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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121화


불 꺼진 사무실.

타타닥.

누군가 홀로 앉아서 타자를 두드리고 있다.

켜진 모니터 화면으로 글자가 보인다.

—–

보고서 초안

작성자 : 이자헌

20XX. 01. 02. 목포행 고속열차에서 발생한 변칙 C등급 어둠의 클리어 과정 및 김솔음 주임의 사망(추정) 과정의 목격자 진술 기록.

—–

타자는 머뭇거림이나 고민 없이 쭉 일정한 소리를 내며 문장들을 만들어냈다.

마치 머릿속에서 타임라인이 전부 정리된 듯이.

—–

목격자: 직원 A, 직원 C, 직원 F (열람 용이성을 위하여 각 인원의 소속 조로 이니셜 선정.)

직원 A : 이 짓(인터뷰)을 또 할 겁니까?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은데.

직원 A : 어쨌든… 예. 지방 출장 가려고 열차를 탔더니 바다 위를 달리고 있었다고요.

직원 C : 클리어는 아주 순조로웠구여. 솔음 주임님이 주도적으로 이것저것 많이 하셨는데, 민간인 피해 최소화하려고 노력하시는 모습도 보기 좋았져!

(직원 A는 해당 어둠 발생이 회사의 의도적 구상인지 문의했으나 연구팀 측에서 ‘철저한 우연’이라 답변받았다고 진술 – 추가 확인은 인터뷰 3회차 참고)

정예팀 3인이 주도적으로 변칙 발생한 어둠을 클리어. C등급 용액 수집 확인.

이 시점부터 열차는 어둠이 아닌 완전한 현실의 공간이었다는 것이 공통 진술.

직원 C : 김솔음 주임님이 먼저 용액 확인하시고 화장실 가셨어여. 네, ‘그’ 화장실이요.

열차가 출발한 뒤, 김솔음 주임은 ‘화장실에 가겠다’라는 말을 남긴 뒤 좌석을 떠남. 15분간 연락 두절.

17분 경과 시점 : 열차 3호 칸에 탑승 중이던 직원 F가 정예팀 세 사람의 자리로 방문.

방문 목적은 ‘인사를 위해서’라고 진술.

직원 F : 아, 저번에도 말씀드렸었지만… 저는 휴가 중이었습니다. 과장님.

직원 F : 갑자기 어둠에 휘말려서 당황했지만, 그래도 세 분을 보조하며 침착하게 상황에 대응하려고 했죠. 우리 회사 직원으로서 당연한 일이니까요.

직원 F : 상황이 모두 끝난 다음엔 상사분들께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동기인 친구가 자리에 없다고 해서 찾으러 나선 거였어요.

직원 C : 아, 화장실 반대편으로 가려고 하셔서 맞는 길로 안내해 드렸었져!

아마 원래 좌석이 그쪽이라 반사적으로 왔던 길로 돌아가려고 하셨던 것 같기도 하네요!

직원 F는 직원 C의 안내에 따라 화장실로 이동.

문 앞에 쓰러진 남성을 확인.

출혈은 없었으나, 손과 발이 모두 제거된 상태였으며, 절단면에 고운 재가 묻어 있었음.

의료인은 아주 강력한 고온에 의해 일시 소각된 것 같다는 진단.

(출처 : 소망의료원 (백일몽 주식회사 연계병원 법인))

직원 F : 무언가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화장실 문이 잠겨 있더라고요. 두드려도 다른 반응이 없고요.

직원 F : 음, 자랑은 아니지만 제가 손재주가 좋은 편이라서… 잠금장치를 해제하고 문을 열어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공했고요!

직원 F : …그런데. (숨을 들이켜는 소리)

21분 경과 시점, 고속열차 화장실 문 개방.

직원 F : 화장실 안이… 조용했어요.

직원 F : 아무도 없었고, 그냥 깨끗한 고속기차 화장실이었어요. 그래서 더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일단 나가려고 뒤로 물러섰는데….

직원 F : 허공에서 갑자기 물건들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피와 함께.

—–

타자를 두드리던 손이 잠깐 멈췄다.

마우스를 잡고 컴퓨터 바탕화면의 ‘상황 사진’ 폴더로 향하더니 사진 몇 장을 문서에 첨부했다.

피투성이가 된 고속열차 7번 칸 옆 화장실 내부 사진.

