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330화
노엘이 리오를 끌고 도착한 장소는 한 주점이었다. 저녁이 되어서인지 주점 안엔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여종업원들이 있었다. 그 여종업원 중 한 명이 리오가 안에 들어오자 휘파람을 불며 그에게 윙크를 보내주었고 리오 역시 윙크로 답해주었다.
노엘은 가장 구석진 테이블에 앉으며 따라서 앉는 리오에게 말했다.
“리오씬 주점에 자주 오시나 보죠? 점원들이 아는 체를 하는 것 보니‥.”
리오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설마, 그럴리가요. 근데, 절 여기까지 데리고 오신 이유가 있을 법한데‥말씀해주시겠어요? 해주시면 술은 제가 사지요.”
노엘은 대답 대신 엷은 웃음을 지은 채 턱을 괴고 리오를 바라보았고 리오는 오늘 따라 이상하구나 생각하며 때마침 종업원이 가져다준 물을 조금 들이켰다. 노엘은 천천히 말했다.
“음‥저의 일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은 딱 네 사람뿐이군요.”
“‥?”
리오는 노엘이 ‘자신의 일’에 대해서 말하자 얼른 알아듣지 못했지만 약간 가라앉은 그녀의 분위기를 느끼고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었다.
“저와‥제 친구인 베르니카‥그리고 리오씨와 라세츠 후작‥. 솔직히 이 일은 저 혼자의 불행으로 끝내고 싶었어요. 하지만 베르니카가 알게 되었고‥뜻하지 않게 리오씨가 알게 되셨죠. 후훗‥전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노엘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자 리오는 떫은 표정을 지은 채 턱을 괴었고 노엘은 리오가 뜻밖의 행동을 취하자 약간 놀란 기색을 보였다. 곧, 리오가 말했다.
“‥당신께서 말하기조차 어려운 일을 예전에 당했다는 것은 말씀하셨다시피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선생님을 위로해 드리는 것이라면 전 언제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 그러실 때마다 그 얘기를 들어야 하는 저나, 아니면 그 일 때문에 남 몰래 걱정해야 하는 베르니카씨의 마음은 생각해 보셨는지요. 물론 선생님이 여성이신 이상 그 일이 큰 상처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위로해 드릴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고, 베르니카씨가 걱정해주는 것 역시 한계가 있습니다.”
노엘은 리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고 리오는 자세를 바로 하며 계속 말했다.
“그때, 꿈의 세계 안에서도 제가 말씀드렸었습니다. 이 일은 당신 스스로의 힘이 아니면 벗어나기 힘들다고요. 이런 알코올에 과일즙을 탄 액체로 그 일을 잠시 잊는 것이나, 신세 한탄을 하는 것으로 이 일은 끝나지 않습니다.”
결국 노엘은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고, 리오는 등을 의자의 등받이에 바짝 붙이며 한숨을 쉬었다. 노엘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저도 알고 있지요, 하지만‥하지만 전 그렇게 못하겠어요‥! 도저히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을 어떻게 해요‥!!”
그리고 잠시간 침묵이 흘렀다. 리오는 옆에서 어물어물 거리던 종업원에게 대충 주문을 해서 돌려보낸 후, 노엘을 바라보다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럼, 제가 아는 방법 한 가지 알려 드릴까요?”
“예‥?”
노엘은 살짝 고개를 들었고 리오는 노엘 쪽으로 상체를 굽히며 말했다.
“이건‥제 동생에게 많이 썼던 방법인데요, 눈을 감아 보세요.”
노엘은 리오와 얼굴이 가까워지자 가슴을 두근거리며 그의 말에 따라 눈을 감았고 리오는 노엘의 안경을 벗긴 다음 그녀의 머리를 양손으로 지그시 감싼 후 감긴 눈 위에 엄지를 살짝 올린 후 말했다.
“자아‥곧 당신의 앞에 떠오르는 게 있을 겁니다. 아, 제 눈엔 벌써 보이는군요. 한 아이가 서 있죠?”
노엘은 리오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처음엔 알 수 없었으나 계속 그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그 아이는 누구를 찾고 있습니다‥누굴까요? 아, 자신의 어머니를 찾고 있군요. 아이의 얼굴이 갑자기 밝아졌죠? 어머니를 찾았나 보군요. 흐음‥아이 어머니의 모습도 보이는군요. 안경에‥갈색 머리를 기른 미인이네요.”
“‥아‥!”
말이 거기까지 나오자, 노엘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탄성을 질렀다. 리오의 행동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어머니는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갑니다‥행복해 보이죠? 그녀는 집에서 천천히 가족의 식사를 준비하며 자신의 곁에서 놀고 있는 아이를 보고 흐뭇해하는군요. 아,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지요? 그녀의 남편인 듯한데요‥아, 이런. 이젠 보이지 않는군요.”
리오가 말을 마치며 손을 떼려고 하자, 노엘은 리오의 손을 잡았고 리오는 말없이 노엘을 바라보았다. 노엘은 살짝 흐르는 눈물을 옷소매로 닦으며 천천히 말했다.
