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296화
리오가 문을 열고 나오자 레이는 가만히 옆으로 물러섰고 리오는 레이가 그럴 때마다 미안하다는 생각을 가진다. 하지만 풍습의 차이에서 오는 행동이기 때문에 미안하다는 말을 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손님이라고 하셨나요? 하지만 절 찾아올 손님은 거의 없을 텐데요…?”
레이는 가만히 대답해 주었다.
“꽤 많이 찾아오셨습니다. 다섯 명쯤 되시더군요. 나가 보시면 아실 듯….”
리오는 고개를 끄덕이며 여관의 정문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리오가 그쪽으로 가자 레이는 자신의 큰 옷소매에서 수건을 꺼내어 아직 마르지 않은 머리의 물기를 닦아내며 자신의 방으로 조용히 들어갔다.
여관 밖으로 나온 리오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손님은 손님이었지만 16, 17세 가량으로 보이는 아이들이어서였다. 게다가 그 아이들은 자못 무서운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리오는 머리를 긁으며 아이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이 날 찾아온 손님… 인 것 같은데, 용건을 말해줄래?”
리오는 속으로 설마 했지만 그 아이들 중 리더로 보이는 아이의 품에서 나온 둘둘 말린 종이를 보고 역시나 하며 한숨을 쉬었다.
“용건은 이겁니다, 당신이 위장을 하려고 오른쪽 눈에 붕대를 감은 것, 다 알아요. 어서 린스 공주님을 풀어드리고 우리와 함께 경찰서로 가시죠!”
리오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위로 고개를 돌려 린스의 방 창문쯤에 소리를 쳤다.
“공주님! 손님들이 찾아오셨는데요!”
그러자 잠시 후 인상을 약간 쓴 린스가 창문을 열었고 리오의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아이들을 보고 더욱 인상을 쓰며 리오에게 소리쳤다.
“보내 버려! 저런 꼬마들과 상대할 시간 없어!!”
쾅 소리와 함께 창문이 닫히고 리오가 잘 봤냐는 듯 어깨를 으쓱이자 아이들은 순간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으음… 나도 좀 피곤하구나. 그만 들어가 쉴 테니 더 이상 용건 없으면 집에 돌아가. 아침이지만 부모님이 걱정하시겠다….”
리오가 다시 여관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그 리더처럼 보이는 아이가 다시 리오에게 소리쳤다.
“자, 잠깐! 우리를 속이려 들지 마! 린스 공주님이 저렇게 험한 말을 쓰실 리가 없어!! 비슷하게 생긴 이상한 누나로 바꿔치기 하려 해도 우린 다 알아!!”
그러자 창문이 다시 벌컥 열렸고 흥분한 표정의 린스는 아이들에게 아까보다 더 큰 목소리로 소리치기 시작했다.
“이 자식들 뭐가 어쩌고 어째!!! 야, 애꾸 꺽다리!!! 저 녀석들 없애버려!!! 목을 내게 들고 오라구!!!!”
린스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뒤에서 누군가가 그녀를 말리듯 데리고 들어갔고 리오는 노엘이겠지 생각하며 피식 웃어 보였다.
“너희들 잘 봤지! 저 녀석 말로는 통하지 않을 것 같아! 계속 가짜를 가지고 우릴 놀리고 있어!!!”
리더의 외침에 다른 아이들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와 소리를 쳤지만 단 한 명, 검은 단발에 사제복을 입고 있는 아이만은 조용히 있었다. 아이들의 외침을 들은 리오는 슬쩍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말로는 안된다… 좋지. 정리 운동 겸 한번 놀자구. 잠깐 있어봐, 검을 안에 두고 왔으니까.”
아이들의 리더는 자신의 검을 힘차게 뽑으며 여관 안으로 들어가는 리오에게 소리쳤다.
“도망갈 생각은 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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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붉은 머리의 사나이가 들어가자 헤린은 라키에게 쪼르르 달려와 그에게 속삭이기 시작했다.
“오빠, 내가 왕궁에 자주 들어가서 아는데, 그 언니 린스 공주님이 맞는 것 같아! 그리고 린스 공주님 데리고 들어간 안경 쓴 여자 있잖아, 몇 년 전 수도를 떠났다던 노엘·메이브랜드 선생님인 듯했다구!”
하지만 라키는 들으려 하지도 않았다.
“웃기지 마! 네가 착각을 한 것이겠지! 자, 모두 대열을 정비해! 녀석이 나올 시간이 되었으니까 긴장을 풀지 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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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바이너를 들고 나온 리오는 여관 앞 넓은 장소로 걸어간 후 디바이너를 자신의 앞에 꽂은 뒤 가만히 아이들이 대열을 정비하기를 기다렸다. 아이들은 잔뜩 기합을 넣은 상태로 리오를 쏘아보았고 리오는 왼쪽 눈을 감은 상태로 가만히 서 있었다. 아이들의 리더가 이윽고 소리쳤다.
“자! 우리들의 준비는 끝났으니 이제 시작해 보자구!!!”
그 아이의 힘찬 목소리를 들은 리오는 속으로 미안하게 생각하며 살며시 눈을 떴다.
“…좋은 날씨야… 안 그런가?”
아이들은 리오가 웬 날씨 얘기를 하나 고개를 갸웃거렸고 리오는 표정을 굳힌 채 계속 말을 이었다.
