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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662화


릭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멋을 잔뜩 낸 상태였다. 지금까지 단 한 번밖에 보지 못했던 세이아를 직접 만나게 되고, 게다가 말까지 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는 동료의 정장을 빌려 입었다. 게다가 생전 가지 않던 미용실까지 출입을 하여 머리에도 모양을 내었다. 거리를 걷는 도중에도 몇 번이고 남의 집 창문 앞에 서서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기도 하였다.

그만큼, 세이아라는 존재는 릭에게 있어서 여신 이상의 존재였다.

얼마나 걸었을까. 이윽고 릭은 리오가 가르쳐준 주소에 위치한 집 앞에 서게 되었고, 드래고니스 주거 지역에 널리 분포한 주택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의 그 집 앞에서 릭은 다시 한번 자신의 옷과 머리를 가다듬어 보았다.

‘…뭐지 이 긴장감은? 그 란바랄의 앞에 섰을 때도 이런 정도의 긴장감은 없었는데…! 아아, 분명 난 뭔가 잘못된 거야. 세이아님을 뵐 면목이 없어….’

릭은 결국 뒤로 돌아서고 말았지만, 리오의 부탁이 그의 머릿속에 다시 떠올랐고 릭은 또다시 문 앞에 섰다. 그러다가 다시 뒤돌기를 몇 번… 횟수가 반복될 때마다 릭의 머릿속은 더욱더 뒤엉켜갔다.

“…저어, 저희 집에 용건이 있으신가요?”

“아, 아앗!! 죄송합니다!!! 전 수상한 사람이 아닙니다!!! 전 그저, 그저… 아앗!?”

갑자기 자신의 뒤에서 들려온 맑은 목소리에 깜짝 놀란 릭은 움찔하며 뒤로 돌아서서 쓸데없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릭의 모든 생체 기능은 그 순간 정지하고 말았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은발, 청색도, 녹색도 아닌 불가사의한, 하지만 따뜻한 눈동자와 그에 걸맞은 단아한 얼굴. 가슴에 안고 있는 시장용 종이 봉투. 그리고 그 멋진 조화가 뿜어내는 신비의 아름다움….

“허, 허억…! 세, 세이아님…!!”

릭은 완전히 긴장한 채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버렸고, 그것을 본 세이아는 깜짝 놀라며 릭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를 부축해 주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어머, 왜 그러세요! 괜찮으신가요?”

세이아의 향기가, 세이아의 손이 자신의 몸에 와 닿자, 릭은 결국 정신적으로 견디지 못하고 혼절해 버렸고 갑자기 자신의 집 앞에서 벌어진 상황에 세이아는 당황하며 지크가 있을 옆집으로 급히 달려갔다.

……………………… . . . . . .

“이봐, 정신 차리라구 친구. 천하의 제1 전룡단 단장이 겨우 그런 정도에 기절하는 거야?”

지크는 손으로 릭의 머리를 툭툭 건들며 그를 깨웠고, 잠시 후 릭은 환상에서 깨어나는 사람처럼 부스스 눈을 떴다. 그러나, 정신을 차린 이후에도 릭의 입에서 나온 단어는 단 하나였다.

“세이아님….”

“…이 친구 맛이 갔군. 바이칼이 전룡단 단장들에게 여자 만나지 말라고 한 건 아닐 텐데 왜 이러나? 이봐, 정신 차려!!”

퍼억–!!

결국, 지크는 릭의 턱에 강한 일격을 선사했고, 정신을 차릴 정도의 충격을 받은 릭은 순간 정신을 번쩍 차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 지크님? 여긴 도대체 어디입니까?”

“어디긴 어디야. 세이아씨 집이지. 여긴 여자들만 사는 집이니까 빨리 일어나. 용건 있으면 빨리 말하구.”

지크는 한심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릭에게 말했고, 릭은 그랬던가 생각하며 자신이 누운 곳을 살펴보았다. 평범한 소파 위였지만 생각보다는 편안했다.

“호오, 그 친구 일어난 거야? 세이아 한번 보고 뻗었다며? 바보같이.”

그때, 2층에서 데스 발키리 레베카가 여자 치고는 두꺼운 근육질의 목에 수건을 두른 채 내려오며 지크에게 물었고, 지크는 입을 내밀며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뒤이어, 레베카가 가는 길엔 빠질 수 없는 손님인 츄우가 내려오며 릭에게 활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머머, 일어났어요 숫총각씨? 당신 기절해서 누워있는 게 얼마나 귀여웠는지 알아요? 호호호홍~. 그런데 너무했다아. 얘기 한번 했다고 기절하다니…. 그 리오라는 바람둥이 오빠하곤 정반대네?”

