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627화
“‥리디아가 2살이 될 무렵(인간의 나이로는 거의 갓난아이), 갑자기 동룡족의 사신이 드래고니스를 찾아왔고, 그 사신은 나이 어린 쥬빌란이 병에 걸려 있다는 말을 전해왔다. 그것도 난치의 병에‥. 그 말을 듣고 넘어가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겠어. 결국, 아버지께선 아직 이름뿐인 동룡족의 최고 권력자가 죽었을 때 동룡족의 균형이 틀어질 것을 염려해 이베린을 보내셨다. 젓을 떼지 않은 리디아와 함께.”
“‥그리고선, 연락이 끊어졌다 이건가.”
“‥그래. 아마 너도 기억날 거다. 네가 참가한 용족 전쟁 때의 일을 말이다. 마지막, 쥬빌란과 내가 승부를 짓기 위해 갔을 무렵‥.”
바이칼의 말을 들은 리오는 기억이 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넌 나에게 밖을 맡으라고 한 다음 혼자 용궁 안으로 들어갔지.”
바이칼은 고개를 끄덕인 뒤 얘기를 계속했다.
“‥그때, 난 성장한 리디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나와 같은 아버지를 둔 존재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지 저 아이는 날 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베린이 리디아를 비롯한 모든 동룡족에게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말을 하지 않은 것이었다. 말을 하게 된다면 리디아는 물론이고 서룡족도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교활한 쥬빌란은 알고 있었다. 물론 그 녀석도 리디아에게 모조품 소울스톤을 주어 다른 동룡족들을 속이긴 했지만 그건 나중을 위한 비장의 카드로서 그렇게 한 것일 뿐이겠지. ‥어쨌든, 너에 의해 그때의 용족 전쟁이 아버지에게 추방당한 마룡들의 책략이었다는 것으로 판명된 후 서룡족과 동룡족은 다시금 냉전에 들어갔다. 그 이후는 그럭저럭이었고‥.”
바이칼은 말을 맺으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리오는 슬그머니 리디아를 향해 시선을 돌려 보았다. 그녀는 아직도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는 다시 바이칼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거지? 아까 쥬빌란을 근처에서 만났다고 했잖아. 거기에 대해선 생각해 봤어?”
“리디아는 지금 예전의 기억을 잃은 상태다. ‥차라리 잘 된 것일지도 모르지. 기억을 되찾게 된다면 동룡족에게로 돌아간다고 앙탈을 부릴 테니까. 우선은 리디아를 데리고 드래고니스로 돌아갈 생각이다.”
“‥그래, 그것도 좋겠군.”
리오는 빙긋 웃으며 바이칼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바이칼은 흘끔 리오 쪽을 올려다 보았고, 리오는 그의 머리를 부벼 주며 말했다.
“동생이 생겨서 좋겠군 용제님. 하하하핫‥.”
“‥네 여동생을 보면 그렇지도 않을 것 같은데‥.”
“음? 루이체는 지크 녀석이 다 버려 놓은 거야. 내가 아니라고.”
……………………….. . . . .
슈렌과 지크는–엄밀하게 말하자면 지금 얘기를 하는 중인 리오와 바이칼까지 포함하여–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집 밖에서 텐트를 치고 노숙을 하기로 결정을 했다.
대충 이야기가 끝나자 여자들은 몸을 쉬기 위해 지크의 집과 세이아의 집에 나뉘어서 들어갔고, 지크는 텐트를 가지고 나오기 위해 집 안으로, 슈렌은 잠시 산책을 하겠다며 어디론가 걸어갔기 때문에 마지막에 남은 사람은 세이아와 아란 뿐이었다.
아란은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세이아를 바라보았고, 세이아 역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나지막히 그녀에게 물었다.
“‥들어가서 쉬시지요. 오후의 전투 때문에 피곤하실 텐데‥.”
“‥후훗, 그렇지도 않아요. 운동 감도 안되는 녀석들이었으니까요. 그건 그렇고‥아까 하던 얘기를 계속해 볼까요? 당신은 리오 씨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죠?”
“‥전, 리오 씨와 단 몇 개월도 같이 있어보지 못했답니다. 그분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하지요. 당신과 비교할 수조차 없을 겁니다.”
