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503화
닥터·와카루는 끝났다는듯 한숨을 쉬며 자신의 등을 뒤로 쭈욱 폈다. 인체공학적 설계로 만들어진 특수 의자에 앉아있었기 때문에 펴면 펼수록 그의 허리는 더욱 편해졌다. 그때, 그의 뒤에서 조커 나이트가 데몬 게이트를 열고 불쑥 나타났고, 와카루에게 자신의 긴 낫을 들이대며 물었다.
「…뭣 때문에 린라우님을 뵙자고 했나 인간…. 린라우님은 너같은 미천한 인간을 만날 시간이 없다. 나에게 대신 말해라.」
자신의 목 앞에 낫이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와카루는 아주 여유있는 표정이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목 앞에 들어온 낫을 살짝 튕겨보며 말했다.
“음…신의 육체가 필요해서 그랬소이다. 당신들에게 이오스라는 신이 붙잡혀 있다 알고 있는데…. 좀 주실 수 있겠소?”
그러자, 조커 나이트는 잠시 말을 잃은 듯 조용히 와카루를 바라보다가 웃음을 터뜨리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쿠쿠…쿠하하하하하하하하핫—!!!! 인간 따위가 감히 신의 육체를 물건 취급하다니, 정말 가소롭구나!!! 음우하하하하하하!!!!!! 그래, 목적이나 한번 듣고 싶군, 이오스의 육체를 가지고 뭘 하겠다는 소리냐?」
조커 나이트는 흥미가 생겼는지 낫을 거두며 와카루에게 물었다. 와카루는 자신의 옆에 놓인 미지근한 인삼차를 한모금 들이킨 후 천천히 대답해 주었다.
“…이 노인네가 이번에 좀 좋은 오버드라이브 킷트(Overdrive kit)를 만들었다오. 인간에게 시험해보긴 했는데 무리가 있었다오. 몸이 견디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나는 것이었소. 그래서…인간을 뛰어넘는 육체를 가진 존재, 예를 들어 신과 같이 강한 육체를 가진 존재가 필요하게 되었소.”
조커 나이트는 자신의 가면 밑을 쓰다듬으며 흥미롭다는 행동을 취했다. 모니터에 반사된 조커 나이트의 그런 모습을 흘끔 본 와카루는 피식 웃으며 계속 말하기 시작했다.
“그 킷트를 사용하게 되면, 적어도 베히모스 보다는 강해질 것이 확실하오. 그런데…내가 듣기로 당신 예전에 휀이라는 금발의 청년에게 얼큰히 깨졌다고….”
「—!!!!!」
그 순간, 조커 나이트의 낫이 휘둘러졌고 섬광과 함께 와카루가 들고 있던 사기 찻잔의 윗둥이 깨끗이 잘려 나갔다. 조커 나이트가 쓴 가면의 눈구멍에서 붉은 빛이 맴도는 것을 본 와카루는 고개를 숙인채 회심의 미소를 지었고, 곧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그 청년을 이기고 싶지 않소? 지금의 당신 육체도 꽤 강해 보이는데…. 허허헛, 잘 생각해 보시오. 흥분하지 말고….”
「…….」
“아직 시험작이긴 하지만 인간 이상의 존재에겐 확실히 들어 먹히오. 자아…빨리 결정하시오. [아마테라스]의 힘을 얻어 그 청년을 이기겠소, 아니면 변변치 못한 공 하나 못세운채 계속 그 모습으로 있을 것이오?”
와카루의 말에, 조커 나이트는 눈을 가늘게 뜨며 비웃듯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마테라스…? [천조대신(天照大神)]이라 불리는 광(光) 계열의 여신 이름 아닌가? 쿳…그따위 2류 신의 힘을 얻어서 뭘 하겠다는거지?」
그러자, 와카루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허헛, 그건 작품명이니 그리 신경쓰지 마시고…. 어쨌든 그 킷트는 사용 대상자의 파워에 비례해서 대상자를 강력화 시키는 것이오. 물론 겉모습도 좀 달라지겠지만…. 적어도 지금보다는 훨씬 강해질 것이오. 자아…어떻소? 결정하시오…허허허허헛….”
「….」
조커 나이트는 아무 말이 없었다. 잠시 후, 그는 자신의 낫을 연구실 바닥에 꽂으며 와카루에게 말했다.
「쿠쿠쿠…당신이라는 인간은 참으로 악랄하군…. 나와 같은 악마보다 더…쿠쿳. 좋아, 정말로 힘을 얻을 수 있다면 인간에게 속아줄 수 있지. 키하하하하핫—!!!」
와카루는 고개를 끄덕인 후 의자에서 일어나며 조커 나이트에게 말했다.
