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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391화


「쿠후‥!」

검은 구멍에서 빠져나온 크라주의 팔은 기이한 음성과 함께 점점 크기가 커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세포질로 변한 크라주의 팔은 점점 형태가 변하여 갔다. 인간의 형상으로‥ 아니, 원래의 모습으로. 옷을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다시 재생된 크라주는 오른팔로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쓰디쓴 웃음을 지어 보였다.

「‥꼴이 사납군, 귀족이라 불리는 내가‥ 크크팰. 하지만 운이 좋은 것이라 할 수 있겠지. 용제를 만나 살아남은 악마는 거의 없을 테니‥. 어쨌든 확실한 건 나 혼자서는 용제는커녕 친구라는 가즈 나이트조차 쓰러뜨릴 수 없어. 동료들을 모집해 봐야 하겠군‥. 음‥ 그 전에 힘을 좀 보충해 볼까?」

크라주는 뒤를 돌아 뉴욕의 마천루를 바라보며 빙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는 자신의 손에서 불을 일으키며 중얼거렸다.

「건물 하나쯤 불이 난다고 해서 눈 하나 깜빡거릴 인간들은 아니라 정말 편해. 그 무관심 속에 타 죽어가는 사람들의 비명‥ 영혼‥ 후후훗, 맛있겠어‥.」


리오는 간만에 휴식을 취하며 어제의 피로를 풀었다. 그러나 바이칼이 정오가 넘어서도 오지 않자 약간 마음에 걸린다는 듯 중얼거렸다.

“‥설마 다른 차원으로 가는 문을 알아내서 도망간 건 아니겠지‥.”

쿵쿵쿵–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집에 혼자 있던 리오는 누굴까 고개를 갸웃거리며 문 쪽으로 가 보았다.

“예, 누구시죠?”

문 가까이 다가간 리오는 밖에서 누군가가 궁시렁대며 다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이봐, 초인종이 있는데 애꿎은 문은 왜 두드려. 하여튼 원시 미인하고는 못 다닌다니까. 문명의 혜택을 그렇게도 못 받고 살았냐?”

“‥한 번만 더 미인 소리 하면 널 죽여버리겠어.”

“쳇, 마음대로. 어쨌든 들어가자구, 우리의 빨간 장발의 사나이가 누구시냐고 하잖아, 으흠? 헤헤헷‥.”

리오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문을 열어 보았다. 설마 이렇게 빨리 자신의 형제를 만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지크! 너 어떻게‥!?”

리오가 벌컥 문을 열고 소리치자, 밖에 서 있던 붉은 재킷의 금발 청년, 지크는 씨익 웃으며 팔꿈치로 바이칼을 툭 건들며 말했다.

“헤헷, 좀 편하게 왔지, 생각보다 말이야. 안 그래 미소년?”

바이칼은 말 없이 눈을 감았다. 그의 미간이 약간 찡그려진 것을 본 리오는 속으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훗, 알 것 같군‥ 좋아, 잘 왔어 지크! 이제 좀 편해지겠군‥.”

그러자, 지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상하다는 얼굴로 리오에게 물었다.

“펴, 편하다니‥? 여기 주인이 빨래라도 시키나?”

“‥뒤에 있는 사람은‥ 누구지?”

리오가 지크의 질문을 무시하고 그의 뒤에 서 있는 인간의 모습을 한 카루펠을 보고 묻자 지크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쳇, 농담이었다구. 뒤에 있는 이 미남 분은 카루펠이라고‥ 헤헷, 켄타우로스 족이야. 말로도 변했다가 인간의 모습으로도 변했다가 하지. 충실한 부하이기도 하지!”

그러자, 카루펠은 무릎을 굽히며 리오에게 인사를 올렸다. 리오는 약간 놀랐으나 켄타우로스 족의 특성을 기억해 낸 그는 가만히 서서 카루펠의 인사를 받았다.