세이아의 그 말을 들은 아란의 표정은 순간 차갑게 굳어버렸고,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며 세이아에게 물었다.
“‥내가 누군지 알고 있는 건가요‥?”
세이아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하려는 순간.
“이봐 지크, 왜 집을 놔두고 밖에서 자야 하냐고.”
“시끄러, 어차피 넌 노숙한 시간이 침대에서 잔 시간보다 더 많은 녀석이잖아. 잔말 말고 그거나 빨리 옮겨줘.”
세이아와 아란은 리오와 지크가 텐트를 들고 나오는 것을 보고 말을 끊었다. 아란은 씁쓸히 웃으며 세이아에게 말했다.
“‥나중에 다시 얘기하죠. 아무래도 당신은 나에 대해서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 같군요. 후후훗‥.”
아란은 세이아를 지나친 후 동료들이 들어간 세이아의 집에 들어갔고, 세이아는 한숨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음? 왜 그러시죠? 저 아가씨가 뭐라고 했나요?”
“‥아, 아니에요 리오 씨. 이제 쉬세요. 피곤하실 텐데‥.”
세이아가 고개를 저으며 그렇게 말하자, 리오는 텐트 조립을 지크에게 맡긴 뒤 그녀에게 다가갔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성계신의 일이 결코 쉽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정말 다행이군요. 당신과 같이 상냥하신 분이 이 세계의 성계신을 맡아 주셨으니 말이죠. 지크가 한결 편할 거예요.”
“아, 아니에요. 전 아직 부족한걸요. 게다가, 저는 가즈 나이트와 같은 분들의 일을 도와드릴 정도의 힘은 없답니다. 라이아라면 모를까‥.”
세이아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리오는 고개를 저은 뒤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당신께서 맛있는 요리를 해 주시기만 해도 힘이 난답니다. 예전에도 그랬고요.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예, 고마워요 리오 씨.”
세이아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고, 리오 역시 고개를 살짝 끄덕여 주었다. 한편,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지크는 이를 갈며 쓰디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녀석.”
※※※
“장로님! 장로님!! 긴급 보고입니다!!”
바이칼이 없는 드래고니스를 대신 맡고 있는 서룡족의 최고 장로는 한참 몰입 중이던 독서가 방해되자 한숨을 길게 쉬며 책을 덮었다. 그는 긴 수염을 매만지며 자신에게 보고를 하러 온 전룡단 단원을 바라보았다.
“그래‥. 하필 마마께서 없는 지금 긴급 상황이라니‥원 참. 어쨌거나 무슨 일인가?”
“예. 동룡족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상당한 숫자의 동룡족 함대들이 특정 행성으로 차원 이동을 하여 모이고 있는 것이 레이더망에 포착되었습니다.”
장로는 자신의 눈을 덮을 정도로 길게 자라 있는 눈썹을 꿈틀대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만히 생각을 하던 장로는 곧 그 단원에게 지시를 내렸다.
“‥정찰 부대를 보내서 그들이 집결한 차원의 상황을 한번 알아보라고 하게나. 음‥그리고 마마도 모셔 오도록‥.”
“저어‥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마마께서 계신 차원과 동룡족이 집결한 차원은 같은 곳입니다. 그래서 제가 심상치 않다고‥.”
“무어라!!!!”
순간, 장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고 곧 단원을 끌고 도서실의 밖으로 뛰어 나가며 크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어서 전룡단 단장들을 사령실로 집결시키게나!!! 용왕님들이 계신 쪽에도 비상 연락을 취하고!!! 이건 더 없는 비상사태야!!!!”
“아, 예!!”
단원과 장로는 곧 다른 방향으로 각자 뛰어가기 시작했다. 장로는 드래고니스의 사령실로 나이를 잊은 채 뛰며 속으로 신룡 브리간트에게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다른 일에 바이칼이 관련되었다면 그가 이렇게 간절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는 동룡족과의 일에 바이칼이 관련될 때면 몇십 년을 감수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전대 용제‥바이칼의 아버지까지만 해도 이런 불안함은 가지지 않았다.
