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가즈 나이트 – 303화


지크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리오에게 같은 전음을 이용해 말했다.

<생각보다 정정한 할아범 같은데 뭐‥집에서 쉬게 해 드리지. 헤헤헤헷.>

둘이 그렇게 속으로 중얼대고 있을 무렵, 그레이 공작은 리오의 모습을 보고 잠시 넋을 잃고 말았다.

‘저 젊은이의 체형은‥상당한 균형을 이루고 있군. 앞에 있는 무례한 녀석이 대퇴부와 어깨, 가슴, 등과 팔뚝에 근육이 집중된 것과는 정반대야. 오히려 저 젊은이와 대결을 해보고 싶은데?’

지크는 그레이 공작이 리오에게 시선을 두고 있자 손으로 자신의 목을 툭툭 두드리며 콧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공작을 불렀다.

“참 나, 싸우자고 했으면 빨리 싸워요, 이상한 할아버지네‥?”

공작은 순간 이마에 핏발을 세우며 소리쳤다.

“이 녀석! 이건 싸움이 아니라 대결이야!”

지크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흥, 뭐든 간에. 그럼 시작하자고요 할아버지.”

그레이 공작은 자신이 왜 이런 건달과 대결을 하자고 했는지 후회를 하기 시작하며 자신의 검, [코랄 벤]을 뽑아 들며 자세를 취하였다. 지크는 공작에게서 투기가 발산되자 씨익 웃으며 무명도의 자루에 손을 가져간 채 자세를 잡았다.

‘발도술(拔刀術)‥!? 저 녀석 동방의 무술을 익힌 건가? 그럼 첫 번째 공격만 막으면 끝이겠군. 피하면 더 좋고‥.’

그레이 공작은 사실 젊었을 때 동방에서도 여행과 모험을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웬만한 동방 무술의 원리도 거의 알고 있었고 알고 있는 동방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현재 그레이 공작이 생각하고 있는 지크의 수준과 지크의 진짜 수준은 확실히 다른 것이었다.

둥-

시작의 북소리가 울리자마자 그레이 공작은 자신의 검을 대각선으로 세워 방어 자세를 취하였다.

파아아앙-!!

맑은 금속성의 울림이 기사관 건물 안에서 울려 퍼졌고 구경을 하던 케톤과 기사들은 지크가 어느새 그레이 공작의 앞에 있는 사실에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아, 아니 어떻게 저런-!? 어느새 저기 가 있지?”

리오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레이 공작을 바라보았다.

“훗, 정말 노장이군. 완전히 경험에서 나오는 방어였어.”

케톤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리오 이상의 스피드를 가진 사람이 존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리오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는 케톤에겐 경악이었다.

“세, 세상에 저런 사람이 또 있었다니‥?”

그레이 공작과 칼을 맞대고 있는 지크는 의외라는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예전에 바이론에게 사용한 발도술보다 파워와 스피드를 격감시킨 발도술이었으나 설마 막아낼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야아‥큰소리 칠만 한데요 할아버지?”

그레이 공작 역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나 속으론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대, 대단한 힘이군‥! 원래 반격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힘에 밀려 반격을 하지 못했어. 상상 이상인데‥?’

티잉!

칼을 떨어뜨린 둘은 거리를 다시 두고 자세를 정비했다. 지크는 다시 무명도를 집어넣고 아까와는 다른 자세를 취하며 그레이 공작을 바라보았고 공작은 쓴웃음을 지으며 검을 잡은 자신의 팔을 검과 함께 뒤로 돌렸다. 그 특이한 자세를 본 기사들과 케톤은 하나같이 주먹을 쥐며 말했다.

“나왔군‥그레이 공작님의 초 기술, [베니싱]‥!!”

리오 역시 감탄을 하고 있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하는 감탄과는 좀 달랐지만.

‘젊었을 때 꽤 날렸을 할아버지 같군. 저 기술 하나만으로도 꽤 성공했을 거야. 하지만‥[백 스텝]을 쓰는 지크에게 과연 통할까?’

지크 역시 리오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듯, 자세를 낮추며 공작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받아 보게나 젊은이-!!”

그레이 공작의 눈이 순간 번뜩였고 공작의 몸은 일직선의 검광과 함께 어느새 지크가 있던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나 문제가 조금 있었다. 지크의 모습 역시 사라진 것이었다. 기사들의 입이 벌어져 탄성이 터져 나오기도 전에, 지크의 몸이 그레이 공작의 뒤로 뻗은 그림자에서 튀어나왔고 그레이 공작의 눈은 그 순간 크게 떠지고 말았다.

“뭐, 뭐야!? 그림자에서 사람이 튀어나왔어!!!”

기사들의 탄성은 목에서 나오는 도중 이렇게 바뀌었고 케톤은 머리를 감싸며 리오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케톤은 자신이 말할 수백 가지의 감탄을 한마디로 줄여 토해내었고 리오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중에 설명해 줄게, 좀 복잡하거든.”

그림자에서 솟아올라 기사관의 천정 가까이까지 솟아오른 지크는 공중제비를 돌며 안전하게 착지를 했고 빼어들고 있던 무명도를 다시 집어넣은 후 공작을 향해 걸어갔다.

“아이고, 미안해요 할아버지. 옷 비싼 것 같은데 잘라놔서‥괜히 잘랐네.”

