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684화
“적들이 후퇴를 개시했습니다! 지시를 내려 주십시오!”
전투가 수 시간째 계속되던 어느 순간, 오퍼레이터의 목소리가 바이칼과 휀, 그리고 장로의 귀에 들려왔고 곧 바이칼은 주저 없이 팔을 뻗으며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적들을 추격하라!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모조리… 읍!”
“작전 중지. 전원 위치를 지키도록 지시하라.”
“예?”
휀이 갑자기 바이칼의 말을 막고 지시를 내리자, 오퍼레이터는 잠시 둘을 바라보다가 곧 휀의 말에 따라 지시를 내렸고 바이칼은 자신의 입을 막은 휀의 손을 거칠게 떨쳐 내며 그에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이봐! 서룡족의 왕은 네가 아니고 나다! 작전 지시까지 내 마음대로 못 한다는 말인가!!!”
“… 그럼 다시 작전 지시를 내리도록 해 주겠다. 대신, 지금의 전투를 단순한 복수극으로 만들지는 말도록. 네 말 대로 너 자신이 서룡족의 제왕이라면.”
“…!!!”
휀은 말없이 전투 상황판에 시선을 돌렸고, 휀을 쏘아보던 바이칼은 결국 눈을 질끈 감으며 아무런 지시 변경도 내리지 않았다.
…………………… . . . . . . .
수십 합에 걸쳐 검과 창을 맞대던 바이론과 메타트론 둘 모두는 약속이나 한 듯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바이론의 얼굴엔 변함없이 광기 어린 미소가 흐르고 있었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자신과 다크 팔시온이 쉴 새 없이 뿜어내는 암흑 투기를 정면으로 상당 시간 동안 받으면서도 힘 하나 떨어지지 않는 천사는 이번이 처음인 탓이었다. 물론, 놀라고 있는 것은 메타트론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신계를 떠나 이 행성에 오랫동안 잠들기 전, 신계엔 신이 아니면서 자신과 대적할 정도의 상대는 악마왕 이외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수억 년이 지난 지금 그의 앞엔 가즈 나이트라는 말도 안 되게 강한 존재가 나타나 있었다.
“… 지금 현재의 네 힘은 어느 정도인가.”
메타트론이 창을 거두며 한 질문에, 바이론 역시 다크 팔시온의 끝을 내리며 정직하게 말했다. 어차피 신계에 관계된 사람이라면 가즈 나이트들의 힘 배율은 거의 다 알기 때문이었다.
“… 10분의 1 정도… 인가? 크크큭… 머리가 나빠서 잘 기억이 안 나는군….”
“… 그런가, 나와 비슷하군. 그럼, 다음에 만날 때를 기대하겠다.”
메타트론은 접혀 있던 자신의 열 네 장의 날개를 펴며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고, 바이론은 뒤로 돌아서며 브리간테스가 있는 방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의 머리 위로는 후퇴하는 동룡족의 함대가 대기를 가르며 어디론가 향해 가고 있었다.
※※※
800여 년 전. 신계의 구석.
“… 자네가 가즈 나이트, 휀·라디언트인가.”
미카엘의 물음에, 휀은 고개를 끄덕이며 약간 긴장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그렇습니다만…. 미카엘 님과 같은 높으신 분께서 왜 절 이런 곳에….”
“… 자네가 얼마만큼 강한지 알아보기 위해서… 일세. 검을 뽑게나.”
“에?!”
미카엘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휀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뒤로 주춤거렸다. 신계 최강의 전사라 불리우는 미카엘이 아직은 어리숙한 자신에게 대결을 청했다는 사실은 휀을 질리게 만들기 충분한 것이었다. 어쨌거나, 미카엘은 휀의 반응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검이자 신성계열 무기 중 최고라 불리우는 ‘에릭튜드’를 뽑으며 전투 자세를 취했고, 결국 휀은 알지 못하는 감정에 휩싸인 채 주신에게 받은 지 얼마 안 된 플랙시온을 뽑으며 미카엘에게 대응하기 시작했다.
“그, 그럼… 음?!”
둘이 막 검을 부딪히려는 순간, 휀의 몸에선 강한 빛이 뿜어지기 시작했고 그의 얼굴엔 여덟 개의 황색 무늬가 이마에, 그리고 볼에 떠올랐다. 미카엘은 그 순간 휀의 몸에서 끝을 알 수 없을 정도의 강력한 기운이 뿜어지는 것을 느꼈고 휀 역시 몸의 변화에 놀라워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 이것이 제 4 안전주문의 힘…!! 가즈 나이트로서의 진짜 힘…!!!’
휀은 왠지 모를 자신감이 들기 시작했다. 곧 미카엘과 휀, 둘은 검을 부딪히며 미카엘만이 이유를 아는 전투를 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몇 시간이 흘렀을까.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 서 있는 것은 휀이었고 쓰러져 있는 것은 미카엘이었다. 물론 휀 역시 온전한 모습은 아니었다. 그의 멋진 배틀 코트는 넝마가 되어 있었고, 또 코트의 찢어진 부분 부분에선 선혈이 흐르고 있었다. 한편, 기력을 다 소진하고 쓰러져 있던 미카엘은 에릭튜드에 의지해 겨우 몸을 일으켰고, 휀을 향해 미소를 지어보이며 나지막이 말했다.
“… 자네의 승리야. 이로써 주신께서도 확실히 일선에 나서실 수 있을 것 같군. … 어쨌든, 이제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게. 나에겐 더 이상 시간이 남아있지 않으니까 말이야.”
