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273화
성벽의 안쪽 역시 성벽과 다를 바가 없었다. 웬만한 가옥들은 거의 한군데씩의 피해를 입고 있었으며 가로수들도 부러진 것이 많았다. 그러나 한가지, 그 피해를 복구하는 사람들의 표정에선 절망이나 그늘진 면을 찾아볼 수 없었다. 모두 다 즐거운 표정으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기에 지크는 역시 수도구나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여 보았다.
“어, 오빠 뭐하는 거야?”
지크의 행동이 보통 때와 달리 진지하자 루이체는 이상하다는 듯 물었고 지크는 떫은 표정과 함께 뒤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음… 네 허리가 굵을까 저 부러진 나무 밑동이 더 굵을까 생각하고 있었어.”
“…진담이야?”
루이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노려보며 말하자, 지크는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당연하지, 헤헷.”
루이체는 결국 카루펠의 등에서 뛰어내려 지크에게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고 지크는 그 공격을 슬쩍슬쩍 가볍게 피하며 계속 길을 걷기 시작했다. 마키는 둘의 그런 움직임을 진지하게 살펴보았고 마키의 사정을 알지 못하는 베르니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상하다는 눈초리로 그 셋을 바라보았다.
“정말… 저들은 수도까지 와서 이러는군요. 그럼 제가 계속 안내해 드리죠 미네리아나 마마.”
“호홋, 너무 그렇게 생각하진 말아요 베르니카. 제가 생각하기에 베르니카 씬 저 틈에서 빠져나오지 못할지도… 어머, 실례했군요. 그럼 계속 가죠 베르니카.”
그 말에 베르니카는 다시 한번 고개를 돌려 지크와 루이체를 바라보았고, 조금 후 그녀는 허억 소리를 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크의 움직임, 그것은 한마디로 예측된 회피라 말할 수 있었다. 루이체가 주먹을 뻗을 때 흔들리는 공기의 움직임과 파동을 감지하고서 공격을 미리 예측해 피하니 보지 않아도 충분히 공격을 피할 수 있는 것이었다. 결론은 딱 하나, 상당히 불규칙한 공격 내지는 근거리에서의 초음속 공격이 아닌 이상 멀쩡한 지크를 칠 방법은 없다는 것이었다.
“야야, 그만 해 동생… 으윽!?”
지크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루이체의 공격은 계속되었고 결국 지크는 서서 자신을 바라보던 마키의 뒤로 급히 몸을 날렸다. 그런데, 루이체의 공격은 그 와중에도 계속되는 상태여서 급히 피한 지크 대신에 맞은 것은 결국 마키였다.
파악–!
“꺄악!”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마키가 쓰러져 버리자, 루이체는 사색이 되어 지크를 바라보았고 지크는 혀를 차며 마키를 안아 올리고서 말했다.
“쯧쯧… 하여튼 누구 동생인지… 빨리 여관이나 알아봐 임마. 애가 그렇게 난폭해서 어딜 쓰겠니.”
지크는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마키를 자신의 다리 위에 비스듬히 눕힌 뒤 루이체에게 얻어맞은 뺨에 손을 갖다 대고서 간단히 진찰을 해 보았다.
“…역시 암살자는 내구력이 약해. 그거 하나 얻어맞고 뻗다니…. 어쨌든 급소는 요행스럽게도 피했으니 넌 너무 걱정하지 마.”
지크의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불안한지 루이체는 약간 겁먹은 표정으로 지크에게 물었다.
“지, 진짜 괜찮은 거야 오빠?”
마키를 등에 업은 지크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네가 나라면 모를까, 아~무 일 없으니 걱정 끊어.”
뒤에서 지켜보던 미네아도 걱정이 되었는지, 지크의 옆에 다가와 물었다.
“꽤 강하게 맞으신 것 같던데요 지크씨… 병원에 가보지 않으셔도 괜찮을까요?”
지크는 등에 업고있는 마키의 머리를 톡톡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설마 이 녀석도 무술을 한 남잔데 그거 한 방에 죽기라도 할까요. 그럼 여기서 잠깐 헤어져요 미네아님. 이 녀석 눕혀 놓기는 해야 할 것 같으니까요.”
미네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잠시 생각하다가 자신의 목에 걸려있는 붉은색 수정 목걸이를 지크에게 풀어 주며 말했다.
