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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244화


“이제 돌아가 봐야지요, 어서 잠에서 깨어나세요.”

리오는 오른팔을 휘휘 돌려보며 노엘에게 말했고 그녀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으나 이내 다시 갸웃거리며 리오에게 물었다.

“저어… 어떻게 잠에서 깨어나죠?”

그 말을 들은 리오는 멍하니 노엘을 바라보다가 자신의 이마를 손으로 살짝 치며 씁쓸한 인상을 지었다.

“아… 이런이런, 하마터면 큰일 날뻔했군요. 지금 일어나시면 제 존재가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는 걸 깜빡했어요. 제가 먼저 나가야 합니다, 그럼….”

리오는 뒤의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노엘이 걸치고 있는 자신의 망토를 받아야 하는데 지금 노엘은 망토 안에 기본적인 의상만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뒤돌아 있을 테니까 망토를 벗어주세요. 절대로 안 돌아볼 테니 염려 마시고요.”

리오는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에 비해 이런 쪽은 거의 백치였다. 웬만한 상황이 아니면 여성의 나신만 보아도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할 정도였다. 노엘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걸치고 있던 리오의 회색 망토를 천천히 벗었다. 부스럭 소리가 자신의 뒤에서 들려오자 리오는 머리를 긁으며 먼 곳을 바라보려고 애를 썼다. 노엘은 망토를 차곡차곡 접어 리오에게 내밀며 말했다.

“자, 여기 있습니다 리오 씨.”

리오는 돌아보지 않고 팔을 뒤로 뻗었다.

“주, 주세요 노엘 선생님.”

망토를 받아든 리오는 원래대로 망토를 몸에 걸쳤다. 노엘의 체취가 물씬 느껴졌다. 리오는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자,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잘 주무시길….”

그 말과 함께 리오의 몸은 빛덩이로 변하더니 어디론가 사라져 갔다. 꿈의 세계에서 나가는 것이었다. 리오까지 나가고 혼자 남은 노엘은 정신이 아득히 흐려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주위는 점점 어두워졌다. 마치 잠에 빠져드는 것처럼….

치지직

리오가 사라졌던 자리에서 몇 번의 스파크가 일어나자 그곳에 있던 린스와 레이, 그리고 로드 덕은 한숨을 돌린 듯 힘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레이의 마무리 주문에 의해 리오는 완전히 꿈의 세계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고 다시 진짜 세상에 나타난 리오의 얼굴은 피곤함이 역력히 드러나 있었다.

“후우… 선생님은 무사하십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리오는 그 말을 남긴 채 스르르 쓰러져 잠에 빠져들었다. 기를 너무 많이 소모하여 탈진한 것과 긴장감이 없어진 탓에 오는 피곤함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 린스는 아직 안심할 수 없었는지 침대에 누워있는 노엘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다른 때보다 편안히 잠들어 있었다. 레이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며 린스에게 말했다.

“나이트 메어라는 저주는 풀린 것 같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공주님. 그러나 아직 일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로드 덕님, 이 방 주위에 결계막을 쳐 주십시오. 불길한 기운이 이 여관 근처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제 언니의 차례가 온 것 같군요.”

말을 끝낸 레이의 머리색은 차츰 진홍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본 로드 덕은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세, 세상에…! 한 몸에 두 사람이 존재한단 말이오!?”

레이, 아니 케이는 자신의 머리를 한 번 묶어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잖아요? 전 나가볼 테니 이곳을 잘 지켜주세요.”

케이는 레이의 복장을 벗어 던지며 창문 밖으로 몸을 날렸다. 레이가 입는 두터운 옷 안에 무도복이 또 하나 있어서 급박한 상황이 닥쳐와도 문제 될 건 없었다. 로드 덕은 케이가 나간 창문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린스가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자 정신을 집중하고 레이의 말대로 결계를 치기 시작했다.

“하아아앗–!!”

케톤의 날카로운 공격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가자, 테크는 이를 악물며 케톤에게 맨 이터를 맹렬히 휘둘렀다. 여러 개의 날이 겹쳐져 있는 모습의 맨 이터였기에 레드 노드에선 마찰 불꽃이 심하게 튀겼다. 검의 연속성에선 케톤이 테크를 능가하고 있었으나 임기응변에선 테크가 위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케톤의 검을 막아내는 테크였고 테크의 긴 공격을 미연에 방지하는 케톤이었다.