‘‥선왕께서 바라신 행복이 지금은 이런 걱정으로 바뀔 줄은‥. 아아, 왜 그때 이 늙은 것이 동룡족의 간단한 계략에 말려들었을고‥. 왜 그때 리디아 공주를 되찾아 오지 못했을고‥!!!’
이윽고, 사령실 안으로 들어선 장로는 숨을 헐떡이며 사령실 안에 있는 모든 대원들에게 큰 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긴급 상황이오! 드래고니스의 이동을 준비하시오!”
장로의 말에 대원들은 어리둥절해 하였지만 바이칼이 없을 때 장로의 말은 하늘과 같은 것이어서 그들은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곧, 긴급 호출을 받은 드래고니스의 함장이 사령실로 들어왔고 그는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빼며 장로에게 물었다.
“아니 장로님, 비상사태라니, 도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함장에겐 미안하지만, 잘못하면 또다시 용족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소. 자세한 상황은 나중에 말을 해 줄 테니, 내가 말한 차원 좌표로 드래고니스를 이동시켜 주시오. 아, 그리고 우리가 위치한 이차원계에 가까이 있는 기동 함대가 드래고니스를 호위할 수 있게 해 주시오.”
함장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장로의 진지한 눈빛을 본 즉시 거수경례를 붙이며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
“‥!”
모닥불 옆에서 지크와 함께 마시멜로를 구워 먹고 있던 슈렌은 갑자기 느껴진 이상한 기분에 움찔하며 고개를 들고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쫄깃해진 마시멜로를 한참 씹고 있던 지크는 의아한 눈으로 슈렌을 바라보며 말했다.
“‥참 나, 그러니까 불 속에 깊게 넣지 말라고 했잖아. 마시멜로가 아예 녹아 버린다구. 냄새나게 시리‥.”
“‥그게 아니야.”
그때, 텐트 안에서 쉬고 있던 리오가 밖으로 나오며 손으로 지크의 머리를 문질렀고, 지크는 눈을 멀뚱거리며 리오를 바라보았다. 리오는 팔짱을 끼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하늘에서 불덩어리가 떨어지고, 피에 젖은 달이 뜨며, 머리가 일곱 개 달린 괴물과 날개 달린 거대한 사자가 나타난다‥. 이 세계에 전해지는 ‘멸망의 예언’ 중 일부분이지.”
“‥근데?”
지크의 물음에, 슈렌은 그룬가르드를 싼 헝겊을 풀며 대답해 주었다.
“불덩이와 피에 젖은 달, 날개 달린 사자는 이미 나타났지. 리오가 말을 안 한 것이 몇 개 더 있지만, 머리가 일곱 달린 괴물은 충분히 연상할 수 있을 거야. 바이칼을 생각하면 말이야.”
“‥!!!”
순간, 지크는 깜짝 놀라며 손에 들고 있던 마시멜로를 바닥에 떨어뜨렸고, 자리에서 일어난 지크는 주먹을 불끈 쥐며 중얼거렸다.
“‥설마‥그런‥!!”
그때, 집에서 바이칼이 막 나왔고 그 역시 하늘을 바라보며 굳은 표정을 지었다. 그가 나온 것을 본 지크는 곧바로 바이칼에게 달려가 그의 어깨를 양손으로 잡으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머리가 일곱 개였단 말이냐‥!!”
“…….”
슈렌과 리오는 멍하니 지크를 바라볼 뿐이었다.
“동룡족의 함대 중에서 대형 마스트가 일곱 개인 주룡 전용의 거대 전함이 있지. 전함이라고 하기도 그럴 정도로 큰 함선인데‥하여간 그 전함의 별명이 칠두지룡 (七頭之龍)이야. 그림자에 비친 전함의 옆모습을 보면 일곱 개의 머리를 가진 괴물처럼 보이거든. 예전에 바이칼과 함께 용족 전쟁에 참여했을 때 본 일이 있었어.”
리오의 설명이 끝나자, 슈렌에게 창으로 머리를 얻어맞은 지크는 인상을 찡그린 채 리오에게 소리쳤다.
“으윽‥난 그 용족 전쟁인가 뭔가 할 때 바이오 버그들하고 싸우고 있었다구!! 바이칼 녀석의 머리가 일곱 개인지 칠두지룡인지 내가 어떻게 알아!!”
