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258화
린스는 빵 네 조각을 먹고 먼저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고 리오는 주문한 빵을 다 먹은 뒤에 계산을 하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복도를 거닐던 중, 리오는 한 작은 소녀가 창가에 가만히 서서 밖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리오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아무것도 아니겠지 생각한 후 슬쩍 지나치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케톤이 침대에 앉아 레드 노드를 닦고 있었다.
“여어 케톤! 좋은 아침이야.”
케톤은 리오를 보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어제 고생하셨습니다 리오씨.”
리오는 원래 자신의 침대에 걸터앉으며 고개를 저었다.
“고생은 무슨… 그건 그렇고 이렇게 무사한 걸 보니 밖에선 아무 일도 없었나?”
그 말에 케톤은 머리를 긁적이며 리오에게 어색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리오는 알고 있었다. 케톤이 이런 표정을 지을 때 말하기 곤란한 일이 있었다는 것을.
“하핫… 일이 있긴 했었는데 전 구경만 하고 있었고 케이씨가 다 처리해 주셨어요.”
리오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흠? 너 그럼 지금까지 케이씨를 우습게 봤단 말이야? 하긴… 나도 그랬으니까. 내가 생각하기론, 레이양은 마력에 있어서 노엘 선생님 이상의 수준인 듯하고, 케이양은 전투력에 있어서 우리 일행 중 나 다음일 걸? 차이는 심할지 모르지만.”
그 말을 들은 케톤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리오에게 되물었다.
“예에!? 제, 제가 그렇게 약하단 말입니까?”
“아니, 네가 약한 게 아니고 케이양과 레이양이 너무 강한 거야. 그 정도 수준이니 여자의 처신에 대해 엄격한 동방에서 홀홀단신으로 그녀를 유학 보냈겠지. 동방 대륙에선 자연과의 융합을 기초로 한 체계적인 무술이 여럿 존재한다고 해. 이 서방 대륙의 검술과는 판이하게 다르지. 게다가 이 서방 대륙에선 자신의 뛰어난 검술이 잘 전승되는 일이 없는데 반해, 동방에선 계승자라 하여 그 무술의 모든 것을 이어받고 그 계승자가 무술을 더욱더 발전시키지. 개인 무술로만 따진다면 동방이 아마 더… 강할걸? 마법은 잘 모르겠어. 들은 게 이것밖에 없어서….”
리오의 긴 얘기를 오랜만에 들은 케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에… 근데, 만약 리오씨가 케이씨와 대결을 한다면 누가 이길까요?”
리오는 순간 실소를 하며 케톤의 이마를 중지로 살짝 치고 말했다.
“풋, 그건 네가 생각해서 비교하면 될 거 아니야. 결과는….”
“당연히 리오씨가 승리하시죠.”
리오와 케톤은 말을 멈추고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케이가 어느새 문을 열고 들어와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가 지금까지 느껴본 리오씨의 강함은 상상을 초월해요. 전투 때마다 그 한계를 느끼지 못할 정도니까요. 그건 그렇고 왜 제 얘기를 두 사람이 나누는 거죠? 설마 나쁜 마음을 품은 건…?”
그 말에 케톤은 얼굴을 붉히며 강하게 부정을 하였다.
“그, 그럴리가요! 전 지금까지 여자에 대해선 전혀 생각을 해 본 일이….”
“훗, 순진한 척하지 마 케톤. 그건 그렇고, 그냥 무술에 관한 얘기를 좀 하고 있었어요 케이씨. 오해는 마시길.”
케이는 웃으며 케톤의 옆에 살짝 앉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오해는 안 해요, 저도 농담이었는걸요. 아 참… 아침에 고마웠어요 리오씨.”
“아, 별말씀을. 그 정도는 해 드려야 하죠.”
둘의 이야기 사이에 낀 케톤은 불안한 눈으로 리오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부럽다… 리오씬 어디가나 여자가 붙는구나. 하지만 이러면 공주님이 가만있지 않으실 텐데….’
계속 이야기를 나누던 리오는 아까 여관의 창가에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던 아이를 떠올리고서 케이에게 물었다.
“오시는 도중에 여자아이 한 명 못 보셨나요? 창밖을 보고 있는….”