벽과 바닥에 가득한 핏물 위로 모든 게 피가 묻은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가면, 사원증, 서류 가방, 그리고… C등급 용액이 찬 꿈결 수집기.

다만 딱 하나, 깨끗한 공간이 있었다.

작은 욕조 모양으로 혈흔이 없는 타일.

마치… 누가 집어 간 듯이.

—–

직원 F : 그리고, 갑자기 거대한 손이 나타났…… 우우욱! 으우우헉, 나, 나를 밀었어! 번쩍번쩍번쩍번쩍… 안녕하십니까이밤의즐거움매일만나는새로운얼굴그리고친근한당신의사회자!안녕하십니까여긴심야토크… 우헤에에엑 (인터뷰 중단)

오염 및 PTSD 증상. 여우 상담실 신청 권유 후 7차 인터뷰 종료.

이후 4차 인터뷰의 진술을 인용.

(4차 인터뷰)

직원 F : 허공에서 손이 나타났, 나타났는데 후광, 아니, 아싱한 빛, 아니… 아닙니다.

직원 F : (심호흡)

직원 F : 바닥에 쓰러져 있던 이상한 욕조를 집어갔습…니다. 체, 체크무늬에 황금색 발이 달린, 작은 욕조였고. 그, 그 과정에서 바닥에 피가 쏟아졌는데, 어, 이상한 검은 리본 쪼가리 같은 게 같이 떨어졌고….

직원 F : 손이 리본도 잡아갔어요. 그, 그리고… 거울에.

직원 F : 문구를 적었어요.

—–

타자를 두드리던 손이 한 번 더 멈췄다.

그리고 이미 현상해 둔 사진 한 장을 책상 옆 보드에서 떼어내 응시한다.

화장실 거울에 핏물을 잉크 삼아 멋들어진 필기체로 적힌 글씨.

김솔음 씨는

오늘부터 다른 곳으로

출근합니다.

🙂

—–

연구팀은 해당 문구에 대하여 ‘기차에서 변칙 발생한 탐라행 고속열차 어둠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 추측.

(해당 추론은 연구팀 내에서 신뢰성 높게 판단되어 자체 기록물에도 기술 중.)

관련 근거로는 해당 어둠에서 김솔음 주임의 주도적 행보, 클리어까지의 독특한 윤리적 시도로 인한 이레귤러 발생 확률을 거론.

지방 출장 중 ‘탐라’라는 미지의 공간으로 초대되어 사망을 암시하는 문구라는 가능성.

혹은 김솔음 주임이 탐라행 열차의 마지막 제물로 선정된 것이라는 의견 혼재.

—–

탁.

거기까지 적는 순간, 작성자는 다시 손을 멈추었다.

다음 내용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은 아니다.

“조장님.”

“은하제 대리.”

어두운 사무실에 손님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이자헌 과장은 고개를 들었다.

사무실 문에 퀭한 인상의 은하제가 팔짱을 끼고 기대어 서 있었다.

“이제 그만하십쇼.”

“…….”

“대체 그놈의 인터뷰를 몇 번이나 진행하고 있는 겁니까. 이제 이사들도 시큰둥해하는 판입니다.”

은하제는 사무실로 걸어 들어갔다.

결국, ‘1월 2일 자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라는 문장을 받고만, 후배의 빈 자리를 어두운 눈으로 한번 훑어보면서.

“벌써 한 달째입니다.”

은하제 대리는 이제 팀원이 없는 D조 조장의 데스크 앞에 섰다.

“한 달쯤 소식이 없으면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게 사람입니다. …보고서 쓴다고 죽은 사람이 돌아오진 않습니다.”

“…….”

“꿈결 수집기 쪽 기록도 결국 사망 송환된 것 같다고 처리됐다면서요.”

그렇다.

꿈결 수집기 녹음 기록에서 실종 직원의 신음과 ‘그럴까?’ 등 짧은 혼잣말이 확인되었습니다.

정예팀 출장 중 변칙 발생한 어둠, 일명 ‘탐라행 고속열차’의 정신착란 증상 중 일부라는 것이 유의미하게 추론됩니다.

해당 직원은 통계적 예측으로 깊은 오염, 또는 사망 상태일 확률이 8할 이상입니다.

