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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136화


피가 말라 죽는다는 느낌이 어떤 건지 아는가?

몹시 괴로워서 애가 타다가 죽는다는 뜻으로, 주로 길고 끈질기게 신체적, 정신적으로 고통받을 때 쓰는 어휘였다.

지금 우리가 정확히 그렇다.

피가 말리는 느낌.

“…….”

“…….”

사흘 동안.

괴담에 갇혀서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오지 않는 일행을 기다리면서,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한 인간의 상태가 어떤지 체감하고 있다.

그거 아는가?

통으로 사흘 동안 사람이 제대로 자지 못하면 슬슬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하다.

2층 푸드코트에서 돌아가며 한 시간씩 쪽잠을 자지만 그마저도 한계다. 한 시간마다 목숨의 위험을 느끼며 신경이 곤두서는 상태를 반복 중이니까.

‘미치기 딱 좋지.’

……특히, 동행인이 괴담에 처음 휘말린 미성년자라면 더더욱.

“힉! 지, 지금 어디….”

“…56분이야. 이동하자.”

내가 구출해야 하는 고등학생이 절뚝이며 일어났다.

정신 소모가 나보다 더 극심할 것이다. 슬슬 발목보다 어지러움에 비틀대고, 우는 대신 허공에 헛소리를 중얼거리게 되었다.

울 거나 화낼 기력도 없어진 것이다.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니까.’

당연하지만 이 망할 마트에서 구할 수 있는 안전한 식료품은 매우 적고, 평소에 고등학생이 입에도 안 댔을 것들이 대다수다.

……쥐나 바퀴벌레 같은 것.

누가 봐도 마트의 상품으로 취급되지 않을 것들 말이다.

‘사흘까지는 그냥 굶겠다고 할 라인업이지.’

드물게 쇼핑객이 이미 계산하고 나와서 분실한 물건이 푸드코트에 간헐적으로 발견되기도 하는데, 그중에 식료품을 찾아 먹어야 했다.

사흘 동안 딱 한 번 봤다.

인생에서 바나나가 그렇게 반가웠던 적이 있던가.

‘그걸 다시 말하자면 사흘간 먹은 게 바나나가 끝이라는 거지….’

미친 짓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 우리 외의 실종자를 2층에서 마주친 적이 없었기에 경쟁자는 없었다.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실종자들은….

‘대부분… 위층에 있으니까.’

“…….”

어쨌든.

이제 한계였다.

‘내가 맡은 고등학생은 체력도 정신력도 바닥났어.’

푸드코트의 정수기로 물배를 채우는 것도 한계다.

이러다가 이틀쯤 지나면 정말 쥐나 벌레를 잡아먹게 될 것이다.

‘물론 이대로라면 바퀴벌레 먹기도 전에 뭐가… ‘잘못될’ 확률이 더 높지만.’

지금은 한 시간마다 일어나서 화장실에 갔다 오는 중인데, 누구 하나가 졸 거나 쓰러지거나 해서 이 텀이 꼬이면…….

그걸로 끝장이다.

‘…직원을 마주치게 되겠지.’

푸드코트에 주문을 받으러 온 직원이든, 화장실 청소 시늉을 하는 직원이든.

밖으로 안내 당함. 실종 처리.

이 문구만 남기고 사라지는 탐사기록의 한 줄이 되는 것이다.

거부감과 오싹함이 범벅이 되어 등골을 흐른다.

“…….”

솔직히, 사흘간 다리 아픈 미성년자를 데리고 이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살아남은 것도 운이 따라준 것이다.

물론 나도 바보가 아니다. 일부러 이런 상황을 만든 건 아니란 뜻이다.

‘설마 사흘이나 청동 요원을 못 만날 줄은 몰랐지…!’

그래.

내 선임 요원이 증발했다.

미치겠다.

“…….”

첫날에는 서로 타이밍이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

‘혹시 우리가 매대 밑에 몇십 분이나 숨어 있어서, 그동안 2층에서 기다리다가 이동한 건가?’

