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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540화


오후 늦어서 겨우 트립톤에 돌아온 리오는 급히 노엘의 집 문을 열어 젖혔다. 그러나 집 안엔 아무도 있지 않았다. 리오는 거칠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였고, 소파 위에 주저 앉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후우…너무 늦은건가? 그건 그렇고 다 어디갔지?”

양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싼채 리오는 주위를 둘러 보았다. 너무나 깨끗이 정돈되어 있고 먼지도 거의 없어서 떠난지 하루정도 지난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다 알고 떠난건가? …만약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때, 한쪽 방의 문이 스르르 열렸고, 그 안에서 반바지 차림의 바이칼이 잠에 취해 흐느적거리며 나타났다. 바이칼은 리오가 집 안에 들어온지도 모르는듯 터벅터벅 부엌으로 들어갔고, 노엘이 손수 만든 정수기에서 물을 따라 마신 후 상의를 천천히 벗으며 목욕실로 들어갔다. 그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던 리오는 피식 웃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잘때 업어가도 모르는건 여전하군….’

리오는 소파에 편히 내려 앉으며 바이칼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집 안에 바이칼 혼자 뿐이니 일행들의 행방을 알려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눈을 감고 조용히 뭔가를 생각하던 리오는 갑자기 바이칼의 취중 모습이 떠올랐고, 그는 실소를 터뜨리며 중얼거렸다.

“…풋, 괜히 그때 그 모습을 또 보고 싶어지는군…. …이런…나도 사상이 많이 위험해졌는걸.”

리오는 생각을 지우려는듯 머리를 흔들며 창 밖을 바라보았다. 이 세계의 날짜는 12월이긴 했으나 이 대륙의 기후는 그리 춥지 않았다. 마치 따뜻해지려는 봄 날씨와도 같았다.

“음…크리스마스라…예전에 지크 녀석과 크리스마스 파티를 한게 생각나는군. 물론 그땐 뭔지도 몰랐지만…. 그 녀석 이번 일이 잘 끝나면 또 양말을 벽난로에 걸어둘까? 그건 그렇고 왜 양말을 거는건지 이해가 안가는군…. 설마 굴뚝으로 누가 들어와서 선물이라도 주나?”

“음!?”

그때, 누군가의 짧은 비명이 들려왔고, 리오는 움찔하며 그 소리가 들려온쪽을 바라보았다. 상의를 걸치지 않은 바이칼이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둘둘 말은채 리오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리오는 빙긋 웃으며 그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여어, 잘 잤어?”

가만히 리오를 바라보던 바이칼은 다시 표정을 원래대로 바꾼 후 머리를 말리며 리오 반대편의 소파에 앉았다. 입은건 사각팬츠 하나 뿐이라 바이칼은 다리를 꼬고 앉았고, 리오는 한숨을 내 쉬며 그에게 물었다.

“모두 어디로 간거지? 단체로 놀러간건 아닌것 같은데….”

바이칼은 수건으로 머리를 계속 말리며 리오의 말에 대답을 했다.

“…휀 녀석이 오더니….”

바이칼은 천천히 자초지종을 리오에게 얘기해 주었고, 리오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얼굴 위에 자신의 손을 덮은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정말 다행인데…. 그럼 내가 갈 곳은 미국쪽인가?”

얘기를 하며 머리를 대충 다 말린 바이칼은 빗을 찾아 머리를 단정히 빗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그럼 언제 떠날거지?”

바이칼의 질문에, 리오는 잠시동안 말 없이 천정을 바라보다가 다시 바이칼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물론 지금 당장 가야 하겠지만…넌 이제 드래고니스로 돌아가.”

리오의 그 말에, 바이칼은 잠시동안 동작을 멈추고 리오를 바라보다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흠, 건방지게 내가 할 말을 먼저 하다니….”

그러자, 리오는 웃으며 바이칼의 옆에 앉아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만약 이번 전투에서 실패를 한다면 이 차원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사라져버려. 나와 같은 가즈 나이트들은 네가 알다시피 그렇게 죽는다 해도 다시 살아나지만, 넌 그렇지 않잖아. 넌 용제, 모든 차원의 서룡족을 다스리는 용제야. 할 일이 많이 남아있어. 여기서 허무하게 죽음을 당하면 안돼.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난 이제 서룡족 앞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어.”

“…….”

바이칼은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돌아갔고, 리오는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저었다.

