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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146화


사람은 기분이 좋지 않은 날에는 바닥을 보고 걷기 마련이다.

이제는 스마트폰 때문에 좀 덜하다지만, 예전부터 한 번쯤은 다들 경험해 봤던 흔한 일일 것이다.

그러니 모두 한 번쯤은 인도나 도로 바닥에 있는 이걸 무심코 유심히 본 기억이 있을 터다.

맨홀.

길가에 심심하면 보이는 회색 동그라미.

지하에 매립된 수도관으로 접근할 수도 있는, 작업자용 통로다.

다들 알고 있다.

그러니 그걸 덮고 있는 둥그런 회색의 맨홀 뚜껑을 보며, 한 번쯤은 상상해 보았을 거다.

거기서 불쑥 사람이 나오는 상상.

혹은… 내가 그 뚜껑을 열고 들어가는 상상.

물론 현실에서 실제로 접하긴 쉽지 않았다. 애초에 그 뚜껑은 누가 편하게 열 수 있는 무게가 아니니까. 보통 100㎏ 이상이다.

그러니, 보통은 그냥 상상 속에서만 있는 일이지만….

‘일상적으로 상상하던 것이 진짜 현실로 일어나 버리면.’

사람은 순간 더 호기심을 가지고 주목하게 된다.

내가 찾으려는 괴담은, 거기서부터 시작했다.

“…….”

나는 고개를 들었다.

어두운 골목이었다.

시끄러운 사람들의 웃음, 고함, 음악 소리가 바로 근처에서 들렸다. 번쩍이는 불빛과 그 소음이 바로 모퉁이만 돌아나가도 들릴 듯하다.

불야성의 번화가.

하지만 여기는 그림자 진 적막이 흐르는, 퀴퀴한 골목길이다.

발생 위치 : 술집, 클럽, 대학가 등 한밤중 흥분으로 고양된 인파로 붐비는 유흥가 인근의 콘크리트 바닥.

그리고 가로등 하나가 지저분한 골목의 콘크리트 바닥을 비추고 있다.

맨홀 뚜껑은 거기 있었다.

그 적막 어린 불빛 한가운데에 평범한 도시의 길들처럼 아무렇지 않게 자리 잡은 맨홀에는 이상한 점이 있었다.

살짝 열린 채 빠져나와 있다.

사람의 손이.

“…….”

불가사의하게도 약간 치워진 맨홀 덮개 밖으로 빠져나온 팔.

하얀 다섯 손가락이 우두커니 가로등 불빛을 받으며 흔들리고 있다.

마치 도움을 요청하듯이.

지금까지 목격된 팔의 모양새 :

네일아트를 한 초등학생, 환경미화원 유니폼, 니트, 옛날 학생복, 정장, ■■년대 군복, 사마귀가 난 노인의 손, ■■■ 타투로 뒤덮인 손톱 없는 ■■■.

보통 비명을 지르거나 주춤거리거나 어딘가로 신고할 만큼 비일상적인 목격이다.

‘하지만 술이나 분위기에 취해 있다면, 무심코 그냥 접근할 수도 있겠지.’

그것을 노리고 사람을 유혹하는 괴담이니까.

“…….”

나는 맨홀로 삐져나온 손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손이 살랑거렸다.

한 발짝, 한 발짝. 그리고 내 키만큼의 간격이 남았을 때.

“후.”

나는 뒤를 돌았다.

그리고 매고 있던 백팩 안을 헤집고 챙겨온 소금봉투에 손을 넣어, 한 움큼 소금을 집어 들었다.

그대로 왼쪽 어깨 너머로 뿌렸다.

맨홀을 향해.

끼이이이익!!

등 뒤에서 파열음이 터진다. 소금 가루에 맞아서 나는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는 굉음.

그리고 오물이 타는 듯 매캐한 냄새도.

‘윽….’

연기가 피어올라 타고 온다.

그러나 절대 뒤를 다시 돌아보지 않는다. 그냥 제자리에서 버티고 있으면…….

어느새 소리와 냄새가 모두 사라진다.

“…….”

그때 고개를 돌린다.

팔은 사라져 있다.

남은 건 가로등 불빛이 비추는 시커먼 맨홀뿐.

아주 살짝, 뚜껑이 열린.

‘…됐다.’

소금 액땜을 통해 ‘팔’을 쫓아내면 일시적으로 해당 맨홀을 이용할 수 있다.

소금을 양쪽 주머니에 모두 챙겨 넣고 맨홀로 접근한다. 가로등이 비추는 맨홀 뚜껑의 양각 새김무늬와 글자도 점점 선명해진다.

보통 원형의 바깥 부분에는 이 맨홀의 용도이자 목적지가, 그리고 가운데에는 관리주체의 로고가 새겨져 있다.

이 맨홀 뚜껑도 마찬가지로 자세히 보면, 그 ‘목적지’와 ‘관리주체’를 알 수 있었다….