지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레이 공작의 옷 등판이 정사각형 모양으로 오려져 바닥에 떨어졌고 공작은 경악에 찬 눈빛으로 지크를 돌아보았다.

“자, 자네는 도대체‥!?”

지크는 빙긋 웃으며 바닥에 떨어진 공작의 옷 조각을 집어 공작에게 전해주며 어깨를 으쓱였다.

“헤헷, 건달은 아니죠 이제? 자자, 간식이나 사 줘요 공작님. 이제 저도 공작님이라 불러 드릴게요. 아하하하핫‥!”

지크의 그런 모습을 본 공작 역시 표정을 바꿔 크게 웃으며 지크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후‥하하하핫!! 좋아, 자네 맘에 들었네 그래!! 내가 후하게 간식을 사 주지!”

그레이 공작은 등판에 구멍이 크게 나버린 자신의 웃옷을 벗어 던지며 지크와 함께 기사관을 나갔고 그들의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던 기사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서로에게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도,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마술인가?”

“사람이 어떻게 그림자에서 튀어나올 수가 있는 거지?”

케톤 역시 멍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리오는 피식 웃으며 케톤의 등을 툭 쳐 주었다. 정신을 차린 케톤은 리오를 바라보았고 리오는 나가자는 신호를 보였다.

“나가자고, 아무래도 인사는 나중에 드려야 할 것 같으니까 말이야.”

“아, 예‥.”

리오와 함께 기사관을 빠져나온 케톤은 나오기가 무섭게 리오에게 지크의 백 스텝에 대해 물어보았다.

“아까 그분이 그레이 공작님의 그림자에서 빠져나온 건 어떻게 된 것이죠? 진짜 마술 같진 않은데요.”

리오는 한숨을 후우 내쉬며 대답을 해주었다.

“음‥그 녀석은 내 형제인 지크라고 하는 녀석인데, 공격 스피드가 나보다 빠른 몇 안 되는 녀석 중 하나지. 그 몇 안 되는 녀석들 중에서도 두 번째로 빨라. 그 스피드를 이용한 공격이야. 상대방의 시각이 허용하는 반응 속도 이상으로 몸을 상대방의 뒤쪽으로 움직인 후 상대의 등에서 움직임을 멈춰 공격을 하지. 우연치 않게도 그림자가 있는 부분에서 자주 멈추기 때문에 그림자에서 튀어나와 공격하는 것처럼 보이게 마련인 거야. 해보려고 애를 쓸 필요는 없어.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니까.”

케톤은 잠시 정신이 멍해짐을 느꼈다. 이제까지 왕국에서 두 번째로 강하다고 소문나 있던 자신이 도대체 몇 번째로 밀려난 것인가. 게다가 그레이 공작 위에서부터는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존재들이고 그들이 싸우는 상대들 역시 인간이 아닌 존재였다. 갑자기 밀려오는 이상한 느낌에 케톤은 몸이 이상해짐을 느꼈고 결국 리오의 망토 자락을 잡으며 힘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으윽‥잠깐 의무실 좀 다녀올게요 리오씨.”

리오는 케톤의 얼굴을 슬쩍 바라보았고 케톤의 얼굴이 백지처럼 하얗게 변해 있자 놀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아, 그래. 그럼 난 저 정원의 중앙 분수에 가서 기다리고 있지.”

“예, 죄송합니다‥.”

케톤이 비틀거리며 어디론가 사라지자, 리오는 차라리 홀가분해서 잘됐다는 듯 가벼운 걸음으로 성 정원의 분수대에 가서 앉았다. 많은 꽃이 피어 있어 아름다운 정원이라 생각한 리오의 눈에 갑자기 어떤 충격에 의해 부서진 기둥이 보였다. 사람이 충돌하여 그런 것이라면 꽤 아팠겠다 생각을 하며 리오는 천천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버릇인 명상이었다.


“마마, 오늘은 어떤 옷을 입으실 건가요?”

베르니카는 미네아의 옷장을 열며 물었고 미네아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요‥입던 것 입을 생각이에요 베르니카. 근데 언니도 참‥그냥 저녁만 하지 왜 무도회까지 하는지‥.”

베르니카는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창가로 다가가 커튼을 약간 젖히고 창문을 통해 보이는 정원을 바라보았다.

“아, 베르니카는 나가지 않을 거에요?”

그러나 베르니카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베르니카의 시선은 정원 중앙에 있는 분수대에 있었다.

‘그‥붉은 머리의 남자‥?’

“베르니카, 왜 그래요?”

“예‥예!?”

문득 정신을 차린 베르니카는 흠칫 놀라며 미네아를 돌아보았고 미네아는 여전히 미소를 띄운 채 다시 베르니카에게 물었다.

“무도회에 나가실 거냐고요. 노엘과 베르니카가 나오면 참 멋질 것 같아서요.”

베르니카는 커튼을 다시 치며 고개를 저었다.

“저에겐 무도회란 어울리지 않을 것 같군요. 미네리아나 마마께서 춤을 추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한답니다.”

베르니카는 천천히 방문 쪽으로 걸어갔고 미네아는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머, 나가려고요?”

“아, 예‥조금 후에 돌아오겠습니다.”

베르니카가 문을 닫고 나서자 미네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베르니카가 멍하니 서 있던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