“‥무식이‥죄겠지.”
슈렌은 그룬가르드를 헝겊으로 닦으며 중얼거렸고, 지크는 구겨질 대로 구겨진 얼굴로 슈렌을 쏘아보았다. 리오는 웃으며 지크의 등을 두드려준 후 말하기 시작했다.
“자자, 그만 그만. 어쨌든 차원의 붕괴점이 북쪽 어딘가에서 느껴지고 있으니 한번 가보도록 하지. 그리 멀지 않은 곳 같으니까‥음‥그런데 누구 한 사람이 남아야 할 것 같은데‥.”
“아, 괜찮아요 여러분.”
그때, 세이아의 집 쪽에서 라이아가 뛰어 나오며 리오들에게 말했고, 리오를 비롯한 넷은 의아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라이아는 씨익 웃으며 모두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신의 힘을 각성한 건 언니뿐이 아니거든요. 저 역시 성계신이라고요.”
“‥? 그렇긴 하겠지만‥.”
리오는 그리 미덥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고, 지크 역시 인상을 찡그린 채 라이아에게 다가가 그녀의 머리 위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이봐요 꼬마 중학생 씨. 네가 세 살이나 네 살 더 먹었으면 모르겠지만 아직 안된다구. 신장이나 힘이나 그 데스 발키리인가 하는 히스테리 집단들보다 못하잖아.”
그러자, 라이아는 자존심이 상했는지 머리 위에 있는 지크의 손을 살짝 쳐낸 후 양손을 모았고, 곧 그녀의 몸에선 인간의 시각적 한계를 넘어선 빛이 방출되었다. 조금 후, 지크의 씁쓸한 표정은 경악으로 바뀌어 갔고 리오나 슈렌, 바이칼 등도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순간적으로 성장을 한 라이아의 모습에, 리오는 예전의 쓰디쓴 기억이 되살아났는지 손으로 얼굴을 덮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우리가 잘못 생각했구나. 넌 예전에도 우리들이 안전 주문을 풀었을 때 정도의 힘을 가졌었으니까. 후훗‥.”
신장도 세이아만큼 커지고, 복장도 바뀌어 있는 상태의 라이아는 자랑스럽게 고개를 끄덕였고, 지크는 졌다는 듯 시선을 아래로 떨군 채 리오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난 오토바이를 타고 뒤쫓아 갈게. 어서 가자.”
“‥음, 그래. 그럼 이곳을 부탁해 라이아.”
리오는 손을 흔들며 다른 셋과 함께 차원 붕괴가 느껴진 지역을 향해 가기 시작했다. 그들이 멀리 사라져 가자, 라이아는 다시 몸을 원래대로 되돌렸고 힘겹게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후우, 힘들어. 이렇게 변하는 것도 좀 무리가 있네. 예전엔 이렇지 않았는데‥. 그건 그렇고, 훔쳐보고 있는 언니들은 뭐죠?”
라이아는 뒤로 빙글 돌아서며 현관 쪽에 대고 말했고, 곧 현관의 나무 기둥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아란이 미소를 지은 채 모습을 드러냈다. 라이아는 그녀에게 다가간 뒤, 현관문에 손을 대며 아란에게 말했다.
“‥지금 제 힘은 보통 상태의 리오 오빠도 어쩌지 못할 정도에요. 당신들이 무슨 속셈을 품고 협조를 하겠다고 했는지는 몰라도‥헤헷, 관두죠. 여하튼 지금은 아군이니까요.”
“‥! ‥그래, 후훗‥. 지금은
‘아군’
이니까. 후후훗‥.”
“자아, 어서 들어가서 쉬자고요. 내일부터는 바빠질지도 모르니까요.”
라이아는 곧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고, 아란은 그녀가 들어가자마자 미소를 지우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른으로 변한 순간부터 기를 느끼지 못했어‥. ‘네그’와 ‘크라주’가 경고했던 저 꼬마의 힘인가‥. 나중에라도 방심하면 안 될 것 같아‥.’
아란은 묶었던 자신의 머리를 풀며 조용히 집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