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501화
“…어쨌든 넌 사라져.”
둘이 얘기를 하는 동안, 상당한 충격을 입고 있는 베히모스는 재빨리 도망치듯 사라졌다. 그 동안 바이론은 라이아에게 그렇게 말했고, 라이아는 말도 안된다는 듯 그의 뒤에서 크게 소리를 쳤다.
“무, 무슨 소리세요 바이론 아저씨!!! 전 싸울거라고요!!!!”
“…….”
바이론은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검을 잡지않은 왼손으로 땀 때문에 약간 번들거리는 오른쪽 어깨를 주무르며 조용히 말했다.
“…네 언니가 기다리고 있을텐데…보고싶지 않나?”
“…!”
그러자, 라이아는 공중에서 잠시 주춤거렸고, 바이론은 다크 팔시온을 칼집에 넣은 후 앞만 바라본채 말했다.
“…크크크…역시 아이는 어쩔 수 없군…. 몸만 변할 수 있었지 머리속은 아직 아이로군…. 또 뭐랑 싸우겠다는건가…? 저기 멀쩡히 서 있는 철탑? 아니면 나? 크크크…난 아직 정리할 것이 남아있지…그러니 어서 꺼져.”
결국, 라이아는 고개를 푹 숙인채 어디론가 날아가기 시작했고, 바이론은 여전히 뒤도 돌아보지 않은채 공중에 가만히 떠 있었다.
“…흥, 싱거운 것들…. 감히 이몸에게 대항하려 하다니….”
바이칼은 기절시킨 리오를 공중에 띄운채 자신의 밑에 생긴 거대 화구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과정은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계속 이상한 소리를 하는 리오를 기절시켜 공중에 띄운 후, 자신도 몸을 띄우고 BX-F의 느낌이 있는 범위에 브레스의 일격을 가한 것 뿐이었다. 물론 그 범위 내에 남은 것은 없었다.
바이칼은 자신의 위에 둥둥 떠 있는 리오를 조용히 바라보며 불만이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고귀한 몸을 안은 저 녀석을 어떻게 처리하지…? 아니야…괜히 말해봤자 이상한 소리만 듣겠지. 오늘만은 봐 주마 리오·스나이퍼…!!!”
바이칼은 곧 리오를 끌고 집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로봇들의 잔해 사이에, 지크도 역시 쓰러져 있었다. 하지만 괴로운 상태로 쓰러져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아스팔트 잔해의 위에 쓰러져 편히 잠을 자고 있었다. 그 모습을 가까이서 바라보고 있던 바이론은 킥킥 웃으며 지크를 자신의 어깨에 들쳐 맸다.
“크크큭…심장을 강화시켜 놓으니 또 이러는군…. 그래 그래…계속 미쳐 날뛰는거다 지크…. 강해지는거다…크크크크크크….”
2장 [최강이라는 이름]
리오는 조용히 베란다에 기대어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 전투가 벌어진 것도 벌써 이틀이 지난 후였다. 그 전투때 끊어졌던 전기선에 대한 수리 공사가 오후쯤에 끝난다는 헬기 스피커의 소리가 떠들석하게 들려오는 동안, 리오는 등을 매만지며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완전히 척추가 회복된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자신이 어떻게 돌아왔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저 깨어난 뒤 보니 하루가 지나 있었다는 것 외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오래간만에 평온한 날이 찾아와서 그런지, 집 안에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놀러 나간 상태였다. 리오 외에 세이아와 바이칼만이 있을 뿐이었다. 전기가 나간 탓에 TV가 나오지 않아 바이칼은 더이상 소파에 앉아 있지 않았다. 물론 전기가 다시 들어오는날엔 또 다시 앉아 있겠지만…. 리오는 소파에 천천히 앉아 보았다.
우두둑…
“으윽…아직도 회복이 덜 됐나…?”
리오는 계속 등을 매만지며 소파의 등받이에 기대어 몸을 펴 보았다. 펼때 약간 아프긴 했지만 그래도 보통때 보다는 약간 나은 편이었다.
천장에 시선을 둔 채 멍하니 앉아 있는 리오를 보던 세이아는 안스러운 얼굴을 하며 부엌에서 나와 그에게 다가갔다.
“저어…아직도 아프세요?”
그녀의 물음에, 리오는 고개를 저으려고 했으나 목을 움직일때마다 등이 쑤셨기 때문에 그는 미소를 지은채 대답했다.
