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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598화


“세이아 씨는 지금 우리에 대한 기억만이 모두 지워진 상태야. 왜인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래.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는 모르겠지만 좀 피곤하게 됐지. 리오 녀석도 그것 때문에 우리 집에서 놀고 있는 것이고(거짓말)‥. 아, 그래. 아까 세이아 씨가 한 제안 너도 들었지? 마침 잘됐으니 나와 리오를 좀 도와주지 않을래?”

지크가 계속 진지한 얼굴로 얘기하자, 결국 속아 넘어간 넬은 고개를 끄덕이며 지크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는 듯 말했다.

“‥알았어요! 제가 반드시 세이아 언니와 라이아의 기억을 되돌려 놓겠어요!!”

“‥그래 고맙다! 넌 정말 진정한 후배야! 우리 함께 어둠으로 물든 이 세상을 밝혀보자꾸나!!”

“예, 선배님!”

지크와 넬은 손을 잡으며 굳은 다짐을 했다. 굳이 문제가 있다면‥. 넬과는 달리 지크는 그리 진실하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이런 느끼한 대사를 읊어야 한다니‥그건 그렇고 넬 녀석 잘도 속는군. 설마 속을까 하고 말한 건데.’

지크는 넬을 데리고 다시 집 안에 들어갔다. 하숙에 대한 일 처리는 상당히 빠르게 되었고, 잠시 후 넬은 짐을 들고 세이아의 집으로 향했다.


“허어, 이건 ‘투라바크’님 아니신가. 정말 오래간만이지?”

리오와 일행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눈에 띈 것은 의자에 앉아 있는 엄청난 덩치의 악마였다. 상당히 고급 악마였는지 그 악마 주위에 있는 웬만한 악마들은 모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고, 그 악마가 풍기는 사악한 기운도 만만치 않은 것이어서 티베와 마키, 리진은 이상한 압박감에 몸이 눌리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리오의 얼굴이나 행동엔 여전히 여유가 넘쳤다. 의자에 앉아 있는 악마는 씁쓸히 웃으며 리오에게 말했다.

「600년 만인가, 리오·스나이퍼. 쿠쿠쿠‥설마 여기서 너를 만날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

“자, 잠깐!! 600년이라니!!!!”

악마, ‘투라바크’는 인간의 말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리진 등은 깜짝 놀라며 리오를 바라보았고, 리오는 어깨를 으쓱인 후 계속 투라바크에게 말했다.

“음음, 나도 몰랐어. 난 다른 악마족인가 했는데 말이야. 자, 여기 온 목적이나 말씀 하실까?”

「‥좋아, 그러나 그전에!! 400년 전 너와 다른 인간들에 의해 차원의 틈에 봉인당했던 치욕을 갚아주마!!! 그땐, 동료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여자 셋뿐이군!!! 자, 어서 덤벼 봐라! 이번엔 내가 널 차원의 틈에 밀어 넣어 주겠다!!!!」

쿠우우우우우우–

순간, 투라바크의 몸에선 엄청난 마기가 뿜어졌고, 리진을 비롯한 셋은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뒤로 주욱 밀려나고 말았다. 아무렇지 않게 가만히 서 있던 리오는 고개를 저은 후, 피식 웃으며 투라바크에게 말했다.

“‥여기선 곤란할 것 같군. 자, 나가지. 여기 계신 여자분들이 좀 다칠 것 같으니까.”

「흥! 그딴 잘 날지도 못했던 녀석이 잘도 지껄이는군!! 좋아, 소원대로 공중에서 산산조각을 내 주마!!」

곧, 투라바크는 날개를 한껏 펼쳤고 그 압력에 의해 뒤에 있던 유리창들이 산산이 부서졌다. 투라바크는 외부로 날아 올랐고, 리오 역시 몸을 살짝 띄우며 그쪽으로 가기 시작했다. 나가기 전, 리오는 주위에 널린 악마들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너희들은 나에 대해 저 녀석보다 잘 알고 있는 것 같으니 이제 사라져. 그렇지 않으면 내가 좀 화를 낼 테니까.”

리오는 곧 밖으로 날았고, 악마들은 급히 마법진을 만들며 그곳에서 탈출하기 시작했다. 투라바크의 양옆에 서 있던 악마들 역시 탈출하려 했으나, 그때 티베의 봉마 주문이 날아와 그들의 움직임을 막았다. 악마들은 움찔하며 티베를 바라보았고, 티베는 인상을 잔뜩 쓴 채 악마들에게 물었다.

“이봐요 아저씨들. 잠깐 얘기나 좀 해줄래요? 묻는 것에 대답만 해 주면 그냥 보내 줄게요.”

그러자, 두 악마 중 한 명이 팔짱을 끼며 티베에게 역으로 물었다.

「‥저 가즈 나이트에 대해서 물으려는 것인가? 하긴, 600년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더군. 후후후‥좋아, 물어봐. 나도 그냥 가기는 좀 그랬으니까.」

그 말에, 리진은 앞으로 나서며 악마에게 먼저 질문을 던졌다.

