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482화
1장 [지켜야만 하는 것]
“…….”
바이칼의 등에 탄 채 가만히 옛날 생각을 하던 리오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숨을 들이쉬어 보았다. 리오가 그런 행동을 하면 무언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루이체는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리오의 넓은 어깨를 손가락을 꾹꾹 찔러 보았고, 리오는 자신의 뒤에 앉아있던 루이체를 슬쩍 바라보며 물었다.
“‥물어볼 것이라도 있어?”
그러자, 루이체는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다시 고개를 저으며 입을 다물었다.
“음‥아냐.”
“‥궁금한 것이 있는 표정인데? 물어봐도 괜찮아. 곤란한 것 아니면 다 말해줄게.”
리오가 웃으며 그렇게 말하자, 루이체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리오에게 물었다.
“헤헷‥무슨 생각하고 있었어?”
그 질문에, 리오는 다시 앞을 바라보며 천천히 대답했다.
“흐음‥옛날 생각. 루이체가 태어나기 훨씬 전 생각‥. 무턱대고 싸우기만 하는 투귀가 될 것인지‥무턱대고 죽이기만 하는 살인귀가 될 것인지‥. 아니면 기사가 될 것인지 고민하던 옛날 생각‥을 했지.”
그 대답을 들은 루이체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리오를 바라보았다.
「쓸데없는 생각을 아직도 하고 있군‥편하니 보이는 게 없다 이건가?」
어디선가 들려온 싸늘한 목소리에, 리오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훗, 미안하군. 그건 그렇고 어디까지 온 것 같아?”
현재 일행을 태우고 고속으로 프랑스를 향해 날아가던 바이칼은 리오의 질문에 또다시 우습다는 듯 말했다.
「내가 비행기인 줄 착각하는군. 난 이 행성의 지리 따윈 알고 싶지 않으니 다른 사람에게 물어봐. 귀찮게 하지 말고.」
리오는 씁쓸히 웃을 뿐이었다. 그때, 프시케가 손에 들고 있던 BSP 전용 위성 항법 장치를 내 보이며 리오에게 위치를 말해 주었다.
“지금 현재 속도로는 한 시간 내에 프랑스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위성 장치가 고장 나지 않았다면 맞을 겁니다.”
그 말을 들은 리오는 순간 표정을 굳혔고, 프시케는 그런 리오의 표정을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리오는 오른손을 턱에 가져가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한 시간이라‥한 시간‥아직은 괜찮겠군요. 그 장치 잠깐만 보여주실 수 있으십니까?”
※
제네럴 블릭 본사 지하 연구소.
낮잠을 실컷 잔 와카루 박사는 자고 일어난 뒤 목이 말랐는지 우유를 들이키며 천천히 연구소 상황실로 들어왔고, 북아메리카 대륙과 유럽 쪽의 부분 지도를 들여다보던 젊은 연구원은 와카루가 들어오자마자 의자에서 일어서며 그에게 소리쳤다.
“박사님, 목표물이 10초 전 방향을 남쪽으로 급속히 바꿨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연구원의 보고를 들은 와카루는 덤덤한 표정으로 초음파 안마봉을 어깨에 대며 힘없이 대답해 주었다.
“그래? 그럼 상황판 끄게.”
와카루의 그런 말을 들은 연구원은 펄쩍 뛰며 무슨 소리냐는 듯 그에게 소리쳤다.
“예!? 박사님, 그렇게 되면 회장님이 어떻게 나오실 것 같습니까!!”
“어떻게 되긴 이 사람아. 잘못 간 것을 보고해서 연료 축냈다는 불호령을 받는 것보다 이게 더 나. 저쪽도 생각할 줄 아는 인간이니 BSP 위성이 우리 손안에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게야. 삑삑 소리 시끄러우니 상황판이나 끄고, 그들이 가던 좌표로 직선이나 더 이어 보게나. 직선 좌표 내에 들어있는 모든 나라를 찍어 두게나. 마하 7 이상의 고속으로 비행하는 물체라 조금만 틀어져도 상당히 비껴나가지만 아프리카나 남극으로 날아갈 확률은 적은 것 같으니 직선 예상 좌표를 사용해서 목적지를 예측하는 것이 확률은 더 높을 게야. 아이구 목이야‥시간이 갈수록 늙어가는군‥.”
와카루의 지시를 받은 연구원은 어찌 저리 태평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와카루의 말대로 상황판을 끄고 ‘목표물’이 가던 방향으로 직선을 주욱 늘여 보았다.
※
“크크큭‥그렇군. 소설 작가님께서 위대하신 마동왕님의 왕비이실 줄은 상상도 못했어. 난 또 내통자라고 생각했지‥. 두 분의 뜨거운 사랑이 깨질까 봐 감시원과 암살자 얘기는 도저히 내 입으로 못하겠는걸‥? 크하하하하하하하핫‥!!!”
바이론은 광기 어린 웃음을 띄우며 할 말을 다했고, 그 얘기를 들은 라이센 왕비, 힐린은 깜짝 놀라며 마동왕을 바라보았다.
“마, 마마‥!! 설마 진심으로 하신 말씀이실 줄은‥!!!”
힐린의 실망 어린 표정에도 불구하고, 마동왕은 표정을 굳힌 채 조용히 중얼거렸다.
“‥어떻게 운이 좋아 여기까지 들어왔는지는 몰라도, 넌 이곳을 빠져나갈 수는 없다‥! 그림자들!!”
그러나, 마동왕의 명에도 불구하고 방안의 상황은 변한 것이 없었다. 바이론은 킥킥 웃으며 다크 팔시온으로 천장의 두 곳을 살짝 찔렀고, 흠이 난 틈 사이로 곧 핏물이 주르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부동이었던 마동왕의 표정도 순간 움찔거렸고, 바이론은 미소를 지은 채 손가락으로 핏물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크크큭‥내 기억으로는 이 피들이 당신의 그림자들 같은데‥. 크큭, 난 맘만 먹으면 이 마음에 안 드는 도시도 송두리째 날릴 수 있어. 지금 이렇게 당신을 직접 만나는 것도 나에겐 상당히 신사적인 행위지‥. 난 귀찮은 절차는 싫어하거든‥크크크크큭‥. 그리고 어차피 너와 저 여자는 이쪽과 악마들 쌍방에 필요 없는 커플이야.”
그러자, 마동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바이론에게 소리쳤다.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난 저들에게 도움을 줄 만큼 줬고 저들은 나에게 대가로 왕비를 찾게 해 주었다!!! 이간질을 시키려는 것인가!!!”
그 말에, 바이론은 실소를 터뜨리며 중얼거렸다.
“쿠훗‥요즘 악마들이 그렇게 착해졌나‥? 크하하하하하하하핫–!!!! 지크 녀석의 삼류 개그보다도 더 웃기는 말이군, 크하하하하하하핫–!!!!!! 죽어랏–!!!!!”
한참을 웃던 바이론은 갑자기 웃음을 멈춘 후 다크 팔시온을 왕과 힐린이 있는 방향을 향해 강하게 내던졌고, 마동왕은 순간 움찔하며 힐린을 안고 눈을 감았다.
“라이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