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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126화


김솔음의 몸이 미로 같이 길고 어지러운 스튜디오의 복도를 달린다.

쿠구구궁.

굉음과 함께 흔들리는 좁은 실내 공간을, 이자헌은 이번에도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주파해 나갔다.

CCTV 같은 시야로 보고 있던 본래 몸의 주인마저도 숨을 죽이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속도, 대담한 움직임.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입니다.”

촬영 중

팻말이 붙은 양문이 보인다. 이자헌 과장은 망설임 없이 문의 잠금을 부수고 진입했다.

쾅!

박차고 들어간 문 너머.

-…!

놀랍도록 광활한 스튜디오 세트장이 나타난다.

그것 자체로도 압박감이 들 만큼 거대한 공간.

그러나 중앙의 메인 토크쇼 무대 세트는…….

이미 제구실을 하지 못할 것 같은 모양새였다.

-…….

조명이 반짝이던 천장은 이미 반쯤 무너졌다. 반파된 조명과 철골의 잔해, 가루가 무대 위 가구들과 바닥을 지저분히 더럽혔다.

그리고 그 틈 사이로도 성화 포격은 끝없이 쏟아지고 있다.

관객석은 혼란에 빠져서 웅성거린다.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그들은 오염 탓에 이 모든 상황을 재밌어하다가, 곧 살려달라며 비명을 지를 것 같았다.

김솔음은 침음을 참았다.

-…생방송은 완전히 망한 것 같습니다.

망가진 쇼 버라이어티의 흔적이, 그곳에 있다….

그리고.

[오.]

반파된 무대 위, 홀로 서 있는 엔터테이너.

[제 발로 오다니.]

사회자.

그것은 단지, 조명이 꺼지고 반파된 스튜디오의 폐허에서 유성처럼 떨어지는 성포들을 조명 삼아 책상에 기대어 서 있었다.

감히 세트장을 부순 게 누군지 이미 알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분노에 차서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단지 고요히, 세트장을 박차고 들어온 김솔음을 바라보았다.

이미 그 몸을 움직이는 것이 친구가 아니라, 긴급 호출기로 깃든 용병이라는 것을 아는 듯이.

-…….

시야 너머의 사회자와 눈이 마주친 듯한 느낌에, 김솔음은 침을 삼켰다.

-조장님.

“예.”

-아마 이제부터… 터무니없는 일이 일어날 겁니다.

사회자가 손을 내밀었다.

마치 여전히 토크쇼를 진행하기라도 하는 듯이, 진행한다.

[기쁘게 소개합니다. 이 사태의 원흉!]

픽.

부서지지 않고 남은 스포트라이트 하나가 김솔음 위를 비추었다.

[토크쇼 세트장을 파괴하고 생방송 중 혼란을 일으킨 건… 오, 놀랍게도 지난 방송에 참석했던 관객이군요!]

[박수로 환영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 야유도 괜찮은 선택이지요!]

단번에 김솔음의 몸을 조종하는 이자헌 과장의 정체를 알아본다.

[이런 극악무도한 짓을 벌인 범죄자에게는 응당 합당한 고난과 도전, 그리고… 벌칙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무대가 점점 더 어두워진다.

[그래, 중세에는 사형 집행이 축제였다고 하지요. 물론 우리 토크쇼는 교수형처럼 재미없는 짓은 하지 않지만요!]

[오늘은 깜짝 신규 코너를 소개해 드리게 됐군요! 바로….]

어둠 속에서 양손을 든 사회자의 실루엣이,

점점 커진다.

마치 벽 뒤로 드리우는 그림자처럼.

더욱, 더욱 거대하게.

쿵.

사방을 감싸던 세트장 벽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허공에 떠 있는 듯한 무대 위,

거대한 구형 TV 머리가 내려앉는다.

쿵!

무대만큼 커진 구형 TV.

그 머리가 마치 스튜디오의 배경 벽을 대체하듯 중앙의 게스트 문을 뭉개고 안착했다.

장갑 낀 사회자의 거대한 손이 마치 턱을 괴듯 TV 아래를 괴고, 나머지 한 손은 총을 쏘듯 김솔음의 몸을 정확히 가리킨다.

[놀라운 묘기! 아찔한 위험! 끔찍하게 재밌고 섬뜩하게 스릴 있는… 벌칙 곡예!]

TV 화면에서 황홀한 수십 개의 전구로 반짝이는 새 표지판이 반짝인다.

브라운의

신나는 벌칙

쿵쿵쿵쿵쿵쿵쿵….

드럼롤이 울린다.

장갑 낀 사회자의 손가락 관절이 세트장을 두드리고 있다.

서커스의 묘기 직전 같은 북소리.