지옥

鬼鬼鬼鬼鬼

이건 하수도로 통하는 게 아니다.

무언가, 다른 곳으로 가는 입구.

“…하.”

나는 뚜껑을 떨리는 손으로 잡아서 밀었다.

무겁다.

하지만 서서히 밀려 나가는 검은 맨홀 뚜껑 아래로, 시꺼먼 구멍이 보인다….

퉁.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아래.

기분 나쁜 공허함.

“…….”

나는 장갑, 마스크, 모자를 제대로 챙겨 쓴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전신에 소금을 뿌린 후, 사다리를 디디며 아래로 발을 옮겼다.

탁, 타탁.

점점 저 위의 소음으로부터 멀어졌다.

빛과 인기척이 사라진다.

아래로. 더 아래로.

나 홀로.

‘…혼자라서 그런지 더 무섭네.’

등골이 오싹했지만 이를 악물고 내려간다. 내가 바로 며칠 전에 정신 나간 마트에서 나흘이나 버텨본 사람이다…!

‘한다.’

나는 이를 악물고 발을 옮겼다.

그렇게 몇십 초, 장갑 안 한쪽 손에 땀이 흥건해질 때까지 내려가면….

철퍽.

바닥에 발이 닿는다.

질퍽거리는 이상한 느낌을 최대한 무시한 채, 기계적으로 발을 옮겼다.

몸을 다 펼 수 없는 어두운 하수도가 눈앞에 이어진다.

기묘하게도 불빛이 없는데 스산한 그 통로가 보였다.

‘미치겠네 진짜.’

등골이 곤두서는 정적, 어둠, 싸늘한 악취를 참으며 좀 더 들어간다. 전화도 카메라도 터지지 않는, 단절된 곳으로….

그러면 어느 순간.

‘…… 있다.’

마침내 발견하게 된다.

“후.”

그건 하수도에 어울리는 녹슨 문이었다.

마치 해자처럼 생긴 원형의 문은 낡은 산업용 현장에서나 볼 법한 지저분하고 무거운 문이었다.

그리고 양각으로 새겨진 단어.

餓鬼

‘아귀’.

탐욕으로 지옥에 떨어져 굶주림으로 괴로워하는 귀신. 혹은 그 귀신이 있는 지옥.

그리고 기묘하게도, 그 문의 왼쪽 옆에는 구멍이 한 개 나 있었다.

…그 너머에서,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

나는 숨을 고르며, 다시 한번 소금을 온몸에 치고 녹슨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숨을 참고, 연다.

끼이이익.

광장같이 넓은 공간이 펼쳐졌다.

돔 같은 반구형 덮개를 씌워둔 듯한 공간은 마치 전형적인 오수처리장처럼 보이기도 했으나….

아아아아!

그 벽을 수많은 손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뼈가 드러난 마른 손, 시체처럼 푸른 손, 손등에 기묘한 문신을 새긴 손, 예식용 장갑을 낀 손, 매니큐어를 바른손….

그리고 그 모든 손이 각기 뭔가를 쥐고 있었다.

‘도착했다.’

어둠탐사기록판 만남의 광장.

‘얼굴 없는 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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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탐사기록 / 특수지역

[얼굴 없는 장터]

: <어둠탐사기록>에 등장하는 괴담에서 파생된 소규모 특수지역.

저승과 이승 사이를 오가며 사람을 유인해 잡아먹는 ‘맨홀의 팔’을 이용해 접근할 수 있는 기묘한 공간.

이곳에 팔만 집어넣으면 ‘맨홀의 팔’처럼 손바닥의 물건으로 상대를 유혹할 수 있다.

어디서나 접근할 수 있으며 신원을 들키지 않고 거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각광받는, 괴담 관계자들의 익명 장터용 공간이기도 하다.

평소라면 절대 마주칠 일 없는 다양한 세력들이 교류하기에 상상만 해봤던 다양한 조합의 상호작용을 읽는 맛이 일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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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여기에 꽂아놓은 팔들은 누군가 접근해 적당한 물건을 내밀 시 반응하여 물건을 낚아챈다.

그 과정에서 손에 들고 있던 판매품을 떨어트리며 물물교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판매자의 욕망에 따라 ‘적당한 물건’의 품목이 정해진다.

인간을 유혹해서 장기를 빼먹고 실종담을 만드는 괴담의 끔찍한 현상을 이용해 거래용으로 쓰는, 기묘한 장터였다.

백일몽 주식회사의 경우, 성향상 적대하는 집단이 많아 그 소속을 들키면 거래를 거절당하거나 공격당하기도 한다. 이 자식들 인성을 생각하면 당연할지도. 이런 특수기록을 보는 것도 재미.

이런 이유로 그간 오지 않았던 곳이기도 했고 말이다.

‘안 그래도 괴담 줄줄 들어가는데 왜 위험 요소를 늘리겠냐.’

