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618화
“오늘은 별일이 없는 건가? 여기서 여유 있게 식사하는 걸 보니‥.”
리오는 손으로 자신의 턱을 받치며 아란에게 물었고, 아란은 자신의 얼굴을 리오의 얼굴 가까이 들이대며 빙긋 웃어보였다.
“몸이 근질거리시는 모양이죠? 하긴, 욕구 불만으로 얼굴색이 안 좋긴 하군요, 후후훗‥. 그건 그렇고‥당신 목에 건 목걸이는 또 뭐죠? 십자가 같은데‥흡혈귀라도 두려워하시나요?”
아란은 리오가 목에 걸고 있는 은제 십자가를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매만지며 물었고, 리오는 피식 웃은 뒤 그녀에게서 십자가를 돌려 받으며 대답했다.
“‥나에게 남은 세 가지의 소중한 것 중 하나지.”
“호오‥그래요? 누가 준 것인데요?”
리오는 아란이 계속 물어오자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말하기 싫기보다는 떠올리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그런 모습을 본 아란은 눈을 가늘게 뜬 채 웃으며 말했다.
“‥사랑하는 그녀가 죽으면서 남겨준 것인가요? 후훗‥가즈 나이트 중 최고의 공격력을 가진 리오라는 남자가 겨우 그런 것 따위에 풀이 죽을 줄은 몰랐는걸요?”
“‥아, 그런가‥?”
그 순간, 리오를 쏘아보던 음식점 안의 남자 손님들은 흠칫 놀라며 침을 꿀꺽 삼켰다. 형용할 수 없는 엄청난 느낌이 그들 자신의 몸을 위축시킨 것이었다. 멀리서 아란을 지켜보던 츄우는 희미한 미소를 띄우고 있는 리오를 바라보며 말했다.
“‥엄청난 살기인데‥? 난 지금 심장이 얼어붙는 줄 알았어.”
그녀의 말에 동감한다는 듯, 레베카는 긴장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제의‥아니, 방금 전의 바람둥이라고는 생각이 안 들어‥. 아마 아란도 긴장하고 있을 거야. 자존심 상하지만 정말 저 남자 화나게 해서 좋을 게 없겠는걸‥?”
한편, 리오는 쓸쓸한 눈으로 아란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리오의 얼굴은 분명 분노한 표정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란은 자신의 이마에서 볼까지 땀 한 줄기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만큼 리오의 몸에서 뿜어지는 살기는 엄청난 것이었다. 계속 아란을 바라보고 있던 리오는 한숨을 길게 쉬며 아란에게 나지막히 말했다.
“‥다음에 적으로 만난다면 사는 걸 포기해야 할 거야‥. 일행으로 데리고 다니는 아가씨들이 올라올 때가 되었으니 지금은 보내주지. 자, 식사나 마저 하시지.”
“‥좋아요.”
아란은 곧장 일어나 츄우와 레베카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고, 그와 함께 리오의 몸에서 뿜어지던 살기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이윽고, 리진과 넬이 대량의 햄버거를 들고 윗층으로 올라왔고, 리오는 빙긋 웃으며 그녀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자아, 여기에요.”
“어머머, 많이 기다리셨나 봐. 그런 사람이 햄버거 하나만 먹겠다고 했나요?”
그 전의 상황을 모르는 리진은 피식 웃으며 리오에게 햄버거와 음료수를 건네주었고, 리오는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것을 받아들었다. 자신의 먹거리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던 넬은 뭔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리오에게 말했다.
“리오 형, 아까 이상한 분위기 못 느끼셨어요? 잠시 동안 소름이 돋을 정도로 싸늘한 기운이 느껴졌는데‥. 그것도 여기에서요.”
“후훗, 글쎄‥?”
리오는 햄버거의 포장지를 열며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한편, 식사를 다 마친 아란들은 조용히 음식점 밖으로 나갔고, 레베카와 츄우는 자동차를 꺼내오기 위해 먼저 주차장으로 향했다. 음식점 앞에서 그녀들을 기다리던 아란은 음식점 쪽을 슬쩍 돌아보며 들리지 않을 정도의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고마워요‥리오.”
※※※
“예? 제 이름이요? 하지만 바이칼이라는 이름은 리오 씨께서 지어주신 이름인데‥.”
그녀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바이칼은 살짝 인상을 쓰며 강요하듯 말하기 시작했다.
“흥, 어떤 소속의 용족인지도 모르는 주제에 나의 거룩한 이름을 계속 사용하겠다고? 헛소리 그만 해. 이제부터 네 이름은 ‘리디아’야. 알았나.”
“예? 하지만‥.”
“잠자코 내 말대로 해.”
“싫어요.”
순간, 바이칼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왠만한 말에도 거부를 안 하던 그녀가 눈을 부릅뜬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이칼은 뭐라 말을 하려다가, 왜 그런지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돌렸다.
“‥나중에 리오가 돌아오면 그때 결정하도록 하지. 너도 ‘여자 바이칼’이라 불리는 건 싫을 테니까. 둘 중 하나가 없어지거나 네가 이름을 바꾸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는 것만 알아둬.”
“‥예.”
바이칼은 한숨을 후우 쉬며 다시 TV에 시선을 돌렸다. 어린이 채널에서도 그리 볼 만한 프로를 방영하지 않는 시간이어서 그는 할 수 없이 리모컨으로 채널을 천천히 돌리기 시작했다.
바이칼은 모르고 있었다. 몇 초 후, 자신이 볼 화면과 몇 분 후 전 세계에 걸쳐 일어날 일에 대해서. 물론 현재 집으로 돌아오고 있는 슈렌도, 리진, 넬과 함께 임시 순찰을 돌고 있는 리오도, 그리고 사이키와 함께 피자를 먹고 있는 지크도 모르고 있었다.
지금까지 자신들의 주위에 일어났던 일은 몇 분 이후 일어날 일들의 전초전에 불과하다는 것을.
11화 끝. 프롤로그 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