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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632화


“여기에 있었군 아란‥.”

한참 커피를 마시며 구경을 하던 아란은 자신의 뒤에서 감정이 실리지 않은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오자 씁쓸히 웃으며 말했다.

“‥늦었네, 알테미스. 유감이지만 재미있는 장면을 놓친 것 같은데?”

“아, 알테미스?”

츄우와 레베카는 흠칫 놀라며 뒤에 서 있는 여성을 바라보았다. 짙은 퍼플(purple)색의 웨이브진 커트 머리에, 머리색과 비슷한 보라색의 립스틱을 입에 칠한 차가운 얼굴의 여성‥그녀가 바로 데스 발키리 중 최강의 여전사인 알테미스 슈크라드였다. 알테미스는 츄우와 레베카를 흘끔 본 뒤 공중에서 격돌하고 있는 리오와 지크를 바라보았다.

“‥가즈 나이트‥. 피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

좋은 기회라는 말을 들은 아란은 피식 웃으며 캔 안에 든 커피를 모두 마셔 버렸고, 자리에서 일어나 알테미스의 뒤에 서서 그녀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

“‥아직 아니야. 그들에 대한 임무는 지금 우리의 수준으로는 너무 힘들어. 그건 그렇고‥. 후훗‥알테미스가 없는 동안 내가 얼마나 외로웠는 줄 알아‥?”

아란이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목에 입을 가져가자, 알테미스는 자신의 목을 살짝 감싸고 있는 아란의 팔에 키스를 하며 중얼거렸다.

“‥미안.”

한편, 리오와 지크는 한순간 서로에게 일격을 가한 뒤 서로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졌다. 잠시 쉬기 위한 이유도 있었지만, 다른 중요한 이유도 있었다.

“‥헤헷, 예전보다 훨씬 강해졌는데 리오? 헤헤헤헷‥.”

“‥훗, 나에게 처음 당했을 그 때와는 차원이 틀리구나 지크. 하지만, 아직 공중에서 전투하는 건 무리인 것 같은데?”

리오의 말 대로, 지크는 리오와 격돌을 했다고는 해도 상당히 많은 부분에 상처를 입고 있었다. 물론 리오 역시 망토 등에 흠이 나긴 했지만 몸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지는 않고 있었다. 지크는 곧 무명도를 거두며 리오에게 말했다.

“‥푸, 무슨 소리. 어드밴티지를 준 상태로 날 상대해 준 녀석 주제에‥. 넌 수십 번이나 내 목을 벨 수 있었잖아. 마법도 쓰지 않았고. 좋아, 이제 그만 하자. 나도 이제 기분이 좀 풀어졌으니까.”

지크의 말을 들은 리오는 빙긋 웃으며 자신의 검들을 거두었다. 그는 곧 지크와 악수나 하자는 생각으로 그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래, 수고했다. 지‥크!?”

그러나, 지크는 악수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체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무명도를 거두고 말을 마친 즉시 밀려오는 피로에 탈진해버린 지크는 지면을 향해 추락하고 있었다.

“으악!! 지크 선배!!!”

“지크!!!”

넬과 리진은 기겁을 하며 지크의 이름을 불렀고, 챠오 역시 눈을 크게 뜨며 떨어지는 지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물론, 다행스럽게도 리오가 추락하기 직전에 부축을 했기 때문에 큰 부상은 없었지만 지크는 이미 리오에 의해 상당한 충격을 입은 상태였다. 리오는 지크의 체온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한숨을 내쉬며 그의 몸을 자신의 망토로 감쌌고, 자신에게 달려온 리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차를 가져오셨나요?”

“아, 예!! 그런데‥지크는 괜찮나요?”

“아, 그렇게 심각한 상태는 아닙니다. 오래 자고 일어나면 괜찮을 거예요.”

“….”

리오의 그 위로는 리진 등에게 그리 설득력을 가질 수 없었다. 그렇게 말하는 동안에도 지크의 머리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리오의 말은 사실이었지만‥.

리오와 지크의 대련은 거기서 끝이었다. 넬과 리진, 챠오는 지크를 데리고 번개같이 지크의 집으로 향했지만, 데스 발키리들은 그렇지 않았다. 엄청난 스피드의 지크는 그렇다 쳐도 그런 스피드의 남자와 대결한 뒤에도 그리 지친 기색을 표하지 않는 리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녀들은 모두가 떠나간 후에도 얼마간 그곳에 남아 있었다. 아란은 자신과 키가 비슷한 알테미스의 곁에 기댄 채 미소를 지으며 츄우와 레베카에게 물었다.

“예전과 비교해서 어때? 최강급 가즈 나이트의 느낌이?”

츄우는 자신의 옷자락을 입으로 살짝 깨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레베카는 인상을 찌푸린 채 부숴진 건물들과 아스팔트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조금 후, 츄우가 진지한 얼굴로 아란에게 물었다.

“‥넌 저 남자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물론 실제 상황에서 말이야.”

그러자, 아란은 힘없이 웃은 뒤 알테미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글쎄‥? 나보다 알테미스에게 물어보는 것이 더 빠르지 않을까?”

츄우와 레베카의 시선은 곧 알테미스에게 옮겨졌고, 알테미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일관한 채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아직은‥.”


※※※

“알테미스‥? 같은 데스 발키리인가?”

샤워를 마치고 집 밖으로 나온 리오는 한참 아란에게 알테미스에 대한 소개를 받고 있었다. 아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테미스에게 말했다.

“그래요. 알테미스라고 하죠. 자, 알테미스? 이분이 바로 리오라는 가즈 나이트셔. 인사해.”

