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54화
리오 일행은 거대한 바위 동굴을 숲의 사이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시커먼 동굴의 안쪽이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리오는 턱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여기가 확실한 것 같네요, 수녀님.”
키세레도 동감한다는 듯 말했다.
“예… 저 동굴의 입구 주변에 이끼도 없는 것을 보니 그런 것 같군요. 그럼 들어가 보는 것이…”
“아, 그건 안됩니다. 들어가려면 저 혼자 들어가는 게 좋아요. 바이퍼는 고급 악마니까 말이죠. 정신력이 약한 사람이 바이퍼를 정면으로 대하게 되면 그 사람은 바로 미치게 된다고요, 바이퍼의 마기 때문에요.”
키세레도 그것에 대해선 들은 적이 있었다. 보통 사람이 악마를 만났을 때 악마에게 홀리는 것이 아니라 그 엄청난 마기 때문에 미치는 것이라고 한다. 보통의 마물과는 다른 것이 지옥과 물질계를 마음대로 드나드는 ‘악마’란 존재이다. 그러나 천상의 존재들도 그들의 영역을 침범하지는 않는다. 이른바 월권 행위일 때 그들 사이에서 전투가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가즈 나이트의 존재도 그러하다. 그들의 존재 가치는 단 하나, 세력의 균등인 것이다. 그런 역할 때문에 때로는 무차별 파괴를 일삼기도 한다. 어쨌거나 지금 바이퍼의 행위는 같은 악마들 사이에서도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행위였다.
“그럼, 리오 혼자서 괜찮겠어요?”
리오는 씨익 웃으며 키세레를 보았다.
“물론이죠. 대신, 여기 있는 사람들도 할 일이 있어요. 먼저 수녀님, 바이퍼는 분명히 동굴의 밖으로 나올 겁니다. 거기에 대비해서 높은 급수의 결계를 쳐 주세요. 그리고 클루토와 머셀은 바이퍼가 나오면 위협 공격을 해. 마기가 결계를 뚫고 나오진 못하니까 가능할 거야.”
클루토와 머셀은 힘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리오는 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일어섰다.
“좋아, 그럼 부탁해요.”
리오는 말을 마치자마자 동굴을 향해 숲에서 튀어나갔다. 발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최대한으로 기척을 없애야만 바이퍼에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굴의 입구에 도착한 리오는 벽쪽에 등을 붙이며 조용히 이동해 갔다. 중간쯤 갈 무렵, 리오는 손을 모으며 주문을 외웠다.
“어둠의 정령 쉐이드여, 빛을 감추는 너의 힘으로 나의 형체를 없애거라…!”
리오의 주문이 끝나자 검은색의 조그만 그림자가 나타나 리오의 근처에 있는 빛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곧바로 리오의 모습은 시각적으로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대로, 리오는 빠르게 전진해 나갔다. 길고 구불구불한 동굴을 얼마쯤 지나자 넓적한 방이 나왔다. 그 방의 왼쪽 구석엔 보라색의 사탕들이 즐비하게 매달려 있었다. 그 안에선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보라색의 눈을 가지고 있는 벌레들이었다. 그리고 방의 중앙에는 두 명의 광대가 있었다. 빨간색의 화장품이 발라져 있는 그 광대의 두꺼운 입술은 마치 피를 머금은 박쥐와도 같았다. 두 광대는 기척을 지우고 있는 리오를 바라보고 있었다. 왼쪽의 광대가 입을 열었다.
“… 어서 와라 인간의 전사여… 꽤 싸움을 잘하는 녀석 같구나. 하지만 여자의 냄새밖에는 나지 않는 걸? 덩치는 남자인데 말이야…”
리오는 아차 싶었다. 어제 밤에 극단적인 방법을 쓰고 나서 냄새를 지우는 것을 잊었던 것이다.
“후우… 어쩔 수 없군.”
씁쓸한 미소를 띠운 리오의 모습이 두 광대의 눈에 들어왔다. 그를 본 두 광대의 눈은 놀라움으로 가득했다.
“너… 너는!!”
리오는 망토를 한번 펄럭인 후 디바이너의 자루에 손을 가져가며 말했다.
“오랜만이군, 바이퍼와 그의 아내. 백 년만인가?”
키가 큰 광대 – 바이퍼는 손을 부르르 떨면서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그의 얼굴은 이미 광대라고 할 수는 없었다. 본모습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바이퍼는 붉은색의 입술을 꿈틀거렸다.
“네 덕분에 내 아버지가 한 줌의 재로 화하여 무의 세계로 떨어졌다… 훗, 다행이군. 그 복수를 이제 하게 돼서 말이야…!!”
바이퍼는 손을 내밀며 자신의 몸에 응축되어 있던 마기를 리오를 향해 뿜어내었다. 리오는 몸을 틀며 간단히 투기포를 피해내었다. 투기포와 격돌한 바위는 순식간에 부식되며 사라져 갔다.
“훗, 아버지보다 더 뛰어나군. 한 가지만 묻겠다. 너에게 이 물질계에서의 활동을 허가해준 사람이 누구냐. 넌 백 년 전에 소환계로 쫓겨나가 악마의 명부에서도 지워진 걸로 아는데 말이야.”
바이퍼는 피식 웃으며 왼손을 내밀었다. 자웅 이체로 분리되어 있던 자신의 몸을 상적인 자웅동체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키가 약간 작은 광대는 소리 없이 바이퍼의 왼손으로 빨려 들어갔고 바이퍼는 얘기를 시작했다.
“그걸 나에게 묻다니… 너도 참 머리가 나쁘구나. 백 년 전의 상황을 기억해보면 알 수가 있을 텐데 말이야. 하하하하하…!!”
리오는 미간을 찡그렸다. 바이퍼는 원래 괴팍한 성질이 약간 있는 악마였다. 그래서 수수께끼를 인간에게 잘 내기도 하였다. 하지만 머리 쓰는 것을 싫어하는 리오에겐 불쾌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좋아 좋아, 답을 말하게 해주지. 단…”
리오는 디바이너를 천천히 뽑아 세웠다. 몸의 기가 디바이너를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바이퍼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그의 마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약간 방법이 거칠거다―!!”
자색의 검광이 동굴 안의 석실을 밝혔고 무엇엔가 긁힌 듯 벽은 치직 소리를 내며 패었다.
“우욱…!”
바이퍼는 그의 보라색 눈동자를 굴려 리오를 바라보았다. 전신에서 푸른색의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처음의 공격을 겨우 피해낸 바이퍼는 다행이라는 뜻에서 인지 비웃음인지 한숨을 길게 쉬었다.
“후후후후… 옛날보다 거칠어졌군. 바로 검이 나오다니 말이야. 하지만, 백 년 동안 환수계에서 실력을 쌓아온 나를 막지는 못할 것이다!!”
그의 외침과 동시에 그의 신체 구조가 변하기 시작했다. 가늘디가는 그의 신체가 두꺼운 근육질로 변하기 시작했고 그의 오른손은 예리한 검으로 변해 있었다.
“헛소리 마라!!”
리오는 빠르게 접근하여 디바이너로 바이퍼를 머리부터 사타구니까지 수직으로 내리그었다. 그러나 벤 것은 바이퍼의 허물이었다.
`이런!?’
리오는 순간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 위로 검은색의 날이 바람을 가르며 지나갔다. 리오는 뒤로 후퇴한 후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훗, 젖 좀 먹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