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427화
“휘이〜덥다. 오늘처럼 햇볕이 쨍하고 쬐는 날은 처음인데 그래? 넌 어떠니 넬?”
말에서 내린 지크는 잠시 간 휴식을 취하기 위해 넬과 함께 벤치에 앉은 후 넬에게 물었고, 넬은 씨익 웃으며 손등으로 땀을 닦았다.
“헤헤‥그래서 그런지 더워요 선배. 아, 예전부터 선배께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었거든요? 여쭤봐도 괜찮나요?”
“응응‥맘대로‥.”
지크는 내리쬐는 햇볕 때문에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건성으로 대답했고, 넬은 활짝 웃으며 지크에게 당당히 물어왔다.
“애인 있죠?”
그 질문을 들은 지크는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다시 넬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 내가 재미있는 얘기해 줄까? 옛날 옛날에 호랑이가 시가를 태우던 시절에 말이야‥.”
“말 돌리지 말아요.”
넬의 차가운 음성에, 지크는 곤란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에 뜸을 들였고, 넬은 팔짱을 끼며 지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결국, 지크는 헛기침을 몇 번 하며 고개를 들고 넬에게 물었다.
“음‥애인이라‥사랑하는 사람 말이지?”
그러자, 넬은 다시금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예!! 어서요!!”
“좋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우리 어머니다!!!”
“…!”
지크는 당당히 손가락을 뻗으며 그렇게 소리쳤다.
“아, 세이아 넌 애인 있니?”
티베의 입에서 갑작스럽게 곤란한 질문이 터져 나오자, 세이아의 흰 얼굴이 갑자기 붉어졌고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얘, 얘는‥나이가 아직 스물두 살밖에 안되었는데‥.”
세이아가 그렇게 나오자, 티베는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세이아에게 계속 말했다.
“에헤〜그러지 말고, 솔직히 말해 봐. 리오 씨, 맞지?”
티베의 입에서 리오의 이름이 나오자, 세이아의 얼굴은 더더욱 붉어졌고, 티베는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계속 말을 걸었다. 반면, 리오가 누구인지 모르는 챠오는 조금 식은 코코아차를 한 모금 마시며 얘기를 들을 뿐이었다.
“호호홋, 그렇겠지. 리오 씨 같은 남자도 세상에 어디 있니? 할 줄 아는 게 칼싸움뿐이라서 그렇지만 그것도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면 귀족이 될 수 있는 것이잖아? 그리고 그런 전투를 좀 잘하니?”
그러자, 세이아가 고개를 들며 티베에게 아니라는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아, 아니야‥. 리오 씨는 성격도 좋으셔‥. 그리고 그분을 좋아하는 여자들이 한둘 아닐 텐데‥우리 왕국 공주님도 좋아하시는 것 같고. 나 같은 평민은 리오 씨랑 함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것이겠지‥.”
세이아가 쓸쓸히 웃으며 그렇게 말하자, 티베도 할 말이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갑자기 분위기가 쓸쓸해지자 챠오가 헛기침을 한번 했고, 그러자 다시금 티베가 고개를 들며 챠오에게 물었다.
“아, 그 지크라는 인간은 BSP일 때 어땠어? 조금은 알 듯한데‥.”
그러자, 챠오는 순간 주먹을 풀며 말하기 시작했다.
“‥변한 건 하나도 없어. 그 바보의 경이적인 멍청함과 무사태평함은 무적이야.”
그러자, 티베는 맞장구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역시 예상대로군. 그런 사람이랑 결혼하는 여자는 참 불행할 거야.”
“글쎄‥? 난 지크 씨도 괜찮은 분이라 생각하는데. 솔직히 그분 너희들 얘기를 다 받아주잖니. 티베의 불평도, 챠오의 ‘바보’라는 말도, 넬의 투정도 말이야. 그분 온 후로 이 집이 떠들썩해져서 사실 난 좋았어. 재미있으니까. 안 그러니?”
그 말에, 티베와 챠오는 머리를 긁적일 뿐이었다.
띵동–띵동–
그때,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고 챠오가 천천히 현관으로 나가 보았다.
“누구지? 아니, 누구시죠?”
“넬이에요!”
넬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오자, 챠오는 약간 움찔하며 문을 열어 주었고, 넬은 훌쩍거리며 집 안으로 재빨리 들어와 자신의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챠오는 별 표정 없이 다시 문 쪽을 바라보았고, 이번엔 지크가 힘 빠진 얼굴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와 같은 희생자를 만들었나 보군 바보.”