“….”

알테미스는 말없이 리오의 눈을 직시할 뿐이었다. 리오는 그런 알테미스의 차가운 눈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차가운 느낌이군. 휀의 냉정함이나, 바이칼의 내숭과는 다른‥. 마치 피에 굶주린 사람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던 리오는 문득 서로가 아무 말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하는 수 없이 먼저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가즈 나이트, 리오 스나이퍼입니다. 잘 부탁드리길.”

“‥알테미스 슈크라드‥입니다.”

가볍게 목례를 하며 소개를 한 리오에 비해, 알테미스는 마치 인형처럼 감정 없는 말투로 인사 아닌 인사를 했고, 리오는 개인 취향이겠거니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란은 곧 알테미스와 팔짱을 낀 뒤 리오에게 윙크를 하며 말했다.

“후훗‥미안해요. 수줍음을 잘 타는 아이라서요. 그럼 나중에 또.”

세이아의 집으로 향하는 둘을 보며, 리오는 한숨을 길게 쉬어 보았다. 데스 발키리까지 네 명이 가세하고, 지크까지 자신의 힘에 반쯤 각성이 성공한 이 상태라면, 예전에 휀과 바이론이 있던 때에 못 미치지만 그런 대로 강한 전력이 구성되었다고 볼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의해서였다.

“‥이제 팀을 나눠야 하나? 하지만 동룡족까지 완전히 적이 된 상황이라면 팀을 나눌 필요가 없는데‥. 만약 예전처럼 차원 결계라도 쳐지는 날이면 주룡 쥬빌란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나 뿐일 테니까.”

“와카루 하루방(할아버지의 사투리)도 있잖아.”

그때, 지크의 집 쪽에서 약간 힘이 빠진 목소리가 들려왔고 리오는 피식 웃으며 그쪽을 바라보았다. 간편한 복장의 지크가 현관 기둥에 기댄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아, 그렇군. 몸은 괜찮아 지크?”

“음〜그런 대로. 하지만 기분은 상쾌하다구.”

지크는 터벅터벅 리오의 옆으로 다가왔고, 리오는 텐트 옆에 놓인 간이 의자에 앉으며 지크에게 물었다.

“‥아까 나와 대련하자고 한 이유‥. 그냥 강해지고 싶다는 의지만은 아니었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안 그래?”

그러자, 지크는 핵심을 찔렸다는 듯 한쪽 눈을 감은 채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헤헷, 그건 그래. 그냥 한번 신나게 얻어맞고 싶었지.”

“‥?”

리오는 팔짱을 끼며 의아한 눈으로 지크를 바라보았고, 지크 역시 옆에 놓인 간이 의자에 걸터앉은 후 희끄무레한 하늘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매일같이 처크 할아버지에게 야단을 맞아온 기억이 지워지지 않아서‥. 이렇게 말하는 내가 바보 같아 보이겠지만, 난 그분께 야단을 맞을 때 정말 기분은 좋았다구. 그럴 때마다 그분이 날 정말 생각해 주시는구나‥하고 다시 한번 느꼈으니까.”

“….”

리오는 말없이 지크를 주시할 뿐이었다. 지크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계속 말했다.

“‥그분이 돌아가시는 순간, 난 정말 가슴에 구멍이라도 뻥 뚫린 기분이었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지. 울기도 했고‥. 그런데 그때, 옷걸이에 던져놓은 내 재킷이 내 머리 위에 툭 떨어지는 거야. 이상하게도 아프더라고. 알고 보니 내 재킷 어깨에 붙여놓은 철 조각(메탈 플레이트, Last Radiance라 쓰여진 것. 전작에서 챠오가 지크에게 전해주었다)이 내 이마를 정확히 친 것이었어.”

“아, 그 장식? 그건 처크 씨가 네게 준 것이라고 들었는데‥.”

리오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지크에게 확인하듯 말했고, 지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유품이라면 유품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지. 헷, 보통 땐 돌팔매를 맞아도 아프지 않은데 이상하게 아픈 거야. 그리 무게도 나가지 않는 것인데. 그때 느꼈지. 처크 할아버지가 또 야단을 치시는구나 하고 말이야. 그래서 그 직후 너에게 부탁을 한 거야. 정신을 차릴 겸, 한번 신나게 맞아보려고 말이야. 너에게 한 방 크게 맞은 다음, 하늘을 보고 깨달았어. 아직 처크 할아버지의 흔적이 남아있다고 말이야. 할머니(처크 부인), 그리고 사촌이라고 우기긴 하지만 엄밀히 보자면 이모인 루이‥그리고 처크 할아버지가 직접 소집한 BSP 동료들‥. 아직 지킬 것이 남아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기분이 좋더라고. 그리고 그 즉시 일어나면서 처크 할아버지에게 약속했어. 그 모두를 꼭 지켜주겠다고.”

지크는 말을 맺으며 자신의 오른손에 기를 집중해 보았다. 그러자, 그의 손 주위를 작은 기류가 휘감았고 리오는 놀란 눈으로 지크를 바라보며 말했다.

“엇, 설마 힘을 완전히 익힌 거야?”

“‥모르겠어. 하지만 예전까지 쓰던 기전력과는 상당히 틀린 것 같아. 어쨌든‥고맙다 리오. 너와 의형제 맺은 건 정말 잘한 것 같아. 헤헤헷‥.”

“‥훗, 녀석‥.”

리오와 지크는 웃으며 서로의 손을 강하게 마주쳤다. 멀리서 식료품을 들고 돌아오던 슈렌은 그런 둘을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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