그리고 규정상으로도 꿈결 수집기가 반송된 후 30일간 유의미한 동향 보고가 없을 시, 전산상 자동 사망 처리가 진행된다.

이미 끝난 일이라는 것이다.

“…오늘 자 퇴직 명단에도 벌써 등록됐습니다. 과장님.”

김솔음 주임 (사망으로 인한 고용 계약 종료)

…보통 그쯤 되면 죽는 게 확실하니까.

은하제 대리는 마른세수를 한 후 입을 열었다.

“…이제 회사는 지원 안 해줄 겁니다. 죽은 사람한테 돈이랑 시간 쓰는 회사 아닌 거, 알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까지의 수색이나 반복 검토도 김솔음이 워낙 독특하고 유능한 직원이었기 때문에 ‘투자’해 준 것이다.

그러나 탐라행 고속열차는 어떤 기재로 해당 어둠이 발생하는 건지 제대로 된 매뉴얼도 없었으며, 한 달간 재발생한 적도 없었다.

“이런 정리에 의미가 있습니까? 이제 그만둬야겠다는 생각, 안 드시냐고요.”

“예.”

“…….”

의미도 있고, 그만둬야겠다는 생각도 안 든다고?

“이유가 뭡니까?”

“김솔음 주임이 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은하제 대리는 눈을 부릅떴다.

이자헌 과장은 희망을 단정적으로 말하는 재주가 없었다.

그러니까 이건… 정말 그렇다고 본인이 믿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자헌 과장은 이유 없이 믿는 사람이 아니었다.

거의 확실한 증거가 있다는 거다!

“왜,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힌트가 있습니다.”

이자헌 과장은 떠올렸다.

언뜻 보기엔 이 사건과 관련 없어 보이는, 별개의 것으로 느껴질 작년 말의 에피소드다.

-부탁드립니다.

김솔음 주임은 어둠에 투입되며 자신에게 반나절 간 소중한 물건을 하나 맡겼었다.

바로 작은 봉제 인형.

-맙소사. 칼잡이에게 날 맡기다니. 노루 씨!

그 인형이 떠들던, 고풍스럽고 기묘한 말투.

물론 인형에게 대답하진 않았다. 그는 양식 있는 현대인의 모습을 지향하고 있었으며, 인형에게 대답할 의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 말씨에서 익숙함을 포착했다.

그리고 김솔음의 실종 현장인 화장실.

화장실 바닥에는 회사와 관련된 김솔음의 모든 물건이 어지럽게 버려지듯 떨어져 있었으나, 사실 이자헌은 그것보다 거울의 문구에 주목했다.

그 문구의 필체에서도 익숙함을 포착했기 때문에.

“비교해 보십시오.”

그는 해당 거울의 문구를 현상한 사진과 함께, 혹시라도 쓰이지 않게 보관 중이던 낡은 엽서 한 장을 꺼내어 은하제 대리가 볼 수 있게 내밀었다.

이 엽서를 다시 반출하는 것에만 몇 주가 소요되었다.

“이건….”

바로 D조도 몇 번이나 들어가서 클리어했던 방송 테마의 어둠.

그러나 가장 최근의 탐사에서 돌발 상황이 일어나 한 조가 전멸당하고, 한 직원의 기지에 의해 D조는 무사히 탈출하며 A등급 용액이 추출되었던 어둠.

의견이 분분해 아직도 등급이 재조정되지 않은 상태로 연구팀과 심사 파트 사이를 떠돌고 있는, 그 어둠.

퀴즈쇼 신청서

받는 이 :

보내는 이 :

“…화요토크쇼!”

필체가 일치했다.

이자헌 과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김솔음 주임은 그곳에 있을 겁니다.”

어떤 모습이든 간에.

말이다.

* * *

휘황찬란한 조명 속 스튜디오.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와 환호가 관객석에서 스테이지 세트장으로 쏟아진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지금 막 끝난 마지막 코너의 재미에 푹 빠진 관객들이 휘파람까지 불며 환호한다.

사회자는 짐짓 감동받은 듯 과장스럽게 가슴에 손을 올린다.

[아니, 이런 호응을 보내주시면… 하하, 우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까요? 여러분은 지금 브라운의 심야 토크쇼를 시청 중이십… 어이쿠.]

와아아아!

