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388화
7장 [전설의 대륙]
“나가요 나가! 어디 숙녀 침대에서 다 큰 남자가 몸을 부비며 잠을!”
리오는 넬의 높은 톤의 목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그와는 어울리지 않게 꽃그림이 그려진 이불을 덮고 침대에 누워있던 리오는 머리를 긁적이며 천천히 일어났다.
“으음‥오늘은 좀 피곤해서 그러니 이해해 주렴 넬, 그리고 15세나 된 숙녀가 다 큰 남자가 자고 있는 방에 그냥 들어오니‥.”
그러자, 넬은 허리에 손을 가져가며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헹, 노크를 몇번이나 했다고요! 그건 그렇고 오늘 피곤하긴 하나 보네요? 언제나 펄펄 날던 사람이 오늘은 이렇게 빌빌 거리는 것을 보니‥
이봐요! 자면 어떡해요!”
다시 쓰러져 리오가 잠에 빠져 있자 넬은 결국 그를 흔들며 잠에서 다시 탈출시켰다.
리오는 헝클어진 머리를 풀고 소리없이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하기 시작했다. 핏자국도 몸에 남아 있었고 자느라 흐려진 정신도 맑게 할 겸이었다. 욕조에 담긴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근 리오는 한숨을 후우 쉬며 머리를 뒤로 젖혔다.
기의 소모가 위력에 비해 별로 없는 오메가 선샤인이긴 했지만 안전주문이 풀리지 않은 상황에선 어쨌든 대 기술이었다.
리오가 그렇게 거의 정신을 잃은 상태가 된 사이, 누군가가 욕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리오가 들어간지 모르고 있는 티베였다.
“어머? 누가 착하게도 물을 받아놨네, 넬인가? 세이아씬가? 그런데 왜 이렇게 김이 자욱해, 넘어지겠네.”
티베는 천천히 옷을 벗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샤워기의 적외선 밸브에 손을 대었다. 파란색 방수 센서에 손을 가져가자 꼭지에선 차가운 물이 나왔고 티베의 탄력있는 피부를 적셨다.
샤워기에서 찬 물이 나오자 욕탕 안의 김은 빠르게 사라졌다. 살짝 미소를 지은채 몸을 돌려보던 티베의 눈엔 당연하게도 욕탕 안에 들어가 있는 리오의 모습이 들어왔고 그녀의 눈은 이내 휘둥그레 커졌다.
“흡!? ‥음.”
리오가 정신 없이 들어가 있는 것을 확인한 티베는 타월로 조용히 몸을 닦고 옷을 챙겨 입은 후 살며시 욕실에서 나왔다.
티베는 자신의 방에 들어가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며 울상인채 중얼거렸다.
“잉‥이제 시집 어떻게 가지‥?”
그 일은 다행스럽게도 티베만의 비밀이 되었다.
한시간이 지나도록 리오가 욕실에서 나오지 않자 결국 바이칼이 한심하다는 듯 들어갔고 리오는 여전히 반 정신을 잃은 상태로 지금은 식어 버린 물 안에 들어가 있었다.
바이칼은 혀를 차며 오른손 손가락을 이리저리 교차해 흰색 마법진을 만든 후 거기에서 나오는 빛을 리오에게 쐬어 주었다. 상대방의 정신 및 상태를 회복시켜 주는 회복계 마법 <라이트 윈드>였다.
“음‥?”
그 마법이 효과를 본 듯, 리오는 정신을 차렸고 바이칼은 리오의 젖은 머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
“나와, 저녁 안먹는다고 여자들이 난리더군.”
“‥엇, 시간이‥? 내가 이렇게 지쳤나?”
리오는 머리를 흔들며 욕조에서 나와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해 몸을 닦은 후 욕실에서 나왔다.
부엌에 그가 들어오자 티베는 순간 숨을 죽이며 얼굴을 붉혔고 리오는 고개를 갸웃 거리며 그녀의 앞에 앉아 웃으며 물었다.
“왜그러세요? 못볼거라도 보셨나요?”
그러자, 티베는 황급히 손과 고개를 저으며 강하게 부정했다.
“아, 아니에요!! 그럴리가요, 전 여기서 조용히 저녁을 먹고 있었다고요!!”
“네‥?”
리오는 고개를 갸웃 거리며 세이아가 건네준 특제 고기빵을 천천히 씹기 시작했다. 빵 속에 박힌 작은 고기 입자들이 리오의 입맛과 체력을 돋우어 주는 듯 했다.
리오는 빙긋 웃으며 세이아에게 감탄을 토했다.
“와‥대단하신데요? 요리 솜씨가 예전보다 더 좋아지신 것 같네요.”
세이아는 약간 얼굴을 붉히며 미소를 지었다.
“어머, 별말씀을. 아, 넬이 만든 것도 있는데 드셔 보실래요?”
“아, 그래요? 그럼 주세요, 오늘은 많이 먹어야 할 것 같으니까요.”
리오의 주문에 세이아는 곧 접시에 많은 빵과 과자를 내 왔고 넬은 기대에 가득한 눈빛으로 리오를 바라보며 물었다.
“자자, 빨리빨리 먹어봐요! 이 어여쁜 15세의 소녀가 손수 만든 특제 과자와 빵!”
리오는 속으로 모양이 약간 이상하다 생각하며 가장 잘 된 것으로 보이는 과자를 하나 집어 입에 넣어 보았다.
“‥!”
그 과자를 삼킨 후, 리오는 웃으며 넬에게 말했다.
“음‥수고했다 넬, 괜찮은데?”
그러자 넬은 손가락을 튕기며 성공했다는 듯 기쁨의 표정을 지었다.
