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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208화


편안히 누운 상태에서 노엘이 따라준 과즙 음료를 들이키며, 케톤은 오늘 하루의 피곤함을 지우려고 애를 썼다. 가벼운 짐이었지만 한둘이 아니었던 탓이었다.

“…다 끝내긴 했는데 리오는 어디로 간 거지? 자기 일은 다 마치긴 한 것 같은데….”

그때, 집 문을 열고 나온 노엘은 궁금한 표정으로 케톤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봐요 케톤, 스나이퍼 씨 못 봤나요?”

케톤은 흠칫 놀란 듯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며 대답했다.

“예? 선생님도 모르시나요? 도대체 어디로 간 거지?”

노엘은 케톤마저 리오의 행방을 모르자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상하군요… 그러고 보니 레이도 없군요. 둘이 어디로 간 거지? 설마…!?”

“이상한 상상은 하지 마 노엘. 설마 그런 짓 하려고 꺽다리가 검을 든 채 나갔겠어?”

한숨 잘 잔 듯 눈을 비비며 밖으로 나온 린스는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며 자신이 아는 그대로 말했다. 노엘은 다행이라는 듯 한숨을 쉬었고 케톤은 리오가 검을 들고 나갔다는 말에 굳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무슨 일이 있는 게 확실합니다 공주님! 저도 가보겠습니다!!”

급히 집안으로 뛰어 들어가 레드 노드를 들고 나오려던 케톤은 린스가 혀를 차며 손가락을 까딱이자 아무 말 못한 채 발을 멈추었다.

“이봐 이봐… 그러다가 이곳이 위험하면 어떻해 케톤. 그 꺽다리는 어떻게 해서든 살아오니까 안심하라구. 여기 가만히 있어.”

케톤은 한숨을 쉬며 다시 의자에 곧은 자세로 앉았고 노엘은 의아한 듯 린스에게 묻기 시작했다.

“어머? 공주님, 스나이퍼 씨가 어떻게 해서든 살아오실지 어떻게 아시죠? 그것도 당당하게….”

린스는 별것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저으며 대답했다.

“문득 그렇게 생각나더라구, 왠지는 몰라도. 자자, 주스나 한잔 줘 노엘.”

과학을 배운 노엘에겐 `문득’이란 단어는 잘 통용되지 않는 단어이지만 노엘은 어쩔 수 없이 이마를 쓰다듬으며 거의 정리가 된 자신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부엌에서 과일을 갈아 주스를 만들던 노엘은 레이를 떠올리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케이가 다시 나타났으면 좋겠는데… 그녀라면 레이를 지켜줄 수 있겠지. 제발 그러길….”

거리에 돌아다니던 코볼트들은 거의 정리가 된 듯했다. 도시를 지키는 경찰들도 그리 약한 편은 아니었고 `그래봤자’ 코볼트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이크롭스 두 마리는 리오와 케이가 처리한 탓에 어려울 건 더더욱 없었다.

“휴우- 다 된 것 같은데요. 전부 코볼트라 다행이었어요. 그건 그렇고 케이양은 무술에 굉장히 능하시던데요? 제가 깜짝 놀랐어요.”

케이는 그 말을 리오에게 듣자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기억 속엔 리오가 코볼트들을 공처럼 차며 가지고 놀던 장면이 생생히 들어있는 탓이었다.

“호홋… 별말씀을. 자, 이제 돌아가죠 리오 씨.”

리오는 고개를 끄덕였고 둘은 나란히 항구에 있는 노엘의 집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항구 입구에 다다랐을 때, 둘은 한 청년이 세 마리의 코볼트들과 싸우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주위엔 청년이 쓰러뜨린 듯한 코볼트들의 사체가 널려있었다.

“음? 뭐지 저 사람은?”

리오는 팔짱을 낀 채 청년이 싸우는 모습과 그의 검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검도 보통 검이 아니었고 검술 또한 보통이 아닌 청년이었다. 비유하자면 케톤 이상, 아니면 맞먹을 정도의 실력이었다. 앞으로 모아 내린 녹색의 머리카락이 흩날렸고 그 사이로 청년의 얼굴이 보였다. 케톤만큼 깨끗한 얼굴이었다.

“어머? 저 검은… <블루 노드> 잖아요!? 그렇다면 저 사람이 용사 아슈탈…?”

블루 노드는 또 뭐야. 리오는 이렇게 생각하며 이름에 걸맞게 푸른색의 반사광을 내뿜고 있는 그 명검을 이리저리 살펴 보았다. 하지만 그가 보기에 레드 노드와 블루 노드는 이름만 비슷할 뿐 제작한 사람은 다른 것만 같았다.

“…하긴, 무슨 상관이야. 그런데 왜 저 사람이 용사에요?”

“노엘 선생님께 들은 적이 있어요. 이 서방 대륙에서 최고라 손꼽히는 레드 노드란 검과 쌍벽을 이룬다는 초 성검 블루 노드를 들고 1년 전쯤 마왕 <아슈테리카>를 물리친 사람이에요. 이야기인 줄 알았더니 정말이었군요…!”

