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539화
마키·키드렉
여섯살때 부모를 잃고 혼자가 됨. 친척도 없는 관계로 (있긴 하지만 어디 사는지 모른다 함) 결국 그때부터 혼자 생활함.
열 두살때 도적 기술에 대한 재능을 인정받아 불법 단체인 아라쿠 길드(도적 연합)에 들어감. 그러다가 열 네살때 대륙 최고의 암살자로 불리던 쿠란·비케르의 제자가 됨. 그 후로 4년간 그의 밑에서 수련을 함. 그러나 암살자 수업의 마지막 과제를 성공하지 못하고 결국 행방불명됨.
※※※
‘여자 아이라고…고아라고 놀림받는건 싫어!’
올해로 열 한살인 마키는 처음 오는 도시 아르센의 한 골목에서 지금까지 기른 자신의 긴 머리를 칼로자르고 있었다. 혼자서 자르는 것이었고, 그나마 칼도 그리 잘 드는 편이 아니어서 마키의 머리는 남자아이가 몇일간 머리를 감지 않은 그것과 비슷하게 되어 버렸다. 마키는 몸을 숙여 쓰레기통에서 발견한 깨진 거울 조각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 보았다. 어지러이 잘려진 자신의 머리를 보던 마키는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으나 꾹 참으며 자신의 칼을 호주머니 안에 넣은 뒤 골목을 빠져 나갔다. 그녀는 레프리컨트 왕국에서 두번째의 규모를 자랑하는 아르센의 시장을 거닐며 자신을 지나쳐가는 사람들을 흘끔흘끔 바라보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마키에 대해 신경쓰지 않았다.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마키는 속으로 다행이라 생각하며 계속 거리를 거닐었다.
※
“잡아랏!!! 저녀석을 누가 좀 잡아!!!!!”
한 상인의 처절한 목소리가 마키의 귀에 들려왔다. 그러나, 마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속 밤거리를 달렸다. 그녀를 추격하던 사람들은 한 두명씩 줄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아무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뛰는 것 하나는 자신이 있었다. 고아가 된 뒤부터 마키는 뛰고 또 뛰어왔다. 살기 위해선 먹을 것이 필요했고,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다. 열 두살의 마키에게 있어서 돈을 구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녀 자신도 모르고 있는, 다른 여자, 아니, 더 크게 말해서 보통 사람에 비해 배는 튼튼한 다리와 날렵한 몸이라는 천부적 운동력을 가진 덕분에 그녀는 4년간 각 도시를 돌아다니며 소매치기로 배를 채워갔다. 어둑한 골목 안으로 들어선 마키는 창가에서 흘러나오는 빛 아래에 자신이 훔친 상인의 주머니를 열어 보았다. 역시나 돈이 들어 있었다. 그것도 상당한 양이었다. 그 안엔 보석류도 들어 있었기 때문에 마키는 더더욱 만족감에 빠졌다. 마키는 자신의 옷 안에 그 주머니를 깊숙히 숨겼고,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곧바로 걸음을 옮기려 했다.
“…?”
그때, 그녀에게 빛을 주던 창문 안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고 마키는 슬그머니 발 끝을 들어 창문 안쪽을 바라보았다. 창문 안, 즉 집 안에선 한 가족이 커다란 칠면조를 요리해 식탁 위에 놓고 즐겁게 파티를 하는 중이었다. 마키는 입맛을 다시며 뚫어지게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그 가족중 자기 또래의 딸 아이가 그날 생일을 맞은 듯 했다. 가만히 그 광경을 바라보고만 있던 마키는 곧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몸을 숙이고 서늘한 밤거리를 달려 나갔다. 눈물을 훔치며….
※
마키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지난 2년간 도적 길드에서 일을 하며 더욱 다리가 빨라진 자신을 늙을대로 늙은, 그것도 앞을 보지 못하는 노인이 끈질기게 따라붙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 노인과 함께 있는 소녀 역시 만만치가 않았다. 한시간을 넘게 도망치던 마키는 결국 다리가 풀려 버렸고, 그녀의 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골목 끝에서 결국엔 그 둘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노인과 소녀는 숨을 몰아쉬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채 서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스, 스승님, 어째서 꼬마가 소매치기 주제에 암살자인 우리보다 더 빠른거죠? 하아, 하아….”
