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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409화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바이론이 이오스에게 복용시킨 활성제의 약효가 떨어지는 일주일 후가 되었어도 신장을 비롯한 그쪽 세력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나타나는 것은 가끔씩 일행을 습격하는 운 없는 몬스터들 뿐이었다. 그 후로 몇 주일이 지났다. 일행이 워낙 많았기에 휴식을 취할 때는 가즈 나이트 한 명씩을 중심으로 일행을 나누었다. 노엘과 린스를 맡은 가즈 나이트는 슈렌이었다.

나무에 기대어 앉아 휴식을 취하는 슈렌의 모습은 너무나도 조용해서 그냥 보기엔 마치 자는 것처럼 보였다.

“‥저 장발은 왜 저렇게 자는 거지? 그냥 다닐 때도 눈을 뜬 건지 안 뜬 건지 모를 정도고‥설마 잠의 가즈?”

린스의 투덜거림을 들으면서 노엘은 그냥 웃을 뿐이었다. 그때, 휴식을 취하던 슈렌이 나지막이 말했다.

“‥‘가즈’가 아니고 ‘가즈 나이트’입니다.”

슈렌의 낮은 음성을 들은 린스는 순간 말을 잊었다. 리오나 지크가 그랬다면 당장 반항하며 나왔을 테지만 이상하게도 슈렌의 말엔 천하의 말괄량이인 린스가 꼼짝도 못하는 것이었다. 린스가 그렇게 우물쭈물해 하자 노엘이 대신 슈렌에게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슈렌씨, 공주님은 악의가 없어서 그러신 건데‥.”

“괜찮습니다.”

슈렌의 대답은 언제나 간단했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어서 아무도 뭐라고 그럴 수 없었다. 학자인 노엘도 마찬가지였다.

“예, 예‥감사합니다‥.”

노엘은 자신이 왜 감사하다고 말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나온 말이니 어쩔 수는 없었다.

“헤이–!!!! 출발합시다!!!!”

사바신의 큰 목소리가 숲 저편에서 들려오자, 슈렌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는 린스와 노엘을 돌아보면서 조용히 중얼거렸다.

“가시죠.”

슈렌이 역시나 간단히 말한 채 천천히 걸어가자, 린스는 입만 움직이며 슈렌을 향해 불만을 토하기 시작했다. 해석해 보자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지만 수도를 떠난 후 자신의 말이 먹히는 사람이 노엘 한 사람뿐이어서 린스가 얼마나 답답한지를 나타내 주는 것이었다. 린스는 사실 속이 탔다. 리오는 순순히 자신의 말을 받아주는 편이었고, 지크는 받아 치기는 했지만 역시 말을 잘 받아주는 편이었기 때문에 답답한 적은 없었지만 슈렌은 언제나 ‘예, 아니오’로만 나왔고 바이론은 린스가 상대를 아예 하지 않았으며 사바신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근처에 있는 기물을 부숴버렸기 때문에 그녀의 마음속엔 점점 스트레스가 쌓여갔다.

그럴 때, 슈렌이 돌아보지 않은 상태에서 조용히 말했다.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그냥 하십시오. 뒤에서 그러시는 것은 왕족에게 맞지 않습니다.”

“아휴‥!”

린스는 그냥 한숨을 푹 내쉴 뿐이었다.

슈렌은 사실 속으로 많은 생각을 한다. 겉으로 말하는 것은 그리 즐기지 않은 편이었다. 아마 속으로 말하는 것은 지크보다도 많을 것이다.

린스, 노엘과 함께 모두가 모일 장소로 가는 슈렌의 눈에 맨 먼저 띈 것은 약간의 빛을 뿜으며 서 있는 이오스와 그녀의 옆 그루터기에 몸을 구부려 앉아 있는 바이론의 모습이었다.

‘‥대조적이군.’

슈렌의 생각대로, 둘은 그야말로 빛과 어둠이었다. 이오스의 흰 피부와 바이론의 회색 근육질은 그 누가 보기에도 대조적이었다. 조금 후 모두가 모이자, 슈렌은 이오스의 앞에 선 후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제 곧 트립톤입니다. 반나절 정도 걸어가면 될 것 같습니다. 가는 도중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침착만 해 주십시오. 저희들 넷이 적절히 처리할 것입니다. 그럼 모두 출발하지요.”

모두가 한 발자국씩 걷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바이론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약에 의해 신으로서 각성한 이오스였기에 신으로서의 능력을 발휘하려면 엄청난 체력을 소모해야 했다. 그녀는 중하급 신이었기에 전지전능도 또한 아니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일행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많이 미안해하는 것 같았다.

적어도 슈렌이 보기엔 그랬다.

