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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34화


“뭣이라고!!”

하사바는 보통 사람보다 배는 큼직한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치며 그의 앞에서 무릎 꿇고 앉아있는 장정들에게 호통을 쳤다. 장정들은 움찔하며 숙이고 있던 고개를 더더욱 숙였다.

“한 녀석에게 열댓 명이 맞았다는 게 말이 되느냐! 멍청한 자식들!!”

턱수염을 기른 장정 한 명이 슬며시 고개를 쳐들며 말했다.

“저희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두목님. 하지만 그 녀석은 엄청 셌다고…”

“닥쳐!!”

장정은 하사바의 호통 소리에 말을 끝맺지 못했다. 하사바는 그의 험악한 얼굴을 더더욱 찡그리며 숨을 씩씩 쉬어댔다. 몸에서 나는 열 때문인지 그는 옆의 탁자 위에 놓여있는 주전자를 한껏 비운 뒤에 다시 장정들에게 말했다.

“오늘 저녁 내로 그 녀석의 면상을 내 앞에 가지고 오너라! 그렇지 못하면 알지!!”

하사바는 그의 손에 있는 주전자를 손아귀의 힘만으로 짓이기며 그들에게 소리쳤다. 장정들은 겁먹은 표정으로 대답했고 곧이어 우르르 밖으로 나갔다.

“제기랄! 그건 그렇고 이리프와 티퍼는 어디 가서 안 오는 거지? 이것들이 도망갔나!”


이리프와 티퍼는 리오와 슈를 도적들의 본거지로 안내하고 있었다. 노을이 붉게 물들 무렵에 그들은 거의 쓰러져가는 저택을 볼 수가 있었다.

“이곳이 본거지야?”

슈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세 명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리오는 믿는다는 표정이었다.

“이곳이 확실해. 왜냐하면…”

리오는 말끝을 흐리면서 주먹을 빠르게 이리프의 앞으로 뻗었다.

쉭!

“아아…?!”

이리프는 자신의 눈앞에서 정지한 반짝이는 물건을 바라보았다. 화살이었다. 리오는 씨익 웃으며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화살을 뒤로 던졌다.

“봐, 환영객들이 나오잖아.”

리오의 말대로 저택의 곳곳에서 사람들의 그림자가 솟아나오기 시작했다. 적어도 스무 명쯤은 되는 것 같았다.

“이리프, 티퍼!! 이 배신자들 같으니라고, 우리들이 직접 너희들을 찾아가려 했는데 마침 제 발로 걸어왔구나!”

이리프는 앞으로 나서며 그들에게 소리쳤다.

“배신자는 당신들이야! 당신들은 우리를 2년 동안 이용만 했잖아!”

티퍼도 같이 소리쳤다.

“이제 더 이상은 기다릴 수가 없어! 우리들은 당신들 때문에 2년 동안 부모님들을 만나지도 못했다고! 어서 꽃을 내놔!!”

그러나 도적들은 들은 체도 안 했다. 오히려 활시위를 더더욱 당길 뿐이었다.

“뻔뻔한 녀석들… 뒤에 따라온 바보들과 함께 죽어라!!”

그들은 일제히 잡아당겼던 활시위를 놓았다. 은색의 섬광들이 이리프와 티퍼를 향해서 빠르게 날아들었다.

“훗.”

그러나 이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을 리오는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망토 자락의 끝을 잡은 후에 이리프와 티퍼의 앞으로 달려든 후 망토를 휘둘렀다. 엄청난 풍압으로 인하여 화살들은 힘을 잃고 땅으로 떨어졌다.

“… 비겁한 자식들. 나하고 이야기 좀 해야 할 것 같군…”

리오는 자신의 망토를 놓으며 그들에게 말했다. 도적들 중에 몇 명은 리오를 보고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저 녀석이다! 우리 형제들을 시장 거리에서 망신 주었다는 빨간 머리!”

그들은 활과 화살을 놓고서 아래쪽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나서 제각기 무기를 꺼내어 위협을 하는 듯한 동작을 취했다.

“슈, 이 애들을 데리고 먼저 가.”

슈는 자신의 등에 장비된 대형 나이프에서 손을 떼내면서 말했다.

“혼자 괜찮겠어요?”

리오는 슈를 향해서 자신의 엄지손가락을 펴 보였다.

“믿어보라고.”

슈는 알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서 이리프와 티퍼의 안내를 받으면서 저택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도적 한 명이 그들을 향해서 작은 암기들을 던지려고 손을 들었다.

“누가 쉽게 보내준다고 그랬느냐!”

쉬익-!!

그때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그 도적의 들었던 오른팔이 주인을 잃고서 땅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그 도적은 알지도 못한 듯 자신의 팔을 휘둘렀다.

“받아… 어억!”

그의 손에서 나간 것은 암기 대신에 붉은 피였다. 그는 자신의 팔을 감싸면서 땅을 굴렀다.