그때, 바이칼이 천천히 들어와 리오의 옆자리에 앉았고 넬이 만든 과자를 손가락으로 하나 집은 후 조용히 리오에게 물었다.
“‥이게 뭐지?”
그 순간, 넬의 얼굴은 울상으로 변했고 손에 집은 것을 먹은 바이칼의 감상은 그 소녀를 더욱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
“‥소금 과자도 다 있었군. 흥‥.”
“이이익‥!!! 너무해–!!!!”
결국 넬은 부엌 바깥으로 뛰쳐 나가버렸고, 리오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바이칼을 바라보았다.
“‥너무 그러면 못써.”
“난 정직하게 말한 것 뿐이야.”
리오는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부엌 문에서 보이는 거실 소파에 걸터앉아 TV를 보고 있는 넬에게 시선을 돌려 보았다.
“‥그런데 저앤 또 왜 나간거야‥?”
그러자 앞에서 식사를 하던 힐린이 당연하다는 얼굴로 리오에게 말했다.
“저 나이에선 당연한 일이에요 리오씨, 저라도 나름대로 정성껏 만들었다 생각하고 있는데 그런 말을 들었으면 집이라도 나갔을텐데요.”
바이칼은 아무 표정 변화 없이 조용히 식사를 할 뿐이었다.
부우우웅‥
그때, 티베의 주머니에서 작은 진동음이 들려왔고 티베는 소리의 장본인인 호출기를 꺼내 번호를 확인하였다.
“‥응? 베셀 선배님? 무슨 일일까?”
티베는 부엌에 있는 전화기를 들고 베셀이 호출한 방송국 직원실에 전화를 걸었다. 리오와 바이칼은 청각을 확대한 상태로 계속 식사를 했다.
『아, 티베? 큰일이야 큰일! 어서 TV를 켜 보라구!! 대서양에 일이 생겼어!!』
전화를 받자마자 베셀이 큰일이라고만 하자 티베는 약간 인상을 쓰며 거실에 있는 넬에게 말했다.
“넬, 채널좀 바꿔줄래? 급한 일이 생긴 것 같아서 그래.”
넬은 말 없이 채널을 바꿔 보았다. 바꿔진 채널에선 또다시 뉴스 속보가 전개중이었다.
「여러분, 다시한번 전해드립니다. 대서양 중앙에 정체불명의 대륙이 나타났습니다. 크기는 호주 대륙과 맞먹으며‥.」
그 순간, 리오의 얼굴은 굳어져 버렸고 그는 곧바로 식기를 놓고 거실로 달려갔다.
“‥젠장, 왜 벌써‥?”
가면서 리오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바이칼은 한숨을 쉬며 티베와 세이아에게 말했다.
“‥당신들, 더이상 여기 있을 필요가 없어졌군.”
그러자, 세이아가 깜짝 놀라며 바이칼을 바라보았고 티베도 바이칼을 바라보며 물었다.
“예!? 무슨 소리세요?”
“리오에게 물어봐, 난 그것 밖에는 몰라.”
바이칼의 싸늘한 대답에 세이아와 티베는 곧바로 거실로 향했다. 넬은 자신의 뒤에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리오를 궁금한 얼굴로 올려다 보고 있었다.
“‥아직 하나만인가, 그럼 희망은 있군‥.”
리오가 그렇게 중얼거리기만 하자, 결국 궁금함을 견디지 못한 티베가 리오에게 물었다.
“도대체 무슨 소리에요! 대서양에 떠오른 대륙이란건 또 뭐고 바이칼씨가 중얼거리는건 또 뭐고 당신이 중얼거리는건 또 뭐에요!”
그러자, 리오는 뒤로 돌아 소파에 살짝 기대며 말했다.
“‥이 세계에선 고대에 사라졌다고 알려진 대륙입니다. 이 세계의 보편적인 이름으로는 <아틀란티스>, 저쪽 세계에선 마우이‥
즉, 두분의 고향입니다.”
리오의 말은 뒤따라 나오던 힐린을 비롯한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아무도 뭐라 말을 하지 못하자, 리오는 숨을 내 쉬며 말했다.
“모두 자리에 앉으세요, 얘기가 꽤 깁니다.”
힐린, 세이아, 티베, 넬이 앉은 가운데, 리오는 서있는 상태로 천천히 얘기하기 시작했다.
“세이아양이나, 티베양은 알고 계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세계 시간으로 1000년 전, 세계를 둘로 나눈 여신 네명이 신벌을 받아 육체와 정신이 따로 분리되어 봉해진 전설을 말입니다.
티베양은 제가 있을때 그 대륙에 있지 않으셨기에 모르실거고, 세이아양은 관련되지 않았기에 모르시겠지만, 여신들은 신벌에서 풀렸고 그 전투에서 패한 저와 바이칼이 이 세계로 날려오게 된 것입니다.
그녀들의 제 1 목적이 세계를 합하는 것인데‥서방, 즉 마우이 대륙이 지금 돌아왔으니 일은 반쯤 성사된 것입니다. 동방 대륙마저 하나가 된다면 일은 어려워지죠. 흠‥전개가 너무 빠른데‥아무나 한명이 있다면 좋으련만‥.”
그렇게 서서 리오가 고민하고 있을 무렵, 바이칼이 현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리오, 내일 아침에 돌아오마.”
“어? 너 설마 저곳에‥? 그럼 같이 가지.”
리오의 제안에 바이칼은 고개를 살짝 저으며 말했다.
“넌 지금 방해만 될 뿐이야. 짐될 생각이 없으면 여기 있어.”
바이칼이 그렇게 말 하고 나서자, 리오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훗‥저 무표정만 고치면 드래곤이 아니고 천사인데‥.”
곧, 창문이 바람에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드래곤의 형태로 변한 바이칼은 남서쪽을 향해 날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