릭은 데스 발키리라는 이름 치고는 꽤 활달한 그녀들을 보고 사람은 역시 만나보지 않고는 모르겠구나 생각을 해 보았다. 예전 모스크바 탈환 작전 때 토울 해머와 바로크를 휘두르며 악귀처럼 동룡족 병사들을 살해하던 그 둘의 모습과는 너무나 딴판이었다.

옷이라고는 런닝셔츠와 반바지밖에 입지 않아 상당히 노출도가 심한 상태인 레베카는 릭의 앞쪽 소파에 앉은 뒤 탁자 위에 놓인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고, 마치 죄수를 심문하는 형사처럼 릭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릭이라고 했나? 당신 서룡족 전룡단 단장 중에선 최강이라며? 나랑 팔씨름 한번 해볼까?”

“아, 아뇨. 사양하겠습니다.”

“허이구, 싱겁기는. 그럼 담배는 어때? 필 줄 알지?”

“다, 담배는 전혀….”

레베카가 계속 릭에게 이상한 것만 권유하자, 지크는 피곤하다는 듯 레베카에게 손짓을 하며 투덜대기 시작했다. 물론 릭을 위한 것이었지만.

“이봐 헐크 레이디. 이상한 것 좀 권하지 말라구. 팔씨름 상대는 나중에 사바신이라는 녀석 소개시켜 준다고 몇 번이나 말했어. 자, 이 여자들의 언어 폭력은 무시하고 어서 용건이나 말해. 나도 빨리 이 집에서 나가고 싶다구.”

“아, 예. 그러니까… 앗!”

그때, 막 말을 하려던 릭의 뒤에서 츄우의 흰 손이 부드럽게 다가왔고, 그녀는 릭의 얼굴과 목을 자신의 손으로 매만지며 귀에 대고 속삭이기 시작했다.

“어머머~ 그냥 가시면 너무 섭하죠옹. 놀다 가라니깐… 당신 같은 총각에게 가르쳐줄 것이 있단 말이에요. 호홍~.”

“네, 네에?!”

릭은 잔뜩 긴장한 채 츄우에게서 도망치려 했으나, 이상하게도 그녀의 손길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릭은 순간 기를 높이며 정신을 차리려 했고, 릭의 몸에서 기가 강하게 뿜어지자 츄우는 싱겁다는 듯 웃으며 그의 몸에서 손을 떼었다.

“…후훗, 난 또 넘어가나 보다 하고 좋아했는데, 역시 장난은 그만 해야겠네엥….”

‘…장난이었다고…?!’

릭은 츄우의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이 순간적으로 몸을 움직이지 못한 것은 츄우의 기에 자신의 생체 기능이 눌린 탓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그로선 츄우의 말은 충격에 가까웠다.

‘…그래, 이 여자들은 데스 발키리…. 가즈 나이트 분들보다 약간 뒤떨어지는 존재다. 방심하면 큰일이야. 정신 차리자.’

“어머, 너무 그렇게 화내지 말아요 릭 씨. 장난이었다니깐.”

“아, 아닙니다. 죄송한 건 오히려 접니다.”

그때, 부엌에서 세이아가 홍차를 들고 릭이 있는 거실로 나왔고, 릭은 그 순간 다시금 모든 생체 기능이 정지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 말았다.

“자아, 홍차 드시면서 계속 말씀들 나누세요. 아, 지금은 괜찮으신가요 릭 씨?”

세이아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빙긋 미소를 지어주자, 릭은 갑자기 호흡 곤란에 빠져 버리는 것 같았다. 그의 평생, 이런 느낌은 정말 처음인 탓이었다.

“세, 세이아님! 리오님께서 오늘은 일이 있으셔서 집에 늦게 들어오신다고 전해드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네? 아, 그렇군요. 그래서 직접 오셨군요. 후훗… 감사합니다.”

‘세, 세이아님께서 나에게 감사를…!! 아아아…!!!’

“…얼라? 이봐 릭! 정신 차려!!!”