“후우…대단한 다리를 가지고 있구나…내가 아무리 늙었기로서니 한시간 동안 목표를 잡지 못하다니….”
그렇게 둘이 대화를 하는 동안, 마키는 도망치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러나, 평상시에 그리 많이 먹는 편이 아닌 마키는 결국 탈진해 정신을 잃고 쓰러졌고, 노인은 몇미터 정도 더 도망을 가다 쓰러진 마키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중얼거렸다.
“…대단하구나, 여자아이 치고는 정말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어…. 이 나이 또래에 이 정도의 체력과 속도를 가진다는 것은, 그것도 훈련을 하지 않고 이 정도라는 것은 나를 훨씬 능가하고도 남는다는 말과 같단다. 후우…훈련을 시키면 어떻게 될지 정말 궁금할 정도구나.”
노인의 말을 들은 소녀는 약간 자존심이 상했는지 꿍한 표정으로 마키를 바라보았다. 노인은 마키가 손에 꼭 쥐고 있는 자신의 주머니를 되찾은 후, 뒤에 서 있는 소녀에게 말했다.
“리마야, 이 애를 데리고 가자꾸나. 입은 옷을 보아하니 아르센의 유명한 아라쿠 길드에 속한 아이 같으니, 내가 거기에 다녀올 동안 넌 아이를 데리고 여관에서 기다리거라.”
그러자, 여자 아이는 깜짝 놀라며 노인에게 물었다.
“예!? 스, 스승님!! 설마 그 아이를…?”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그 노인은 그 소녀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며 빙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라쿠 길드의 우두머리는 나랑 잘 아는 사이이니 이 아이를 아무말 없이 빼 줄 것이다. 자, 어서 데리고 가거라. 여기 돈을 줄테니 그 아이가 깨어나면 잘 먹여두거라. 배가 고파서 우리에게 잡혔으니 먹여 둬야지…허헛.”
※
드디어 마지막 수업날이 다가왔다.
마키는 자신의 팔과 다리, 그리고 허리에 감겨 있는 각 무게 15Kg의 납 주머니 다섯개를 풀어내고 옷을 챙겨 입은 후 밖으로 나섰다. 수련장 숙소의 밖엔 그녀를 4년간 가르쳐준 전설의 암살자 쿠란이 정좌를 한 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나온 것을 느낀 쿠란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녀에게 물었다.
“…네 사제인 리마도 실패한 수업이다. 마키야…자신이 있느냐?”
마키는 근육이 꽤 붙은 자신의 팔에 힘을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걱정마세요 스승님. 기필코 해 보일테니까요.”
“…그래, 그럼 아르센 국립 공원으로 가자꾸나.”
둘은 곧바로 가까운 아르센 국립 공원으로 향했다. 나무 사이사이를 건너 뛰며 상대를 찾던 마키는 우연히도 벤치에서 마악 일어나 어디론가 걸어가는 남녀를 볼 수 있었고, 그녀는 옆에 앉아 있는 자신의 스승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어…스승님.”
“…상대를 찾았느냐?”
마키는 약간 우물거리다가, 곧바로 대답했다.
“네, 스승님. 키 큰 남자와 여자 둘입니다.”
쿠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가지고 나온 중형의 얇은 칼을 꺼내며 물었다.
“…결심했느냐?”
마키는 단호히 대답했다.
“예, 스승님.”
마키의 대답을 들은 쿠란은 곧 가지고 있던 검을 마키에게 내어 주며 마지막인듯한 말을 남겨주었다.
“…암살자란 정에 이끌려서는 안된다. 어린아이, 여자 할 것 없이 표적이 되거나 목격한 사람은 모두 처리해야해. 그래야만 진정한 암살자가 될 수 있다. 자, 네가 선택한 길이다 마키야….”