터져 나오는 환호에 놀란 척하던 사회자는 곧 TV에 웃는 얼굴을 띄우며 다시 인사했다.

[아쉽지만, 화가 난 광고주들이 달려오기 전에 가슴 찢어지는 이별을 해야 할 것 같군요. 하지만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내일 다시 만날 테니까!]

토크쇼의 엔딩을 알리는 밴드 합주가 경쾌하고 신나게 울린다.

사회자는 스튜디오 가운데로 나와서 TV 머리를 숙여 정중히 인사한다.

[오늘도 토크쇼를 시청해 주신 시청자 여러분, 지하에서 참회하며 울부짖는 분, 이펍 뷰어를 통해 보시는 여러분까지.]

[내일, 오후 11시 33분에 우리는 또 뵙겠습니다… 즐거운 밤 보내시길!]

밴드 연주가 절정으로 향하는 가운데, 사회자는 양손을 들어 올려 넘치는 박수에 호응한다.

그리고….

[컷!]

쇼가 끝난다.

달칵.

모든 게 일시에 조용해진다.

관객들이 사라진 자리 위, 휘황찬란하던 수많은 조명이 꺼진다.

그리고 백그라운드에 차분한 전등 불빛이 텅 빈 관객석을 비추면, 스탭들이 우르르 나와서 스테이지와 출연자를 정비한다.

나도 그 틈에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솔음 씨!]

사회자의 치하를 받고 있다.

[이리 오시죠. 아주 훌륭했습니다! 당신의 주제와 게스트 선정 솜씨는 정말 흥미롭군요. 매번 딱 맞는 자를 후보로 골라온다는 말이죠….]

음. 좀 쑥스럽다.

‘<어둠탐사기록> 빨인데 말이지.’

‘브라운의 심야토크쇼’라는 이 토크쇼는 사실 내겐 어둠탐사기록 만담처럼 느껴지는 구성이라서 말이다.

다른 점이라면 좀 더 실감 나고 흥미롭다는 거다.

실제로 괴담 속 주민들을 불러서 인터뷰를 진행하니까.

그리고 최근의 초자연적 이슈와 몇몇 사건에 대해 브리핑하며 농담을 만들고, 관객들과 흥미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다.

가끔 멋모르고 꿈인 줄 아는 관객들이 위험한 짓을 하기도 하고, 그 아슬아슬함을 제3 자의 입장에서 지켜보는 스릴감과 코미디가 적절했다.

게다가 관객들은 이제 엽서뿐만 아니라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초대하는 듯했다.

어쨌든, 솔직히 나는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재밌어 보이는 괴담 몇 개 거론한 게 전부인데… 그때마다 반응이 좋다며 다 내 정보력 덕이라고 극찬하곤 한다.

‘생각보다 널널하다….’

인생에서 일이 이렇게 쉽고 재밌던 적이 있나 싶다.

[아, 한 달간 정말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이 소식을 전해줄 수 있어서 정말 기쁘군요….]

브라운의 TV 얼굴에 울망거리는 미소가 떠오른다.

[우리 쇼의 시청률이 또 신기록을 달성했다고 합니다.]

“…!”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상승곡선이라더군요! 그래서 말입니다만. 어떻게, 솔음 씨가 보기에도 재밌고 즐거웠습니까?]

확신 어린 자신감 속에서 약간의 긴장감이 느껴졌다. 나 참.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재밌었어.”

[그렇지요?]

[아니, 이 전설적인 사회자는 당연히 알고 있었습니다. 여기가 솔음 씨가 가장 만족스러워할 직장이라는 것을.]

TV 머리가 빙그레 웃는다.

나도 평온한 마음으로 살짝 웃었다.

무섭지 않다.

이곳에는 나를 위협하는 요소가 없다.

나는 컨텐츠를 만들지, 그 컨텐츠인 괴담을 실제로 경험하지는 않으니까!

그래서 이 토크쇼에서 일하면, 다시는 마음을 졸이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아니, 물론 성과에 대한 압박은 있지만. 그 정도는 삶에 필요한 스트레스 아니겠는가.

이런 것 말이다.

[다만 아쉬운 점이 눈에 들어오긴 하는군요. 잠시….]

브라운이 내 어깨에 손을 두르고 숙덕였다.

[슬슬 정체 구간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코너가 지나치게 반복적이라는 느낌이 드는군요.]

아.