내가 맡은 고등학생처럼 다리를 다치지 않았다면, 좀 더 공격적으로 탈출 준비에 나섰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고심 끝에 2층에서 계속 기다리기로 했다.

‘쉬려면 2층에 돌아올 확률이 높지.’

사실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했다.

다리가 아픈 고등학생을 데리고 다시 층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은 자살 행위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일단 비교적 안전한 2층에서 대기하는 걸 선택했고, 합리적인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지 않았다.

그래서 둘째 날부터 나는 다른 층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길게는 수색하지 못했다. 다리 다친 고등학생을 몇 시간만 방치해도 죽을 것 같았다.

하지만 무리해서 지하 1층까지 다녀오는 미친 짓까지 저질러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청동 요원은 어디에도 없었다.

적어도, 내가 한 시간 내로 찾아갈 수 있는 범위 내에는.

그렇게 사흘이 흘렀다.

그리고….

‘그러는 내내, 마트는 정상 영업을 시작하지 않았다…….’

영업 종료 전에 탈출을 간곡히 권장하는 이유 중의 하나.

이 마트를 지옥으로 만드는, 민간인 생존율을 낮추는 주범.

현재까지 확인된 마트 영업 재개까지 걸린 최단기간은 하루, 최장기간은 20일입니다.

언제 다시 영업을 시작할지 모른다는 것.

그렇다.

룩키마트의 새로운 날은 언제 시작할지 몰랐다.

때로는 하루 만에 정상적으로 영업이 시작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인간의 체감으로 몇백 시간이 흘러도 하루가 지나지 않을 때가 있다.

‘이래서 점점 현실과 시간 간극이 벌어지다 못해 록키 마트의 시간이 한참 전 과거가 된 것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지.’

그 추측이 얼마나 맞든 상관없이, 중요한 건 지금 처한 현실이었다.

우리가 사흘째 여기 갇혀 있다는 것.

…고등학생의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떠오르고 있을지, 슬슬 두렵다.

“저, 저희 사실, 같은 아파트 사는 애 찾으려고 여기 온 거였는데.”

마침 혼미하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찾으러 왔다고?”

“네, 네. 럭키마트 간다고 디엠하고 실종됐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막 괴담 같다, 찾아낸다 같은 소리하면서….”

맙소사.

“근데 바보짓이었어요. 걔도 이미 죽었을 거예요…. 미, 믹서에 갈린 거면 어쩌죠?”

“…너무 멀리 생각하지 말자.”

나는 고등학생의 어깨를 두드렸다.

“일단, 너는 오늘 나갈 수 있을 거야.”

“…네?”

믿는 구석이 있었다.

나는 지금 청동 요원의 것으로 추측되는 기록을 다시 떠올렸다.

돌발 상황이 발생하여 해당 요원과 사흘간 연락이 두절.

결과 : 구출 실패. 요원 단독 복귀.

이걸 다시 재구성하자면….

‘사흘이 지난 다음에는 요원과 연락이 닿았다는 거지.’

요원이 그때 단독 탈출한 것이다.

비록 구출 실패이긴 했지만, 분명 요원은 민간인을 구조하기 위해 시도는 했을 것이다.

‘영업 재개 전까지 버티려고 하긴 했을 거야.’

그러니까 확률적으로, 오늘은 분명 영업 재개 시간에 문이 열릴 확률이 아주 높았다.

“서, 설마 지금….”

“그래. 잠깐만 기다려봐.”

나는 희망과 기대에 차서 침착하게 손목시계를 보았다.

[ 09 : 59 ]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제 곧, 시간이 바뀌면….

[ 10 : 00 ]

정각.

정적.

“……?”

좀 더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로고송이 나오지도, 안내방송이 나오지도, 전등이 돌아오지도 않았다.

……출입문은 열리지 않았다.

“…….”

마트는, 오늘도 영업을 재개하지 않았다….

‘X발.’

나는 눈을 깜박였다.

잠을 못 잔머리에 서늘하고 둔탁한 충격이 울린다…….

“끄, 끝난 거예요?”

“…….”

“어어, 어어어…….”

