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575화
“함정이에요.”
마키의 짧은 말에, 케빈은 가만히 시선을 아래로 내려보았다. 과연, 마키의 말 그대로 얇고 긴 강철제 실이 사람의 발목 높이로 복도 좌우에 걸쳐져 있었다. 케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섰고, 마키의 심장을 향해 코트 안에서 정확히 겨누던 손을 뺐다.
“음, 미안. 너무 방심했군.”
마키는 아무 말없이 케빈의 앞으로 지나갔고, 주위에 떨어진 긴 나사못 하나를 잡은 후 강철실의 끝으로 다가갔다. 마키는 곧 나이프를 꺼내 실이 장치된 끝을 살짝 밑으로 내린 후 못을 실이 들어가 있는 구멍에 재빨리 박아 넣었다. 곧, 마키는 동료들을 실 건너편으로 가라 손짓을 하였고, 모두가 실을 건너가자마자 나이프를 던져 강철실을 끊었다.
피잉—!!!
나이프가 실에 닿은 순간, 강철실은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나이프를 휘감았고 틸·니켈제의 나이프는 마키 두부가 잘려 나가듯 두조각으로 나뉘며 바닥에 떨어졌다. 실이 끊어진 직후, 마키는 천장을 바라보았으나 천장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마키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동료들에게 돌아갔고, 리진은 이상하다는 눈으로 마키를 바라보며 물었다.
“잠깐, 저런 함정은 그냥 실만 끊으면 되는 간단한 것 아니에요? 왜 못까지 박아 넣고….”
“…아아, 이중 부비트랩이군.”
그때, 마키의 함정 제거를 유심히 지켜보던 케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고, 함정에 대해선 거의 무지한 리진은 케빈을 바라보며 물었다.
“음? 그럼 실만 끊었다고 끝나는게 아닌가요 선배?”
“으음, 실이 끊어지면 우리가 있던 저 장소의 천정에 붙어 있는 폭발물이나 유산탄 등이 폭발하게 되어 있어. 원래 저 방식은 수십년전 베트남 전쟁에서 사용되던 게릴라 전법으로서, 나무 사이에 실을 걸치고 폭발물은 나뭇가지등을 이용해 사방으로 장치하지. 설마 전절역 지하에 응용할 줄은 몰랐는걸? 그건 그렇고 상당한 실력인데 마키? 못을 잘못 박아넣으면 실을 끊었다 해도 폭발하는데 말이야.”
마키는 별 것 아니라는듯 어깨를 으쓱이며 중얼거렸다.
“제가 잘 쓰는 수법이거든요.”
“음? 그, 그렇군….”
케빈은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일행들에게 다시 가자는 손짓을 했다. 주위를 조심스럽게 살피며 앞으로 전진하던 케빈은 피우던 담배를 옆으로 뱉으며 생각했다.
‘…지크가 건져온 보석이라 과연 다르긴 하군. 게릴라 전법을 몸에 익힌 A+급 대원이라…. 이거 챠오 이상인데?’
케빈은 주머니 안에 들어있는 담배곽에 더이상 담배가 들어있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
함정들을 모두 돌파하고 2호선 플랫폼에 도착한 헤이그는 아직까지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자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위를 다시한번 둘러보았다. 그러나, 사이보그의 흔적은 커녕 바이오 버그의 신호도 생체 레이더에 잡히지 않았다.
“…선배님, 뭔가 이상해요.”
그때, 레이더를 살펴보던 사이키가 불안이 가득한 얼굴로 헤이그를 불렀고, 헤이그는 그녀를 돌아보며 물었다.
“음? 뭐가?”
“…생체 레이더 말이에요. 레이더상의 혼란을 막기 위해 BSP들에겐 특별한 주파수를 내는 소형 발신기가 지급되잖아요. 그런데 지금 레이더가 그 주파수도 잡아내지 못하고 있어요.”
그녀의 말을 들은 헤이그는 순간 표정을 굳히고 말았다. 그리고, 그의 머리엔 몇일 전 지크가 형편없이 당한 날 BSP의 모든 통신망과 전산망이 마비 상태에 빠진 것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 주파수 교란…!? 하지만 바이오 버그들의 두뇌로 그런 기술이 가능하단 말인가…?”