“방해하면 저렇게 된다. 너희들의 현재 상대는 나야.”

리오의 오른손에는 어느새 디바이너가 들려있었다. 리오의 애검(愛劍)이기도 한 디바이너는 그 특이한 자색을 더더욱 진하게 하면서 살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럼, 수고해요!”

슈는 그녀의 큰 눈으로 윙크를 해 보인 후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리오는 천천히 자세를 취했다. 도적들은 자신들의 눈앞에서 동료의 팔이 순식간에 날아간 걸 봤던 터라 쉽사리 접근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얼마간의 정적이 흐르다가 휘어진 검을 들고 있는 도적이 참을 수 없다는 듯 리오에게 달려들었다.

“받아라-ㅅ!!”

그 도적은 기세 있게 리오의 정면으로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리오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맞받아쳐 주었다.

“헙!”

몇 줄기의 보라색 검광이 도적의 눈앞에서 춤을 추었다. 도적은 양 팔과 다리에서 피를 뿜으며 땅으로 쓰러졌고 그가 가지고 있던 검은 공중에서 유리가 깨어지듯이 깨지며 흩어졌다.

“크아악! 히, 힘줄을…!!”

그 도적은 몸을 뒤틀어 보기는 했으나 사지를 움직이지는 못했다. 다리와 팔의 힘줄이 모조리 잘려나간 것이었다.

“크아악-!! 한꺼번에 덤벼라!!”

도적 중에 한 명이 분노를 토해내며 동료들에게 소리쳤다. 그러자 도적들은 무기를 휘둘러대며 리오에게 덤벼들었다. 일곱 명쯤이 리오의 머리 위에서 검을 내리꽂으려는 순간이었다. 리오의 입에서 기합성이 터져나오며 붉은색의 검광이 주위에 꽃을 그리기 시작했다. 피의 꽃을…

“혈화난무(血花亂舞)!!”

“크아아악-!!”

도적들의 몸은 공중에서 떠 있는 상태로 사지에서 피를 뿜어내었다. 그 피들 중 몇 방울이 리오의 얼굴에 튀었다.

“훗…”

리오는 왼손으로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었다. 아직 온전한 도적들은 리오의 모습을 보면서 몸서리를 쳤다. 리오의 눈은 이상할 정도의 푸른 광채를 띠고 있었다. 이른바 ‘살기’였다.

“다음은 누구냐…”


슈와 이리프는 계단을 통해서 지하층으로 내려갔다. 슈는 의외로 쉽다고 생각했으나 결코 그렇지가 않았다. 도적단의 본거지로 통하는 일직선 통로가 막혀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통로는 바위로 단단하게 막혀있었다. 리오라면 모를까 슈와 이리프, 티퍼의 힘으로는 도저히 바위를 치울 수가 없었다.

“다른 길은 없니?”

“있긴 하지만… 그곳은 너무 위험해요.”

다른 통로는 일직선 통로의 옆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부비트랩이 잔뜩 깔려있어서 쉽사리 통과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 어쩔 수 없지. 여기서 지체하면 하사바란 놈은 도주하고 말 거야. 그대로 뚫고 나가는 수밖에.”

“… 정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지요.”

셋은 통로의 문을 열었다. 오싹할 정도의 한기가 안에서 느껴져 왔다.

“조심하세요. 여기를 제대로 빠져나간 사람은 몇 안 되니까요.”

“그런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 걱정 말아.”

슈는 온몸의 촉각을 곤두세웠다. 말스 왕국의 7호장이란 명성은 헛으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마치 동물과도 같은 감각이 그녀의 몸에는 배어 있었다. 집중했을 때의 그녀의 능력은 마치 야행성 맹수와도 같은 것이었다. 공기의 흐름마저도 그녀는 읽고 있었다.

“…… 잠깐!”

아무 일 없이 걸어가던 그녀는 뒤에 따라오던 일행을 멈춰 세웠다.

“하, 함정이에요?”

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바닥에 쌓여있는 먼지 한 줌을 한 움큼 쥐었다.

“잘 봐.”

그녀는 앞쪽의 복도에 먼지를 뿌렸다. 놀랍게도 먼지들은 바닥에 흡착이 되듯이 아래로 떨어졌다.

“일렉 트랩인 것 같아. 이대로 지나갔다면 구이가 됐겠지.”

이리프는 불안한 듯 말했다.

“그렇다면 이 이상은 갈 수가 없나요?”

슈는 둘을 돌아보며 미안하다는 듯 말했다.

“난 어떻게 해서든지 갈 수 있겠는데 너희들은 힘들어. 혹시 물의 마법이나 땅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면 모를까…”

“땅의 마법이요?”

이리프는 마법이란 말을 듣고 뾰족한 귀를 쫑긋거렸다. 티퍼도 미소를 지었다.

“저,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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