“가즈 나이트라고 했는데‥그 가즈 나이트라는 것이 뭐죠?”

「‥풀이대로 ‘신의 기사’다. 그들은 신 중의 신, ‘주신’에게 힘을 받아 모든 차원계에서 벌어지는 선과 악의 세력 다툼 등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지. 맨 처음 가즈 나이트가 된 녀석이 800여 년 전에 나타났고, 저 녀석의 경우 700여 년 전에 나타났다. 악마에게나 천사에게나 귀찮은 녀석들이야. 함부로 건들지도 못하고. 300년 전 우리 악마들이 서룡족을 건드렸다가 저 녀석에게 발각되어 악마계 10분의 1이 초토화가 된 사건도 있었다. 물론 서룡족의 ‘용제’가 같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 수치는 눈으로 봐야만 느낄 수 있지. 쿠쿠쿠‥.」

리진은 침을 꿀꺽 삼키며 입을 닫았고, 곧이어 마키가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그럼‥저 사람의 진짜 힘은 어느 정도로 강한 거야?”

그러자, 악마는 실소를 터뜨리며 대답했다.

「‥’사람’? 쿠쿠쿠쿠쿠‥사람이라고, 그건 저 녀석을 너무 깎아내린 표현이 아닐까 생각한다. 중급 신 정도 되는 정령계 최고 신들과 감정계 신들은 최고 상태의 저 녀석들과 1대 1 대결을 하지 못해. 특히, 빛의 가즈 나이트, 어둠의 가즈 나이트, 그리고 바로 저 녀석 무(無)의 가즈 나이트 세 명은 더하지. 자, 내가 아는 것은 이것뿐이야. 어서 풀어줘.」

티베는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봉마 주문을 풀어주었고, 중급 정도로 보이는 악마들은 곧장 다른 곳으로 사라졌다. 악마들이 모두 사라진 후, 셋은 이상한 허탈감에 빠졌다. ‘가즈 나이트’라는 말은 리오나 다른 사람들과 생활하며 가끔 들어봤기 때문에 그냥 대단한 사람들이라고만 알던 마키나 티베는 그들이 설마 7, 800살이나 먹은 ‘노인’들일 줄은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었고, 리진은 ‘신’과 관련된 사람들이 직접 이 세계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것에 묘한 느낌이 들어서였다.

“‥그 남자, 어쩐지 웬만한 상황에선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했더니 700살 이상 먹은 늙은이였잖아. 그럼‥지금까지 여자를 몇만 명이나 사귀었다는 소리야?”

티베는 피식 웃으며 팔짱을 끼었고, 그 말을 들은 마키 역시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 무지막지한 강함의 이유가 있었군. 난 또 내 수련이 부족해서 내가 뒤떨어지나 생각했어.”

리진은 천천히 벽에 몸을 기댄 후 눈을 감아 보았다. 어째서 저런 남자가 이 세계에 나타나 있는지 자신도 궁금했지만, 어째서 그가 어떤 상황에서도 태연할 수 있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만 같아서였다.

“‥괴로웠을 거야.”

“‥?”

리진의 조용한 말에, 티베와 마키는 그녀를 살짝 돌아보았다. 리진은 눈을 뜬 후, 아직도 ‘투라바크’라는 악마와 공중에서 대치 중인 리오를 바라보며 계속 중얼거렸다.

“‥난 20년을 살아오면서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울고 무서워했는데, 리오 씨는 700년 이상이나 살아오면서 우리보다 몇 배는 더한 고통을 받았을 것‥같아. 별것도 아닌 일 가지고 징징대는 우리들이 리오 씨의 눈엔 어떻게 보였을까 궁금해.”

파악–!

그때, 티베가 리진의 어깨를 그런대로 강하게 쳤고, 리진은 깜짝 놀라며 티베를 바라보았다. 티베는 정신 차리라는 듯 양손으로 리진의 볼을 부벼주며 그녀에게 말했다.

“‥어떻게 보이긴 어떻게 보여, 귀여운 20대의 여자들로밖에 더 보여? 아마 700년 이상 살았다면 우리와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도 많이 만나 봤을 것 아냐. 다 이해할 거야. 그렇지 않고선 자신의 신변이 현재 위험한 상황인데 전화 한 통에 우릴 도와주려고 나왔겠어? 저 남자는 700살 이상 먹었어도 아직 할아버지가 아니야. 우리가 방금 전까지 알고 있던 ‘리오·스나이퍼’ 씨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단 말이야. 우리가 그에 대해 조금이라도 안 지금 그에게 해 줘야 할 것은 그냥 평상시 그대로 대해주는 것뿐이야. 리오 씨도 그걸 바라고 있을 거고.”

“‥리오 씨가?”

리진은 티베가 하도 부벼주는 바람에 붉게 변한 자신의 볼을 매만지며 물었고, 티베는 당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 남자 다 듣고 있을 텐데 뭐.”

순간, 공중에 떠 있던 리오는 움찔하며 고개를 숙였고, 마키와 리진은 아무 말 없이 리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후훗, 그럼 고맙지. 자, 기다리게 해서 미안했다.”

