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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579화


“네가 우리 유파의 ‘강권’을 익히고 싶다고?”

자신의 조부의 물음에,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던 챠오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챠오의 조부는 길게 한숨을 내 쉬며 눈을 감고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챠오가 말이 적어지고 분위기가 가라앉은지 3일째가 되어 가고 있었다. 3일이라는 시간은 그들의 집에서 지크가 떠난후 지난 시간과 동일했다. 지크가 떠난 후, 챠오는 학교에서 돌아오자 마자 자신의 방에 푹 박혀 있었고, 도통 나오지 않다가 마음속으로 어떤 결심을 한 듯 비장한 눈으로 자신의 조부를 찾아왔고, 대뜸 던진 말이 여자로선 배우기 힘든 강권을 배우겠다는 말이었다.

“…흐음…여자는 ‘유권’만 배워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데…. 그래, 이유는 내 묻지 않으마. 이미 유권에 대해선 너희 이모들을 훨씬 능가하고 있는 너라면 충분히 배울 수 있겠지. 그럼, 내일 아침에 본당으로 다시 오너라.”

“…예.”

챠오는 조부에게 인사를 한 후 본당에서 나갔고, 챠오의 조부는 담뱃대를 든 후 불씨를 넣으며 중얼거렸다.

“…충분히 배우는건 물론이고 잘만 하면 네 큰아버지도 능가할 수 있겠지. 그렇지 않냐 아범아?”

그의 말과 함께, 챠오의 아버지는 조용히 본당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고, 그의 앞에 앉으며 동감한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저 아이의 재능은 우리 가문 여자중에서 400년에 한번 나온다는 ‘적호의 상'(赤虎의 相)이니 말입니다. 근력등도 가문의 남자들에게 지지 않을 정도로 강하고, 신장도 크고, 탄력도 있고, 게다가 남자들에겐 부족한 유연성도 충분히 갖추고 있어 타인의 재능을 볼줄 아는 사람으로선 두려울 정도이지요.”

챠오의 아버지의 말에, 챠오의 조부는 담배 연기를 길게 뿜으며 덧붙였다.

“그래, 내가 보기에도 챠오는 19세 정도가 되면 키가 육척에 가까울 것 같으니 후에 가면 더하겠지. 3일 전에 떠난 그 외국인 청년은 도저히 사람이라 할 수 없는 입신(入神)의 재능을 가졌으니 제외한다 치지만…. 하여튼 적호의 상을 처음 보는 나로서도 감탄을 하지않을 수는 없었지. 하지만…지금까지 보통 아이로만 자라기를 원하던 아이가 갑자기 강권을 배우겠다니…. 흠…설마 그 청년 때문에…?”

그 순간, 몸을 움찔한 챠오의 아버지는 고개를 번쩍 들며 비장한 목소리로 자신의 아버지에게 말했다.

“…전 제 눈에 흙이 아니라 황산이 들어가더라도 챠오를 그 녀석에게 주진 못합니다…!!”

그러자, 챠오의 조부는 자신의 넷째 아들을 한심하다는 눈으로 바라보며 담뱃재를 천천히 털은 후 조용히 중얼거렸다.

“…우물에서 숭늉 찾는 버릇은 여전하구나…쯔쯔쯔.”


. . . . . . . ………………….

“…!!! 헙—!!!!!!”

처크 부장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려던 순간, 사이보그의 두꺼운 팔에 잡힌 챠오의 몸에선 황색의 빛이 잠깐이지만 강하게 뿜어져 나왔고, 챠오를 팔로 조르고 있던 사이보그는 자신의 어깨와 팔 연결 부위에 수치로 표현하기 힘든 압력이 갑자기 가해지자 흠칫 놀라며 몸을 주춤거렸다.

“뭐, 뭐야!?”

그리고, 사이보그의 팔에 무리가 간 틈을 탄 챠오는 다시금 자신의 팔에 힘을 넣었고, 강한 충격을 받은 상태인 사이보그의 양 팔과 어깨는 산산히 부숴져 나갔다. 자유를 얻은 챠오의 몸은 땅에 착지하자 마자 스프링처럼 튕겨 올랐고, 챠오는 혼신의 힘을 다해 멍한 상태에 빠진 사이보그의 두상에 혼신의 일격을 가했다.

퍼억—!!!!

