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277화
“…?”
레프리컨트 여왕은 이 무례한 침입자가 왜 갑자기 자신의 나이를 물어보는지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입이 침입자의 손에 막혔기 때문에 대답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침입자–지크는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지금 상황에서 여왕의 나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느꼈는지 여왕의 목 뒤를 손가락으로 살짝 누른 후 그녀의 입을 막고 있던 손을 떼었다.
“에이… 다 큰 여자가 침을 흘리면 어떻게요. 그건 그렇고 저는….”
여왕은 지크의 말은 듣지도 않고 소리부터 지르려 하였으나 여왕의 목에선 소리가 나지 않았다. 지크는 어깨를 으쓱이며 여왕에게 더 크게 질러보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여왕은 겁에 질린 표정을 지으며 지크에게서 멀어지려 애를 썼다.
“급소…는 아니지만 혈을 찔러두었기 때문에 제가 풀어드리지 않는 이상 소리는 내지 못하세요. 그리고 전 여왕님을 어떻게 할 작정으로 온 암살자는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암살자는 여관에서 잘 자고 있으니까요.”
지크는 머리를 긁으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다시 여왕을 바라보며 물었다.
“미네아 마마가 어디서 주무시는지 알아요? 저 사실 그분 만나러 왔거든요.”
여왕은 멍하니 지크를 바라보다가 창문으로 보이는 방을 손가락으로 가리켰고 지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번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여왕의 혈을 풀어주었다.
“…아, 경비병–!!! 경비병 어디 있나!!!”
그러나 혈을 풀자마자 여왕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고 지크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세상에… 좀 심하잖아요 여왕님. 전 괜찮지만 경비병들이 오늘 잠을 좀 편하게 못 잘 텐데요.”
곧이어 병사들의 우악스러운 발소리가 가까이 들려왔고 갑옷으로 무장한 병사들이 침실의 문을 부수고 우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지크는 그 숫자에 놀란 듯 휘파람을 휘익 불어보며 말했다.
“요오… 꽤 많군. 어쨌든 미네아님은 오늘 만나야겠으니 피 좀 튀기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마마.”
말을 마친 지크는 순간 몸을 날리며 가장 앞에 있는 병사의 얼굴을 무릎으로 가격했고 그 병사와 함께 뒤에 있던 병사들은 모조리 침실 밖으로 튕겨져 날아갔다. 지크는 씨익 웃으며 병사들에게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 하나라도 미네아님이 있는 방으로 안내해주면 안 잡아 먹으마… 헤헤헷.”
지크의 그런 태도는 결국 병사들을 흥분시켰고 수십 대 일의 난투극은 여왕의 침실 앞 복도에서 처절히 행해졌다.
“어머? 이게 무슨 소리지?”
간만에 왕궁의 자기 방에서 머리카락을 매만지던 미네아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비명소리와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에 놀라 창밖을 내다보았으나 그녀의 창문으로 보이는 왕궁 정원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다만 소리만 들릴 뿐…. 그때,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그 소리를 듣고 미네아가 걱정되어 달려온 베르니카였다.
“마마! 접니다, 괜찮으세요?”
미네아는 곧바로 문을 열어주었고 베르니카는 방안을 살펴본 뒤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무 일 없으시군요, 다행입니다 마마. 슬쩍 듣기엔 누군가가 여왕 마마의 침실에 침입한 후 난동을 부린다고 하는군요. 도대체 어떤 간 큰 녀석이 여왕님의 침실에 난입한 걸까요?”
“글쎄요… 어쨌든 언니가 많이 놀랐을 것 같군요.”
베르니카와 함께 가만히 앉아만 있던 미네아는 아차 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고 베르니카도 깜짝 놀라며 미네아를 바라보았다.
“설마… 지크씨가!?”
“우하하하하하핫–!! 더 덤벼봐!!!”
그러나 병사들은 더 덤빌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눈앞에서 수십 명의 동료들이 괴한의 주먹에 추풍낙엽처럼 날아가 버리는 광경은 그들에게 꽤나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지크는 병사들이 더는 덤빌 생각을 안 하자 자세를 풀며 바닥에 쓰러진 병사들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여왕을 바라보았다.