“카루펠이라 합니다. 예전에 미처 인사드리지 못한 점, 사죄드립니다.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리오님.”

“아, 뭘‥ 괜찮아. 그런데 지크 네 녀석 용케도 [진정한 주인]으로 인정받았구나?”

리오의 질문에 지크는 웃음을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그는 리오와 바이칼을 집 안으로 밀며 말했다.

“자자, 들어가서 말 하자구. 너도 알겠지만 난 BSP라서 쫓기는 신세란 말이야. 어서 어서‥.”

“아, 그렇겠군. 그럼 들어가지.”


지크에게 두 시간에 걸쳐 자초지종을 들은 리오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길게 쉬었다. 바이칼은 아무 말도, 표정도 없이 조용히 차만 마셨다. 카루펠은 세탁실에서 지크의 명령을 받고 집안의 밀린 빨래를 하고 있었다.

“흐음‥ 그럼, 너만 서방 대륙에 남아 있다가 이곳으로 운이 좋게 온 것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동방 대륙으로 건너갔다 이거야?”

지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답지 않게 심각한 얼굴을 하며 덧붙여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행에 좀 변동이 생겼지. 이오스님이‥ 우리 때문에 희생하셨어.”

순간, 리오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지크를 바라보았고 찻잔을 움직이던 바이칼의 팔도 멈추었다. 지크는 계속 말을 이었다.

“[아프이엘]이란 마법‥ 기억해? 신이 다른 신을 강제로 봉쇄할 때 쓰는 마법 말이야. 그것을 여신 세 명이 동시에 쓰니까 이오스님도 버티시지 못하고 말았지.”

리오는 상황이 좋지 않게 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고민이 담긴 한숨을 길게 뿜어내며 말했다.

“‥최악이군. 주신께 연락은 닿지도 않고, 마지막 희망이신 이오스님까지 그렇게 당하시다니‥.”

지크는 머리를 긁적이며 계속 말했다.

“쩝‥ 하지만 다른 여신들도 만만치 않은 타격을 입었지. 같은 신 끼리는 충격을 줄 수 있나 봐. 그래서 우린 추격을 벗어날 수 있었어. 음‥ 맞어, 이오스님이 마지막에 그러시더라고. 잘은 듣지 못했는데, [새벽의 자식인 여명을 찾는다면 희망은 다시 생긴다]라고 하셨나? 음음‥ 그럴 거야 아마. 하지만 아들인지 딸인지, 그리고 누군지, 크게 말하자면 사람인지, 아니면 무기나 다른 종족일지 아무도 모르는데 무슨 재주로 찾겠어. 난 찾아본답시고 남은 거긴 하지만‥. 어쨌든 동방으로 건너간 팀이 잘 하긴 하나 봐. 아직까지 동방 대륙이 나타나지 않을 걸 보니 말이야. 하긴, 분산되긴 했지만 가즈 나이트가 네 명이나 끼어 있으니 그렇겠지. 자,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여기까지야. 그건 그렇고‥ 너희 둘이야말로 운 좋구나. 내가 마법진을 흐려놓는다며 워닐이라는 녀석의 머리에 돌을 던지긴 했지만‥. 아, 참. 중요한 거 하나 더 있어 리오.”

리오는 이번엔 또 무슨 충격적인 이야기일까 생각하며 지크를 바라보았고, 지크는 미안하다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며칠 동안 못 먹었거든, 먹을 것 좀 줘.”

그러자, 리오는 한숨을 푸우 쉰 후 TV를 켜며 말했다.

“곧 세이아가 돌아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참 나‥ 넌 더 심각해졌구나.”

“헤헷‥ 아 참, 세이아라고 했지? 린스, 아니 리카‥ 그냥 린스라고 하자. 그 애가 그러더라고, 식모 주제에 너를 단단히 꼬셨다나 뭐라나‥ 일이 제대로 되는 날엔 당장 감옥에 가둘 거라고‥.”