곧, 사이보그의 몸체 뒤로 뇌수가 섞인 뇌 조각들이 산산조각난 머리와 함께 떨어졌고, 중추를 잃은 사이보그의 몸체는 곧 힘없이 뒤로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본 처크는 한숨을 길게 쉬며 블래스터를 거두었고, 챠오는 아직도 숨이 막히는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챠오는 처크를 바라보며 그에게 힘겹게 물었다.

“…괜찮으세요…부장님…?”

그러자, 처크는 씁쓸히 웃으며 힘없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난 괜찮네. 그것보다, 아까 전에 일…사과해야 하겠군.”

“…?”

숨을 진정시키던 챠오는 의아한 눈으로 처크를 올려다 보았고, 처크는 블래스터를 들고 재빨리 창 밖 상황을 살피며 챠오에게 말했다.

“BSP중에서 2, 3위를 다투는 자네의 능력을 과소평가했네. 10위권 밖의 대원들도 ‘발경’정도의 기술을 쓸 줄 아는데…하마터면 대원 하나를 천국으로 보낼뻔 하지 않았나.”

그 말을 듣고 있던 챠오는 숨이 그럭저럭 진정되었는지 블래스터를 들고 처크와 함께 주위 상황을 살피며 말했다.

“…아직 죽을 수 없습니다..”

“음?”

챠오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나오자 처크는 그녀를 흘끔 바라보았고, 챠오는 복도쪽에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아직 소원을 이루지 못했어요. 저는….”

“….”

처크는 속으로 무슨 소원일까 궁금해 하면서도, 그녀가 자신의 휘하에 있는 이상 언젠가는 들을 수 있을거라 생각하며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 . . . . . . …………

“뭐, 뭐냐!! 넌 도대체…!? 너도 BSP인가?”

청사의 현관에 배치되었던 사이보그중 한명은 완전히 겁에 질린 표정으로 뒷걸음질을 치며 자신의 앞에 있는 사나이에게 물었다. 그러나, 그 사나이는 고개를 살짝 저으며 말했다.

“음…글쎄. 그건 그렇고 동료들의 시체를 밟는건 좀 그렇군.”

그 사나이의 말 그대로, 그 사이보그는 현관에 잔뜩 깔린 사이보그들의 사체를 밟으며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그러나 사이보그는 이미 자신의 생존 외엔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때, 멀리서 경찰의 사이렌 소리가 희미하게나마 들려오기 시작했고, 그 사나이는 자신의 무기를 거두며 짧게 한숨을 내 쉬었다. 그런 뒤, 자신의 앞에 있는 사이보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도 빨리 도망치는게 좋겠군. 경찰들이 오는 것같은데…. 하여튼 난 먼저 갈테니 알아서 하도록. 그럼, 난 이만.”

그 말과 함께 그 사나이는 바람같이 사라졌고, 사이보그는 뇌수와 윤활유, 실린더 오일로 젖어버린 카펫 위에 주저 앉으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괴, 괴물같은…! 어떻게 순식간에 우리들 열 두명을…?”

파앙—!!

순간, 사이보그의 어깨 장갑에 탄환이 날아와 튕겨졌고, 그 바람에 정신을 차린 사이보그는 즉시 몸을 일으키며 밖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현관 밖에 있던 경찰과 몇발의 탄환을 주고 받은 사이보그는 완전히 도망쳐 버렸고, 현관 근처의 기둥 뒤에 몸을 보호하던 챠오와 처크는 그 사이보그가 도망친 후 경찰들이 밀려 들어오자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경찰들은 놀랄 따름이었다. 청사 수비를 맡은 공수부대 대원 3개 대대를 소리없이 쓸어버린 사이보그들의 대부분이 현관에 널린 기계 부품으로 변해 있던 것이었다. 이유를 모르는 경찰들은 현관에 있던 챠오와 처크에게 ‘역시 BSP’라는 칭찬을 할 따름이었고, 역시 이유를 모르는 둘은 졸지에 역경을 해치고 살아난 영웅이 되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청사 직원들의 40%가 사망한 그 끔찍한 사건은 그날로 그렇게 종결이 되었다. 하지만 챠오와 처크의 뇌리엔 사이보그들의 대부분을 쓸어버린 미지의 존재에 대한 의문이 남아 있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현재 지크 한명 뿐이라 생각하는 그들이기 때문에 의문은 더해갔다.

