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586화
“저어‥. 바이칼이 한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리오 씨‥?”
리오를 한참 따라가던 바이칼은 자신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앞에서 걷고 있는 그에게 물었고, 눈을 가늘게 뜬 채 한참 고민을 하고 있던 리오는 움찔하며 멈춰 섰고, 결국엔 시선도 돌리지 않고 바이칼에게 말했다.
“‥얼마든지.”
“예, 고맙습니다. ‥리오 씨는 절 잘 아시는 것 같은데, 전 나이가 몇 살인가요?”
800살 넘었지 아마‥. 라고 리오는 대답하고 싶었지만, 리오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바이칼은 리오가 아무 말 없이 서 있기만 하자 마음이 불안해진 듯 그의 앞으로 살그머니 돌아가 보았고, 팔짱을 낀 채 먼 하늘을 보고 있던 리오는 살며시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바이칼을 내려다보았다. 마치 세상 물정을 모르는 공주(!)처럼, 바이칼은 불안한 마음에서 리오를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리오는 실소를 터뜨리고 말았고, 한숨을 길게 내쉬며 성별이 바뀐 바이칼의 작은 어깨를 손으로 잡으며 미소를 지은 채 물었다.
“‥넌 자신의 나이가 몇 살 정도라고 생각되는데?”
리오의 의외의 행동에 얼굴이 붉어진 바이칼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인 채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 저어‥그러니까‥한‥80살 정도‥.”
“‥훗, 내가 스물다섯(지크가 스물다섯이라 하니 자신도 한 살을 높였다)인데 네가 여든의 할머니면 좀 이상하잖아. 한‥열여덟 정도로 하면 될 것 같지 않아?”
계속 인상만 쓰고 있던 리오가 편안한 미소를 지은 채 자신에게 말해주자, 바이칼은 안심이 되는지 다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겠네요. 고마워요 리오 씨.”
리오는 다시 바이칼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며 속으로 생각을 해 보았다.
‘‥그래, 날 따라다니면서 넌 기구한 팔자였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넌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겠지. 운명이라는 것이 다 그렇듯이‥.’
지크의 집 현관에 도착한 리오는 머리를 흔들며 열쇠로 잠가둔 문을 열었고, 바이칼과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갔다. 특별히 할 일이 없는 리오는 소파에 앉은 후 TV를 켰고, 마침 틀어진 채널에선 만화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리오는 뉴스나 보자 생각하며 채널을 돌리려 했으나, 앞에 앉은 바이칼이 TV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자 아차 하며 채널을 바꾸려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러고 보니 바이칼은 기억을 잃기 전에도 만화를 좋아했지. 도움이 될지도.’
만화엔 그리 관심이 없는 리오는 소파에 푹 눌러앉으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만화에서 나오는 효과음과 음악 외엔 너무나 조용한 오후였다.
‘‥지크 녀석은 모르게 이번 일을 처리하려고 했는데 덤까지 붙어버렸으니 고민이군. 그건 그렇고‥프시케님은 예전의 기억을 가진 채 인간화가 되셨는데, 왜 세이아는 예전 기억이 없는 거지? 예전의 능력은 이오스가 신의 자격을 잃은 후 역시 잃어버렸을 텐데‥. 설마 신의 힘을 잃어버린 영향 때문인가. 모르겠군‥.’
리오는 살며시 눈을 감아 보았다. 겨울치고는 나른한 오후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와주세요–!!!」
“‥?”
리오는 갑자기 자신의 머릿속에 울려 퍼진 목소리에 눈을 뜨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바이칼은 여전히 TV에 집중을 하고 있었고, 방영 중인 만화도 도와줄 내용이 아니었다.
‘텔레파시‥아니면 전음? 도대체 누구‥아차!!’
리오는 순간 눈을 부릅뜨며 정신을 집중해 보았다. 리오의 시선은 재빨리 창문 쪽으로 향했고, 그는 곧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일어나자, 바이칼은 리오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리오 씨, 어디 가시려고요?”
“음, 잠깐‥. 빨리 돌아올 테니 걱정 말고 기다리고 있어. 알았지?”
“네. ‥꼭 돌아오셔야 해요, 혼자는 무서울 것 같아요‥.”