“당연히…불가능하다, BSP제군들.”
순간, 역 내에선 수수께끼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헤이그를 비롯한 모두는 등을 맞대며 급히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고, 챠오는 곧 건너편 플랫폼 쪽에 일곱명 가량의 사람 그림자가 나타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챠오는 블래스터로 곧 그 그림자들을 조준하며 소리쳤다.
“저기에요!”
챠오는 곧장 블래스터로 사격을 가하기 시작했고, 옆에 있던 헤이그도 오른팔을 변형시킨 레이저 게틀링건으로 사격을 개시했다.
“쓸데없다!!”
피잉—!!!
그때, 그 그림자들의 앞에 회청색의 장막이 생겼고, 그 장막에 닿은 레이저탄과 블래스터의 총탄은 마치 그 장막에 녹아들듯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것을 본 헤이그는 긴장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양성자 방어막…!?”
“…하하하핫…. 구형 사이보그 주제에 잘도 알아맞혔군. 자, 한번 소개나 해 볼까 친구들?”
그 말과 함께, 어두컴컴한 역 플랫폼엔 전기가 흐르는 소리와 함께 모든 실내등이 켜졌고, 갑자기 안이 밝아진 탓에 챠오와 사이키는 눈을 손으로 가린채 잠시 주춤했다. 곧, 시력을 회복한 둘은 재빨리 그림자들이 있던 곳을 바라보았고, 둘은 그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일곱 그림자는 모두 온 몸이 무기화가 된 전투 사이보그였기 때문이었다. 사이키는 놀란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와, 완전 전투형 사이보그…!? 하지만 브리핑때는 일반 사이보그라 들었는데…?”
그 말을 들었는지, 일곱명의 전투 사이보그중 온 몸에 붉은 장갑을 사용한 날카로운 눈매의 사이보그는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오, 그런가…? 후후…너희들의 상부도 썩을대로 썩은 모양이군. 자신들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사냥개들에게도 거짓말을 하다니, 쿠쿠쿡…. 미안하지만 우리들은 대한민국 정부에서 비밀리에 만든 사이보그 부대, [흑우(黑牛)]의 맴버중 일부이다. 뭐, 너희들도 들어보진 못했을거야, 만든 직후 조각이 나버린 부대니까 말이다.”
그러자, 헤이그는 이를 악물며 조용히 그 붉은 사이보그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12년전 해병대 군인들중 20명을 특출했다가 중간에 계획이 백지화 되어 보안을 위해 모두 실종 처리를 했다는 바로 그…?”
“오, 꽤 나이가 있는 사이보그인 모양이군?”
헤이그의 말에, 그 붉은 사이보그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헤이그를 바라보았다. 쓰디쓴 표정을 짓고 있던 헤이그는 결국 챠오와 사이키에게 나지막히 속삭였다.
“…큰일이다. 우리 셋만으로 저들을 상대한다는 것은 무리야…! 저들은 나와 같은 다목적 전투 사이보그가 아닌, 사이키의 말 그대로 완전 전투형 사이보그…게다가 모든 군대식 전술을 터득한 녀석들이기 때문에 더욱 힘들어.”
순간, 붉은색 장갑의 사이보그가 플랫폼 사이를 재빨리 건너 뛰어 일행의 앞에 섰고, 고개를 저으며 다가와 음흉한 눈빛을 번뜩이며 중얼거렸다.
“…쿠쿡, 도망치시려고? 그건안될 말씀…. 우리에게 더 강력한 힘을 준 ‘FATHER’께서 너희들을 꼭 처리하라고 했거든.”
“뭐? FATHER? 그건 또 누구지?”
헤이그의 물음에, 그 사이보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가볍게 대답했다.
“그건 나도 모른다. 우리도 목소리만 들었기 때문에 알 수 없어. 하지만 실력 하나는 대단하더군. BSP가 가지고 다니는 모든 탐색 장비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기계도 만들 정도로 말이야. 아마 너희들은 BSP전용 위성도 모두 파괴해야 할 것이다. 위성들의 대부분은 FATHER의 손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지. 쿠쿠쿠….”
“…! 그런…!!”
