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692화
10장 [노(怒)]
“이제 가보셔도 괜찮습니다 세이아님.”
드래고니스의 초차원 결계 위로 쓰러져 있는 웨드의 인양 작업을 세이아와 함께 지켜보던 휀은 웨드를 걱정스러운 얼굴로 지켜보고 있는 세이아에게 넌지시 말했다. 그러나, 세이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아니에요. 저 아이는 아직도 불안해하고 있어요. 도대체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리오씨께서 돌아오신 것에 가슴이 뛸 정도로 기쁘지만, 저 아이의 곁엔 제가 계속 있어줘야 해요. 저 아이의 마음의 손을 잡아주어야만 해요.”
“… 뜻대로 하십시오.”
휀은 다시 시선을 웨드로 돌려보았다. 웨드의 콕핏 밖으로 나와 있는, 적 병기와 연결되어 있던 파이프에선 아직도 노란색의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가만히 그 물방울을 바라보던 휀은 곧 물방울이 떨어진 곳으로 다가가 손끝으로 물방울을 찍어 냄새를 맡아 보았고, 냄새를 맡은 휀은 손수건으로 손끝을 닦으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 뇌수…?”
………………………. . . . . . .
지크는 자신의 집 앞에 구름같이 몰려 있는 수없는 여성들을 바라보며 속으로 허무감과 비애를 함께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여성들 외에도, 드래고니스의 서룡족 여성들이 수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집 앞에 모여 있었기 때문에 지크는 더욱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 리오 녀석… 연예인이냐…?’
속으론 그렇게 투덜대면서도, 지크는 현재 머리에 붉은색 모자를 쓰고 손엔 메가폰을 든 채 여성들에게 돌아가라는 신호를 계속 보내고 싶었다.
“자자, 오늘은 돌아가 주세요!!! 오늘은 아무와도 만나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돌아가 주세요!!!”
“그럼 이거라도 전해주세요!”
“어허, 우린 이런 것을 받을 위치가 아니니 가족한테나 주세요!! 거기, 선물 집 안으로 던지지 말아요!!!”
지크가 한참 여성들을 막고 있을 무렵, 리오는 지크의 방 침대에 누워 말없이 천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리오의 귀엔 지크의 메가폰 소리도,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여성들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물리적이나 생물적으로 분명 들리지 않을 이유가 없었지만 리오의 마음은 그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우우우웅…
그때, 리오가 벽에 기대어 두었던 디스파이어가 공명음을 내며 떠올랐고, 리오는 빙긋 웃으며 디스파이어를 바라보았다.
“… 무슨 얼빠진 모습이냐고? 으음… 아냐. 그냥 좀 쉬고 싶어서. 3개월간 침대에 누워 잠을 잔 일이 없어서 쉬고 있을 뿐이야. 푹 좀 자고 싶어….”
우우우웅…
“… 그래, 행복한 소리로 들려도 이상할 건 없지. 하지만 너무 그렇게 화내지 마. 너도 좀 쉬는 게 좋을 것 같아 보이는데 말이야.”
우우웅…
“… 다른 여자들? 후훗, 날 진정으로 이해해 주는 여자라면 하루 정도 쉬는 건 이해해 주겠지. 저렇게 지크 녀석을 고생시키지 않을 테고 말이야.”
…….
디스파이어는 붉은색 잔광을 남기며 조용히 벽에 기대었고, 리오는 눈을 감으며 한숨을 길게 내쉬어 보았다.
“어차피 길게 잠을 자진 못해. 넬의 문제가 걱정돼서 그러는데… 미안하지만 여섯 시간 있다가 깨워 주겠어?”
우웅…
“음, 고마워.”
리오는 곧 이불을 덮은 뒤 잠을 청했고, 디스파이어는 다시 떠올라 탁상시계가 보이는 벽 쪽으로 다시 옮겨 기대었다.
조금 뒤, 여성들을 겨우 집으로 돌려보낸 지크는 피곤한 얼굴로 자신의 방문 앞에 도착했다. 머리를 흔들며 방문을 연 지크는 리오가 자신의 침대에서 조용히 자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고, 곧바로 인상을 찡그리며 리오의 어깨를 손으로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봐 연예인. 어서 소파로 돌아가서 자라구. 나도 긴장 풀려서 피곤할 대로 피곤하니까 말이야.”
“… 우웅… 여섯 시간만 빌리자 지크. 선심 좀 써 줘….”
잠에 취한 리오의 목소리를 들은 지크는 결국 리오의 옆에 털썩 쓰러졌고, 리오의 몸 위에 팔을 거칠게 올려놓으며 말했다.
“난 내 침대가 아니면 잠이 안 와 임마. … 으힉?!”
우우우웅…!
그때, 디스파이어가 지크도 모르는 사이에 떠올라 누워있는 지크의 목에 검 끝을 세웠고, 지크는 침을 꿀꺽 삼키며 옆으로 몸을 움직여 침대에서 빠져나갔다. 디스파이어는 지크가 방에서 나갈 때까지 그의 뒤를 쫓았고, 지크는 방을 나가기 직전 디스파이어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건 재산권 침해라구. 아가씨.”
…………………….. . . . . . . .