리오는 반 억지 웃음을 지은 채 바이칼의 머리카락을 살짝 비벼준 후 재빨리 지크의 집에서 나왔다.
. . . . . . . . . . . . . . . . . .
“설마 이 근처에 BSP들이 순찰을 하고 있진 않겠지.”
“후, 그럴 리가. 내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오늘은 순찰이 없어. 그리고 이 한국의 경찰 중 우리 기를 읽을 수 있을 만큼 뛰어난 녀석들은 없으니 마음 푹 놓으라고.”
“그렇군. 그런데 동경 지부 부장은 왜 이 여자를 데려오라고 그러셨을까?”
흰색 복장을 한 두 명의 닌자 중, 입에 재갈을 물린 은발의 여성에게 신경 마비제를 놓으려 하고 있던 닌자는 동료 닌자에게 물었고, 그의 동료 역시 이유는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모르면 그냥 놓고 가지 그러나.”
“아, 안돼. 그러면 우린 야단을 맞는 정도가 아닐 거라구.”
“그럼 그럼.”
“‥누가 말했지? ‥윽!? 누, 누구냐!!!”
두 닌자들은 순간 몸을 은신하며 주위를 살펴 보았으나 집안엔 자신들이 잡은 여자 말고는 아무도 있지 않았다. 두 닌자는 다시 은신을 풀고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역시 아무런 느낌도 잡지 못하였다. 둘은 이상하다 생각하며 다시 작업을 진행하기 위해 신경 마비제가 들어있는 주사기를 올렸다.
“자, 이걸 맞으면 본국까지 가는 데 편할 거야. 그 사이 무슨 일을 당해도 모를 거고, 헤헤헷‥.”
“아, 그런가?”
순간, 마비제를 놓으려던 닌자의 머리를 정체불명의 누군가가 뒤에서 잡았고, 닌자의 몸은 허공으로 그대로 들어 올려졌다. 그것을 본 다른 닌자는 동료를 구하기 위해 등에 장비한 소태도(小太刀:장도와 단도의 중간 길이를 가진 도검. 공격 범위는 짧지만 사용의 용이함 때문에 방패와도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를 빼들었으나 그의 이마에 곧 차가운 감촉이 서려왔다.
“으, 으윽‥!?”
소태도를 빼든 닌자는 자신의 이마에 닿은 보라색 대검에 시선을 둔 채 도검을 바닥에 떨어뜨린 후 손을 위로 올렸고, 다른 닌자의 머리를 잡고 들어 올린 상태인 리오는 빙긋 웃으며 그들이 떨어뜨린 주사기에 시선을 돌렸다.
“자, 주사기 안에 든 약물을 반씩 투여해. 자네 반, 이 친구 반. 이러면 자네들 갖다 버릴 때 편할 테니까.”
“으, 으으윽‥!!”
닌자는 분하다는 표정을 지은 채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러자, 리오는 고개를 저으며 검을 잡은 오른팔에 힘을 가했다.
피이잉–!!
순간, 닌자가 떨어뜨린 소태도가 공중으로 튕겨져 올랐고, 그 칼의 주인은 자신의 칼에 보라색 검광 두 줄기가 보이지 않을 정도의 스피드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곧, 소태도는 다시 바닥에 떨어졌고, 바닥에 떨어진 소태도는 네 조각으로 나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
“자, 괜찮았나? 다음 묘기는 인체 해부니까 좋은 쪽으로 한번 더 생각해 보시지.”
닌자는 즉시 주사기를 들어 자신의 동료와 자신에게 반씩 약품을 투여했고, 약의 효과는 빠르게 나타나 두 닌자는 금세 축 늘어졌다. 리오는 자신의 검을 마법으로 사라지게 한 후(보이지 않게 한다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입에 재갈이 물린 채 바닥에 묶여 쓰러져 있는 은발의 여성을 자유롭게 해 주었다.
“자, 이제 괜찮습니다. 무섭지 않으셨어요?”
“….”