헤이그를 비롯한 셋에겐 믿기 힘든 말이었다. 수만의 수파수가 수시로 바뀌어 통신 교란과 위성 장악을 방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 세계의 상공을 날고 있는 수백대의 위성들이 모두 그 수수께끼의 인물 손 안에 들어있다는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자아, 어차피 말을 해 줘도 너희들의 입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갈 가능성은 없다. 왜냐? 너희들은 이곳에서 죽기 때문이지…! 자, 나오너라 친구들!!”
사이보그는 오른팔을 들어 올리며 손가락을 튕겼고, 그 신호와 동시에 천정에선 수십마리의 바이오 버그들이 단번에 떨어져 내렸다. 상황 표현은 간단했다. 사면초가였다. 붉은 사이보그는 다시 자신의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며 말했다.
“하하하하핫—!!! 자, 한번 그 친구들과 놀아보시지!! 우린 천천히 기다리며 너희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감상해 줄테니까 말이다!!! 으하하하하하핫—!!!!”
“시끄러워요 아저씨—!!!”
순간, 헤이그 일행의 뒤에서 날카로운 목소리와 함께 새파란 불덩이 셋이 사이보그들을 향해 날아갔고, 그 불덩이들은 플랫폼 바닥에 직격을 하며 대 폭발을 일으켰다.
콰아아아앙—!!!!
“크아아아앗—!!!! 누구냐!!!”
갑작스런 일격에 그런대로 충격을 받은 붉은 사이보그는 불덩이가 날아온 방향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쳤고, 곧 헤이그 일행의 뒤에서 양 손에 푸른 불꽃을 머금은 티베가 천천히 모습을 나타냈다. 뿐만 아니라, 케빈을 비롯한 다른 일행들도 모습을 드러내 붉은 사이보그는 움찔하며 중얼거렸다.
“…쳇, 그렇군. 패가 둘로 나뉘어 있었군.”
제 2조가 도착한 것에, 헤이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옆에 선 케빈에게 미소를 지은채 말했다.
“후, 꽤 빨리 도착했군 그래.”
케빈은 자신의 전용 권총인 하데스 웨폰을 들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당연하죠 선배님. 그건 그렇고 저 사이보그들은 전혀 일반 사이보그로 보이진 않는데요? 정신적으로 불안해 보이는걸 제외하면 좀 틀린 것같은데….”
“내 생각도 그래. 어쨌든 그 얘긴 이곳을 빠져 나간 다음에 계속 하지. 저 친구들 말고 다른 녀석들도 있으니…음!?”
그때, 헤이그는 자신의 앞으로 티베가 갑자기 나서자 움찔하며 말을 끊었고, 온 몸에서 마력을 뿜어내는 상태의 티베는 사악하다면 사악하다고 할 수 있는 미소를 지은채 주위의 바이오 버그들과 앞의 사이보그들을 차례로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호호홋…이정도로 우릴 어쩌시겠다고요 아저씨? 미안하지만 이 마법사 티베·프라밍님을 쓰러뜨린 후에나 그런 말씀을 하시는게 좋아요!!!! 오호호호호홋—!!!!”
티베의 웃음소리가 높아지면 높아질 수록, 그녀의 몸에서 뿜어지던 마력의 기운은 점점 더 강력해졌고, 마법에 대해선 많은 것을 알지 못하는 붉은 사이보그는 우습다는듯 자신의 왼팔에 장착된 짧은 화살을 티베의 가슴에 정확히 조준하며 소리쳤다.
“흥, 웃기는 여자애군!!! 이거나 먹고 피나 토해봐랏—!!!!”
파앙—!!
순간, 사이보그의 팔에선 끝에 화약이 장치된 화살이 빠르게 날았고, 화살은 정확히 티베의 가슴쪽으로 날았다.
티잉—
“아, 아니!?”
그러나, 화살은 티베의 몸 주위에 둘러진 보이지 않는 마법의 장벽에 부딪혀 힘없이 녹슨 레일 위에 떨어졌고, 티베는 더욱 웃음소리를 높이며 사이보그에게 소리쳤다.
“호—호호호호호호홋—!!!! 그런 장난감 따위로? 이 몸을? 호호호호홋—!!! 당신이야 말로 참치캔으로 만들어 드리겠어요—!!!!!!! [딜·슈트]—!!!!!”