“예?! 서, 설마…!! 미카엘님, 제가 모실 테니 어서 치료를…!!”
“내 말을 들으라니까!!!”
중성인 탓에 알 수 없는 미모를 가진 미카엘의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는 호통이 순간 휀의 움직임을 멈추게 했고, 휀이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자 그제서야 미카엘은 휀에게 ‘중요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 자네는 강해. 하지만, 그 정도로는 태고의 대 천사장 메타트론님을 이길 수 없어.”
“예? 그, 그게 무슨…?”
휀은 미카엘의 입에서 갑자기 ‘메타트론’이란 말이 나오자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미카엘은 상관치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걸세. 아마 주신께서도 알고 계실 거야. 태고의 대 천사장, 메타트론님은 나완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시다네. 난 걱정했다네. 이제 시간은 800여 년 밖에 남지 않았는데 메타트론님을 막을 수 있는 존재가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난 오늘 보았네. 주신의 전사, 가즈 나이트…. 아직 개발되지 않은 무궁무진한 힘을 가진 존재…. 자네에게 부탁하는 것이 두 가지 있네. 더욱더 강해지고 냉정해지라는 것… 자네는 너무 여려. 메타트론님을 상대할 정도의 힘을 가지기 위해선 갓난 아이라도 벨 수 있을 정도의 비정함을 가져야만 하네. 그리고 또 한 가지…. 800여 년 뒤, 메타트론님을 뵙게 되면 그분을 가급적이면 죽이지 말아 달라는 것이네. 그분은 자신의 운명을 모르고 수억 년간 차가운 강 바닥 속에서 잠자고 계시다네. 만약 그분께서 자신의 운명을 알게 되는 순간 그분은 자아를 잃고 자신의 운명대로 나아갈지 모른다네. 최후의 상황이 아니라면 그분을 죽이지 말아 주게나.”
“… 예, 알겠습니다.”
휀은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고, 곧 미카엘은 한숨을 길게 내쉬며 편히 바닥에 누웠다. 미카엘은 천천히 눈을 감으며 휀에게 마지막으로 말했다.
“… 내 분신이, 나의 검 에릭튜드를 원 차원계의 인간에게 맡길 것이네. 난 800여 년 후에 원 차원계에 다시 나타날 수 있을 테니, 때가 되면 자네가 에릭튜드를 맡아주길 바라네. 800년 후 다시 태어났을 때는 난 아무런 힘도 없는 천사일 뿐일 테니까 말이야….”
“자, 잠깐만 미카엘님!!! 설마… 설마!!!”
휀의 다급한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미카엘의 몸은 광혈로 변하며 사방으로 흩날리기 시작했다. 휀은 공중으로 높이 치솟았다가 하늘하늘 날리며 내려오는 미카엘의 날개 깃털을 온몸에 맞으며 잠시 간 고개를 숙였다.
“… 어린아이를 벨 정도의 비정함… 심약한 내가 어떻게 그런….”
휀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조용히 주신계로 향하기 시작했다. 한편, 미카엘이 누워 있던 자리에 말없이 놓여있던 에릭튜드는 바닥에 뿌려진 미카엘의 깃털에 휩싸이며 어디론가 사라져갔다.
…………………….. . . . . . . . .
“이봐 대장. 4대 용왕의 함대가 도착해서 사열식을 하고 있는데, 구경 가지 않을 거야?”
한참 옛일을 회상하던 휀은 갑자기 자신의 눈앞에 나타나 제안을 해 온 지크를 보고 겨우 현실감을 되찾을 수 있었다. 휀은 눈을 살며시 감으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들은 사열식을 볼 정도의 위치가 아니라는 걸 모르나.”
“음? 쳇, 또 재미없는 말만 하는군. 좀 OK라는 것도 해 보라구 대장. 뭐, 내가 말한다고 고쳐질 사람이 아니니 난 그만 가 볼게. 땅강아지(사바신)하고 물방개(레디) 녀석들이 날 기다리고 있으니까. 헤헷, 그럼 이만.”
지크는 손을 흔들며 휀에게서 떠나갔고, 휀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며 사령실 창밖으로 보이는 수십만의 4대 용왕 함대를 바라보았다.
“크큭, 여기서 고독이라도 씹고 있는 건가?”
그때, 사령실의 문이 열리며 위스키 통을 든 한 거한이 들어왔고, 휀은 왼손을 옆으로 내밀며 그 거한에게 말했다.
“안주로는 고독만큼 좋은 게 없으니까.”
“… 크크큭, 여전히 뚫린 입이군.”
바이론은 자신에게 내밀어진 휀의 손에 유리잔을 놓아 주었고, 통에 든 위스키를 흘러넘치지 않을 정도로 따라준 뒤 자신은 통에 입을 대고 안에 든 위스키를 마치 물처럼 들이키기 시작했다. 휀은 바이론이 따라준 위스키를 조용히 음미하며 그에게 물었다.
“메타트론의 힘은 어땠나.”
“… 나와 다크 팔시온의 암흑 투기를 신성력으로 중화시키는 와중에서도 나와 호각인 녀석이라면 설명이 되겠나? 크크크크큭…. 태고 최강의 천사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은 녀석이었다.”
“그런가….”
휀은 다시금 위스키로 목을 적셨고, 바이론 역시 다시금 위스키를 들이키며 그 맛을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