리오는 웃으며 그 여성을 안심시켜 주었으나, 그 여성은 아직도 약간 경계하는 눈초리로 리오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리오는 그리 걱정되진 않았다. 그 여성의 성격이 어떻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리오는 곧 아무 말 없이 닌자 둘을 어깨에 들춰 메고 밖으로 나가려 했고, 아무 말 없이 리오를 바라보던 여성은 침을 꿀꺽 삼킨 후 약간 긴장된 목소리로 리오에게 말했다.
“저, 저어‥! 가, 감사합니다, 어떤 분이신지는 모르겠지만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성함이라도‥제 이름은 세이아·드리스라고 합니다만‥.”
그녀의 이름을 들은 리오는 곧 그녀를 돌아본 후 씨익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리오, 리오·스나이퍼입니다. 옆집에 머물고 있죠. 그럼 이만‥.”
리오는 조용히 밖으로 나갔고, 그가 나간 후 세이아라는 여성은 바닥에 떨어진 소태도 조각을 주워 쓰레기통에 버리는 등 주위를 정돈한 후에 의자에 앉으며 쓸쓸한 표정을 지은 채 창밖으로 보이는 옆집에 시선을 돌렸다. 납치를 당할 뻔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마음은 그리 혼란스럽지 않았다.
마치 예견했다는 듯이‥.
집 밖으로 나온 리오는 길바닥에 두 명의 닌자를 던져놓은 뒤,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우며 세이아의 집 방향을 향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두 바보를 데리고 조용히 가는 게 좋을 거야. 너희들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더 그녀를 건드릴 생각을 하면 그땐 더욱 신나고 재미있을 테니까. 나에게 도전한다면 물론 사양하지는 않지. 후훗‥.”
리오는 곧 유유히 지크의 집으로 들어갔고, 곧 리오가 버린 두 닌자의 근처에 복면을 한 누군가가 빠른 스피드로 나타나 리오가 들어간 지크의 집을 바라보며 씁쓸히 중얼거렸다.
“‥은신술을 모두 파악할 줄이야‥. 상당히 귀찮은 녀석이 나타났군.”
그는 곧 신경이 마비된 두 닌자를 데리고 조용히 사라져갔다.
“아, 당신이 바로 BSP 중 근접 전투의 2, 3위를 다툰다는 린 챠오 대원이시군요. 만나뵙게 되어서 정말 영광입니다. 전 금년에 소집된 신인 대원이라, 하핫‥.”
사이조는 악수를 하자는 듯 챠오에게 손을 내밀었고, 평소와 같이 약간 인상을 쓴 표정으로 사이조의 손을 바라보던 챠오는 말없이 손을 내밀어 사이조와 악수를 나누었다. 그때, 사이조와 챠오의 손이 미세한 진동을 내기 시작했고, 옆에서 지켜보던 리진은 또 시작했구나 하며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꽤 오랫동안 챠오와 악수를 하던 사이조는 우습다는 듯 피식 미소를 지으며 챠오에게 가볍게 말했다.
“흠‥실망이군요. 그 정도의 힘으로 BSP의 2위를 다투시다니‥. 설마 한국 내의 2위를 말씀하시는 것인가요? 후훗‥.”
“….”
그러나, 챠오는 사이조의 말을 듣고도 별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눈을 지그시 감으며 중얼거렸다.
“‥악수를 하자는 게 아니었나요.”
우두둑‥!!
“‥흡‥!?”
순간, 사이조의 손과 이마엔 푸른 힘줄이 솟았고, 악수를 하고 있는 사이조의 손에서도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챠오는 곧 손을 풀었고, 사이조 역시 손을 즉시 풀며 자신의 손을 부여잡았다. 챠오는 리진에게 받은 손수건으로 사이조와 악수한 손을 매만지며 그에게 충고하듯 말했다.
“BSP의 제2 격투가라는 말이 장난으로 들렸다면 정식으로 도전하셔도 좋아요. 방문 중에 대련은 흔한 일이니까요.”
챠오는 곧 리진에게 손수건을 돌려주었고, 리진은 그 손수건을 사이조에게 건네주며 살짝 윙크를 해 주었다.
“손수건은 가지세요♡ 난 싫은 건 질색이라서요, 호홋‥. 그럼 안녕.”
리진과 챠오, 티베는 유유히 다른 곳으로 갔고, 손을 잡고 있던 사이조는 씁쓸히 웃으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린 챠오‥기억해 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