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380화
「먼저 인사드리겠소, 제네럴 블릭사 회장님.」
화면을 주시하던 회장은 옆쪽 소파에서 목소리가 들려오자 흠칫 놀라며 그곳을 바라보았다. 소파엔 붉은색 턱시도를 입은 칠흑 같은 피부를 가진 한 악마가 앉아 있었다. 그 악마는 빙긋 웃으며 손바닥을 폈다.
「아아, 안심하시오. 내가 바로 네그 대신 온 마 귀족, [크라주]라고 하오. 순전히 의리 때문에 인간계에 오긴 했지만 네그의 계약 원칙은 잘 이행하겠소.」
크라주가 자신을 소개하자 회장은 인사로 목례를 살짝 하였다.
“아아, 갑자기 나타나셔서 깜짝 놀랐지만 대신 오신 분이시라니 안심입니다. 그런데‥네그 씨와는 잘 아시는 사이신가 보군요?”
크라주는 송곳니를 드러낸 채 웃으며 말했다.
「하핫, 그렇지요. 장단점이 너무나 다른데도 우린 이상하게 친해지더군요.」
“장단점이요?”
회장이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크라주는 자신의 앞 탁자에 놓여있는 담배 상자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물며 대답을 했다.
「예, 예를 들어‥네그 녀석은 거의 모든 면에서 뛰어납니다. 자제력도 있고, 악마답지 않게 측은함도 알죠. 하지만 단점으로는 자존심이 너무 강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상대를 잘못 만나 몸을 상했지요. 반면에 저는 자제력이 좀 부족하고‥불쌍하다는 것을 이상하게도 이해하지 못하겠더라고요. 하지만 전 자존심 때문에 몸을 망친 적은 없습니다. 하하하핫‥.」
크라주가 웃으며 숨을 뿜어내자, 입에 물고 있던 담배가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하였고 크라주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회장에게 말했다.
「어허‥이런. 죄송합니다. 인간계의 담배는 빨리 타는군요. 하하하핫‥.」
그때, 화면에서 둘을 바라보고만 있던 엠펠러가 다시 입을 열었다.
「회장, 와카루 박사가 저쪽 세계의 일에 대해서 말할 게 있다고 하오.」
회장은 다시 화면을 바라보았고 크라주도 심심한 듯 같이 화면을 바라보았다. 곧 화면은 와카루 박사가 있는 실험실로 넘겨졌고 와카루 박사가 웃으며 회장에게 인사를 하였다.
「하하핫,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5일 만에 뵙습니다.」
“그렇구려. 그런데, 할 말이라는 것이 뭐요?”
와카루 박사는 여느 때처럼 싱글싱글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예, 빔 병기가 드디어 완성이 되었습니다. 허허허헛‥.」
그 말을 들은 회장은 대단히 기뻐하며 와카루 박사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오오, 그러오? 정말 축하하오! 그런데, 카라크 박사는 어디에‥?”
「공장에 가셨습니다. 15일 후 있을 저쪽 세계에서 보내오는 선물을 위해 축포를 날리시겠다고 그러시더군요. 한 400대 정도의 강화형 수라와 나찰들에게 [기간틱 캐논]과 [기간틱 블래스터]가 장착될 것입니다. 그분 꽤 성격이 급하시더군요. 실험 재료가 남아 돈다 하시면서 4일을 꼬박 세우실 줄은 몰랐습니다, 허허헛‥.」
일명 [기간틱 프로젝트]라 명명된 광학 병기 개발 계획을 모르는 크라주는 궁금한 표정으로 와카루 박사에게 물었다.
「실험 재료? 얼마나 되길래 남아돌 정도요? 내가 알기로는 이 세계의 자원은 우라늄이 이상 반응해서 없어진 후 겨우 생활할 정도로 줄었다 들었는데‥.」
그 질문에 와카루 박사는 안경을 매만지며 눈웃음을 지은 채 대답했다.
「아, 예. 한 2000명 됩니다. 좀 반항이 있어 50명가량을 놓치긴 했지만 그 후에 입을 막아 버리니 괜찮더군요, 허허헛‥.」
그 대답을 듣고 와카루의 말이 무슨 소리인지 이해한 크라주는 씨익 웃으며 와카루를 향해 말했다.
「후훗‥당신은 아무래도 나보다 더 악마인 것 같소, 하하하핫‥!」
와카루는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흠, 칭찬으로 듣지요, 허헛‥. 아, 회장님. 저쪽 세계에서 전갈이 왔습니다. 약 15일 후 제가 아까 말씀드렸던 멋진 선물이 이쪽 세계로 온다고 말입니다.」
“호오‥그러오? 기대가 되오. 아, 도망쳤다던 50명은 어떻게 되었소?”