“괜찮아. 다른 방법이 있….”

나는 고개를 돌렸다.

고등학생이 뭔가를 부스럭거리고 있었다.

영수증.

그 형태로 위장된 초자연 재난관리국의 안내문이다. 아마 고등학생이 구조 요청용 번호를 발견했던 종이일 것이다.

‘그걸 왜….’

조언이 될 만한 방법을 찾으려는 건가?

그러나 고등학생은 영수증 내용을 보는 대신 안에서 뭔가를 떼어냈다. 그리고 입안에 털어 넣으려고…….

“…!!”

고등학생의 손을 쳐냈다.

“아!”

나는 상대의 손을 억지로 펴서 안에 든 것을 빼앗았다. 저항했으나 무시했다.

“안…!”

…하얀색 캡슐형 알약.

‘이거.’

아는 형태다.

초자연 재난관리국에서 한때 고등급 괴담에 안내문을 배치할 때, 동봉했던… 안락사용 약.

지나치게 괴롭다면 동봉된 캡슐을 드세요.

편안한 끝을 보장합니다.

기분 나쁜 예감은, 그대로 맞아 들었다.

‘망할, 망할 망할!’

이 녀석이 봤던 안내문에는 동봉되어 있었던 것이다.

“죄, 죄송해요.”

고등학생이 울먹거리며 말한다.

“저기, 더는 못 하겠어요. 저 믹서에 안 갈릴래요. 저, 너무 무섭고 어지럽고, 못하겠어요. 편하게 죽을래요….”

숨이 막혔다.

“죄송해요, 저 혼자 편해지려고 해서 그러세요? 그럼 혹시 반 알만 먹어도 죽는 거면, 나눠 먹으면….”

“아냐.”

나는 횡설수설하기 시작한 고등학생을 보고,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최대한 편안한 표정으로 상대의 팔을 두드렸다.

“괜찮아. 나갈 방법은 또 있어.”

“어떻게요?! 지금 사흘째 잠도 못 자고, 못 먹고, 아무것도 못 하고 있….”

“할 수 있어.”

나는 상대를 꽉 잡았다.

“지금까지는 금방 영업이 재개될 거라고 생각해서 최대한 안전하게 버티는 방식을 썼던 거야. 문이 금방 안 열린다면, 또 다른 방법도 있지.”

“저, 정말요?”

“응.”

진실이었다.

…하나만 결심한다면.

-청동 요원을 버린다.

그쪽이 우리를 찾느라 탈출을 못 할 것 같다는 걱정도, 서로의 생사를 확인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도.

일단 버린다.

어차피 청동 요원 자체는 알아서 탈출한다는 기록도 있으니까.

…구출은 실패하지만.

‘그쪽을 따라간 민간인까지 챙기려는 건… 망상이다.’

정신 차리자.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기로 선택했다.

‘우리 둘만 영업 재개까지 버텨야 한다면….’

내 머릿속에서 빠르게 우선순위가 바뀐다.

지난 사흘간 고민했기에, 다음 플랜은 금방 결정되었다.

“우린 위로 올라갈 거야.”

“네…?”

“이거 먹지 말고, 살짝 입에 넣어둬.”

나는 즉각 고등학생에게 노스텔지어 캔디를 배부했다.

가장 좋은 상태였을 시절로 고정시켜 주는, 기묘한 아이템.

“우와…!”

사탕을 입에 넣자마자 고등학생의 눈빛이 달라진다.

“다, 다리가 멀쩡해요!”

“아주 천천히 녹여 먹는다고 생각해야 해. 그건 먹고 있을 때만 통하거든.”

“네…!”

컨디션이 급속히 좋아진 고등학생이 환한 얼굴로 일어섰다. 정신 상태까지 ‘가장 좋을 때’로 돌아간 듯하다.

이런 게 있었으면 왜 진작 안 줬냐고 따지고 드는 그림도 각오했으나, 당장 몸 상태가 좋아지는 신비한 아이템에 흥분해서 그런 건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저기, 마트 3층이 맨 위층이잖아요. 거기 탈출 방법이 있어서 가는 건가요? 거기로 탈출할 수 있어요? 저희 탈출하러 가는 건가요?”

