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562화
“야, 이거 기분이 좋은데? 헤헤헤헤헷…!!”
드래곤의 모습으로 돌아온 바이칼의 등 위에 앉아있는 지크는 기분이 매우 좋은듯 계속 웃고 있었고, 지크를 등에 태운 바이칼은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리오와 휀은 바이칼의 앞쪽에서 초 고속으로 나는 중이었고, 둘의 표정은 진지하기만 했다.
“…과연 베히모스는 베히모스더군.”
한참을 웃고 있던 지크는 바이칼의 등을 탁 치며 그렇게 말했고, 기분 나쁜 표정을 짓고 있던 바이칼은 가만히 지크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헷, 기절한지 얼마 안돼어 바로 일어났는데 일어나자마자 본 장면이 명장면이었다니 참….”
「…그 꼬마가 ‘아토믹 레이’를 쓴 것 말인가.」
바이칼의 물음에, 지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루이체와 프시케가 완전히 공격당할 위기에 처했을때 난 휀 녀석을 밀치고 들어가려고 했는데 정말 의외의 일이 일어난거지. 둘의 뒤에서 벌벌 떨고 있던 시에가 갑자기 입을 벌리고 베히모스들이 쓰던 아토믹 레이를 발사할줄 누가 알았겠어. 헤헷…아기 호랑이라고 해도 호랑이라더니, 그 말이 맞는 것같아. 물론 시에는 달라야 하겠지만 말이야.”
가만히 말을 듣고 있던 바이칼은 곧 짧게 숨을 내쉬며 지크에게 조용히 말했다.
「흥, 그 아기 호랑이를 데리고 있어야할 사람이 너니까 문제겠지….」
그 말을 들은 순간, 지크의 얼굴은 돌처럼 굳어져 버렸고 지크는 안색을 바꾸며 바이칼에게 소리쳤다.
“자, 잠깐만!!!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데리고 있어야 한다니!!!”
「그럼 동물원에 맡길건가. 아니면 실험재료로 쓰던가.」
지크는 가만히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사실이 그러했다. 리오나 다른 가즈 나이트들에게 맡겨 봤자 신계엔 한발자국도 들여놓지 못할 것이 뻔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보호자 후보는 바이칼과 지크 둘로 압축이 되는 것이었고, 바이칼의 성격을 그런대로 알고 있는 지크는 결국 고개를 푹 숙이며 중얼거렸다.
“…아아…귀여운 외동아들 노릇도 이제 끝이구나….”
그러나, 바이칼의 말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 시커먼 여자(마키)와 성깔있는 여자(티베)는 어찌할건가. 티베라는 여자는 1년 이상 이 세계에서 살았으니 오래 있지 않는다 치고…시커먼 여자는 너 아니면 이제 의지할 곳이 없을텐데.」
두둥—
지크는 머리속에서 갑자기 북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일은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티, 티베는 그냥 돌려보내면 되고…마, 마키도 그냥 돌려보내면 되는거네 뭐, 하하하하….”
「흥,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쿠쿵—
“…!!!!!!”
지크는 순간 기억할 수 있었다. 미국으로 오기 전에 티베가 자신들에게 BSP가 괜찮은 직업이냐며 물어본 말과, 마키에게 BSP가 돼면 괜찮겠다는 말을 자신이 직접 했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르는 것이었다. 게다가 마키는 챠오에게 블래스터 사용법까지 열심히 강습을 받지 않았던가.
“바, 바이칼…드래고니스는 땅이 넓지…?”
지크는 잔뜩 긴장된 목소리로 바이칼에게 물었고, 바이칼은 조용히 앞을 바라보며 차갑게 중얼거렸다.
「여자들을 묻을 자리는 없어.」
의지할 곳을 완전히 잃어버린 지크는 결국 바이칼의 등 위에 쓰러지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아아…어머니께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순간, 바이칼은 갑자기 공중에서 정지했고 그 바람에 지크는 하마터면 바이칼의 등에서 떨어질 뻔 한 위험스러운 지경에 처하고 말았다. 겨우 몸을 유지한 지크는 숨을 헐떡이며 바이칼에게 소리쳤다.
“이자식, 맡기 싫다면 싫다고 말로 할 것이지 왜 갑자기 멈추는거야!!!”
「…멍청이.」
“응?”
넓디 넓은 바이칼의 등을 바람처럼 타고 올라 앞의 상황을 본 지크는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며 중얼거렸다.
“…호오, 깡통 로봇들이 등장하셨군.”
지크의 말 대로, 일행의 앞엔 나찰과 수라들이 공중에 즐비하게 떠서 방어 진형을 짜고 있었다. 그러나 공격은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쪽에서 먼저 공격해 달라고 하는 것 같은데? 후훗….”
리오는 팔짱을 낀 채 씨익 웃으며 중얼거렸다.
“광황포.”
푸웅—!!!!
순간, 리오의 옆에 있던 휀의 손에선 거대한 빛의 기둥이 방출되었고, 광황포의 범위 내에 있던 수라와 나찰 상당수는 일직선으로 밀리며 폭발해 사라졌다. 리오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휀을 바라보았고, 휀은 표정하나 바꾸지 않은채 뒤에 있는 바이칼에게 말했다.