그 말을 들은 리오는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훗, 그 정도면 안부를 물을 필요는 없겠군.”

“헤헷,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어이, 미소년. 왜 재미없게 차만 마시고 있어, 말 좀 해 보라고.”

그러자, 바이칼은 지크를 흘끔 바라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흥, 네 어머니에게 전화나 하시지. 남 걱정하지 마.”

지크는 씁쓸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전화기를 들어 리오에게 주며 말했다.

“자, 내가 번호 눌러줄 테니 네가 말해. 난 추적 장치의 음성 인식 장치에 음성이 등록되어 있기 때문에 할 수 없어. 너라도 가급적이면 빨리 하는 게 좋아. 시간은 20초 내로‥.”

지크는 빠르게 다이얼을 눌러갔고, 리오는 생전 세 번째 써 보는 전화라 약간 떨려 왔다. 곧, 상대방 측에서 전화기를 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지크니?」

지크는 그 다급한 목소리를 듣고 자신의 어머니가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었다. 그는 리오의 앞에서 입을 뻥긋거리기 시작했다. 리오는 그의 입 모양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전화에 대고 말했다.

“아, 리오입니다 어머님. 지크 녀석은 아시다시피 수배 중이니 제가 대신 연락을 하는 것입니다. 안심하십시오, 그 녀석은 안전한 곳에 있습니다. 지크가 이렇게 전해달라고 하더군요. 사랑한다고‥ 말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리오 씨. 그럼‥ 아, 나중에 지크를 만나시거든 제 말도 전해 주시겠습니까?」

“예, 말씀하십시오.”

「저도‥ 사랑한다고요. 그럼, 수고하세요 리오 씨. 리오 씨의 일은 TV로 잘 보고 있습니다. 그럼‥.」

“‥예, 잘 알겠습니다.”

곧 전화는 끊겼고, 전화 상이긴 하지만 레니의 목소리를 들은 지크는 다시금 씁쓸히 웃으며 중얼거렸다.

“헤헷‥ 역시‥ 어머니라니까. 헤헤헷‥.”

리오는 전화기를 놓으며 말없이 지크를 바라보았다. 지크의 얼굴은 입술만이 웃고 있을 뿐이었다.

철컹–

그때, 현관문이 열렸고 리오는 문 쪽을 바라보았다. 음식 재료를 가득 산 세이아가 약간 힘이 든 얼굴로 서 있었다. 그녀는 지크의 뒷모습을 보고 의외라는 얼굴로 말했다.

“아, 손님이 오셨네요? 다행이네요, 음식 거리를 좀 많이 산 게 아닌가 했는데‥.”

그러자, 지크가 순간 고개를 돌려 세이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 식모! 어서 와요!!”

“이런‥ 녀석.”

리오는 어쩔 수 없는 녀석이라며 지크의 머리를 손으로 살짝 눌렀다.

리오는 저녁 시간을 이용해 지크와 카루펠을 모두에게 소개해 주었다. 하지만 넬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그리 반갑지는 않은 얼굴들이었다. 점점 집안이 줄어드는데 장정이 둘이나 더 불어난 탓이었다. 사실 리오와 바이칼도 이 세계를 구한다며 날아다니긴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힐린과 티베의 봉급을 깎아 먹는 식객이었다. 세이아야 물론 가정부와 같은 일을 하지만‥.

그러나, 희망적인 말이 지크에게서 들려왔다.

“흠〜 그럼 오늘은 신세 지겠습니다. 잠 잘 장소는 걱정하지 마세요, 헤헷‥.”

그 말을 들은 티베는 속으로 만세를 부르며 지크에게 물었다.

“앗, 뵌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내일이면 가신다고요? 섭섭하게‥.”

그러자, 지크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내일 나가라면 나가야죠. 원래는 며칠 있다가 가려고 했는데‥.”