회수한 웨드의 내부와 콕핏 안에 들어있던 괴 물체를 수 시간 동안 조사하고 공장 밖에서 간단히 차를 마시던 장로는 무엇을 생각하는지 차를 마실 때마다 고개를 저어댔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장로의 한숨은 연구실로 옮겨지는 알 모양의 괴 물체를 본 순간 더욱 깊어졌다.
“문제가 있습니까.”
그때, 멀리서 들려온 휀의 목소리에 장로는 시선을 휀에게 돌렸고, 파괴된 함대의 뒤처리를 하고 오던 휀은 장로의 표정이 그리 밝지 않은 것을 보며 장로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장로는 가까이 다가온 휀을 바라보며 다시 한숨을 지었다.
“… 휀 님, 연구실로 같이 가시지요. 보여 드릴 것이 있습니다.”
“….”
얼마 후, 장로의 연구실로 간 휀은 장로가 보여준 괴 물체의 X-Ray 사진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하얀색의 덩어리와 같은 물체와 그 아래로 길게 늘여뜨려진 실과 같은 것들이 찍혀진 사진…. 휀은 연구실로 옮겨진 괴 물체에 시선을 돌리며 장로에게 확인하듯 물었다.
“… 남아있는 것은 뇌와 척수…뿐이라는 말입니까.”
“… 예, 그렇습니다…. 도대체 어째서 그 어린 소녀에게 이런 악랄한 짓을…!”
장로는 말을 하는 도중에도 분노를 금치 못했고, 휀은 무표정으로 일관한 채 나지막이 말했다.
“… 아이와 어른을 가릴 정도의 자였다면 상황이 지금 같지도 않을 겁니다. 일단, 넬의 뇌와 척수가 살아있긴 하니 당분간은 잘 보존해 주십시오.”
“… 예? 바, 방법이 있단 말씀이십니까?”
장로의 표정은 잠시 밝아졌으나, 휀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 친구들을 만나게는 해 줘야 하니까요. 일단은… 살아있으니까….”
“…!!!”
휀은 곧바로 연구실을 나섰다. 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문 그는 발걸음을 옮기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 차라리 저 사실을 모르고 죽였다면….”
제궁을 나서던 휀은 우연히도 제궁 안쪽으로 향하던 세이아와 마주쳤고, 세이아는 빙긋 웃으며 휀에게 넬의 상태를 묻기 시작했다.
“아, 넬은 어떤가요? 무사한가요? 너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어서 그만 여기까지 오고 말았네요. 호홋….”
휀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만약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세이아의 그 미소가 어떻게 바뀔지 휀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차피 알게 될 일이어서 휀은 눈을 감으며 세이아에게 물었다.
“… 성계신의 직위에 있는 신들은, 그 높은 직위에 걸맞은 막중한 책임감을 지녀야만 합니다. 또한, 그 높은 지위에 비할 정도로 많은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즐거운 경험뿐만 아니라, 세상에 둘도 없을 비참한 경험까지 말입니다. 세이아님. 당신은 진정으로 이 지구라는 행성을 위한 신이 되고 싶으십니까? 당신이 성계신이 되신 이유인, 당신의 모친 이오스의 생존이라는 간단한 이유를 배제하고도 말입니다.”
“… 예?”
세이아는 휀이 갑자기 그런 무거운 질문을 해 오자, 약간 당황하며 휀을 바라보았다. 가만히 휀의 굳은 표정을 바라보던 세이아는 곧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 예. 비록 제가 태어난 고향은 아니지만, 이 세계의 사람들이 이렇게 고통받는 이유도 어떻게 보면 저의 책임이니까요. 전 꼭 이 세계를 원래대로 바꾸고 싶습니다.”
그 대답을 들은 휀은 곧 눈을 뜨며 세이아에게 말했다.
“… 그럼, 마음을 굳게 가지십시오. 절대로 자책은 하지 마시고, 당신의 위치를 생각하고 행동해 주십시오. 넬은 장로님의 연구실에 있습니다.”
“… 예, 감사합니다 휀 님.”
휀과 세이아는 각각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고, 휀은 들고 있던 담배의 연기를 흠뻑 빨아들이며 마치 무언가를 잊으려는 사람처럼 고개를 세차게 저어 보았다.
장로의 연구실에 도착한 세이아는 손으로 문을 살짝 노크했다. 곧이어, 안에선 피로가 섞인 장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시오.”
“예, 세이아입니다. 넬을 보고 싶어서 왔습니다만….”
“…!!”
장로는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세이아는 모르고 있었지만 장로는 지금 엄청난 고민감에 휩싸여 있었다. 이대로 세이아를 들여보내 충격을 줄 것인가, 아니면 철저히 숨길 것인가. 잠시 동안 생각을 하던 장로는 곧 용기를 내며 세이아에게 말했다.
“… 세이아님. 죄송하지만 넬 양을 아는 분들과 같이 와 주시겠습니까.”
문 안쪽에서 들려온 장로의 말에, 세이아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예? 무슨 말씀이신가요 장로님?”
“… 아, 예. 허허헛…. 넬 양이 다른 분들도 보고 싶다고 하는군요. 그래서….”
“아, 알겠습니다. 그럼 잠시 후 다시 오겠습니다 장로님.”
세이아는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걸어 나갔고, 연구실 의자에 앉아 있던 장로는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저었다.
“… 나도 너무 늙은 모양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