리오는 다시 고개를 들며 자신의 앞에 있는 투라바크에게 말했고, 투라바크는 오른손에 미리 응축하고 있던 기탄을 날렸고,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소리쳤다.

「너무 기다려서 나의 엄청난 힘이 괴로워하고 있다!!!!」

피식–

그러나, 그 기탄은 리오의 손에 가볍게 잡혀 버렸고, 리오는 그 기탄을 손으로 부드럽게 감싸며 투라바크에게 말했다.

“‥지금 이상하게 기분이 좋거든. 웬만해선 피를 보고 싶지가 않아.”

투라바크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400년 전 자신과 처음 싸울 때 분명 상대방은 그 기탄을 겨우겨우 막아낼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쉽게 잡아내는 것이었다.

「‥쿠쿠, 조금 강해졌나 보군. 하긴, 400년 동안 조금이라도 강해지지 않는다면 말이 안 되겠지. 좋아, 나의 최고 힘으로 널 여기서 없애주–!!!」

터억–

그때, 리오의 손이 투라바크의 안면을 덮쳐왔고, 리오는 조용히 눈을 감으며 충고하듯 말했다.

“‥피를 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콰아아앙–!!!!!

순간, 투라바크의 안면과 리오의 손 사이에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고 아직도 리오의 손에 얼굴이 잡혀 있는 투라바크는 아까의 위세와는 달리 몸을 살짝 꿈틀댈 뿐이었다.

「이, 이 녀석이‥!!」

콰아아앙–!!!!!

리오는 다시 한 번 손에서 기를 폭발시켰고, 투라바크의 몸은 이내 축 늘어지고 말았다. 리오는 자신의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투라바크의 힘없는 눈과 자신의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400년간 강해진 건 나만이 아니다. 아마 지금 악마계에 돌아가도 넌 중급 악마보다 조금 강한 상급 악마일 뿐이야. 400년간 꾸준히 벌어진 전투는 모두를 강하게 만들었지. 물론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보통 사람들이나 보통 악마들, 그리고 보통 천사들은 제외하고 말이야. 눈도 내리는데 이제 그만 쉬지. 난 지금 네 원한을 받아줄 만큼 시간이 많지는 않으니까.”

리오는 곧 손을 풀었고, 투라바크의 몸은 힘없이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다. 리오는 손을 털며 다시 일행이 있는 곳으로 들어갔고, 타워 안에서 리오를 보던 셋은 약간 어색한 표정으로 리오를 반겨주었다.

“고마워요, 우리 일인데 혼자 다 처리해 주시고. 정말 고마워요.”

리진은 머리를 긁적이며 리오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러자, 리오는 한숨을 후우 쉬며 씁쓸히 웃어 보였다.

“음‥아니에요. 아직 아니에요.”

“‥예?”

리오의 말에 모두는 깜짝 놀랐고, 리오는 팔짱을 끼며 모두에게 말했다.

“훨씬 밝은 분위기여야 어색하지 않아요. 아직 연기력이 부족하시군요. 후훗‥.”

“….”

순간, 모두는 인상을 구기며 리오를 쏘아보았고 리오는 움찔하며 모두에게 물었다.

“아, 아니 왜 그러시죠?”

“아니! 우리는 우리대로 생각해 준다고 그랬더니 어색하다고 하는 건 또 뭐에요!!”

“700살이나 먹은 할아버지 티를 꼭 내야 속이 후련하겠어요!!!!”

“고맙다고 말하는 게 얼마나 얼굴이 팔리는 줄 알기나 하는 거예요!!!!”

모두는 리오의 몸을 주먹으로 살짝살짝 때리며 소리쳤고, 리오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예, 예. 아앗, 미안해요 정말.”


“저어‥지크는 나 좋아해?”

챠오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공항에서 막 비행기 탑승구로 가려던 지크에게 물었고, 지크는 뒤를 바라보며 싱거운 소리를 한다는 듯 미소를 지은 채 대답했다.

“음? 당연히 좋아하지.”

“그럼‥사랑해?”

“사랑? 참 나, 난 19세 이하의 여자에겐 관심 없다구.”

“‥!!!!!!!!!!!!!!!!!!!!!!!”

순간, 챠오는 충격을 심하게 받았는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며 지크를 바라보았고, 지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의 앞에서 몸을 파르르 떨고 있는 챠오에게 물었다.

“어? 왜 그래 챠오? 갑자기 어디 이상해?”

콰직!!!

순간, 챠오는 주먹으로 옆에 있는 금속 탐지기를 부숴 버렸고, 공항 밖을 향해 뛰어 나가며 지크에게 울먹이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바보 자식!!! 나가서 죽어버렸!!!!!!”

갑자기 상황이 돌변한 이유를 모르는 지크는 머리를 긁적이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이상하다? 저 애가 갑자기 왜 저러지?”

지크는 하는 수 없이 터벅터벅 탑승구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지크·스나이퍼. 당시 나이 2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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