“헤헷, 너 굉장한데 그래? 기사 집안에 정통으로 계승되는 검술이 이 정도로 굉장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 내가 든 검이 맨 이터가 아니었다면 내가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을 거야.”

검을 휘두르면서도 테크는 여유 있게 웃으며 케톤에게 말을 걸었다. 케톤은 이상하게도 아까와 같이 화가 치밀어 오르지 않았다. 그의 조부에게 검술을 배울 때처럼 재미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케톤 역시 웃으며 대답했다.

“훗, 별 말을 다하는군. 나야말로 헌터들이 사용한다고 들어왔던 변칙 실전 검술에 놀라고 있다고. 정통 검술이 이 정도로 약할 줄은 몰랐어.”

말이 끝난 케톤과 테크는 서로의 검을 내리고 피식 웃어 보였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것처럼 서로에게 손을 내밀고 다짐하며 말했다.

“좋아, 마음에 들었어 케톤. 내일이 되면 헤어지겠지만 한 번 친구라는 거 해보는 게 어때?”

“내 말을 먼저 하는군 테크. 어쨌든, 오늘 이 시간부터 우린 친구다.”

둘은 굳게 다진 서로의 손에 더욱 힘을 넣으며 전투 중에 생긴 우정을 더욱 굳혀 보았다. 그때, 둘의 머릿속에 번쩍하며 무엇인가가 스쳐갔다. 그리고 둘의 표정은 하얗게 질려가는 것이었다.

“마, 마귀들!! 이런, 한참 싸우느라 잊었잖아!! 너 때문이야 케톤!!!”

“웃기지 마! 그런 건 둘째치고 어서 그 녀석들을 찾아보자구!!”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을 무렵엔 마귀 삼인중과 케이의 혈전이 이미 여관 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세 명과 대결하는데도, 게다가 맨손인데도 케이는 전혀 밀리지 않고 있었다. 여성이라곤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케이의 무술은 고강한 경지에 다다라 있었다. 마귀 삼인중의 낫은 케이의 늘씬한 몸을 한 번도 스치지 못했고 작게만 보이는 케이의 기가 실린 주먹은 마귀 삼인중의 몸을 몇 차례나 강타하고 있었다. 결국 마귀 두 명은 힘이 떨어진 듯 바닥에 무너졌고 나머지 마귀 한 명은 뒤로 주춤거리며 방어 자세를 취하였다.

“후훗… 여자라고 날 너무 얕봤지? 착각이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을 테고… 이젠 네 차례야!! 절극류 양권 통천포–!!!”

케이는 양손을 모아 마귀를 향해 앞으로 강하게 내뻗었고 그녀의 손바닥에선 짧지만 강한 느낌의 푸른색 불꽃이 폭발했다. 기의 불꽃은 방어하는 양팔을 무시한 채 몸을 가격했고 그 공격을 받은 마귀는 아무 소리 없이 벽에 부딪혀 쓰러졌다.

“후우~ 꽤 강했는걸? 그래도 상대는 아니었어.”

케이가 머리를 풀고 땀을 닦고 있을 무렵, 서로 싸우느라 임무를 잊은 케톤과 테크 둘이 여관으로 허겁지겁 뛰어왔다. 둘은 케이 주변에 쓰러져 있는 마귀 셋을 보고서 눈을 휘둥그레 뜨며 케이를 바라보았다.

“케, 케이 씨, 리오 씬 어디 있나요?”

케톤의 그 말을 들은 케이는 자존심이 상한 듯 눈살을 찌푸리며 케톤에게 소리쳤다.

“내가 물리친 거예요 케톤! 그건 그렇고 당신들 대체 어디 가서 놀고 있었나요?”

둘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케이가 자신들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느껴서도 그랬고 임무를 잊은 채 서로 싸우고만 있어서도 그랬다.

「이 바보 같은 것들! 여자 하나 처리하지 못하고 진기가 빠져 쓰러졌단 말이냐!!」

케이의 목소린 아니었다. 차가움이 섞인 마성의 목소리였다. 케이, 케톤 그리고 테크는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라, 라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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