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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542화


리오는 침대 옆에 허리를 기대고 방바닥에 앉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다 한 상태였다.

그러나, 더이상 상황이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멍청한 녀석…그러고도 용들의 제왕이야….”

그렇게 중얼거리며, 리오는 풀어버린 자신의 머리카락을 양 손으로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는 망토도 벗고 있었다. 신룡의 날개가죽으로 만들어진 그의 망토는 어떤 상황에서도 안쪽의 온도를 적절히 유지시켜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리오는 이미 싸늘히 식어버린 바이칼의 몸 위에 자신의 망토를 덮어준 상태였다.

말 없이 머리만 움켜쥔채 가만히 있던 리오는 곧 허리를 펴며 고개를 돌려 자신이 기댄 침대 위에 누워있는 바이칼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바이칼은 더이상 싸늘한 시선으로도, 놀란 눈으로도 그를 바라보지 않았다.

“…의형제가 아닌…친구로서 너에게 처음으로 신계의 천공을 보여줬었지…. 그 후로 넌 무엇 때문인지 날 몇백년간 계속 쫓아다녔고…. 후…나도 많이 멍청해졌군. 듣지도 못하는 녀석에게 이런 말을 해 봤자…나만 위안이 될 뿐인데….”

그렇게 중얼대며, 리오는 얼굴을 침대 위에 묻으며 바이칼을 덮은 망토 안에 손을 넣어 보았다. 그는 차갑게 식어버린 바이칼의 갸름한 손을 자신의 두터운 손으로 꽉 잡으며 다시 중얼거렸다.

“…아직도 어린애일 뿐이면서…왜 날 쫓아다닌거지…. 여자애라면 이해를 하겠는데…남자녀석 주제에 왜 날 따라다닌거야…다시 살아나지도 못할 녀석이…!!!!”

우드득…

리오는 침대 시트를 잡은 손에 힘을 강하게 넣었고, 리오의 악력을 견디지 못한 시트는 스프링이 으깨지는 소리를 내며 부르르 흔들렸다. 그를 흉내내기라도 하듯, 리오의 몸 역시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리오는 곧 실소를 터뜨리며 바이칼에게 들으라는듯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훗…기억 나…? 옛날에 네가 나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해 주었던….”


“우욱…이런 이런,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겠군….”

한바탕 대 전투를 치룬 후 어떤 세계의 임무를 마친 리오는 침대 위에 누운채 산발인 자신의 머리를 흔들며 주위를 둘러 보았다.

“…음, 집인가…. 벌써 몇일이나 잔거지…?”

“이틀. 정확히 28시간.”

리오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차가운 목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후…아직도 돌아가지 않은거야? 하긴, 너도 지쳤을테니까…. 음음…배가 고프군. 집에 여자 한명이라도 있었으면 이럴때 좋을텐데…후훗.”

의자에 깊숙히 눌러앉아 있던 바이칼은 코웃음을 치며 중얼거렸다.

“흥, 잠 푹 자고나니 보이는게 없나 보군…. 얼마나 편해져야 정신을 차리겠나.”

“후우…배가 고파서 보이는게 없는거다. 아, 맞어…너라도 먹을거 나한테 해줄래? 지크 녀석이 만드는 햄버거는 이제 질려서 못먹겠어…우욱. 생각만 해도….”

그러자, 바이칼은 맘에 안든다는 얼굴로 리오를 쏘아보다가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버렸고, 리오는 살짝 고개를 들었다가 씁쓸히 웃으며 다시 이불을 덮고 몸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흐음…또 자존심을 터치했나보군…. 그래, 잠이나 더 자는게 좋겠지…이렇게 피곤하긴 정말 오래간만이군…으음.”