“음… 아, 봤어요. 자주색 머리의 아이 말이죠? 제가 말을 걸었는데 대답을 안 하더라고요. 이상한 아이라고 생각하며 그냥 이 방에 들어왔죠.”
리오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침대에서 일어서며 방 밖으로 나섰다.
“아이에게 한 번 가볼게요. 잠시 기다리고 계세요.”
리오가 방문을 닫자, 케이는 빙긋 웃으며 중얼거렸다.
“전투 상황이 아닐 땐 사람이 저렇게 다르단 말이야… 신기해.”
리오는 아이가 있던 창가로 다시 한 번 가 보았다. 아이는 아직도 그곳에서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홍색 머리에 리본을 묶은 그 아이의 모습은 리오에겐 이상하게도 그리 낯설지가 않았다. 리오는 조용히 그 아이의 옆으로 다가가 보았다.
“….”
그러나 아이는 리오가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바깥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리오는 아이의 시선에 맞춰 자신의 눈을 돌려보았다. 그 아이가 보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바로 산이었다. 리오는 그 아이에게 물었다.
“…저 산에 뭔가가 있나 보구나, 나에게 가르쳐 주지 않을래?”
그 소녀는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시선은 계속 산에 있었다.
“저 산에… 아빠랑 오빠가 있어요.”
알 수 없는 말이었다. 아이의 말은 계속되었다.
“나무랑 함께 살고 있지요. 저와 엄마는 이제 보고 싶지 않은가 봐요. 엄마 심부름 때문에 이곳에 왔다가 저 산이 보이길래 여기 있는 거예요. 아, 그러고 보니 엄마가 기다리겠네요. 아저씨 안녕.”
아이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여관 1층으로 내려갔다. 리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이가 말한 이해가 가지 않는 내용을 되뇌어 보았다.
“나무랑 함께 살다니…? 도대체 무슨 말이지?”
리오는 아이가 바라보던 산에 시선을 돌려보았다. 그냥 나무가 우거진 평범한 산일 뿐이었다.
“…의심스럽긴 하지만 함부로 자리를 뜰 수는 없지. 그리 큰일은 아니길 바랄 수밖에….”
리오는 다시 한 번 그 산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시력을 최대로 증대시켜 보기도 하였지만 별다른 건 보이지 않았다.
“아야야, 머리가…?”
자리에서 눈을 뜬 노엘은 갑자기 밀려오는 심한 두통에 오른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인상을 찡그렸다. 어제 밤에 당한 나이트메어의 후유증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통증에 휩싸인 그녀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나 다행히 통증은 곧 가셨고 노엘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에 따로 마련된 세면장으로 향하였다.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본 그녀는 순간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밤 사이 헝클어진 자신의 머리가 마치 사자의 갈기처럼 붕 떴기 때문이었다.
세면을 마친 노엘은 옷을 갈아입고 방의 창문을 열어젖혀 보았다. 거의 정오가 다 된 시각이어서 약간 따뜻한 바람이 방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하지만 그 바람은 노엘에겐 이상할 정도로 상쾌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무언가가 밤 사이에 싹 가셨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후우~ 상쾌하다. 아, 공주님은 괜찮으실까? 걱정이네….”
노엘은 창문을 닫고 방 밖으로 나가 보았다. 때마침 몇몇의 여행객들이 중장비를 하고서 여관을 나서는 모습이 보였다. 마치 괴물을 때려잡으러 가는 사람들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일곱 명의 남자로 구성된 그들은 각기 큰 소리를 내며 도시의 북쪽으로 향하였고 노엘은 그 뒷모습을 보며 빙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혈기 넘치는 남자분들이네… 후훗.”
복도를 거닐던 노엘은 리오가 창밖을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자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 보려고 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리오의 앞에서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이, 이상하다? 내가 왜 이렇게 흥분하는 거지?’
이처럼 가슴이 뛴 적이 한 번도 없었던 노엘은 말을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그만 자신의 방으로 뛰어들어가고 말았다. 산에 집중하고 있던 상태여서 노엘이 옆에 있는지조차 모르던 리오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나서 뛰어가는 노엘의 뒷모습을 본 후에야 그녀가 옆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리오는 아차 하며 자신이 실수한 건 아닌지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