“허허헛…속아줘서 고맙소, 허허허헛….”
※
반독(反毒) 사건이 있은 다음날 아침, 휀은 별궁에서 곧바로 나와 광장 중앙에 섰다. 그러나, 그날은 구름이 짙게 깔린 날이어서 휀은 고개를 갸웃 거리다가 다시 별궁을 향해 돌아갔다. 그런 휀의 행동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케이는 아무도 없는 자신의 뒷쪽을 향해 조그만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난영 두령, 당신이라면 저 사람을 암살할 수 있을 것 같소?”
그러자, 천장에서 검은 그림자 하나가 케이의 뒤에 떨어졌고, 그는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채 조용히 대답했다.
“가능하지 않다고 봅니다.”
“…어째서 그렇소? 빈틈이 저렇게 많은 상황인데 그렇단 말이오?”
사건정중 두령, 난영은 아무런 움직임 없이 그대로 대답했다.
“…암살이라는 것은 암살 대상자의 다음 행동을 읽을 수 있어야 절대 가능합니다. 아시다시피, 저 사나이는 아무 죄 없는 우리 병사들 수십명을 구별하지 않고 가루로 만든 후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무정(無情)의 남자…. 감정이 전혀 없는 상대의 다음 행동을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저도 시험을 하려 했으나 어제 밤 광장의 지면 밑에 몸을 숨기고 저 사나이를 감시하던 사건정중 한명이 저 사나이의 칼에 머리를 찔려 즉사를 당했습니다. …빈틈이 있는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저 사나이에겐 보이지 않는 [위압감]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케이는 난영을 흘끔 바라보았다.
“…위압감?”
“예. 공주님의 목숨을 노리고 온 마귀가 공격을 하려다가 멈춘 일이 있지 않습니까. 일부러 멈춘 것이 아닌, 저 사나이의 알 수 없는 분위기에 압도당해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개구리등이 뱀 앞에서 도망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알았소, 말씀 고맙소.”
케이가 말을 끝내자, 난영은 다시금 천정 위로 몸을 숨겼고 케이는 한숨을 후우 쉬며 아무도 없는 별궁 앞 광장을 바라보았다.
별궁 안으로 들어가던 휀은 도중에 시녀들을 이끌고 어디론가 가고 있는 왕비와 마주쳤고, 휀은 이번에도 살짝 목례만을 하였다. 왕비의 미간이 찡그려진 것은 말할 나위도 없었지만, 휀의 다음 말이 그녀로 하여금 더욱 화를 내게 만들었다.
“어제 밤엔 혼자서 수고 많으셨습니다.”
“무, 무슨 소리냐!! 무슨 뜻으로 나에게 그런 당치도 않은 말을 하는 것이냐!!!”
그녀의 호통에, 그녀와 동행하던 시녀들은 움찔 하며 그 자리에 멈춰섰다. 그러나 휀은 이번에도 그냥 지나가며 허무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별로, 아무것도 아닙니다.”
휀은 계속 길을 걸어갔고, 왕비는 상당히 화가 난 듯 자신의 봉선을 휘두르며 욕설을 퍼부었으나, 그 이상의 행동은 취하지 않았다. 궁녀들도 이상하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휀은 슈렌과 사바신, 린스가 앉아 있는 응접실을 슬그머니 지나쳐 갔고, 린스는 또다시 못볼것을 봤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가만히 앉아 커피를 마시던 슈렌은 린스를 바라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린스는 턱을 괸 채 고개를 픽 돌리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아냐! 아무것도….”
그러자, 슈렌은 고개를 끄덕인 후 커피가 든 찻잔을 입에 대며 중얼거렸다.
“다행이군요.”
린스는 아무래도 슈렌과는 얘기가 안통한다 생각했는지, 그의 옆에서 자신이 직접 만든 쌍화차를 마시고 있는 사바신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봐, 저 휀이라는 녀석…지금까지 원맨쇼만 해 온거야?”
그러자, 사바신은 왠일로 자신에게 묻냐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을 해 주었다.
“헤에…왠일이시지? 흠…궁금하지만, 어쨌든 대답해 드리지요. 물론 원맨쇼를 해 온 녀석이죠. 임무를 수행할때 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 동료가 된 것 같기도 한데, 임무가 끝난 후 살아남은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다고 들었죠. 동료들에 대해서도 그렇게 상관하는 편이 아니에요. 또 모르죠, 저 녀석 속은 누구도 모르니까요. 휀 녀석은 애인도 없고, 친구도 없고….”
그때, 마침 커피를 다 마신 슈렌이 사바신의 말을 끊었다.
“…아니, 친구는 있어. 단 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