“탈출을 ‘준비’하러 가는 거야.”

그리고….

“3층은 맨 위층이 아니야.”

“…예?”

“3층보다 더 위로 가는 문이 나오기도 해.”

다만.

“거, 거기 가지 말라고 영수증에 적혀 있었는데….”

정답이었다.

해당 마트는 3층 건물이며,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가 마트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4층으로 통하는 비상구를 목격해도 믿지 마십시오. 4층은 마트가 아닙니다.

룩키마트 4층.

이건 <어둠탐사기록>에서 거의 밈처럼 사용되었던 기믹이기도 했다.

‘실종 키워드지.’

4층으로 올라감.

이 문장을 끝으로 모두 사라지는 것이다.

그 앞에 무슨 처절하고 손에 땀을 쥐는 흥미진진한 탐사를 했어도 관계없다. 마치 홀린 듯이, 허망하고 허무하게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끝까지 대체 ‘왜’ 실종되는 건지, 4층에 무엇이 있는지 누구도 쓰지 않았다.

암묵적인 약속이었다.

심지어 실종 과정을 가장 자세히 다룬 케이스도 그랬다.

나는 떠올렸다.

구출 대상이 모두 사망했다는 것을 깨달은 요원의 도전을.

/녹음 기록 시작

최 요원 : 그러니까 저는 지금 3층이고요. 4층 가는 문을 발견했습니다.

최 요원 : 문만 살짝 열어보고 오겠습니다. 저 안 미쳤고요. 4층 이대로 둘 수는 없잖아요. 지금 4층 올라갔다가 실종된 사람이 기록된 것만 거의 세 자릿수 아닙니까?

(요원이 개인적인 변명 및 유언을 남김.)

최 요원 : 4층 가는 문 지금 엽니다. 그리고… 열었습니다. 짜잔!

(문 열리는 소리, 들어가는 소리, 문이 닫히는 소리 연속으로 들림.)

최 요원 : 평범한데요? 그냥 좀 낡은 비상구예요. 계단이 있고…. 진짜 다를 거 없는데. 나가는 문도 잘 있네요.

(몇 분 더 관찰했으나 특이 사항 없음.)

최 요원 : 좋아요. 이제 올라갑니다.

(발소리 메아리 들림. 계단을 올라가는 소리로 추정.)

최 요원 : 어디 보자. 나가는 문도 여전히 멀쩡히 잘 있… 아. ……사라졌네요. 이제 올라가는 수밖에 없겠어요. 가보겠습니다!

(발소리 30초 지속.)

최 요원 : 후우… 도착했습니다. 4층 문 앞.

최 요원 : 외양은 별다를 것 없어 보이네요. 그냥 철문이에요.

최 요원 : …그럼, 열어보겠습니다.

(철문이 열리는 소리. 동시에 럭키마트의 로고송이 울리기 시작.)

최 요원 : 어?

(로고송 점점 커짐. 변주됨.)

최 요원 : 자, 잠깐.

(묘사 불가능한 괴성. 굉음. 바람을 채우는 듯한 이상한 소리, 비는 소리, 풍선을 비비는 소리, 터지는 소리, 식별할 수 없는 12가지의 소리 및 ■■■ ■■.)

최 요원 : (침묵)

최 요원 : 룩키마트에 어서오세요!

이후 24시간 동안 아무것도 녹음되지 않음. 배터리가 끝나며 녹음 종료.

요원의 녹음기는 이후 룩키마트 3층의 전자제품 판매 코너에서 발견됨.

“…….”

절대 4층으로 향하는 비상문을 열지 않겠다고 결심할 만한 기록이다.

하지만.

“괜찮아. 일단 문을 찾으면 어떻게 할 건지 알려줄게.”

우리 목적지는 거기다.

“……네.”

사흘간의 신뢰 덕인지 아니면 노스텔지어 캔디의 신비한 힘을 본 덕인지, 다행히 고등학생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조용히 움직이자.”