“어이 여왕님, 그러길래 소리 지르지 말라고 했잖아요. 헤헤헷… 으읏!?”
여유만만하던 지크의 표정이 사라진 건 그 순간이었다. 지크의 뒤에서 느껴지는 차디찬 살기… 지크는 그 살기의 주인공을 잊을 수 없었다.
“…크크큭, 오늘은 저번보다 상태가 좋아 보이는군… 여자 생각은 이제 안 하나 보지? 크크크크큭….”
지크는 피식 웃으며 자신의 손 관절을 풀며 바이론의 말을 받아쳤다.
“넌 혈색이 더 안 좋아졌구나. 화장이라도 하나 본데? 헤헤헷….”
바이론은 자신의 앞에 모여 있는 병사들을 팔로 이리저리 치우며 지크의 앞에 다가섰고 지크는 팔짱을 끼며 자신보다 약간 더 큰 바이론을 쏘아보았다. 바이론은 싸늘히 웃으며 말했다.
“너도 꽤 이 날을 기다려 왔나 보군… 좋아, 다시 한번 나와 싸울 기회를 주지. 물론 결과는 같겠지만 말이야… 크크크크큭.”
바이론은 천천히 정원을 향해 걸어나가기 시작했고 지크는 씨익 웃으며 자신의 가죽 장갑을 조여 보았다.
“헤헷… 리턴 매치다.”
둘은 곧 왕궁의 정원 중앙에 마주보고 서게 되었고 둘에게서 풍기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여왕을 비롯한 많은 병사들은 숨을 죽이고서 둘을 바라보았다. 지크는 무명도의 칼자루에 손을 가져가며 자세를 취하였고 바이론은 검푸른색의 마기를 내뿜고 있는 <다크 팔시온>을 뽑아 들고 그냥 서 있기만 했다.
“의외구나 빈혈 사나이, 널 이 왕궁에서 볼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는데?”
지크의 도발성 발언에 바이론은 피식 웃으며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서 말했다. 그 행동은 진짜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는 건 아니고 화가 나기 시작했을 때 바이론의 버릇이었다.
“크후… 네 더러운 입버릇은 여전한 것 같군. 좋아 좋아… 시작해 볼까?”
바이론의 말을 시작으로 둘의 싸움은 다시 한번 시작되고 말았다. 하지만 <고신 전쟁> 때의 지크와 지금의 지크는 약간 달랐다. 그땐 마음속에 잡념이 가득한 상태였으나 지금은 별 생각이 없는, 즉 싸우기에 가장 적합한 정신상태이기 때문이다.
바이론은 지크의 기가 순간 자신의 왼쪽으로 돌아가자 흠칫 놀라며 반탄력을 높였고 곧 바이론의 등 쪽에서 금속이 기에 튕기는 맑은 소리가 들려왔다.
티잉–!!
“이런 젠장!!”
지크는 다시 자세를 바로잡으며 바이론의 움직임을 주시했고 바이론 역시 지크를 다시 돌아보며 자신의 자세를 취하였다. 바이론은 쓴웃음을 짓고서 중얼거렸다.
“크으윽, 발도술(拔刀術)… 역시 다르군. 내 반탄력이 조금이라도 낮았다면 칼도 한 번 못 쓰고 쓰러질 뻔했어.”
그 말을 듣고 있던 지크는 한쪽 눈썹을 치켜뜨며 왼손으로 바이론에게 와보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칭찬은 사지가 잘린 후에 해라 빈혈 사나이. 빨리 끝내고 만나야 할 사람이 있으니까 말이야.”
바이론은 곧 전신에서 검푸른색의 투기를 방출하며 지크를 향해 소리치기 시작했다.
“크크큭… 너도 몸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는 모양이구나. 그래… 그것이 가즈 나이트의 특성이지, 전투 앞에서 본능적으로 몸이 들뜬다는 것… 크크크크… 하하하핫!! 덤벼봐라 지크!!! 신나게 놀아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