마키는 알겠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후, 자신의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검을 뒤로 거머쥐며 인사도 없이 나무에서 뛰어 자신이 설정한 목표를 향해 나갔다. 마키가 뛰어 나가자, 쿠란은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정에 이끌리면 나처럼 양 눈과 젊음을 잃게 된단다…. 하지만…넌….”
나무에 몸을 숨기며 목표를 향해 가까이 접근해가던 마키는 그 남자와 여자가 손바닥을 마주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약간 쓰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자신이 좋다고 택한 암살자의 길에 완전히 들어서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며 자신을 위로했다. 그때, 남자와 여자가 약간 떨어졌고, 마키는 잘 됐다는듯 곧바로 몸을 날리며 마음 속으로 부르짖었다.
‘남자만 죽이면 돼, 여자가 알아차리기 전에…!!’
마키는 그야말로 바람처럼 재빨리 그 남자의 뒤로 접근해갔다. 순식간이었다. 이제 수업은 끝이라고 마키는 생각했다.
순간.
피잉—
무언가 튕기는 소리가 들려왔고, 마키는 자신의 시야에 푸른빛을 띈 섬광이 잠시 들어온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위험을 느낀 마키는 몸을 뒤로 젖혔고, 그녀는 자신의 눈 앞으로 머리에 감았던 두건이 반으로 잘리어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갑자기 마키의 시야는 컴컴해졌고,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바닥으로 내동댕이쳐 졌다.
“으앗!”
바닥에 쓰러진 마키는 다시 몸을 일으키고 그곳을 빠져 나가려 했으나, 강한 충격이 그녀의 복부를 강타했고 마키는 잠시간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곧, 한 남자의 웃음소리가 그녀의 귀에 들려왔다.
“헤헷!! 감히 풋내기 주제에 이 지크님의 목숨을 노린거냐!!! 이봐, 그 예쁘장한 얼굴은 돌리라구!!! 난 예쁘장한 남자는 싫어!!! 그리고 저 늙은이는 또 뭐야!!!”
마키는 늙은이라는 소리를 듣고 흠칫 놀라며 그 남자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을 올려다 보았다. 자신의 스승이 어느새 검을 뽑아 들고 자신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괴물같은 남자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마키는 필사적으로 그에게 외쳤다.
“스, 스승님!! 오지 마세요!!!”
그러나, 쿠란은 그 남자에게 공격을 가했고, 그 남자는 한쪽 다리를 마키의 복부 위에 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쿠란에게 반격을 가했다.
파앙—!!!
검이 튕기는 소리와 함께, 쿠란이 들고 있던 검은 공중을 날았고, 쿠란은 그 남자에게 얼굴을 잡힌채 공중에 들려져 있었다. 마키는 스승의 치욕적인 모습을 보고 치를 떨며 몸을 움직이려 했으나, 꽤나 수련을 쌓은 자신의 힘에도 불구하고 그 남자의 다리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 남자는 크게 웃으며 소리쳤다.
“하·핫!!!! 이 할아범이 네 스승이냐? 그렇다면 이 할아범이 너에게 안가르쳐준 것이 있었군. 하룻강아지 주제에 범 무서운줄 모른다는걸 말이야!!!”
그 말도 안돼는 말을 들은 금발머리 여자는 한심하다는듯 고개를 저으며 그 남자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지크 오빠, 인용이 좀 잘못된 것 같은데….”
“…시끄럿!! 하여튼…자, 둘 다 사라지셔. 다음엔 상대를 잘 고르라구. 헤헤헷….”
그 남자는 마키와 쿠란을 동시에 풀어주었고, 자신의 동생으로 보이는 여자와 손바닥을 마주친 후 아무 말 없이 가던 길을 계속 가기 시작했다.
마키는 일어서자 마자 자신의 스승을 부축해 주었고, 쿠란은 몸을 가까스로 가누며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소매로 훔쳤다.