우리는 2층 푸드코트를 떠났다.

그리고 멈춘 에스컬레이터를 걸어, 조용히 위로 올라갔다.

해당 파트의 에스컬레이터 점검 시간을 피하긴 했으나, 조금이라도 소음을 내서 직원의 주의를 끌지 않도록 신발을 벗어 맨발로 아주 조심스럽게.

대화도 잠시 끊겼다.

식은땀이 나도록 천천히, 고요히 발걸음을 하나하나 옮긴다.

그리고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3층은….

“아…….”

이상했다.

본래 이전 럭키마트에서 3층은 이벤트 매장용 공간이었다고 한다.

날짜마다 이런저런 테마로 다양한 할인 매대가 번갈아 가며 진열됐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보는 3층은.

“이, 이게 뭐예요…?”

그 진열장이 무수히 반복되고 있다.

끝없는 마트.

2층 이하의 룩키마트가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재연해 두어 기분 나빴다면, 3층부터는 그 공간이… 무한히 확장되어 기괴했다.

현재까지 보고된 마트 3층의 이벤트 매장은 3611개, 넓이는 232㎢입니다.

항상 출발점을 확인하세요.

길을 잃어버리면, 아래층으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를 영원히 발견할 수 없게 됩니다.

거대한 미로, 혹은 정신착란자의 계획이나 그림 속에 들어온 것 같은, 끝없이 반복되는 매대와 특별 상품 전시는 사람을 돌아버리게 하기 딱 좋았다.

하지만 다시 말하자면, 직원을 따돌리거나 숨기 좋다는 뜻이기도 했다.

저 멀리 떨어진 어떤 매장에는 몇 개월이나 직원이 나타나지 않기도 했다고 한다.

‘몰래 식료품이나 생필품을 훔치기도 좋지.’

…탈출을, 포기한다면 말이다.

그러니 몇 명인지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할 실종자들이 이 안에 흩어져 있을 것이다….

어쩌면, 청동 요원도.

“…….”

“…….”

“벽에 붙어야 해. 거기서 비상구를 발견하면 바로 말해주고.”

“네, 넵…!”

우리는 에스컬레이터 뒷벽에 붙어서 천천히 이동했다.

그렇게 함께 끝이 보이지 않는 진열대 선반으로 이루어진, 어지러운 길 속으로 들어갔다.

영업이 끝나 비상등만 들어온 어두운 종합 마트의 진열대 속에서 끝없이 코너가 반복된다.

[캠핑용품 특가 판매]

[윈터시즌 아울렛 행사]

[집들이 선물 이벤트 가격]

[살점 팔아 룩키마트]

[봄맞이 주방용품 대할인]

결국 기괴한 단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는 해당 매대나 간판이 보일 때마다 뒤로 돌아 다시 걸었다.

몇십 분 동안, 에스컬레이터의 위치를 체크하면서 매장과 매장을 건너고 있을 때였다.

작은 소리가 들렸다.

진열대 저 너머 어딘가에서, 둔탁하게 울리는 소리.

-…….

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점점 소리가 구체적으로 변하고, 결국….

-어? 누가 있….

“어?”

고등학생이 퍼뜩 고개를 든다.

-누구세요? 도와드릴까요?

멀리서 말하는 목소리.

“저기, 사람….”

“쉿.”

나는 고등학생과 함께 몸을 낮췄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사람이 아닐 수도 있어.”

“…!”

“그리고…… 사람이라고 해도, 여기 오래 있었던 사람이 정상일까.”

“…!!”

제정신일 리가 없다.

가능성이 미친 듯이 희박하다.

심지어 저렇게 우호적인 척 말을 하고 있다면.

‘위험이지.’

사람인 편이 더 무서웠다.

-저기요. 거기 사람이죠? 제가 도와줄게요.

우리는 벽을 짚고 뛰었다.

도움을 주겠다는 우호적인 목소리가 계속 들린다.

-제 목소리 때문에 직원이 따라오겠어요. 저 나갈 방법을 알아요. 도와드릴게요.

