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223화
“뭐야? 당신들이 할 일을 대신해준 것뿐이잖아!!”
지크는 화를 벌컥 내면서 자신과 일행을 연행해 온 경관에게 큰 소리를 쳤다. 그들이 붙잡힌 죄는 살인. 하지만 어떻게 반문할 말은 없었다. 그들에게 버서커가 어쩌고 해도 먹혀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럼, 당신들 마법은 믿어? 마법으로 사람을 그렇게 미친놈으로 만들었다니까! 누가 함부로 살인을 해!!”
경관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지크에게 차근차근 설명을 했다.
“마법은 믿소, 하지만 그 사람들을 어떻게 해서든 정상으로 되돌릴 수 있었지 않겠소? 그래서 당신들을 연행한 것이오.”
지크는 이마에 핏줄을 세우며 더 큰 소리로 경관에게 말했다.
“이봐! 내가 거기에서 그 자식들을 안 막았다면 당신들이 개죽음당했을 거야! 게다가 이미 수십 명의 민간인을 살해한 녀석들인데 뭐가 어째!!”
경관은 한숨을 후우 쉬며 동료 경관에게 말했다. 일행의 무장 해제였다.
“당분간 협조를 해 주십시오. 죄송합니다.”
“이런 젠장!!!”
결국 화를 참지 못한 지크는 주먹으로 두꺼운 사무용 책상을 두 동강냈고 순순히 무명도를 풀어 바닥에 내던졌다. 무기가 없는 루이체는 그냥 지크를 따랐고 중형 검 하나를 등에 거꾸로 장비하고 있던 마키는 경관을 불만이 섞인 눈으로 보며 그에게 자신의 검을 툭 던져주었다.
마키의 검을 든 경관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지크의 무명도를 줍기 위해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 무명도를 잡은 순간 그는 짧막한 신음 소리를 내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경관은 다시 무명도에 손을 가져갔으나 역시 들지 못하였다.
그 광경을 본 지크는 피식 웃으며 그 경관에게 말했다.
“어이 아저씨, 그건 거기 그냥 놔둬요. 이 경찰서 사람들이 힘을 합해도 그건 들지 못할걸? 내가 아니면 그건 천근만근이 되니까 말이요. 헤헷… 수고하슈.”
라기아는 주점 안에서 조용히 칵테일을 즐기며 생각에 잠겼다. 버서커마저 공포에 질리게 만드는 살기를 뿜어내는 그 청년은 분명 자신이 가장 두려운 존재라 생각하고 있는 리오·스나이퍼와 붙여봐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버서커로 변한 전사를 능가하는 힘, 그리고 자신조차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반응 속도… 적으로 등장한다면 정말 무시무시할 것이다.
“음… 곤란을 당한 것 같은데, 한 번 도와줘 볼까? 호호호홋….”
청년과 그 일행이 경관들에게 이끌려가는 것을 목격한 라기아였다. 이곳 경관들을 괴롭힐 겸, 한 번 더 그 청년의 솜씨를 시험해 보고 싶어서였다. 그녀는 품에서 때가 엄청나게 끼어있는 양피지 뭉치를 꺼내어 한 장 한 장씩 넘겨 보았다. 주점 주인은 이상할 정도의 요염함을 풍기는 그 미녀가 왜 지저분한 양피지를 꺼내어 주섬거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너무나도 진지하게 그 양피지를 바라보았기에 아무 말 않고 유리잔을 닦았다.
“으음… 뭐가 좋을까? 데히모스? 아냐, 쉽게 죽을 것 같아. 섀도우 비스트? 아냐 아냐, 그가 더 빠르다구. 그럼… 그래, <와리온>이 있었지. 좋아 좋아… 주인장, 여기 돈이에요. 고마워요… 호홋.”
돈을 건네받은 주인장은 주점 밖으로 나가는 그 여인의 늘씬한 몸매를 보며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뚱뚱한 자신의 부인을 떠올렸다. 그리고는 쓸쓸히 고개를 저으며 그녀가 마시던 잔을 물에 씻은 뒤 수건으로 깨끗이 닦아 원래 있던 자리에 가져다 놓았다.
원래 일정에서 꽤 일이 틀어져 버리자, 루이체는 리오를 걱정하며 안달을 했다. 하지만 힘으로 감옥을 부수고 달아났다간 현상범이 되어 아무 죄도 없는 리오에게 곤란을 줄 수 있었다. 게다가… 지크는 세상 편히 감옥 바닥에 누워 잠만 자고 있었다. 사실,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괴물 때문에 지크는 잠잘 때도 온 신경을 집중하여야 했다. 그래서 수면 시간이 그리 많지가 않았는데 감옥 안에선 괴물에 관한 경계를 그리 심하게 할 필요는 없었다. 지크에겐 오히려 수면을 취할 좋은 기회였다.
