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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240화


“오지 마! 그때도 난 싫다고 했어!! 또 이러지 말아줘!!!”

노엘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자신에게 점점 다가오고 있는 한 남자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 남자의 눈엔 이상한 빛이 흐르고 있었다.

“싫어! 다가오지 마!!!”

그녀의 외침이 귀에 거슬렸는지, 그 남자는 노엘을 향해 거칠게 달려들었고 완력으로 노엘의 옷을 찢기 시작했다. 노엘은 온 힘을 다해 몸부림치며 다시금 소리쳤다.

“싫어–!!! 제발 그만해!!!”

그때였다. 노엘의 옷을 기본적인 옷만 남기고 다 찢어 없앤 그 남자의 가슴에서 보라색의 칼끝이 튀어나온 것이었다. 놀랍게도 그 남자의 가슴에선 피가 흐르지 않았다.

“몽마인가…?”

낮은 남자의 음성이 가슴을 꿰뚫린 남자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노엘을 압박하고 있던 남자의 몸은 곧 옆으로 나가떨어졌고 노엘은 자신을 구해준 보라색 검의 남자를 보고 믿을 수가 없었다. 그 남자는 자신의 회색 망토를 그녀에게 던져주며 그녀의 몸을 보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어서 걸쳐요.”

그 짧은 남자의 음성은 노엘이 지금껏 들어온 어떤 말보다 믿음직스러웠다. 노엘은 깨어진 자신의 안경을 옆에 두고서 그 남자가 던져준 망토를 몸 위에 걸쳤다. 꽤 크기가 컸지만 보기보다 부드럽고 따뜻한 재질의 망토였다. 몸을 추스르며 일어선 노엘은 그 사나이에게 가까이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고, 고맙습니다 스나이퍼 씨….”

리오는 한숨을 후우 쉬며 노엘을 겁탈하려던 몽마를 내려다보았다. 디바이너에 찔려 목숨을 잃은 몽마는 단정한 남자의 모습에서 흉측한 원래의 모습으로 변하더니 곧 증기가 되어 사라졌다. 노엘은 흠칫 놀라며 리오의 곁에 더욱 바싹 붙었다.

“모, 몽마라면 설마 [인큐버스]?”

그 말에 리오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인큐버스는 고위 마족입니다. 이건 저위 마물에 지나지 않아요. 하지만 대상이 된 여성에겐 더할 수 없는 공포의 존재지요. 게다가 노엘 선생님은 지금 나이트 메어란 저주에 걸려 있습니다. 말할 수 없는 숫자의 몽마들이 당신을 덮쳐 올 거예요.”

노엘의 얼굴은 다시 하얗게 질려갔다. 노엘은 평소 같지 않게 리오의 근육질 팔에 매달리며 울먹였다. 리오는 노엘이 그제서야 25세의 여자같이 보여졌다.

“그, 그러면 어떡하죠? 전 그렇게 되면 미쳐버릴 거예요…!”

리오는 부르르 떨고 있는 노엘을 부드럽게 안아주며 또렷하게 말했다.

“…제가 지켜 드리겠습니다.”

노엘은 흠칫 놀라며 리오를 올려다보았다. 여자를 안고 있는 보통 남자의 표정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본능에 얽매이지 않은, 순수함 그 자체가 담긴 진정한 기사의 모습이었다. 리오는 주위를 둘러보며 혼자 서있는 노엘에게 말했다.

“제가 당신의 꿈속 세계에서 해드릴 수 있는 일은 달려드는 저위 몽마들을 없애는 것뿐입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당신 스스로 해결해야 합니다.”

노엘은 눈을 크게 뜨며 리오를 바라보았다.

“예? 근본적인 문제라니요…?”

“이곳은 당신의 꿈속입니다. 마음먹기에 따라 저보다 더 강해지실 수 있죠. 그 힘을 이용해 나이트 메어를 스스로 파괴하는 겁니다.”

리오는 천천히 건물 밖으로 몸을 옮겼다. 노엘은 허겁지겁 리오의 곁에 붙어 그를 따라 나섰다. 리오는 나오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한 가지만 명심해 두세요, 이곳은 당신의 꿈속이라는 겁니다.”