“…흠…. 여자 설득하는 것 보다 더 힘들군.”

그때, 바이칼이 들어간 방문이 다시 열렸고, 바이칼은 리오의 정면에 무언가를 강하게 던져 주었다. 리오는 자신의 얼굴에 덮힌 묵직한 헝겊 뭉치를 만져 보았다. 질감으로 보아 자신의 망토가 분명했다. 망토를 스르륵 내려 바이칼쪽을 바라본 리오는 그가 아무 말 없이 다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리오는 짙은 붉은색의 눈썹을 꿈틀거리며 중얼거렸다.

“…뭐지 이 분위기는…?”

옷을 챙겨 입은 바이칼은 역시 아무 말 없이 방문을 나섰고, 리오는 마중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바이칼이 던져준 망토를 몸에 다시 두르고 집 밖으로 나섰다. 집 밖에 가만히 서 있던 바이칼은 곧 집에서 나온 리오에게 돌아선채 나지막히 물었다.

“…이런 내가 어리다고 한심해 하겠지….”

물론이지.

리오는 이렇게 말을 하고 싶었으나, 떠나라는 자신의 말이 바이칼의 자존심을 건드려도 보통 건드린게 아닌듯 싶은 생각이 들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나이가 몇인데 어리다고 생각하겠어. 난 지금 네가 보통때와 같이 네 스스로의 의지대로 떠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어.”

리오는 속으로 자신의 이런 거짓말이 지크가 그렇게 부르짖는 [사탕발림]이구나 라고 생각해 보았다. 리오의 말을 듣고 가만히 서 있던 바이칼은 곧 리오쪽으로 방향을 돌리며 여전히, 언제나처럼 차가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녀석이 나보고 떠나라는 말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 같군. 좋아, 가 주지. 마침 장로와 모두들이 날 걱정하고 있을테니까. 그럼 이만.”

바이칼은 손으로 마법진을 그린 후 공중에 차원문을 만들었고, 재빨리 그 차원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 모습을 말 없이 바라보던 리오는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했다.

‘저 녀석이 지크가 하도 여자소리를 해서 성격이 변한건가…아냐, 방 안에서 술을 마셨을지도….’

이런 생각을 하며, 리오는 바이칼이 보든 보지 않든 손을 흔들어준 후 조용히 몸을 공중에 띄웠다. 아메리카 대륙으로 다시 가기 위해서였다.

“…음?”

순간, 리오는 갑자기 어디에선가 높은 생체에너지가 모이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디인지 확실히 알 수가 없어서 리오는 긴장만 한 채 주위를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높은 상공에 만들어 놓은 차원문을 향해 몸을 띄우던 바이칼 역시 그 반응을 느낄 수 있었다.

퓨웅—!!!

“읏—!?”

그때, 리오가 떠 있는 바다 밑에서 얇은 두께의 고출력의 에너지 광선이 뿜어져 올랐고, 리오는 자신을 스쳐 지나간 그 광선의 발사 장소를 내려다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젠장, 선제 공격인가? 그건 그렇고 빠르기도 하….”

풍덩—

그 순간, 리오는 자신의 뒷쪽 바다에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리오는 불안한 마음에 그 쪽을 바라보았고, 해수면 위에 공기방울과 함께 붉은색의 피가 바닷속에서 부터 솟아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니야, 녀석이 멍청하게 맞고 있을리가….”

리오는 더욱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며 바이칼이 만든 차원문을 바라보았다. 차원문은 아직도 열려 있었고, 바이칼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

리오는 말을 잊고 말았다. 그때, 그의 밑에서 무언가가 천천히 솟아 오르기 시작했고 리오는 뒤로 물러서며 바다를 밀고 나오는 그 존재를 바라보았다. 검은색 물체였다. 자세히 말을 하자면, 검은색 털을 가진, 마치 누군가의 공격에 하반신이 날아가버린듯 한 날개달린 거대 사자와 흡사했다.

「쿠우우우우…쿠오오오오오오오옷—!!!!!!!!!」

하반신이 날아가 척추가 보이는 그 거대 사자는 리오를 쏘아보며 크게 포효를 했고, 리오는 아직도 공기방울과 피가 섞여 올라오는 항구쪽 바다와 자신을 쏘아보고 있는 거대 사자, 베히모스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눈에서 붉은 안광을 폭사하며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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