“칫, 이 녀석은 감옥 안에서 잘도 자네? 남은 속이 끓는데…!”
마키는 온 세상의 번뇌를 다 짊어진 듯한 인상을 쓰고 웅크려 앉아 투덜대고 있었다. 전직이 도둑이긴 했지만 감옥에 들어온 적은 없었기에 그럴 것이다. 한참 잠을 자던 지크는 갑자기 몸을 움찔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키와 루이체는 놀란 눈으로 지크를 바라보았고 지크는 인상을 일그러뜨리고 철창 쪽으로 다가가 소리치기 시작했다.
“이봐! 범인은 사람도 아니야!! 점심은 줘야 할 거 아니야!!!”
루이체는 고개를 푹 숙이며 잠시 의심을 해 보았다. 자신이 왜 저 남자를 의형제로 삼았는지….
경찰서에서 수감 중인 사람들에게 나오는 점심은 빵과 우유였다. 당연하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아르센의 경찰서에서 나오는 점심은 질이 달랐다. 그날 아침에 바로 얻은 신선한 빵과 우유였고 꽤나 맛있었기 때문이었다. 타 경찰서에서 주는 딱딱한 흑빵과는 차원이 달랐다.
빵 다섯 조각과 우유를 다 먹은 지크는 다시 바닥에 드러누웠고 마키와 루이체는 결국 지크에게 불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오빠! 이게 뭐야 이게!! 리오 오빠 도와준다고 와 놓고는 고작 이런 감방 안에 들어앉아 있고 말이야!! 책임감이 좀 있어봐!!!”
“네가 무슨 이유로 여행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은 책임져줘야 할 거 아니야! 네가 그러고도 남자야!!”
귀를 틀어막고 계속 잠을 자고 있던 지크는 마키마저 자신에게 소리치자 슬쩍 몸을 일으키며 마키를 바라보았다. 마키는 더욱 인상을 찡그리며 지크를 정면으로 쏘아보고 소리쳤다.
“왜! 한번 붙어보자는 거야!!”
지크는 피식 웃고 마키가 쓰고 있는 터번 위를 오른손으로 살짝 잡으며 조용히 말했다.
“너, 나 좋아하냐?”
“…뭐, 뭐어!?”
마키는 순간 얼굴을 붉히며 뒤로 몸을 뺐다. 그러나 지크의 악력에 의해 머리만은 가지 않았다. 지크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말했다.
“네가 여자라 날 좋아해서 책임지라고 그러면 약간이라도 이해가 가겠는데, 남자 주제에 무슨 책임을 따지냐. 가려면 가고, 말려면 말아. 말리지 않을 테니까.”
지크는 마키의 머리를 놓아주고는 다시 바닥에 드러누웠다. 마키는 분한 듯 씩씩거리며 그늘진 감방 구석으로 몸을 옮겼고 루이체는 지크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화를 내었다.
“아, 왜 그래… 너까지.”
남매가 또다시 말싸움을 할 무렵, 마키는 자신의 헝클어진 터번을 풀고 다시 머리에 감기 시작했다. 그때, 그녀의 눈엔 이상하게 반짝이는 무언가가 맺혀 있었다. 마키는 소매로 자신의 눈을 몇 번 닦은 후 고개를 웅크린 다리 사이에 푹 숙였다.
옆 상가에서 벌어진 대 살육에 근처 주민들은 몸서리를 치며 일찍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사람이 죽었으니 장사할 생각도 그리 나지 않았고 소문이 퍼졌는지 손님도 거의 끊겼기 때문이었다.
“아~ 제기럴, 왜 갑자기 미쳐서 사람들을 죽이고 다닌 거야? 손님 끊기게시리….”
야채 가게의 주인은 옆에서 고깃간을 하는 이웃에게 푸념을 늘어놓았고 고깃간 주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길게 쉬어 보았다.
“그러게나 말일세, 저기 저 기둥이 솟아난 뒤로 사람들이 자주 미친단 말이야. 경찰까지 그러고 다니니 원 안심하고 살겠나….”
두 사람이 각자의 상점을 정리하고 문을 닫을 무렵, 3층의 한 건물에선 소리 없이 거대한 빛의 기둥이 솟아올랐다가 사라졌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어서 느낀 사람도, 본 사람도 거의 없었다. 있었어도 그냥 착각이거니 하고 사람들은 넘어갔다.
그 3층의 건물 뒤에선, 칠흑색의 구체를 만지작거리는 라기아의 웃음소리가 작게 들려오고 있었다.
“호호홋… 잘 왔다 <와리온>, 1000년만인가 너도…? 내가 말한 대로 하려무나 귀여운 것, 호호호호홋….”
검은색의 구체는 라기아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 이상하게 꿈틀거렸다. 마치, 껍질이 단단하지 못한 생물의 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