“너희들 부모님에겐 너희들이 좋은 날씨에 쓰러져 갔다고 전해 드리지. 난 공주님의 명대로 너희들의 목을 가져가겠다. 하나씩 덤비든 한꺼번에 덤비든 상관하진 않아. 결과는 같을 테니까….”
그 말과 동시에 리오의 눈에서 살기가 폭사되자 아이들은 모두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고 리오는 디바이너를 빼어 들고서 자세를 취하였다.
‘뭐, 뭐야…? 내가 왜 뒷걸음질을 쳤지?’
아이들의 머릿속엔 의지가 모두 사라지고 이런 생각만이 맴돌게 되었다.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케톤은 빙긋 웃으며 옆에서 같이 지켜보고 있는 레이에게 말했다.
“리오씨가 겁만 주려고 하는 것 같은데요? 전 또 진짜 싸운다고….”
레이는 표정을 바꾸지 않고 대답을 해주었다.
“저도 그런 것 같습니다만… 리오씬 상당히 연기력이 좋으시군요. 그냥 가식적으로 뿜어내는 살기 치고는 상당히 위협적이에요. 아이들의 얼굴색이 한 번에 달라졌을 정도니까요.”
케톤은 레이가 자신에게 이렇게 많이 말을 한 적이 별로 없었기에 의아한 생각을 가져 보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중요한 때가 아니었다. 케톤은 다시 리오가 서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레이는 여관 식당 식탁에서 빵을 씹고 있는 리오에게 우유를 가져다주며 넌지시 물어보았다.
“저 아이들 밖에 저대로 둬도 괜찮을까요? 상당히 충격을 입은 것 같던데요.”
리오는 우유를 받으며 대답했다.
“나이도 그리 어리지 않은 것 같으니 저 정도 경험은 해 봐야죠. 하지만 의외로 강한 아이들이었어요. 제 살기를 정면으로 받고도 뒷걸음질만 쳤으니까요. 보통의 아이들이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어버렸을 텐데 말이에요. 아마 크면 상당한 인재들이 될 것 같아요. 아, 우유 고마워요.”
리오가 웃어 보이자 레이도 살짝이긴 하지만 미소를 지어 주었다.
“아, 아이고…!”
라키는 부러진 검에 의지하여 몸을 겨우 일으킬 수 있었다. 단 한방에 검이 부러질 정도의 충격을 받은 적이 없던 그에겐 자신을 리오라 밝힌 사나이와의 대전은 정신적, 육체적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라키 형… 나 살아 있어?”
아버지에게 받은 전투 도끼를 한 번 사용해 보지도 못하고 쓰러진 머피는 쓰러진 채 라키를 바라보며 신음했다.
“괴, 괴물이었어…! 어떻게 그 키에서 그 정도의 스피드를 낼 수 있는 거지? 파워도 그렇고… 우리 아버지도 그 정도는 아닐 거야. 으윽… 배가 아파.”
머피 옆에 엎어진 채 쓰러져 있던 닐스는 둘의 말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들며 그들에게 물었다.
“그 남자 갔어 형? 정말 무서워… 소환수 다섯 마리가 한꺼번에 목이 날아가는 모습을 본 건 정말 처음이야. 게다가 한쪽 눈에 붕대를 감아 원근감도 없을 텐데…?”
라키는 쓰디쓴 표정을 지으며 다시 바닥에 주저앉았다. 자신의 오른손에 들린 부러진 칼도 저편으로 내던져 버렸다.
“칫… 우리가 너무 방심한 것뿐이야! 다시 도전하면 성공할 수 있어!!”
“웃기지 마 라키! 하려면 너 혼자 해!!”
루시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오자 라키는 움찔했고 팔짱을 낀 채 헤린과 같이 서 있던 루시는 다시 라키에게 소리쳤다.
“그레이 공작님 같은 대 기사님을 모시고 오지 않는 한 우린 이길 수 없어! 아니, 모시고 와도 이기지 못할지 몰라! 저번에 케톤 기사님이랑 시범 대결할 때와는 다르다고, 그 리오란 남자는 인간이 아니니까!”
루시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헤린이 자신의 옷을 살짝 당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성격이 불같은 루시는 계속 말을 했다.
“린스 공주님은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어! 난 갈 거야!!”
“날도 저물어가는데 이 마을에서 묵었다 내일 우리랑 같이 가지?”
루시는 순간 사색이 되며 자신에게 말한 큰 키의 사나이를 돌아보았다. 헤린이 자신의 옷을 잡아당긴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리오는 빙긋 웃으며 여관 안으로 들어가자는 손짓을 해 보였다.
“자, 들어가자. 잡아먹거나 목을 달라고는 하지 않을 테니 안심해. 돈 달라고도 안 하지.”
라키 일행은 미덥지 못하다는 표정을 지은 채 리오를 경계할 뿐이었다. 리오는 어깨를 으쓱이며 뒤에 서있는 레이에게 말했다.
“제 말은 안 들을 것 같네요. 레이씨가 설득 좀 해주세요.”
“예, 리오씨.”
리오의 모습에 가려 보이지 않던 레이는 기다렸다는 듯 리오의 앞으로 나와 아이들을 향해 상냥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나이 차이가 나 봤자 세 살에서 네 살 정도이니 재미없는(?) 자신과는 다른 분위기로 아이들을 이끌 수 있을 것 같아 리오가 그녀를 데리고 나온 것이었다.
“어디 아픈 곳은 없나요? 말만 하세요 여러분, 리오씨 대신 사과하는 뜻으로 치료해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