“처리를 부탁한다 용제. 리오는 나와 함께 기지 내에 돌입한다.”
“기지? 넌 기지가 보이나?”
리오의 물음에, 휀은 다시금 광황포를 수라와 나찰들이 잔뜩 떠있는 공중의 바로 아래쪽 산지에 쐈고, 광황포에 맞은 산지의 한 구석에선 대 폭발이 일어남과 동시에 검은 연기를 내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휀은 다시 손을 코트 주머니 안에 넣으며 말했다.
“탄광이 아니라면 돌들이 저렇게 탈 이유가 없지않나.”
리오는 고개를 끄덕이며 디바이너와 파라그레이드를 뽑아 들고 회심의 미소를 띄운채 중얼거렸다.
“훗, 그렇겠지!! 뒤를 부탁한다 바이칼!!!”
리오는 곧바로 기를 터뜨리며 수라와 나찰들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고, 휀은 고개를 저은 후 플랙시온을 뽑아들며 중얼거렸다.
“…성격이 급하군.”
휀이 그렇게 말 하는 동안, 리오는 벌써 수십대의 나찰과 수라들을 산산조각 내고 있었다. 더이상 힘의 제어에 대해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로봇들의 뒤늦은 반격은 그야말로 ‘뒤늦은 것’이었다. 벌써 반수 이상의 나찰과 수라가 파괴되었고, 공중 방어진은 돌파당한지 오래였다. 결국 나찰과 수라의 포문은 바이칼에게 돌려졌고, 바이칼은 귀찮다는듯 눈을 감으며 자신의 몸 크기를 원래대로 바꾸어갔다. 몸 길이만 120m가 넘는 용족의 제왕 앞에 고작 3m밖에 안되는 나찰과 수라들은 그저 장난감에 불과한 것이었다. 바이칼은 그때까지 참아왔던 모든 것을 떨치려는듯, 숨을 길게 들이쉬었고 나찰과 수라들은 자신들의 전 화력을 바이칼에게 쏟아 부었다. 그러나 바이칼의 몸에 직접적인 타격을 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바이칼은 곧바로 자신의 거대한 브레스를 길게 뿜었고, 푸른색의 섬광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설사 수천년간 비바람을 견뎌온 바위산이라고 할지라도….
“이봐!!! 난 내려주고 쏴야 할 거 아니야 이 망할 녀석아—!!!!!”
「….」
그러나 지크는 아직도 바이칼의 등에 붙어있는 상태였다.
※
쿠우웅—!!!
“좋아, 끝장을 내 주마!!!”
요새의 외벽을 뚫고 내부에 강습한 리오와 휀은 곧바로 요새 안을 달리며 와카루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결코 찾기 쉬운 것은 아니었다. 가는 곳곳마다 나찰과 수라들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쪽이 중요 지역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한참동안 로봇들을 상대하던 리오와 휀은 어느덧 주위가 조용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리오는 사용하던 두개의 검을 바닥에 잠시 꽂으며 한숨을 돌리기 시작했다.
“…여기가 어디쯤 될까…라는 질문은 바보같겠지?”
“그럴지도.”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간단히 답한 휀은 주위를 천천히 돌아보았다. 나찰과 수라는 이미 주위에 없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웅웅거리는 기계소리와 여러개의 두꺼운 철재 문 뿐….
그때, 한쪽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리오는 즉시 검을 뽑아들며 그쪽을 바라보았다. 문 뒤에서 쏟아지는 빛 안엔 두개의 그림자가 있었다. 하나는 2미터는 족히 되어 보였고, 하나는 보통 사람보다 약간 작은 사람의 그림자였다.
“허허헛…잘 왔소 리오군. 그리고 휀·라디언트군. 생각보다 빨리 왔구려. 하긴, 대륙 횡단 열차를 타고 올 생각은 하지도 않았지만…험험. 자, 리오군은 이쪽으로 들어오구려. 할 말이 많으니까 말이외다. 뭣 하면 화투라도 치고…허허허헛. 아, 휀 군은 여기 있는 이 친구와 좀 얘기를 나누구려. 이 친구 생전에 휀 군과 감정이 있던 것 같던데….”
「…휀…라디언트…!!!」
와카루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아니, 와카루의 입에서 휀의 이름이 나왔을때 와카루의 옆에 있던 그림자는 붉은색 안광을 번뜩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플랙시온을 옆에 꽂아둔채 예전에 산 슬립형 담배를 한대 피우고 있던 휀은 담배를 옆에 버린 후 발로 비벼끄며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뭐, 좋을대로….”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와카루의 옆에 있던 그 그림자는 휀에게 들고 있던 낫을 휘두르며 돌진해왔고, 옆으로 몸을 피한 리오는 재빨리 와카루를 향해 달려갔다.
“설마 죽진 않겠지 휀?”
파앙—!!!
플랙시온으로 상대방, 조커 나이트의 ‘레이저 사이즈’를 막아낸 휀은 리오를 바라보며 허무감이 깃든 말투로 중얼거렸다.
“네가 걱정만 안한다면.”
“훗, 좋아!”
그 사이, 와카루는 방 안으로 들어간지 오래였다. 리오는 이상하게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