그러자, 티베는 속이 뜨끔거렸는지 딴청을 피우기 시작했다. 지크는 씨익 웃으며 시선을 넬에게 돌렸다.

“헤이, 걸(Girl)! 이거 미안해서 어쩌지, 오래간만에 보는데‥. 하지만 너희 부모님을 포함한 전 세계의 BSP를 위해서 그러는 거니까 이해해줘, 으흠?”

넬은 지크의 그 말을 듣고서 코 밑을 손가락으로 비비며 고개를 살짝 저었다.

“히힛, 괜찮아요 지크 선배. 힘내시길 바라요. 단! 나중에 아이스크림 사줘야 해요! 이건 벌칙!”

“헤헷, 좋아.”

지크는 피식 웃으며 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한밤중. 지크는 리오의 건너편 소파에 누운 채 천장을 직시하고 있었다. 리오는 눈을 감고 있다가 흘끔 지크를 바라보았고 무언가 생각이 있었는지 그에게 슬쩍 말을 건네어 보았다.

“‥이봐, 너, 여기 남지 않겠어?”

“음? 자다 말고 무슨 소리야? 남다니?”

리오는 한숨을 후우 내쉬며 말했다.

“음‥ 아무래도 미국에 가 봐야 할 것 같아. 그곳에 제네럴 블릭의 본사와 블랙 프라임의 본거지가 있는 듯하니까. 그곳에 가서 여신 일당들과 제네럴 블릭과의 연결고리를 알아내야 하겠어. 블랙 프라임이 그쪽 세계에서 나타났던 로봇들까지 이용하고 있으니까, 분명 연결고리가 있을 거야. 그러니, 며칠간만 이곳을 부탁해.”

지크는 가만히 천정만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좋아, 남아 주지. 하지만 너‥ 나쁘군.”

“응? 뭐가 나빠?”

“아까 그 티베란 여자를 포함해서 모두에게 간다 간다 말해 두었는데‥ 날 거짓말쟁이로 만들었잖아, 젠장‥ 그건 그렇고 그 여자 내가 간다니까 왜 그렇게 좋아하는 거야?”

그러자, 리오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후, 글쎄다‥ 넌 여자한테 인기가 없나 보지 뭐. 그만 자자‥.”


다음 날, 지크와 모두의 배웅을 받으며 리오는 다시금 바이칼과 함께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는 날아오르면서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뭔가‥ 등골이 짜릿해지는 느낌을‥. 유럽을 벗어나 새로 생긴 아틀란티스 대륙 위를 지나가던 리오는 바이칼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음‥ 이봐 친구, 고도를 좀 높여볼래? 아주 높이‥.”

「뭣 때문에 그러지?」

“‥이 대륙 전부를 한번 보고 싶어서‥.”

바이칼은 말 없이 날아가다가 리오의 말대로 고도를 높이며 중얼거렸다.

「‥잠을 잘못 잔 모양이군‥.」

위로 상승하면 상승할수록 공기가 희박해졌다. 하지만, 리오의 표정은 점점 밝아졌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 세계의 시간으로는 수천 년, 저 세계의 시간으로는 천년이라는 시간이 나뉘어 있는 동안 흘렀고, 사람들의 신체 조건과 자연적인 것까지 변했다는 것을‥.

“‥상당히 정신적인 세계와 상당히 물질적인 세계‥ 원래는 융합되는 것이 맞아야 하겠지만‥ 현실은 아니야. 서로를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어.”

바이칼은 말 없이 리오의 중얼거림을 들었다. 리오는 조용히 아래로 보이는 대륙과 희미하게 보이는 아메리카 대륙을 번갈아 본 후 말했다.

“‥반드시 예전처럼 나누겠어. 여신들의 전설에 대한 진실을 위해서라도‥!”

바이칼은 다시금 하강하기 시작했다. 가는 방향은 아메리카 대륙 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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