와카루는 약간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흠‥사실 마력 수준이 AA급이라 죽이긴 아까웠지만‥별 수 없죠. 귀찮아지는 것보다야 나은 듯해서 나찰과 수라들로 추격을 보냈지요. 대다수가 목숨을 잃은 것 같습니다. 보낸 나찰과 수라의 생체 반응이 꺼진 것으로 보니 말입니다. 별로 걱정은 마십시오. 설마 50명이 무슨 일을 벌이겠습니까?」
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몇 마디를 주고받은 후 화상 통신을 끊었다. 그러자 크라주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후훗, 한 명으로도 계획은 변동될 수 있지‥.」
“예, 예!?”
그 말에 회장은 깜짝 놀라며 크라주를 바라보았고, 크라주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저희들이 모시고 있는 일곱 분의 왕 중 한 분만 이 세계에 나오신다면 이곳은 그때가 멸망이외다. 그러면 당신들의 계획이 아주 치밀해도 끝이지요. 뭐, 그럴 일은 없겠습니다만‥웬만하면 완벽히 처리해 주십시오 회장님. 당신 능력이라면 그 50여 명을 찾는 것이 쉬울 텐데요‥? 그리고 저와 제 부하들도 도와드리지요.」
회장은 턱에 손을 가져간 채 곰곰이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소. 위성이라도 동원해서 꼭 그들을 찾아보겠소. 하지만 이상하게도 요즘 위성들이 말을 안 들어서‥뭐 아는 것 있소?”
「‥후훗‥글쎄요.」
크라주는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5장 <구원의 목소리>
리오는 바이칼과 함께 미국 동부를 향해 날고 있었다. 아예 그곳으로 탐색지를 이동할 생각은 아니었다. 잠깐 정찰을 하겠다는 의미였다. 한 시간 동안 플레어 부스터를 이용해 날아가던 바이칼은 잠깐 쉬려는 듯 플레어 부스터의 에너지 방출을 끊고 속도를 줄인 후 날개를 천천히 퍼덕였다.
“음‥어디까지 왔어?”
리오는 테이프에 의지해 음악을 들으며 바이칼에게 물었고, 바이칼은 리오를 힐끔 바라보며 말했다.
「요즘 들어서 날 비행기로 착각하는 것 같군‥너.」
그 말에 리오는 머리를 긁적이며 미안하다는 듯 손바닥을 펴 보였다.
“알았어 알았어. 근데‥너 이 큰 바다가 이 세계에선 뭐라고 불리는지 알아?”
바이칼은 숨을 짧게 내쉬며 중얼거렸다.
「내가 알 바 아니지.」
리오는 피식 웃은 뒤 설명해 주었다.
“대서양, 영어로는 <Atlantic Ocean>이라고 하지. 운이 없으면 이쪽에 자주 와야 할 거야. 그냥 알아 둬.”
「‥재미없는 말만 하는군.」
바이칼은 투덜대며 계속 날개를 퍼덕였다. 리오는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숨을 크게 들이쉬어 보았다. 약간 비릿한 바다 냄새가 느껴지는 듯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산은 흔히 보지. 하지만, 바다를 직접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꽤 많아. 이 세계에서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말이야. 아까 말했듯이‥운이 없으면 이 바다도 사라져 버려. 그냥 큰 강이 되어 버리지.”
바이칼은 조용히 리오의 말을 듣고 있다가 이번엔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쪽 세계에 못 가는 것이 꽤나 안타까운 모양이군. 그런 말까지 하는 것 보니까‥.」
리오는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씁쓸히 웃을 뿐이었다.
“‥후훗, 그럴지도.”
그때, 건전지가 모자라다는 신호음이 짧게 들려왔고, 리오는 인상을 쓰며 카세트를 라디오 모드로 돌려 보았다. 공해상이라 들리는 것이 거의 없을 게 분명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한 리오는 튜너 스위치를 계속 눌러 보았다.
“음음‥쓸데없는 짓인가‥?”
리오는 피식 웃으며 카세트를 끄려 했다. 그 순간, 카세트에서 무언가 말소리가 들려오자 리오는 손을 멈추고 튜너를 수동으로 조정해 보았다. 라디오에서 들리는 무선이라 정확하진 않았지만 이것은 확실한 말소리였다. 그것도, 이 세계의 어떤 언어도 아닌 색다른‥. 하지만 리오는 그 언어를 알고 있었다. 그럴 것이, 그가 날려 왔던 세계에서 쓰는 언어였기 때문이었다. 신호를 보내고 있는 그 누군가는 자세히 들리지는 않았지만 절박한 목소리로 구조 요청을 하는 듯했다. 리오는 인상을 쓰며 바이칼에게 말했다.
“고도를 높여 줘, 마침 구름이 없으니 위에서 시력을 확대해 보면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바이칼은 고개를 끄덕인 후 재빨리 고도를 높여 나갔다. 리오는 불안이 섞인 표정을 지으며 생각했다.
‘누구지? 어째서 그쪽 세계의 사람이 여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