그러자, 지크가 힘없이 웃으며 챠오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아, 아니야. 내가 재미있는 얘기해 줄까? 옛날 옛적에 호랑이가 필터 담배 피우던 시절에‥.”
지크의 얘기가 끝나기도 전에, 챠오는 조용히 부엌으로 돌아갔고 현관에 카루펠과 단둘이 서 있게 된 지크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소파로 향하기 시작했다. 카루펠은 문을 닫고 지크에게 다가간 후 그에게 조용히 물었다.
“필요하신 것 있으십니까 주인님?”
그 말에, 지크는 무엇을 달라는 듯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응‥TV 리모컨‥.”
“예, 여기 있습니다 주인님.”
리모컨을 받아든 지크는 한숨을 후우 쉬며 힘없이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리오 녀석‥날 이런 곳에 두고 가다니, 지옥에게 가라‥!!”
지크는 그렇게 TV를 켠 채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그날은 그에게 있어서 정신적으로 매우 피곤한 날이 아닐 수 없어서였다. 지크가 그냥 TV를 보고 있다 생각하고 가만히 두었던 티베는 저녁 아홉 시경이 되어서야 그가 그렇게 잠든 것을 알고 다시 인상을 찡그리며 그에게 다가갔다.
“아니 이런‥! 남자 주제에 이렇게 뻗다니, 이러고도 BSP야?”
TV를 끈 후 지크의 손에 들린 리모컨을 빼앗은 후 그를 마악 깨우려던 티베는 순간 지크의 입에서 희미하게 들려온 소리에 잠시 멈추었다. 잠에 푹 빠진 평온한 얼굴로, 지크는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으음‥엄마 보고 싶어‥.”
그 소리에, 티베는 잠시 동안 지크의 모습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피식 웃으며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바보 같으니‥.”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 지크는 반사적으로 일어나게 되었다. 자신도 모르게 소파에 누워 잠을 잔 지크는 불편하게 잔 탓에 목이 뻐근한지 인상을 가득 쓴 채 눈을 비비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루 지났네‥. 많이 늙었구나 지크 스나이퍼‥응? 이건 뭐지?”
순간, 지크는 자신의 몸에 토끼 그림이 그려진 분홍색 이불이 덮인 것을 보고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기 시작했다.
“‥내가 이런 애들 이불을 덮고 잤단 말이야? 설마‥?”
그때, 방에서 나오던 티베가 화들짝 놀라며 지크에게 달려왔고, 이불을 빼앗으며 인상을 찡그린 채 중얼거렸다.
“아니, 숙녀의 이불을 훔쳐서 덮고 자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무, 무슨 소리를‥!”
그러자, 지크는 억울하다는 듯 반문을 하려 했다. 그때, 티베와 방을 같이 쓰는 세이아가 부엌에서 나오며 지크에게 아침 인사를 했다.
“어머, 지크 씨 일어나셨네요? 티베도 잘 잤어? 어제 지크 씨한테 이불 드리고 다른 이불 덮고 자느라 좀 추웠을 텐데‥?”
그 말에, 티베는 하얗게 굳어지고 말았고 지크는 씨익 웃으며 복수를 하려는 듯 말하기 시작했다.
“헤헹, 그러셨구만. 하긴 뭐, 짝사랑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니까 내가 이해해 주지 내숭 아가씨. 우하하핫‥.”
“아, 아니야! 난 단지‥!!”
티베가 말을 더듬으며 부정하고 나서자, 지크는 손을 휘휘 저으며 다시 말했다.
“아아, 걱정하지 마셔. 네 마음 다 아니까, 헤헷.”
“이, 이봐!! 언제부터 말 놓기로 했지?”
결국 할 말이 없어진 티베는 그렇게 따지고 나오기 시작했지만, 터지기 시작한 지크의 무대포는 막을 길이 없었다.
“내 맘이지, 너도 가끔씩 말 놓잖아 내숭 아가씨.”
결국, 티베는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가고 말았고, 지크는 회포를 풀었다는 듯 거뜬히 일어나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세이아가 조심스럽게 지크에게 다가오며 물어왔다.
“저어‥제가 말을 잘못한 것인가요?”
그러자, 지크는 손을 강하게 휘저으며 말했다.
“아뇨아뇨, 당신은 제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하하하하핫‥!!”
무슨 소리인지 이해는 가지 않았지만, 다시금 활발해진 지크의 모습을 본 세이아는 자신의 마음도 활발해진 듯 빙긋 웃어 보였다.
그러나 그날 아침, 지크는 모르고 있었다.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아직 리오에 의해 정리되지 않은 사건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