리오는 곧 스르르 잠에 빠져 들었다. 임무가 끝난 후 약 일주일간은 가즈 나이트들에게 있어서는 가장 편한 시간이었다. 일종의 휴식시간이라 할 수 있었다. 리오가 슈렌에게 전해 들은 바로는 휀이라는 초대 가즈 나이트는 휴식 없이 신계에 돌아오자 마자 다음 임무에 착수한다고 한다. 리오와 지크는 그 말을 듣고서 그런 괴물이 있냐며 혀를 내 두르고 말았다. 특히, 지금의 리오에겐 혀를 내미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리오는 어디선가 단백질이 타는 냄새가 풍겨오는것을 맡을 수 있었고, 곧바로 불안한 생각이 듬과 동시에 잠에서 깨어났다. 리오는 더욱 헝클어진 자신의 머리를 매만지며 슬금슬금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시선을 내려 보았다.

“콜록 콜록….”

회색의 연기 사이로 누군가의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리오는 혹시나 하며 눈을 크게 뜨고 그 연기를 자세히 바라보았고, 부엌에서 누군가가 기침을 해 가며 요리를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그 희미한 존재가 자세히 보인 순간, 리오는 말을 잊고 말았다. 화를 내며 아래층으로 내려갔던 바이칼이 지금까지 지크가 애용하던 앞치마를 두른채 눈물을 삼켜가며 바닥이 둥근 후라이팬으로 어떤 요리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옆에 펼쳐놓은 요리 설명용 입체 비전을 켜 놓은채…리오는 웃음을 참아가며 다시 머리를 위로 올렸고, 침대 속에 들어가 결국엔 웃음을 조용히 터뜨리고 말았다.

조금 후, 누군가가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왔고, 리오는 곧바로 자는척을 하며 다음에 들려올 말을 마음 속으로 예상하기 시작했다.

“아직도 뻗어 있군…약해 빠진 녀석….”

달그락—

그런 말과 함께, 탁자 위에 접시가 놓여지는 소리가 리오의 귀에 들려왔고, 곧 그의 허리쪽에 약간의 통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바이칼이 무릎으로 리오의 등을 치는 것이었다.

“…일어나지 않으면 없애겠다.”

리오는 곧 눈을 비비는 연극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고, 곧바로 탁자를 바라보며 놀란듯이 접시에 담긴 요리와 바이칼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음? 뭐지 이건…?”

리오의 질문에, 바이칼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린채 천천히 대답해 주었다.

“누가 너에게 주라며 가져오더군…. 어떤 바보인지는 몰라도.”

“…그래?”

리오는 속으로 계속 웃음을 터뜨리면서 포크를 잡고 접시에 담긴 고기 요리 한점 을 찍어 입에 가져가 보았다.

“…?”

리오는 순간 모든 동작을 멈추고 말았다. 고기 요리임에도 불구하고 맛이 신 것이었다. 그를 흘끔 흘끔 바라보던 바이칼은 리오가 갑자기 모든 동작을 멈춘채 가만히 있자 허겁지겁 다시 시선을 돌려 버렸고, 리오는 포크로 다른 고기 한점을 찍으며 바이칼에게 조용히 물었다.

“…어디에 있던 고기였어?”

순간, 바이칼은 몸을 움찔거렸고, 곧 멋적은듯 헛기침을 하며 들리지 않을 정도의 목소리로 대답했다.

“냉장고…에 있던 거.”

‘…두 달 전에 임무 떠나가며 지크가 먹을 햄버거용으로 넣어 논 고기…군.’

리오는 고개를 흔들며 피식 웃어버렸고, 리오의 웃음소리를 들은 바이칼은 곧 화가 난 표정으로 리오를 쏘아 보았다. 리오는 여전히 웃음을 지은 채 바이칼의 남색 머리카락을 손으로 살짝 부비며 말했다.

“…설겆이는 내가 할테니 그렇게 화내지 마. 후훗….”


“…기억을 해 줘…제발…부탁이다.”

리오는 바이칼의 손을 잡은 자신의 손을 부르르 떨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렇게 몸을 떨며 감정을 내리누르던 리오는 잠시 후 몸을 옆으로 옮겨 바이칼의 뺨에 자신의 이마를 가져간 후 그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힘없이 말했다.

“…지쳤어…. 그만 쉴께 바이칼…미안해.”

리오는 그렇게 잠이 들었다. 무언가에 빨려 들어가듯이.

마치 죽음과도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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