외계인 상점같이 돈만 있으면 안정적이고 좋은 거래처를 두고 이런 검증되지 않은 위험한 물건을 살 수도 있는 곳으로 말이다.

근데 지금은… 돈이 없으니까.

그리고 여차해서 문제가 발생해도 백일몽 주식회사가 아닌 신분을 ‘티 낼’ 수 있으니까.

‘후우.’

나는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괴담다운 제약 사항도 떠올리면서.

단, 해당 공간에 2시간 이상 머무를 시, 당신이 쫓아냈던 맨홀의 팔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빨리해야 한다.

사실 읽을 때는 공포보다 흥미 요소가 훨씬 큰 공간인데 막상 오니까 이미지 자체가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공포 게임 속에 들어온 것 같은데….’

뭔지 모를 액체가 바닥에 흐르고 있었지만 최대한 동요하지 않고 무시했다.

나 혼자가 아니었으니까.

“…….”

몇 명의 사람들이 이미 이 공동에서 드문드문 걸어 다니고 있었다.

벽면을 가득 채운 팔들을 확인하며 다니는 그들은 대부분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리고 있다.

간혹 평범한 복장으로 얼굴 다 내민 채 웃으며 걸어가는 사람도 있었으나 나는 오히려 그쪽을 최대한 피했다.

‘저게 진짜 광기지.’

괜히 엮이지 말자.

나는 정확히 원하는 거래처 후보들이 있었다.

익명이라고 해도 개개인의 신원만 모르는 거지, 어떤 세력인지는 힌트가 있었다.

바로 팔 생김새.

괴담 세계관답게 기묘한 특징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식만 충분하다면 소매, 문신, 액세서리 등으로 소속을 특정할 수 있었다.

‘그런 지식이 있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사실상 익명이지만.’

나는 있으니까.

그리고 내가 찾으려는 1순위에도 도드라지는 신체적 특성이 있다. 바로….

“…….”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물건을 잡고 흔들고 있는 유혹적인 팔들 사이로 바싹 마른 손이 보였다.

새끼손가락이 없는 손.

손바닥 위에 놓인 것은 물건이 아니라 피가 묻은 종이 쪼가리였다.

너무 꽉 잡고 있어서 안의 문구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대체 판매를 하겠다는 마음으로 내민 건지 아닌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라, 다니는 사람들이 시선도 주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찾던 게 맞다.

‘저 종이.’

나는 해당 팔에게 접근해 손을 뻗었….

“에이, 그거 벌써 한 5년은 여기 있던 건데.”

몸이 굳었다.

“여기 돌아가는 판을 잘 모르시는구나? 여기 팔들은 실제 사람이 팔 흔드는 게 아니라 그걸 따라 하는 괴현상이거든요.”

누군가 내 어깨를 잡고 주절거린다.

“여기에 팔을 꽂아놓고 5년째 버티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이미 5년 전에 떠나서 고인이 됐을 수도 있다는 거지.”

문제는,

“어때?”

아는 목소리였다는 점이다.

“…….”

나는 뿌리치고 전속력을 다해 뛰는 대신, 뻣뻣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다지 매력 있는 물건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

마스크를 쓴 얼굴에서 보이는 것은 둥글게 휘어 있는 눈가뿐이다.

하지만 그 눈매와 목소리만 들어도 알아볼 수 있었다.

바로 며칠 전에 본 얼굴이었기 때문에.

‘……최 요원!’

내 병실에 병문안을 왔던 초창기 네임드 요원이 거기 있었다.

‘자, 잠깐.’

근데 나한테 말을 걸었다고?

지금 나는 일부러 없어진 오른팔 부근을 마네킹 의수와 솜으로 채운 뒤 외투로 가려놓은 상태였다.

이런 어둠 속에서 팔이 하나 없는 걸 알아보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재난관리국의 베테랑 요원쯤 되면 경험이 많아 알아볼 수도 있겠지만….

‘괴담 세계관에서 팔 잃어버린 인간이 한둘도 아니고.’

확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도망가면 오히려 수상했다.

나는 겨우 진정하고 상대를 보았다.

혹시 이 물건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대화를 건 것일지도 모르니까.

“아~ 팁 하나 더 알려줄까? 이거 사람들은 잘 모르는 건데….”

최 요원이 내가 ‘팔’을 향해 내민 손을 힐끗 보더니, 내게 친밀하게 숙덕였다.

그건….

“손목의 핏줄도 사람마다 모양이 각각 다르다?”

소름이 돋았다.

“거의 지문 같은 건데, 이걸 기억해 두면 아는 사람 찾아내기 딱이야. 사람들이 얼굴을 가리고 체형을 속이고 지문을 태워도 혈관은 못 태우거든.”

“…….”

“그리고 방심하지. 다 가렸다고.”

조졌다.

“후배님. 여기서 뭐 해? 아니….”

최 요원이 씩 웃었다.

“누가 여기를 알려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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