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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51화


“…갔나?”

리오는 망토를 내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키세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일어서며 기지개를 한껏 켰다. 망토를 키세레가 깨기 전에 걷어둔 것이 잘한 일이라고 리오는 생각했다.

“안 그랬으면 난리가 났겠지… 훗.”

아직도 타고 있는 모닥불을 끄며 리오는 뒷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뒷정리를 하지 않으면 임무를 마친 후 숲의 신 라르무스에게 무슨 말을 듣기 때문이었다.

“꺄 – 악!!”

리오는 갑자기 들려오는 날카로운 비명 소리에 몸을 돌렸다. 클루토도 놀란 눈으로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리.. 리오… 이 목소리는?!”

“키세레!”

리오는 땅을 박차고 키세레가 있는 호숫가를 향해 몸을 날렸다. 얼마 되지 않는 거리였으나 암기나 화살 등의 무기라면 그 거리도 먼 것이었다. 나무 사이를 한 마리의 야수와 같이 달린 리오의 눈에는 호숫가에 주저앉아 있는 키세레의 모습이 바로 들어왔다. 그녀의 앞에는 긴 화살이 꽂혀 있었다. 리오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

한 나무 위에서 리오의 시선이 멈췄다. 엘프인 듯한 소년이 키세레에게 다음 화살을 조준하고 있었다. 리오는 인상을 쓰며 소년이 올라가 있는 나무를 향해 돌진했다.

“이 녀석 – !!”

쿠웅 – !

둔탁한 소리와 함께 리오의 어깨로 들이받힌 아름드리나무는 폭풍을 만난 듯 흔들렸다. 키세레는 화살에서 눈을 떼고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다.

“아앗?!”

소년은 나무가 심하게 흔들리는 바람에 활과 화살을 놓치고 아래로 떨어졌다. 리오는 놓치지 않고 소년의 뒷덜미를 공중에서 그대로 잡아 들어 올렸다. 소년은 발버둥을 치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제길! 어서 날…”

“시끄러워! 죽이진 않을 테니 묻는 말이나 대답해!!”

소년은 리오의 말에 흠칫 놀라며 가만히 있었다. 리오는 소년을 다시 내려놓으며 몇 가지를 묻기 시작했다.

“너, 엘프족 같은데 왜 우리에게 화살을 쏜 거지?”

소년은 대답하지 않고 역으로 질문했다.

“당신들, 가이라스 왕국 군인이 아니에요?”

리오는 얼굴을 찡그리며 소년의 머리를 살짝 주먹으로 쥐어박았다.

“아니야, 그럼 넌 우리가 가이라스 왕국 군인인 줄 알았냐?”

소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키세레는 머리를 다시 땋아 내리고서 소년에게 물었다.

“가이라스 왕국과 엘프족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니?”

소년은 주먹을 불끈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그들이 우리 부족들을 몽땅 잡아갔어요! 그것도 다크 엘프족의 힘을 빌어서요… 저와 저희 할머니만 겨우 도망칠 수 있었어요. 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이 숲을 떠돌아다니면서 가이라스의 군인들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는데…”

키세레는 그 소년이 측은해 졌는지 소년을 살짝 안아주었다.

“괜찮아… 사과는 나중에 해도 돼.”

키세레의 말을 들은 소년은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리오는 머리를 긁으며 고민에 빠져있었다. 가이라스에선 오래전에 엘프족과 상호 불가침 조약을 맺었었다. 그 결과 반 이상의 엘프족들이 숲에서 나와 사람들처럼 도시를 이루며 사는 것이 가능했다. 100년이 넘도록 엘프족에 대해 간섭을 하지 않던 가이라스가 엘프족들을 잡아간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봐, 울지만 말고 대답 좀 해줄래?”

엘프족 소년은 눈을 닦으며 리오를 보았다.

“그럼 너희 할머니는 어디 계시니?”

“친척이 사는 도시에 계세요. 하지만 그곳에선 인간들도 같이 사니까 군대가 들어오진 않고 있대요.”

“그래…?”

얼마간의 이야기가 키세레와 소년의 사이에 흘렀다. 그 소년의 이름은 머셸, 엘프의 나이론 85세, 인간의 나이론 12세였다. 할머니,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자신과 여동생이 가족의 전부인 그 소년은 며칠간이나 숲속에 있었는데도 깨끗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숲의 요정이라 그런 건 당연하지만…

얼마 후 달려온 클루토와 재합류한 일행은 머셀에게 숲에서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거나 본 적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머셀은 아까 전의 실례를 보충하려는 듯 성의 있게 대답을 하였다.

“예… 2일 전에 검은 복장의 한 광대 사나이를 숲에서 본 적이 있어요. 멀리서 보았는데 이상한 웃음소리를 내며 서쪽으로 가고 있었어요. 마치… 악마 같았어요 그 사나이는요.”

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클루토도 마찬가지였다.

“좋아, 좋아… 이제 잡았다 『바이퍼』…”

리오는 숲의 서쪽을 보면서 씨익 웃었다. 키세레는 그 악마와 리오가 무슨 관계인지 궁금해졌다.

“리오는 그 악마에 대해서 자세히 아나요?”

그에 대한 대답은 클루토가 대신해주었다.

“『바이퍼』라면 아이들을 대상으로 사악한 짓을 일삼는다는 전설의 악마에요. 아마 백마술 계열의 서적에선 거의 나오지 않을 거예요, 정령 마술이나 흑마술의 서적에도 몇 번밖에는 나오지 않거든요. 어쨌든 제가 아는 바로는 꽤 강력한 축에 드는 악마라는 거예요.”

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서 머셀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자, 엘프 꼬마는 이제 어떻게 할 거지? 이대로 가이라스 군이 오기를 기다릴래, 아니면 우릴 따라갈래?”

머셀은 약간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몇 번 만나보지도 못한 사람들과 같이 간다는 것 자체가 어색했고 이들에겐 진 빚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 역시…”

리오는 뒤로 돌아서며 클루토에게 물었다. 클루토를 보며 리오는 한쪽 눈을 감았다.

“어이, 클루토. 우리 여행의 최종 목적지가 어디냐?”

클루토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예, 가이라스 왕국의 수도이지요.”

“…!!…”

머셀은 가이라스의 수도란 말에 몸을 움찔했다.

“역시, 같이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리오와 클루토는 같이 씨익 웃었다. 그들이 웃을 때 거의 웃지 않던 키세레도 이번만큼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소년에 약한 키세레였다.

“좋아, 날이 저물기 전에 그 녀석의 은신처를 찾아내자고. 아마 그 녀석은 며칠 후 깨어날 자신의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리오의 말과 함께 머셀의 안내로 일행은 숲의 서쪽으로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침의 상쾌한 햇살이 그들의 앞길을 비춰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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