“…어제 보다는 괜찮군요. 전투시엔 회복이 잘 되는 편인데, 이런 평상시엔 회복이 느려서요…. 특히 척추 등 구조가 복잡한 부분은 회복이 빨리 안돼죠.”
“…네에….”
리오가 회복이라는 말을 쓰자, 세이아의 얼굴은 이내 흐려졌고 리오는 속으로 의아해 하며 잠시 굳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화제를 바꿔 말을 건내었다.
“…라이아는 넬과 시에랑 잘 노는 것 같던데요? 그 아이가 다시 웃음을 찾아서 다행이군요.”
그러자, 세이아는 희미하긴 했지만 다시 미소를 띄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에, 정말 다행이에요. 설마 이렇게 다시 만나리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라이아가 리오씨를 비롯해 다른분들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 애가 도대체 어떻게 온 것인지 잘 모르겠네요…? 왔을때 혼자서 왔는데….”
그러자, 리오는 천장을 바라본채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 세이아는 그 일에 대해 모르지….’
“네? 그 일이라니요 리오씨?”
세이아가 그렇게 물어온 순간, 리오는 덜컥 굳어버리고 말았다. 자신의 생각을 완벽히 읽어낸 것이었다. 이것은 세이아가 무의식적이라도 자신보다 정신적인 면에서 더 뛰어나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가즈 나이트의 정신 방어력을 뛰어넘을 수 있는 존재는 신 뿐이었다. 그러나, 세이아는 아직 자신의 행동을 의식하지 못하는 듯 했다. 리오는 애써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예? 아, 예…전투중에 라이아를 우연히 보게 되서…집 위치를 알려준 다음에….”
리오 자신이 생각해도 말이 안되는 대답이었다. 그러나, 세이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어쨌든 라이아가 돌아와서 다행이네요. 정말 고마워요 리오씨.”
리오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물론 긴장이 풀린 탓에 나온 실소에 가까웠지만…. 그렇게 대화하고 있는 둘의 모습을, 바이칼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곧 현관으로 향했고, 그의 모습을 본 리오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바이칼을 불렀다.
“엇, 바이칼, 왠일로 밖에 나가?”
그러자, 바이칼은 리오를 흘끔 보며 대답했다.
“…네녀석이 알 바 아니지….”
그렇게 평상시 그대로 대답한 바이칼은 곧 집을 나섰고, 리오는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훗, 어쩔 수 없는 녀석….”
바이칼은 파괴된 거리를 지나 에펠탑이라는 철탑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선 놀러 나간 일행들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구슬치기를 하는 넬, 라이아, 시에.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얘기하고 있는 티베와 케톤 자매. 그리고 에펠탑에서 마악 나오고 있는 ‘전직’BSP들…. 모두가 상황을 잊은채 편하게 즐기고 있었다.
턱!
순간, 바이칼은 자신의 등 뒤에 무언가가 달라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바이칼은 자신의 등 뒤에 달라붙은 존재에게 조용히 물었다.
“…이번엔 원하는게 뭐지 원시생물?”
“놀자 빠이!! 놀자 빠이!!”
“…쓸데없는….”
그러면서 바이칼은 아이들이 있는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
휀은 그날도 궁 안의 광장 중앙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그의 모습은 수천명에 달하는 적을 일순간에 쓸어버리는 사람의 모습과는 달랐다. 그저, 휴식을 하는 한 청년의 모습일 뿐이었다.
“…꼴도 보기싫어….”
린스는 광장 계단에 앉아 손으로 턱을 받친채 그렇게 중얼거렸고, 그걸 들었는지 휀은 조용히 린스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린스는 흠칫 놀라며 고개를 들었고, 휀은 천천히 린스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린스는 결국 피하기 위해 몸을 움직였으나 또다시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곧, 휀은 린스의 바로 앞에까지 다가왔고, 말 없이 그녀의 옆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았다. 린스는 당연하게도 휀을 향해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짓이야!! 사람 몸을 강제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서!!!! 원하는게 도대체 뭐야!!”
그러나 휀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들로 부터 멀리 떨어진 기둥 위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조용히 들려왔다.
“…알아챈건가…? 귀신같은 녀석이군….”
곧, 그 남자의 모습은 천정쪽으로 빨려 들어갔고 그가 사라짐과 동시에 휀은 다시 광장 중앙으로 걸어 나갔다. 린스는 이해가 안간다는 얼굴로 휀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저 인간 정말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