“…괴물같은…한쪽 다리에 중심을 둔 상태인데도 내 검을 간단히 쳐 내고 공중에 떠 있는 나를 곧바로 붙잡다니…. 그래, 마키야, 너에게 좋은 기회가 생겼다.”
씁쓸한 표정으로 자신의 머리에 두건을 다시 두르던 마키는 스승의 말에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네? 조, 좋은 기회라니요…?”
“저 젊은이를 따라가 보거라. 만약 네가 저 젊은이를 이길 수 있다면 넌 그때 최고의 암살자가 될 수 있을게다. 물론 저 젊은이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그러자, 마키는 말도 안된다는 듯 쿠란의 주름진 손을 잡으며 소리쳤다.
“아, 아니에요, 그럴리 없어요!! 스승님이야말로 이 세상 최고의 암살자세요!! 제가 꼭 저녀석의 목을 잘라서 스승님께 바칠께요, 스승님이 최고라는 것을 증명해 드릴께요!!!”
마키는 곧바로 그 남자와 여자가 사라진 방향을 향해 바람같이 뛰어갔고, 쿠란은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검을 더듬거려 찾은 후 집어 넣으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솔직히 나로선 네 재능을 더이상 발전시킬 수 없단다. 넌 암살자의 것으로 끝날 시시한 재능을 가지고 있지 않아…열 두살의 나이로 수십년간 훈련한 나를 추월한 최고의 재능을 가지고 있단다. 그리고…나를 이렇게 생각해준 제자는 네가 처음이라…난 널 암살자로 만들고 싶지 않단다….”
쿠란은 자신의 집이 있는 산지를 향해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서서히 져 가는 태양을 뒤로 한 채….
“…부디 행복하거라 마키야….”
※
“이런 바보…자, 똑바로 보고 배우란 말이야!!”
지크는 마키의 앞에서 다시한번 무술동작을 전개해 주었고, 마키는 그의 동작을 그대로 따라해 보았으나 자신이 생각해도 중간의 동작이 너무나 어색하게 들어가고 말았다. 결국 지크는 답답한듯 자신의 머리를 쥐어 뜯으며 마키에게 말했다.
“으으으…!! 자, 똑바로 들어!!! 이 동작에서…여기로 갈때 다리에 힘을 주지 말고 복부에 힘을 넣으란 말이야!! 아까처럼 계속 하면 그건 무술이 아니고 춤이 된다구!! 잘 알아 듣겠어!!!”
“쳇, 알았어, 알았다고!!! 나도 실수하고 싶어서 실수하는게 아니란 말이야!!!!”
자신도 결국 짜증이 났는지, 마키는 지크에게 소리를 크게 질렀고, 지크는 결국 팔짱을 끼며 마키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마키는 순간 움찔 하며 머리를 긁적였고, 지크는 피식 웃으며 손으로 마키의 머리를 강하게 부벼주었다.
“알았다구, 녀석…. 그럼 이것보다 쉬운 동작을 가르쳐줄게. 잘 보고 따라해봐. 이번에도 잘못하면 식사 없어!!!”
지크는 엄포 아닌 엄포를 놓으며 다시 자세를 취하였고, 자세를 잡고 있는 지크의 진지한 얼굴을 바라보며 마키는 고개를 슬며시 끄덕인 후 지크가 하는 그대로 자세를 취해 보았다.
※
호프라 불리는술집에 들어가 한 집에서 지내게된 여자들과 함께 맥주라는 술을 들던 마키는 지크가 앞에서 꼼짝도 못하는 린 챠오라는 여성을 흘끔 바라보았다. 자신보다 큰 키를 가졌고, 몸도 만만치 않게 다져져 있어 마키는 이상하게도 그녀에게서 [라이벌]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그때, 챠오도 마키를 바라보았고, 술을 마신 탓에 얼굴이 붉어진 챠오는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후 마키에게 팔을 내밀며 중얼거렸다.
“…팔씨름 어때.”
“흥, 도전한다면….”
마키는 챠오와 손을 잡은 순간, 알 수 없는 상쾌함과 함께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