“그럼, 이걸 가지고 계세요. 이 목걸이를 경비병에게 보여주시면 그들이 통과를 허락해 줄 겁니다.”
그 목걸이를 잠깐 멍하니 보고 있던 베르니카는 흠칫 놀라며 지크에게 소리쳤다.
“이봐 살인검!! 그 목걸이를 받으면 넌 나에게 죽음을 면치 못할 거야!!”
“잉?”
지크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베르니카를 바라보았고 베르니카는 미네아에게 말을 계속했다.
“마마! 그 목걸이를 넘겨 주신다는 것은…!”
미네아는 고개를 끄덕여 베르니카의 말을 막은 후, 자신의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알아요 베르니카, 하지만 이 목걸이가 아니면 이분들은 성 안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어쩔 수… 없어요. 이해해 주세요 베르니카.”
미네아는 거침없이 목걸이를 지크에게 넘겨주었고, 지크는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바닥 안에 놓인 목걸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베르니카는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가리며 충격을 받은 듯, 흔들거리며 미네아와 함께 왕궁으로 향했다.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지크는 씨익 웃으며 루이체에게 말했다.
“…잠깐 이 암살자 좀 업어라 동생.”
“응? 뭐 하려고 오빠?”
루이체에게 마키를 넘겨준 지크는 미네아에게 뛰어가며 대답했다.
“넌 몰라도 돼 임마!!”
뛰어가는 지크의 모습을 지켜보던 루이체는 뭘까 생각을 하다가 인상을 쓰며 중얼거렸다.
“쳇, 나쁜 너구리 같으니라고…!”
미네아는 정숙히 길을 걷고 있었고 베르니카는 그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참지 못했는지, 베르니카는 미네아의 앞을 막아서며 소리쳤다.
“미네리아나 마마! 제발 소인의 말을 들어 주십시오!! 그 목걸이는 선대 왕께서 마마와 여왕님께 하나씩 나눠주신 <바람과 불의 수정>입니다! 게다가 그 목걸이를 다른 남자에게 넘겨준다는 것은…!!”
미네아는 쓸쓸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후 말하기 시작했다.
“알아요… 그 목걸이를 넘겨주면 어떻게 된다는 사실도…, 하지만 베르니카도 봤잖아요, 성 외곽이 처참하게 부서진 모습을요. 다시는 그런 일이 없게 하려면… 저를 희생하더라도 어쩔 수 없어요.”
베르니카는 침통한 얼굴로 미네아의 손을 잡으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마 베르니카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약했다면 그녀는 흐느꼈을지도 모른다.
“…아, 알겠습니다. 마마의 뜻이 정 그러시다면…. 죄송합니다 마마, 제가 더 강했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이봐 이봐, 안 어울린다고 애꾸. 그런 대사는 울면서 해야 듣는 사람도 기분이 나지.”
베르니카와 미네아는 깜짝 놀라며 자신들의 뒤를 바라보았다. 그곳엔 지크가 미네아에게 받은 목걸이를 손가락으로 빙빙 돌리며 서 있었다.
“이, 이 무례한 녀석! 감히 마마가 하사하신 보물을 그런 식으로 가지고 놀다니!!”
지크는 위로 시선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흐흥, 남의 사정은 내가 알 바 아니지. 그건 그렇고… 미네아님, 이거 도로 받아요.”
미네아의 오른손을 잡고 수정 목걸이를 그녀의 손에 넘겨준 지크는 미네아의 손을 자신의 손으로 쥐어준 후 말하기 시작했다.
“그 목걸이가 없어도 왕궁 따윈 그냥 들어갈 수 있어요. 절 무시하진 마시길. 외곽 수비를 보니 왕궁 수비도 불 구경하듯 뻔할 것 같아서요, 헤헷….”
지크는 다시 루이체와 마키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며 말을 덧붙였다.
“여자의 미래는 행복해야 하는 거예요 미네아! 나 같은 건달에게 맡길 그런 것이 아니고요!!”
미네아와 베르니카는 멍하니 지크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지크가 마키를 받아 업고 어디론가 사라지자, 미네아는 목걸이를 들고 있는 자신의 오른손을 왼손으로 감싸 쥐며 중얼거렸다.
“…고마워요, 지크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