푸른색 옷에 그릇을 엎어놓은 듯한 모자를 쓰고 있는 이상한 차림의 중년 사나이가 리오와 같이 있는 여자에게 달려오더니 양손을 모아 정중히 인사하고는 꽤 빠른 외국어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녀도 역시 양손을 모아 답례를 하고는 같은 말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곧 사나이는 다시 손을 모아 인사를 한 뒤에 배로 뛰어가는 것이었다. 리오는 그제서야 그녀의 말투가 이상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하, 외국인이셨군요. 실례지만 아가씬 어디서 오셨나요?”
“저는 외국에서 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
리오는 아무 말도 않고 다시 사람들에게 노엘이란 사람의 집이 어디 있는지 묻기 시작했다. 그녀의 말대로 항구 근처가 집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은 친절하게 노엘의 집을 가르쳐 주었다.
“… 그랬군요. 하지만 왜 동맹국이었던 <벨로크 공국>의 마동왕이…?”
린스는 훌쩍 거리며 전과 같이 대답하였다.
“그걸 알면 노엘을 찾아오지 않았어.”
노엘은 빙긋 웃으며 휴지를 또 한 장 뽑아 린스에게 건네주었다.
“아, 그런데 공주님과 케톤 두 분만이 왕국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까지 오신 겁니까? 요즘 들어 마물들이 판을 치던데요….”
린스는 자신의 얼굴에 묻어있는 눈물 자국을 다 지우며 대답했다.
“우리도 괴물 하나를 알고 있거든. 와이번들과 다대 일로 싸워서 이기는 괴물 봤어? 헤헤헷….”
노엘은 바로 알아듣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의 안경을 고쳐 쓰며 린스에게 물었다. 궁금한 것은 그대로 넘어가지 못하는 학자의 기질이었다.
“예? 그렇게 강하다면 사람은 아닐 테고… 고위 정령이라도 아시나요?”
린스가 웃으며 대답하려는 찰나, 누군가 노엘의 집 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문은 열려 있습니다.”
그녀의 말에 따라, 붉은 장발을 묶어 올린 큰 키의 사나이가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노엘은 흠칫 놀랐으나 그 사나이와 같이 들어온 검은 머리의 여자를 보자 다행이라는 듯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 레이! 걱정했잖아요, 어디에 갔었어요?”
사나이와 같이 들어온 여자, 레이는 허리를 굽혀 노엘에게 인사를 하고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노엘 선생님. 시장에 음식 재료를 사러 갔다가 길을 잊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레이와 같이 들어온 남자, 리오는 레이와는 대조적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간단히 노엘에게 목례를 하였다.
“처음 뵙니다. 야아~ 아가씨와 케톤 여기 있었군요. 찾으러 돌아다녔잖아요.”
노엘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린스를 바라보았다. 린스는 기다렸다는 듯 리오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괴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