둘이 이야기하는 사이, 아슈탈이란 청년은 완전히 코볼트들을 쓸어 버렸고 곧 시선을 리오와 케이에게 맞추었다.

“이 녀석들! 마왕의 잔당이지!!!”

블루 노드를 양손에 잡고 빠르게 달려드는 아슈탈을 본 리오는 케이를 슬쩍 밀치며 디바이너에 손을 가져갔다. 케이는 깜짝 놀라며 리오에게 소리쳤다.

“앗!? 뭐하려는 거예요!! 우리는 마왕의 잔당이 아니잖아요!!!”

그러나 리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눈을 반짝이며 자신을 내리치려고 떠오른 아슈탈을 흥분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설마… 자신의 힘을 시험해 보기 위해…!?’

아슈탈은 리오의 두상을 정확히 잡고서 블루 노드로 그대로 내리쳤다. 그러나 가른 것은 리오의 잔상, 블루 노드는 그대로 지면에 박히고 말았다. 그는 순간 자신의 뒤에서 느껴진 무시무시한 느낌에 급히 몸을 돌리고 검으로 자신의 앞을 막았다.

파아앙–!

차가운 금속성이 울려 퍼졌고, 아슈탈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겨우 막아낸 보라색의 검과 붉은 머리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마왕을 상대할 때도 방어할 때 손이 얼얼한 적은 없었는데 이 남자의 공격은 그렇지가 않았다. 보통의 검이었다면 분명 자신의 주인과 함께 동강났을 것이 뻔하다.

“후훗… 미안하지만 우린 마왕의 잔당이 아니야. 그걸 얘기하려고 이랬다. 그만하지 친구.”

리오는 아슈탈에게 떨어진 후 디바이너를 거두려 하였다. 그러나, 아슈탈의 생각은 그렇지가 않았다.

“쳇! 감히!!!”

아슈탈은 기합과 함께 자신의 검을 두어 번 리오를 향해 휘둘렀다. 그러나 그의 공은 리오의 옷깃조차 스치질 못했다. 자존심이 유별나게 강한 아슈탈은 흥분을 하며 리오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 이런 일이! 이럴 리가 없어!!! 타아아아앗–!!!!”

다시 한번 리오를 공격하려 했을 때, 아슈탈의 시야는 리오의 눈에서 뿜어진 푸른색 광체가 나타남과 동시에 곧바로 컴컴해졌다. 그리고 희미한 목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어쩌자고 그랬냐는 여자의 목소리와 그냥 심심해서 그랬다는 남자의 목소리였다. 곧 그 말소리조차 그에겐 들리지 않게 되었다.

집에 돌아와 있는 리오는 노엘의 이야기를 듣고서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옷을 갈아입은 레이를 바라보았다.

“예에… 하지만 어떻게 한 몸에 두 개의 영혼이 들어갈 수 있는 것이죠?”

노엘은 자신의 안경을 매만지며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제가 들은 바로는 원래 레이와 케이 두 남매는 한 어머니의 몸 안에 자라고 있던 쌍둥이라고 해요. 그런데 불의의 사고로 태아인 케이는 죽고 말았죠. 그리고 한 달이 안돼서 레이양이 태어났는데 신기하게도 케이양의 영혼도 가지고 태어난 것이에요. 처음엔 의지대로 레이양과 케이양이 바뀔 수 없었는데 어떤 이유로 해서 서로의 의지대로 바뀔 수 있게 되었다는군요. 하지만 제가 제일 신기하게 생각하는 건, 대체로 이런 상황이 되었을 때 죽은 언니나 동생의 영혼이 자기 대신 살아있는 형제를 저주하곤 하는데 케이양은 반대로 레이양을 지켜주고 있어요. 그것이 놀라워요.”

얘기를 다 들은 리오는 약간 측은한 마음이 든 듯 레이를 바라보았다. 레이는 아무 말 없이 바닥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랬군요. 하지만 언니인 케이양과 사이가 좋으시다니 다행입니다. 그런데 왜 두 분의 직업이 다른 거죠?”

노엘은 리오의 질문에 간단히 대답했다.

“다른 영혼이니까요.”

리오는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거실로 나가며 레이의 어깨를 살짝 짚어주었다. 리오가 문을 닫고 나간 뒤, 레이는 방금 전 리오가 짚은 자신의 어깨에 손을 가져가며 조용히 눈을 감아 보았다.

“아, 아슈탈이란 녀석은 아직 안 일어났어요?”

리오가 궁금한 듯 묻자 노엘은 생각이 났다는 듯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아니요, 스나이퍼 씨의 그 괴물 같은 힘으로 급소를 강타당한 사람이 아무리 용사라 해도 바로 깨어날 리는 없잖아요. 더 두고 보세요.”

리오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실 소파에 푹 눌러앉은 리오의 옆자리엔 케톤이 와서 앉았다. 케톤의 표정은 굉장히 시무룩해 있었다. 리오는 케톤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말했다.

“왜 그래 케톤? 또 무슨 일 있었어?”

케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한숨을 푸욱 쉬면서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 와서 저 아슈탈 녀석을 만날 줄은 몰랐어요. 이런 젠장…!!”

그 말을 들은 리오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케톤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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