-…분명, 당장 죽이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이자헌은 몸 주인의 조언을 들으며 고개를 올렸다.

-아직 생방송 중이니까요.

검은 TV 화면이.

쏟아진다.

[지금 시작됩니다!]

쿵.

김솔음의 인영을 집어삼켰다.

…….

…….

[자….]

구형 TV가 다시 머리를 들었다.

이제 그 화면 속에는 김솔음의 인영이 갇혀 있다.

관객들이 이 신기한 마술에 흥분하고 재밌어하며 박수를 보낸다.

[그럼, 재주를 한 번 볼까요?]

조명이 반짝인다.

자막이 뜬다.

벌칙 1

해피엔딩 곰돌이

TV 속 김솔음에게 이빨을 벌린 수많은 테디베어 모양 괴물이 쏟아지며 피부를 벗기려 든다.

그에게 홀대했던 예전 주인에게 그랬듯이.

그러나 김솔음의 몸은 놀라운 괴력을 발휘해 테디베어의 주둥이를 맞잡아 서로를 깨물게 하여 위험을 벗어난다.

그는 달린다.

TV 속 풍경이 바뀌며, 갑자기 배경이 생긴다.

도시의 밤. 골목길.

바닥의 맨홀.

벌칙 2

맨홀의 팔

맨홀에서 솟구친 기이한 팔들을 짓밟고, 곡예처럼 가로등에 매달려 김솔음은 위로 올라간다.

그 뒤를 아슬아슬하게 길고 앙상한 팔이 스쳤다.

지금까지 김솔음이 섭외하자고 골랐던 게스트들의 형상을 띈 벌칙들.

무자비하고 익살스럽게, 김솔음을 막다른 길에 몰아넣으려 하나….

[이런.]

김솔음은 모든 걸 아슬아슬하게 돌파해 나간다.

왼팔이 골절되고, 이마가 깨질지언정 잡혀서 벌칙이 끝나지 않는다.

하지만 숫자가 늘어날수록 점점 벌칙은 더 과격하고 끔찍해진다.

벌칙 3, 벌칙 4, 벌칙 5….

철컹!

김솔음은 머리 대신 머리카락 일부를 잘리며, 지성체를 요리하는 별미식당의 칼 아래를 미끄러져 빠져나왔다….

그리고.

벌칙 6

붉은 허수아비

광활한 옥수수밭.

빽빽이 자란 대와 잎들 사이에서, 수많은 팔다리가 달린 괴기한 형상이 사방을 휘감으면 지네처럼 김솔음을 쫓는다.

이쯤 되니 빠져나오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워졌으나….

김솔음의 몸을 조종하고 있는 것은 <어둠탐사기록>의 현장탐사직 네임드, 직원 D였다.

곡예를 하듯 피하며 반격한다. 번뜩이는 흡혈 나이프.

서걱, 허수아비의 팔 서너 개를 잘라낸다. 관객석에서 탄성이 터졌다.

그러나 시간문제였다.

옥수수밭 괴담 속 괴물에게 옥수수밭에서 기믹이 아닌 무력으로 이길 수는 없다.

이미 부상까지 입은 몸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여기서 죽을 거라 예상하고 짜놓은 벌칙인가.’

김솔음은 기다렸다.

기다리고, 기다려서… 허수아비가 덮치듯 달려드는 순간.

-지금!

이자헌은 김솔음의 조언에 따라 방향을 직각으로 틀었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속도로 뛰기 시작했다.

TV 화면을 향해.

“어어!”

“커진다!”

그리고.

[오!]

TV 밖으로 뛰쳐나오는 것에 성공한다.

김솔음의 몸이 바닥을 구르고, 이자헌이 낙법으로 그 몸을 착지시킨다.

와아아아아아!!!

미쳤다!!

관객의 환호가 쏟아졌다.

[놀랍군요! 맙소사!]

사회자는 어느덧 분노도 잊은 듯했다.

중요한 건 좋은 쇼가 완성되었다는 것뿐인 것처럼 밝은 목소리와 함께, TV 속에 웃는 이모티콘이 뜬다.

[6번 벌칙까지 통과하다니, 정말이지 손에 땀을 쥐는 스릴이었습니다! 아, 정말 좋군요. 모두 즐거우셨나요?!]

네!!

관객석에서 환호와 대답이 나온다.

그리고 사회자도 거대한 TV 속에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화답했다.

[자, 그럼….]

[다시 들어가서 7번 벌칙을 받으십시오.]

TV 머리가 다시 가까워져 온다.

[관객들의 환호는 달콤했지요? 그 열렬한 환성에 보답해야죠. 오, 이렇게 반응이 좋은데 끝낼 수는 없지. 계속하십시오. 계속….]