부우우우웅—
티베의 눈이 푸른색 빛을 내는가 싶더니, 모아진 그녀의 양 손 앞엔 중형의 마법진 하나가 빠르게 그려졌고 마법진은 이내 뇌력을 머금은 광탄으로 변하며 붉은색 사이보그를 향해 직선으로 날았다.
“으, 으아아아아아악—!!!!!”
퍼어어엉—!!!!!!
사이보그는 급히 양성자 방어막을 사용했으나, 물리력이 아닌 정신력이 주축이 되는 마법과 양성자 방어막은 그리 관계가 없는 탓에 그 사이보그는 비명을 지르며 광탄에 맞아 뇌력이 섞인 대 폭발에 휩싸여갔다. 모든 일행은 생각보다 훨씬 강하 티베의 공격 마법술에 정신을 빼았긴 모습이었다. 역시 마법을 사용하는 사이키는 상상 이상의 마력을 지닌 티베를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였다. 곧, 연기가 겉히고 나타난 것은 하반신과 상반신 일부가 완전히 날아가버려 입에서 윤활액을 토해대고 있는 처참한 몰골의 붉은 사이보그였고, 그 모습을 본 티베는 크게 웃으며 소리쳤다.
“호—호호호호호호홋—!!!!! 그딴 힘으로 우리들을 없애시겠다? 엄마한테 가서 윤활유나 더 쳐달라고 하시지—!!! 이제 몸이 좀 풀리는 것같지 않니 마키? 너무 재미있는 것같애 이 직업!!! 호호호호호홋—!!!”
티베의 물음에, 마키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헤이그를 비롯한 BSP들은 지크가 참가한 첫날 이후로 이번 전투만큼 몸을 움직이지 않은 적이 없었다..라고 기억하게 될 것이다. 사이키의 경우 마법을 사용할땐 언제나 동료들에게 보조 마법을 먼저 사용한 후 공격 마법을 지원 형식으로 사용하지만, 이번에 참가한 티베의 경우 지하철 플랫폼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상급 마법을 보이는대로 난사하여 마법의 폭발 여파로 바이오 버그 수십마리가 철근 콘크리트 더미에 깔려 몰살을 당해 바이오 버그와는 한번도 직접 전투를 하지 못했고, 전투 사이보그들도 공격 마법 한방에 대장으로 보이는 붉은 사이보그를 비롯한 세명의 사이보그가 완전 전투불능 상태에 빠져 나머지 네명이 그들을 회수하여 도망쳤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다른 BSP들은 구경만 하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렇게 상황이 끝난 후, 헤이그가 한 말은 이것 뿐이었다.
“…임무 끝. 제발 귀환하도록 하지 티베.”
티베는 바이오 버그 몇마리와 사이보그들이 모두 도망친 것에 안타까운듯 이를 갈 따름이었다. 거기에서 사이보그에 대한 탐색 임무는 일단 종결이었고, BSP들은 본부로 돌아가 처크 부장에게 간단히 보고를 마친 뒤 각자 집으로 퇴근을 했다.
다음날. 조회시간.
“…음, 그러니까 어제 임무 브리핑에서 말한 것과는 달리 사이보그들이 모두 전투 사이보그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건가…. 흐음…알겠네. 내가 오늘 정부 청사에 가서 한번 따져보도록 하지.”
헤이그의 보조 메모리 카드에 기록된 사이보그들의 모습을 확인하던 처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곧, 처크는 전자 스크린을 끈 후 대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음, 오늘도 역시 별다른 사건은 없으니 비상시를 대비하여 경계 순찰을 하도록 한다. 조를 다시 나누도록 하지. 1조는 헤이그와 사이키, 2조는 케빈과 리진, 3조는 사이키와 마키, 그리고 티베. 이렇게 세명이다. 지크는 내일이나 모레 정도 복귀한다니 일단은 순찰조를 이렇게 나누도록 하겠다.”
‘티베 하나만 있어도 조 하나가 될 것같은데….’
어제의 전투 장면을 눈으로 생생히 봤던 리진은 씁쓸히 웃으며 속으로 생각할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