리오와 노엘은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어딘가 특별히 목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과 리오 단 둘이 이 세계에 있다는 생각이 노엘의 머릿속을 이상하게 휘저어놓기 시작했다. 이 남자도 시간이 지나면 다른 남자들처럼 변하는 건 아닌지 하는 의문이 그녀에게 생겨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절 부르실 때 성을 부르시는 이유 좀 들을 수 있을까요? 예전부터 좀 궁금했거든요.”

여느 때와는 다른 진지한 표정에서 나오는 말이었기 때문에 노엘이 방금 전에 가졌던 생각은 일순간 사라져 갔다. 노엘은 곤란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가 한참 후에 대답했다.

“그렇게 당신을 부른다면 저에게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으실 것 같아서요. 그런 것이 절 지키기 위한 방법 중 하나랍니다. 실례가 되었다면….”

“…아하하하하핫–!!”

그 말을 들은 리오는 갑자기 표정을 풀고 크게 웃기 시작했다. 노엘은 그가 웃기 시작하자 어안이 벙벙한 듯 멍하니 리오를 바라보았다.

“…후훗, 어지간히 남자를 못 믿으시는군요 노엘 선생님. 저마저 그런 취급을 받았다니, 전 이미지 관리에 실패했군요, 하하하하핫…!!”

노엘은 아무 변명도 할 수 없었다. 리오는 웃음을 멈추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고 노엘에게 말했다.

“제가 리오·스나이퍼인 이상 여성에게 해가 가는 일은 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전 불벼락을 맞을걸요? 노엘 선생님께서 만약 자신을 잃으시고 제 앞에서 이상한 행동을 하신다 해도 전 당신의 몸을 몇 번이고 가려드릴 자신이 있습니다. 그 정도의 자제력이 없다면 전 지금까지 살아올 수 없었을 겁니다. 절 믿으세요. 절 어떻게 부르셔도 상관없으니 제 실력과 제 검–“

리오는 자신의 등에 매여져 있는 디바이너를 툭툭 건드리며 말을 계속했다.

“–디바이너를 믿어 보세요. 아시겠죠?”

노엘은 리오의 자신만만한 행동을 보고서 갑자기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녀의 머릿속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있는 남자만이 그녀가 생각하는 남성관 전부를 지배하고 있던 것이 부끄러워졌다. 하나만 보고 열을 아는 것은 역시 어려운 일이라 그녀는 생각했다.

“…알았어요 리오 씨. 이제 조금 알 것 같군요….”

노엘은 빙긋 웃으며 리오에게 말했다. 무슨 소린지 알 턱이 없는 리오는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공주님이나 레이 양이 당신을 좋아한다는 말을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말, 말로써 제 고개를 숙이게 만든 남자는 리오 씨가 처음이군요. 호홋….”

리오는 멋쩍은 듯 자신의 장발을 긁적였다. 계속 길을 걷던 리오와 노엘은 어느덧 레프리컨트 왕성 앞에 서 있었다.

“…이곳에 제가 처리해야 할 일이 있을 것 같군요, 들어가죠 리오 씨.”

그때, 한 발 내딛으려는 노엘의 앞을 리오가 팔로 막았다. 노엘은 깜짝 놀라며 뒷걸음질을 쳤고 리오는 눈을 가늘게 뜨며 이번엔 디바이너가 아닌 파라그레이드를 뽑아 들었다. 오리하르콘 주위에 반투명의 검날이 뭉쳤고 소검 형태의 파라그레이드는 넓은 대검 형태로 변하였다.

“이 세계의 주인이 그렇게 느낄 정도면… 몽마들이 당연히 기다리고 있겠죠. 뒤로 물러서요.”

노엘이 뒤로 물러서자, 리오는 보통 때 조금밖에 끌어올리지 않던 자신의 기를 마음껏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푸른색의 기가 그의 몸에서 폭발하듯 뿜어져 나오자 노엘은 흠칫 놀라며 리오를 바라보았다. 인간의 몸에서 나오는 기가 이 정도로 폭사되는 광경은 노엘이 지금껏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기가 잔뜩 주입되어 푸른색 광채를 뿜고 있는 파라그레이드를 양손으로 움켜쥔 리오는 씨익 웃으며 자신과 100여 미터 떨어져 있는 성문을 바라보았다.

“자아… 주인이 오셨다, 문을 열어라 마물들!! 가랏, 대 지뢰자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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