그 순간.

무너진 잔해에서 간신히 스케치북을 꺼낸 얼굴 없는 스탭 하나가, 무대 아래에서 그것을 들어 올린다.

긴급 알림.

[…아하!]

TV가 멈춘다.

[광고 시간이군요.]

관객들의 아쉬운 함성.

[하하, 저도 아쉽지만, 이번 깜짝 코너는 여기서 마무리해야겠습니다. 대신 화려한 쇼의 엔딩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전의 짧은 광고는 오히려 기대감을 키우겠지요!]

거대한 TV 속 웃는 이모티콘이 고개를 숙인다.

[그래요. 카메라가 꺼지고, 관객들의 시선이 사라지고, 무대 위 조명이 꺼지면….]

김솔음의 형상에게.

[끝난 코너의 출연자에게 무슨 멋진 일이 일어날지 과연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요.]

“…….”

[잠시 후에 계속됩니다.]

뚝.

카메라 불빛이 사라졌다.

스탭들은 반파된 무대를 치우러 올라오지 않는다.

웅성대는 관객들의 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는 어두운 무대에서.

사회자는 손을 들어 올렸다.

주어진 시간이 끝난, 쓸모를 다한 깜짝 코너의 출연자를 응시하며.

감히 세트장을 부수고 그의 친구를 박살 낸 무뢰배를 향하여.

그리고, 거대한 손가락이 서서히 맞부딪치며 소리를…….

“브라운.”

손이 멈췄다.

“내 ‘솜 든 몸’은 소각했어?”

…….

[아하, 거기로 돌아갔군.]

[설마 도움을 요청하러 온 겁니까? 참 뻔뻔하군요. 하지만 그것도 방송의 덕목….]

“아니야.”

김솔음이 하는 말을 이자헌은 무감하게 그대로 읊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거든.”

TV 머리에서 이모티콘이 사라졌다.

‘역시.’

김솔음은 확신했다.

지금 브라운은 자신의 속내를 들여다보지 못한다.

그거야, 지금 전면에 나와서 브라운과 이야기하는 건 이자헌이니까.

누군가 스크립트를 읽어준다고 스크립트를 쓴 자의 생각을 전부 읽어낼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리고 자신 역시 그렇다.

‘난 저기 없어.’

그는 모든 걸 간접적으로 보고 듣고 있으니까.

본래 설득에는 상황적 요소가 미치는 영향도 큰 법이다.

그런데 오로지 화면과 대화로만 정보량이 정제되어 들어오니, 김솔음도 위대한 사회자의 ‘설득’에 속수무책으로 넘어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대화가 가능하다.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지 못하면서도, 상대가 하려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무슨 뜻인지 파악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대화’.

“일단 들어볼래? 아마 너도 예상 못 한 질문일 것 같은데….”

[아. 무대 위에선 허장성세도 때로는 실속이 있지요.]

[그러나 그건 엔터테이너가 아닌 자에게나 통하는 짓입니다.]

토크쇼 괴담의 주인이 눈 없이 그를 응시한다.

[이 브라운에게! 어디서 들어본 뻔한 스크립트, 대사, 도시 전설, 담화로 감명시켜 상황을 무마하겠다는 발상이 성공할 거라 여긴다면 그것은 참 안타까운 착각입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니야. 그냥 사적인 질문이거든.”

목소리는 태연하다.

[‘사적인 질문’?]

“응.”

김솔음의 입이 열린다.

“착한 친구로 있는 건 많이 답답했어?”

[ ]

TV 화면이 움직임을 멈췄다.

그러나 여전히 매끄러운 목소리가 나온다.

[주어진 가면을 답답해하는 존재는 무대에 오를 자격이 없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 브라운 역시 가면이 답답하다고 여겨 본 역사가 없습니다….]

“그랬구나. 나는 아까 봉제 인형으로 있으면서 꽤 답답하고 무서웠거든. 혹시 너도 그랬나 했지.”

[오, 동정과 공감의 형성. 전형적이군요. 뻔하고 고루한 판단을 했군.]

[내가 당신과 그 칼잡이를 통째로 소각하지 말아야 할 이유나 장황하게 떠들어보십시오.]

[광고 시간이 끝나기 전에.]

“…….”

김솔음은 생각했다.

자신은 분명, 그대로 탈출하면 근시일 내로 더 끔찍한 결말을 맞을지 모른다는 공포와 예측으로, 배팅하는 심정으로 여기 서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배팅도 가능성이 있어야 할 수 있다.

김솔음 그도 아무 근거 없이 이 자리에 배팅을 걸진 않았다.

그가 잡은 가능성은 이거였다.

“그럼 착한 친구로 있으면서 즐거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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