지크는 다시 기절해버린 릭을 깨우기 위해 다시금 골머리를 썩여야만 했고, 세이아는 릭이 도대체 왜 그럴까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데스 발키리 두 명은 재미있다는 듯 웃을 뿐이었다.

※※※

“자아, 새 옷은 어떤가? 맘에 드나?”

리오는 쇼윈도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플루소에게 미소를 지으며 물었고, 플루소는 약간 멍한 얼굴을 한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때, 리오가 그녀의 앞머리를 손으로 살짝 들어 올렸고, 플루소는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리오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리오는 곧 고개를 끄덕이며 플루소에게 말했다.

“아, 좋아. 요즘은 화장 기술이 발달해서 꽤 심한 흉터도 가려주는군. 뭐, 미용사 아가씨들이 고생 좀 했지만 말이야. 후훗…. 자, 이제 돌아다녀 볼까?”

“….”

플루소는 아무 말 없이 리오를 따라 나섰고, 리오는 드래고니스 주거 지역의 이곳저곳을 플루소와 함께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식사를 할 때나, 드래고니스에서 가장 멋진 볼거리라 할 수 있는 오리하르콘 공예의 걸작인 신룡 브리간트상 앞에서도 플루소는 미소를 짓지 않았다. 하지만 리오는 그녀와 함께 밤늦도록 드래고니스의 주거 지역을 관광했다.

거의 자정이 되어, 리오와 플루소는 한 레스토랑 앞을 지나게 되었고, 리오는 그녀와 함께 그 레스토랑 앞에 마련된 의자에 앉으며 한숨을 돌렸다.

“하아, 이렇게 돌아다녀본 것도 정말 오래간만이군. 어쨌거나 다행인 건 내가 아는 여자분들과 마주치지 않았다는 것이지. 후훗…. 그런데 배고프지 않아? 점심 식사 이후로 음료수 말고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잖아.”

“…먹고 싶으면 마음대로 해. 난 어차피 포로니까.”

“….”

리오는 아무 말 없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때마침, 그들의 앞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가녀린 피아노 음색이 들려왔고, 그 피아노 연주곡을 들은 플루소의 눈은 순간 반짝 빛을 냈다.

“…이 음악은….”

“…아, 이 레스토랑이 맘에 든다고? 좋아, 한번 가보도록 하지.”

“자, 잠깐! 난 음악을….”

리오는 다짜고짜 레스토랑 안으로 플루소를 끌고 들어갔고, 플루소는 결국 리오가 가는 대로 레스토랑 안에 들어가게 되었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은, 레스토랑 안의 전등이 한 테이블과 피아노 쪽을 남기고 모두 꺼져 있다는 것이었다. 리오는 불이 켜져 있는 테이블로 가서 플루소와 함께 앉았고, 플루소에게 피아노 쪽을 보라는 듯 자리를 살짝 비켜 주었다. 그 순간, 플루소의 얼굴은 험악하게 일그러졌고 그녀는 흥분을 한 나머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네, 네 녀석!!!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날 이곳에 데려온 거지!!! 어째서 나에게 잘 대해주나 했더니 이런 모습을 보고 싶어서였나!!!”

“…잠자코 앉아.”

그때, 리오의 무거운 목소리가 플루소의 감각을 곤두세웠고 플루소는 침을 꿀꺽 삼키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리오는 다시 미소를 지은 뒤 플루소에게 말했다.

“…오늘의 주인공은 나와 당신이 아니라, 저 피아니스트와 당신이야. 포로 교환이 되어 다시 적으로 변해도, 아까 아침에 말을 한 것과 같이 당신이 진정한 장군이 되게 하려면 이렇게 오해를 풀어 주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마음이 풀려야 냉철한 지휘도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후훗….”

“….”

플루소는 아무 말 없이 수정으로 만든 피아노를 치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감긴 듯 한 눈. 묵묵히 다물어진, 하지만 가끔씩 희미한 미소를 지어주는 입술을 가진 푸른 장발의 남자. 슈렌은 어딘가 모르게 슬픈 선율로 레스토랑에 마련된 수정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던 플루소는, 눈을 질끈 감으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 곡은 스승과 제자로서 헤어질 때 저 자가 들려준 곡이지. 그때까지만 해도 난 저 자를 스승으로서 존경해 왔어. 그때까지만 해도… 헤어지기 싫었지. 정말이야. 헤어지기 싫었어….”

“….”

리오는 묵묵히 플루소의 얘기를 들어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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