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84화
“제길! 궁병대!!”
병사들이 몸으로 부딪혀오면 리오와 지크가 얼마든지 막을 수 있으나 화살이라면 둘이 막는 데 어느 정도 한계가 있어서였다. 바람의 정령을 능숙하게 사용하면 모를까, 둘에겐 정령을 조종하는 능력이란 있지 않았다. 자신을 바람이라 자랑하고 다니는 지크마저도 자신에게 날아오는 화살까지를 막을 수 있었다.
“이 어리숙한 녀석들!! 감히 이 바레로그님의 요새에서 난동을 부리고 탈출까지 하려 하다니, 용서할 수 없다! 궁병대, 인정을 보이지 말고 모조리 쏴라!! 녀석들이 죽을 때까지 화살을 모조리 퍼부어라앗!!”
바레로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무수히 많은 화살들이 일행에게 날아왔다. 리오와 지크가 칼을 사용해 화살을 막아주기는 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는 것이었다.
“지크! 네 진언으로 어떻게 안 되겠냐!”
“진언의 법칙을 너도 잘 알고 있잖아 멍청아앗!!”
마법 주문이라면 전음 주문법으로 단숨에 외울 수 있으나 진언은 그렇지가 않았다. 정신 마법이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이 필요했고 수인의 법칙도 한 치의 오차가 없어야 한다. 제3의 힘을 빌리는 마법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아무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결국 화살은 뒤에 도망치는 일행에게까지 날아갔다.
“자식들! 모두 죽여버리겠어!!”
흥분한 지크가 소리치며 병사들에게 기술을 걸려고 하자 리오가 그를 차단했다.
“이 멍청이! 우리는 도와주는 사람일 뿐이야! 사실 나나 너 개인으로도 이 요새를 점령하는 건 식은 죽 먹기지, 하지만 우리는 이들의 역사에 결코 포함되면 안 돼!! 그걸 벌써 잊었냐!!!”
리오는 말을 하면서도 화살을 계속 튕겨냈다. 지크는 리오의 말을 속으로 되새기며 자신도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 좋아! 극단적이긴 하지만 해보지, 간단할지도 몰라. 리오, 너는 일행을 보호해, 나에게 방법이 있다.”
지크가 잠시 칼을 거두고 반탄력으로 자신에게 오는 화살을 막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숨을 한번 들이킨 후 오른팔에 힘을 빼고 궁병부대의 대장을 찾았다. 멀리서 눈이 벌개진 채 병사들에게 쏘라고 소리치는 바레로그의 큰 덩치가 눈에 들어왔다. 지크는 때를 놓치지 않고 주먹을 휘둘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치고 뺐다.
“후웃!!”
바레로그는 화살이 하나도 명중하지 않자 더더욱 흥분해 길길이 뛰고 있었다. 화살이 떨어지고 있다는 앞 열의 보고가 들어오자 부관의 머리를 치며 화살을 보급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화살이 명중하지 않는 이유는 리오와 지크가 잘 막아낸 탓도 있었지만 400명 가까이 되는 궁병부대를 급히 잠에서 깨워 이곳까지 끌고 나온 이유도 한몫을 했다. 게다가 궁병들의 눈은 하나같이 불만에 가득 차 있었다.
“으으윽!! 한 놈이라도 잡으면 그 녀석의 목을 시내 중심가에 걸어놓고 사람들에게 돌을 하나씩 던지게 할 테다!! … 으윽?!”
바레로그의 눈에 갑자기 장갑을 낀 사람의 주먹이 나타났다. 바레로그는 피하려고 했으나 몸이 반응해주지를 않았다. 결국 바레로그의 거체는 퍼억 소리를 내며 공중에 떴고 병사들을 몇 명 깔면서 바닥에 쓰러졌다. 부관이 머리를 매만지며 바레로그를 보았을 땐 그는 이미 코에서 피를 흘리며 기절한 상태였었다. 그것을 본 후열의 궁병대 소장 한 명이 기다렸다는 듯 소리쳤다.
“이, 이봐! 사령관님이 쓰러졌다!! 시위를 멈추고 사령관님을 보호해라!! 사격 중지!!!”
후열의 병사 200여 명은 그 말 한마디에 모조리 활을 거두었다. 무언가로부터의 해방감이 그들의 눈에 비치고 있었다. 앞 열도 거의 시위를 멈춘 상태였다.
“좋아, 잘했어! 가자, 지크!!”
리오는 화살이 뜸해진 틈을 타서 일행을 데리고 무사히 성문을 빠져나갔다. 리오는 도망치며 지크에게 물었다.
“어떻게 대장이 쓰러지면 병사들이 화살을 그만 쏠 거라고 생각했지? 그것도 네 머리로 말이야….”
지크는 리오를 쏘아보며 대답해주었다.
“병사들의 눈을 봤지, 모두 졸려서 어쩔 줄을 몰라 하더라고. 대장도 그 녀석들 마음에 안 들게 생겼고… 그래서 대장을 쓰러뜨리면 얼씨구나 하고 화살을 안 쏘겠지 생각했어. 운이 좋게도 맞아떨어진 모양이야.”
“훗… 녀석….”
달려가며 리오와 지크는 서로의 손바닥을 마주쳤다. 형제이면서 친구이기도 한 그들의 행동 방식이었다.
요새에서 멀리 떨어진 숲속에서 10명의 대일행은 숨을 돌리고 있었다. 여기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뛰어온 자신들이 신기했다. 곧이어 리오와 지크가 도착하자 아이들은 다시 한번 리오에게 매달렸다.
“우아아앙―! 리오!!”
긴장이 풀린 듯, 리카도 거의 보이지 않던 눈물을 흘렸고 머셀이나 클루토도 눈물이 나올까 말까 한 상태였다. 리오는 그들의 등을 다독거려주며 안심을 시켰다.
“아르만, 그 상처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지?”
겨우 자신의 갑옷을 몸에 걸치고 나무에 기대어 앉아있는 아르만은 웃으며 몸을 일으켰고 괜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매우 힘겨워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헤헷, 리오를 빨리 만나려는 생각에 걸음을 빨리 해버리고 말았어요. 도시로 가는 문에서 사람들에게 저항군 얘기를 꺼내다가 그만 잡히고 말았죠. 미안해요 리오.”
리오는 그의 옆으로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려놓으며 오히려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야… 내 잘못도 있겠지. 키세레님은 괜찮아요, 어디 다친 곳은 없고요?”
역시 나무에 기대어 모자를 벗고 땀에 젖은 머리를 말리고 있는 키세레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지크가 키세레의 옆에 슬쩍 다가가서 속삭였다.
“어이, 젊은 누나. 내가 리오를 껴안아도 될까요?”
키세레는 깜짝 놀라며 지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감방에서의 일이 머리에 떠올랐다. 자신이 그때 어떻게 그랬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저어… 그, 그건…!”
리오는 키세레가 곤란한 표정을 짓고서 어쩔 줄을 몰라 하자 지크를 말릴 겸 그를 불렀다.
“어이, 지크. 이쪽으로 와 봐.”
지크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마지막으로 키세레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그럼 아무도 없을 때 해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