‘아직 신으로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시는 것인가‥. 그런데 왜지. 아무리 활성제를 이용해 신으로서 각성했다 하더라도 이 정도로 능력이 하강하진 않을 텐데‥. 전투적인 능력은 느껴지지 않고, 지금까지 발휘한 힘은 오직 물체에 대한 시간을 역류시키는 것과 모두의 기를 지우는 것뿐‥. 신으로서는 사실 간단한 일인데‥.’

슈렌은 계속 그렇게 생각을 하며 길을 걸었다.

그렇게 한참 길을 걷던 도중, 슈렌은 이상한 분위기를 느끼고 양팔을 벌리며 뒤의 일행이 가는 것을 막았다. 린스가 뭐라고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긴 했지만 슈렌은 그 소리를 무시하고 앞 지면을 주시했다. 시각적으로 보이진 않았지만 기척으로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슈렌은 자신의 창, <그룬가르드>를 감싼 헝겊을 풀며 일행에게 말했다.

“뒤로 물러서십시오. 다른 가즈 나이트들은 주위를 살펴줘.”

일행이 뒤로 즉시 물러서자, 슈렌은 창을 한 손으로 두어 바퀴 돌린 후 묵묵히 앞으로 가기 시작했다.

‘토룡(土龍)‥<발키드란>이군‥. 체액이 위험하니 바이론보다는 내가 나서는 게 좋겠지. 그럼‥꺼내 볼까.’

슈렌은 창을 왼손에 돌린 후 몸을 구부리며 지면에 오른손을 갖다 대었다.

그 모습을 본 린스는 제일 만만해 보이는 가즈 나이트 레디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물어왔다.

“이봐, 저 장발족이 지금 뭘 하는 거지? 금이라도 찾는 거야?”

레디는 찔린 옆구리를 매만지며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슈렌이 저희를 멈춘 이유는‥지금 지면 속에서 지금 우리가 오길 기다리는 괴물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지면 속에 있는 저 괴물은‥아, 죄송해요. 이름을 잊어 먹어서‥어쨌든 저 괴물은 꺼내기가 무지 어렵죠. 대 기술을 사용하거나 그래야 하는데 언제 어떻게 신장들에게 걸릴지 모르니 조용히 꺼내려면 저렇게 하는 것이 좋겠군요. 슈렌이 가진 [가열 능력]이라면 저런 괴물도 꺼내는 것은 간단하죠.”

린스는 인상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무슨 소리야‥.”

“‥죄송합니다 공주님.”

그때, 노엘이 깜짝 놀라며 앞을 본 상태로 소리쳤다.

“세, 세상에 저럴 수가‥!?”

슈렌은 여전히 손바닥을 지면에 가져간 상태였다. 하지만 지면은 전과 같은 상태가 아니었다. 불의 가즈 나이트, 슈렌만의 능력인 가열 능력에 의해 흙들이 구워지는 빵처럼 김을 뿜어내며 점점 부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왔군.”

쿠우우우우우우우우웅–!!!!!!!!

슈렌의 그 음성과 동시에 거대한 발키드란이 지면을 뚫고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슈렌의 가열 능력에 의해 표피는 상당히 손상되어 있었으며 아직도 뜨거운 듯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슈렌은 간만에 눈을 크게 뜨며 중얼거렸다.

“‥끝내주지.”

그 순간 슈렌의 온몸에선 화염이 타올랐고, 그는 한 덩어리의 불꽃이 되어 발키드란의 머리까지 치솟았다.

“‥더블하켄‥!”

그 음성은 공기를 찢어버리는 두 개의 거대한 불꽃의 낫에 의해 지워졌다. 십자로 잘려진 발키드란은 천천히 무너져 내렸고, 이내 맹렬한 불꽃에 휩싸여 재로 변해갔다. 타는 냄새도 나지 않았다. 발키드란의 사체는 빠르게 사그라들어갔다.

불을 자신의 몸에서 거두는 슈렌의 모습을 놀란 얼굴로 바라보고 있는 린스를 본 레디는 숨을 길게 들이마시며 린스에게 들으라는 듯 말해 주었다.

“흠‥저 침착함 때문에 빈틈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가즈 나이트‥. 완벽주의자라서 사람들과 가까이할 수 없을 때가 많지만 묵묵한 가슴속에 숨겨진 무한의 불꽃은 그야말로 불의 가즈 나이트에 딱 맞는 사나이라 할 수 있죠. 정말 멋지죠?”

“‥정말 그렇군요‥.”

린스는 순간 눈을 크게 뜨며 레디의 말에 맞장구를 친 여자를 찾아 보았다. 다름 아닌 자신의 옆에 있는 노엘이었다. 노엘은 양손을 모은 채 홍조를 띤 얼굴로 슈렌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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