하지만, 처크와 함께 경찰차를 빌려 타고 본부로 돌아가는 챠오에겐 약간이나마 짐작가는 부분이 있었다. 현관에서 살해된 사이보그들의 대부분이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숴진 것 때문이었다.

“…설마, 그들이….”

“음? 뭐가 말인가?”

운전을 하던 처크는 옆에 앉아있던 챠오가 나지막히 중얼거리자 궁금한 얼굴로 그녀를 돌아보며 물었고, 챠오는 힘없이 고개를 저으며 짧막하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챠오는 묵묵히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잠에 빠져 들었고, 처크 역시 피곤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는지 항법장치에 운전을 맡긴 후 시트를 뒤로 눕힌 후 잠을 청했다.


※※※

처크의 신변에 일이 생겼다는 것을 모르는 지크는 레니, 시에와 함께 즐겁게 집에 돌아오는 중이었다.

“아아, 병원에서 나오니 정말 좋다. 그렇지 않니 시에?”

지크는 자신의 등 뒤에 매달려 있는 시에에게 물었고, 사탕을 입에 물고 있는 시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크의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어 주었다. 옆에서 걷고 있던 레니 역시 기분이 좋은듯 미소를 지은채 지크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래, 무사히 퇴원했으니 정말 다행이구나 지크. 아, 난 시장으로 갈테니, 넌 시에랑 집으로 먼저 가려무나. 오늘은 진수성찬으로 대접할테니 기대하고 있어도 좋단다.”

“오, 그래요? 하핫, 역시 최고세요!! 음…그러면 좀 손이 필요하실테니…시에도 어머니와 함께 시장으로 가볼래? 함께 가면 저녁을 더 푸짐하게 먹을 수도 있을거라구. 헤헷….”

“!!”

그러자, 시에는 신난다는듯 즉시 지크의 등에서 내려 레니의 손을 잡았고, 지크는 레니, 시에와 떨어져 혼자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음음…오토바이는 차고에 있다고 그러셨으니 다행인데…. 후, 정말 내일은 출근하기가 싫군. 아니야, 처크 할아버지라면 분명히 하루쯤은 휴일을 주시겠지…후후후훗…. 주실거야 주실거야….”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며 길을 걷던 지크는 곧 자신의 집 앞에 가까이 가게 되었고, 간만에 소파에 누워 TV를 볼 꿈에 젖은 지크는 만면에 미소를 지은채 계속 걸음을 옮겼다. 그때, 지크는 옆집 현관에 여자 둘이 한참 얘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지크는 정색을 하며 말 없이 그 둘을 바라보았다.

“언니, 오늘은 학원 가기 싫단 말이야!!”

“그러면 안돼, 넌 중학교 3학년이잖니. 오늘 다녀오면 저녁이 특별히 맛있을걸?”

“…흥, 언니는 참…. 알았어, 다녀올께 언니.”

“그래, 다녀오렴 라이아.”

단발에, 안경을 낀 갈색 머리의 소녀는 어깨에 가방을 걸치며 지크의 앞을 타박타박 지나갔고, 말 없이 그 소녀를 돌아보던 지크는 쓸쓸히 웃으며 집 현관쪽으로 향했다.


“와카루 박사? 이름을 보니 일본인 같은데…글쎄, 난 생명공학쪽 사람들은 잘 모르겠군. 그런데, 그 사람이 무슨 일이라도 꾸미고 있나?”

처크 부장은 자신의 선글라스를 닦으며 오래간만에 출근한 지크에게 물었고, 그에게 와카루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던 지크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흠…아니에요. 이름이 별로 맘에 안들어서…. 그럼 나가볼께요.”

지크는 처크 부장에게 거수 경례를 올린 후 부장실을 빠져 나갔고, 선글라스를 다 닦은 처크는 다시 선글라스를 쓰며 무거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지크가 와카루·시코토 박사를 알다니…. 그에 대한 존재는 BSP일본 지부의 상급 기밀인데…. 음…그렇다면 나도 토쿄 방위대 지부장에게 물어봐야 하겠군.”

처크는 급히 전화 다이얼을 눌러 나갔다. 지크가 물어본 것과 관련된 일들은 거의 큰 사건으로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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