고등학생의 목뒤에 땀이 맺혔다. 나는 목소리와의 간격을 가늠하면서 계속 발을 움직였다.

-어서요. 직원이 보면 안 되잖아요.

‘X발.’

차라리 잠깐이라도 제압을 시도할까? 아니, 그러다가 정말 직원이 몰려오면… 그래, 사람이면 저러다가 직원에게 잡혀갈 때까지 방치하는 게 맞았다.

참고 이동해야… 잠깐.

‘저거.’

문득 고개를 드는 순간, 우리가 타고 돌던 벽 저 앞에 무언가 나타났다.

철문.

초록색 등이 들어오는 비상구. 그리고….

표지판.

[ 3F ↗ 4F ]

“저, 저거…!”

나왔다.

‘4층으로 가는 비상구.’

나는 당장 달려가서 철문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황급히 고등학생에게 당부했다.

가장 중요한 것을.

“절대 계단 올라가지 마.”

“예?”

“문 열고 들어가면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거야. 알았어? 절대 이동하면 안 돼.”

고등학생이 겁먹은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게 내 가설이었다.

최 요원 : 평범한데요? 그냥 좀 낡은 비상구예요. 계단이 있고…. 진짜 다를 거 없는데. 나가는 문도 잘 있네요.

‘…그런데 직원이 계단을 오르니까, 갑자기 문이 사라졌지.’

그럼 반대로 추측하자면 말이다.

-계단을 오르지만 않으면, 3층 문은 없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직 3층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이 발상이 맞다면, 이만큼 안전한 공간도 없었다.

‘직원이 4층으로 올라가려고 했다는 기록은 없었어.’

마트가 아니니까.

결국, 4층행 비상구 안은 사람만 문을 열고 통행하는 안전 구역이 되는 것이다.

그럼 모든 게 더 수월해진다.

‘내가 문신에 챙겨온 음식도 거기선 먹을 수 있어.’

이 문을 열고 나가면 거긴 마트가 아니니까 말이다.

계단참에서 10시가 될 때마다 문을 열어 바깥을 확인하면서, 영업이 재개되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여기에 거는 게 가장 안전하다.’

다리 다친 고등학생 데리고 탈출하려면 노스텔지어 캔디가 무한 보급되는 게 아닌 이상 이게 최선이다.

온갖 4층 실종담이 머리에 남아 무섭지만, 해야 한다.

나는 이를 악물고 철문을 열었다.

끼익.

묘사됐던 것과 동일한 문소리가 나며, 안의 낡은 계단 구역이 모습을 드러냈다.

“들어가자, 조심해서.”

“네, 네…!”

나는 고등학생과 같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혹시 모를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아주 살짝, 비상구 문 사이에 수첩에서 뜯어낸 종이를 끼워 넣어 닫히지 않게 했다.

밖에서 볼 때는 열렸다는 걸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후우.’

이거면 쫓아오던 미친 자식도 따돌릴 수 있다.

그리고 한숨을 돌릴 때였다.

“포, 포도 요원님…!”

고등학생이 숨이 넘어갈 것 같은 목소리로 나를 부르며 팔을 당겼다.

그리고 위를 가리킨다.

“저기…!”

계단 위를.

나는 섬뜩한 기분으로 고개를 들었다.

누군가 4층행 계단에 서 있었다.

창백한 안색의, 퀭한 눈을 한 단발 머리의 여성.

“…사, 사람!”

고영은.

내 동기인 전직 의대생이다.

“…….”

‘……뭐?’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머리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상대의 옷차림이 눈에 들어왔다.

옷깃에 달린 철뱃지.

초자연재난관리국 요원용 신분 증명이다.

‘아.’

기억 속 어떤 말이 머릿속을 지나간다.

-다만 앞서 진입했던 두 요원이 해당 초자연 재난에서 단기 실종 상태입니다.

청동 요원이 언급했던 실종된 두 요원.

“…!”

그중 하나가, 바로 재난관리국에 신입으로 잠입한 내 동기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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