[좀 더 자극적이고 발칙한 발상을 해볼 생각 없나요, 솔음 씨? 좀 더 자유롭게, 투자자와 제작자의 압박이 없는 이 자체제작 토크쇼에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지요…. 그리고.]

텁.

…사회자가 내 어깨를 잡는다.

[지난 한 달간 당신의 헌신은 놀라웠고, 적응은 빨랐으며, 성과는 눈부시지 않았습니까.]

[당신은 분명 할 수 있습니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

나는 약간 긴장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이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예상치 못한 말이 사회자의 입에서 나온다.

[그러니… 이제 때가 된 것 같군요.]

[스탭이 아니라, 출연진으로 이 브라운의 옆에 서보는 것 말입니다.]

“…!”

[내 깊은 진심을 담아 말하는데, 당신은 이미 자격이 있어요. 오, 솔음 씨. 내 친구. 우리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줘보지요.]

[새로운 얼굴은 관객들에게도 좋은 자극제일 겁니다.]

“…아니, 괜찮아. 나는, 관객 앞에 나서는 건 그다지 좋아하지 않….”

[자자, 그렇게 곧바로 단정지으니 이 브라운의 마음이 아프군요! 한번 생각해 봅시다….]

어깨를 둘러싼 손에 힘이 들어온다.

[이 브라운이 보기엔 솔음 씨에겐 분명 질 좋은 쇼맨쉽이 있습니다. 이런 것은 재능의 영역이지요.]

[기억납니까? 당신이 그 바다 위 열차에서 선지자와 교주 노릇을 했던 것 말입니다. 그런 것은 타고난 자만 할 수 있는 일이지요. 그래요.]

[하지만 친애하는 내 친구가 혹시 너무 불안하다면, 몇 분, 아니, 몇 초만 나오는 역할도 준비되었습니다….]

[한번 편하게 생각해 볼까요?]

…….

그 정도는 괜찮나?

그러고 보니, 아예 못할 거란 생각은 안 들긴 하다.

‘일하면 성과를 내야지.’

결국 나는 약간 쑥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음, 아주 작은 역할이라면.”

[그렇지! 좋습니다.]

TV 머리가 기쁘게 웃는다.

[겸손하기까지 하다니, 과연 내 쇼의 MVP 출신답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당신이 우리 토크쇼에 합류한 이후로 즐겁지 않은 날이 없군요!]

그러고 보니, 그게 벌써 한 달 전인가.

대체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르게 흘러갔다.

바쁘고, 즐겁고, 보람차다.

‘스탭들도 의외로 친절하고.’

나는 내게 물을 쥐여주고 사라지는 코디에게 고개를 꾸벅이다가, 무심코 브라운에게 물었다.

“저, 그런데 왜 여기 스탭들은 다들 얼굴이 없는 걸까.”

[아, 쇼를 생각하는 사려 깊은 마음이지요. 생방송에서 생리 현상이나 돌발 사고로 비명, 기침, 말소리 등이 나오는 걸 방지하기 위해 스스로 결단했답니다.]

“프로의식이 대단하네. 저기, 혹시 나도 얼굴을 없애야 하는….”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솔음 씨!]

어이쿠.

[스테이지에 올라가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표정과 얼굴이 필요한 법입니다. 표현력은 엔터테인먼트의 정수이건만!]

[아, 물론 솔음 씨가 굳이 원한다면야…. 대안은 있습니다만. 잠시.]

텁.

사회자가 내 턱을 잡았다.

그리고 마치 견적을 내듯이 응시한다….

[흠. 얼굴을 없앨 순 있지요. 대신 내가 아주 근사한…… 가면을 만들어주겠습니다.]

그건….

…….

“다음에 좀 더 생각해 볼게.”

[그렇지요? 하하! 그 얼굴을 없애긴 아까운 일입니다.]

사회자가 손을 풀었다.

나는 활짝 웃는 브라운을 보며 같이 웃었다.

[아, 나는 다시 다음 방송을 준비해야겠군요. 이번 관객들은… 오, 직장인들이군요. 피로한 그들을 즐겁게 해줘야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솔음 씨도 무대에 올라오는 겁니다?]

“열심히 할게.”

[좋습니다. 아주 좋아요…. 솔음 씨의 멋진 데뷔가 되겠군요!]

음.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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