“‥리오씨의 말, 알겠어요. 잠시 잊었던 것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어요. 정말 고마워요 리오씨‥.”
리오는 고개를 저으며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후우‥아닙니다. 전 도와드린 것뿐이에요. 하지만 다시는 잊지 마세요, 꿈이란 것을‥. 자신의 꿈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지는 않겠지만 일을 꿈에 가깝게 만드는 것이 생각할 줄 아는 생물의 존재 이유라고 전 생각합니다. 훗, 물론 세계 정복 같은 꿈은 또 다른 누군가의 순수한 꿈에 의해 무너지곤 하지만요.”
노엘은 깜짝 놀라며 리오를 멍하니 바라보았고 리오 역시 눈을 깜빡이며 노엘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노엘이 말했다.
“그런 말도 할 줄 아세요‥?”
잠시 후, 둘은 주점을 나섰고 노엘을 바래다주느라 성까지 또 한 번 가야만 했던 리오는 그녀와 헤어지며 이상한 말을 듣게 된다.
“아, 리오씨‥!”
리오는 머리를 긁적이며 노엘을 돌아보았고 노엘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아까‥그 여자의 남편을 보지 못했다고 하셨죠? 음‥전 누군지 얼핏 본 것 같아요. 후훗‥그럼 가세요.”
리오는 멍하니 서서 성 문이 닫히는 것을 바라보다가, 돌아서서 공작의 저택으로 돌아가며 중얼거렸다.
“‥얼핏 봤다고? 이상하군‥진짜로 사람 눈에 보인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0시가 되어 저택에 도착한 리오는 어쩔 수 없이 밖에서 자려 했다. 지금 문을 두드리면 공작의 식구들이 모두 깨어날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밤 귀가 밝은 공작 식구들의 특징이었다. 리오는 자신의 망토를 몸에 둘둘 말며 현관 앞에 누웠다. 별을 세려 해도 날이 어두워 그 짓도 못할 거란 생각에 리오는 그냥 눈을 감고 잠을 청하였다.
“휴우‥하여튼 사람 불러내는 이유도 여러 가지라니까‥나도 참 못할 짓 하는군. 어린애에게 통하는 방법인 줄 알았더니 25세의 다 큰 여자에게도 통하다니‥.”
그렇게 말하면서도 리오는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해 했다. 과연 경기 최종일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곧 리오도 주위도 모두 잠잠해졌다.
그러던 중, 가만히 잠을 자던 리오가 순간 눈을 부릅뜨며 일어났고 그는 망토를 벗어놓은 채 현관문에 귀를 가져갔다. 부스럭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기척을 제대로 읽을 수 없다, 잠을 잤다면 큰일 날 뻔했군. 이 정도로 자신의 기를 지울 수 있는 존재는 12 신장들밖에 없겠지. 적어도 이 도시 안에선‥아무래도 내가 괜히 노엘 선생을 따라 나선 것 같은데?’
리오의 눈은 보통의 인간과는 달리 적외선 감지 투사 기능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물체 투시 기능은 가지고 있지 못했다. 창문을 통해 안을 보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그것은 금물이었다. 아무리 칠흑 같은 밤이라도 불이 완전히 꺼진 상태라면 창문을 통해 들여다보는 누군가의 모습이 안에선 보이기 때문이다. 리오는 희미하게나마 느껴지는 상대방의 기에 의존하며 위치를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 문고리를 따 버릴 방법을 생각해 보았으나 그 생각은 할 필요가 없어졌다. 현관문은 허무하게도 열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응? 12 신장이라서 그런가? 대담하게 현관문으로 들어온 모양이군. 좋아, 누굴 암살하러 들어왔는지는 모르지만 나라면 실수한 거다‥!’
이윽고 그 기척은 천천히 리오가 있는 현관 쪽으로 걸어왔다. 물론 그쪽에서 리오를 감지한 건 아니었다. 리오는 숨을 멈췄다. 숨소리조차 들릴 수 있으니까‥.
스윽–
리오는 순간 깜짝 놀랐다. 그쪽에서 분명 자신을 감지한 게 아닌데도 그 불청객은 현관 쪽으로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만 감추고 있을 뿐, 리오의 느낌으로는 현관 쪽으로 걸어오는 누군가는 완전 무방비 상태에 가까웠다.
‘쳇, 일을 벌써 마친 건가? 좋아, 이렇게 된 이상‥!’
리오는 현관 위에 박쥐처럼 소리없이 거꾸로 올라탄 채 그 누군가가 나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의 숨은 여전히 멈춰 있었다.
끼이익–
곧 문이 열렸고 누군가의 그림자가 나타나자마자, 리오는 디바이너를 왼손으로 뽑아들며 그 누군가를 덮쳤다. 불청객은 리오가 입을 막은 탓이었는지 소리 없이 리오의 몸에 깔려 쓰러졌고 리오는 불청객의 얼굴을 잡은 채 목에 디바이너를 가져가며 숨통을 트고 말했다.
“훗, 감히 어디라고‥. 어디 12 신장 누구인지나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