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163화
백일몽 주식회사 관할 어둠을 클리어하면 탈출하는 곳이 회사로 설정되어 있는 것.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진입 경로가 달랐으면 각자 왔던 곳으로 나가도 되잖아…!’
나는 침을 삼켰다.
주변을 둘러보면 탈출정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예외 없이 연구팀 사무실에 떨어진 것 같다.
아니, 왜 쓸데없이 탈출한 사람들이 모조리 전부 백일몽에 처박히냔 말이다. 탈출정이라면 탑승자가 원하는 곳을 물어보는 정도는….
아.
‘설마, 맨 처음에 탈출정에 탑승해서 조정한 게 백일몽 주식회사 사람이라서…?’
그걸 기준으로 목적지가 설정되어 있던 건가.
‘가능성이 충분해.’
문제는 이제 와서 이걸 생각해 봤자 의미가 없다는 거지만 말이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곽제강 과장과 대치 중인 청동 요원을 조용히 눈만 돌려 쳐다보았다.
“그 유니폼 보니까 재난관리국 분들이시군요? 이번에 어떻게 저희 어둠에서 구조요청이 들어갔나 봅니다. 하하!”
“초자연 재난은 소유가 아닙니다. 부적절한 호칭은 삼가십시오.”
요원님!
“아, 뭐. 요원님께선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지만….”
곽제강이 안경 너머로 빙그레 웃는다.
“어쨌든 민간 회사에 무단침입하셨잖습니까?”
“…….”
“하지만 뭐,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클리어한 그런 거겠죠? 하하, 그렇다면 간단한 인터뷰만 해주시면 저희도 따로 청구하는 것 없이….”
“청구?”
“아니, 저희 쪽 클리어 통로를 사용하셨으니 말이죠! 정보 사용료나 인건비, 전문가 자문료 같은 거 말입니다…. 정부 기관이신데 설마 떼먹지는 않으실 거고.”
난 청동 요원이 곽제강 과장을 한 대 쳐도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청동 요원은 화를 내는 대신 경멸 어린 시선으로 상대를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자문을 구한 적 없습니다. 지금 사용한 탈출법도 이미 파악한 정보입니다.”
“허… 그럼 협업이 아니라 무단침입이 되는데요.”
곽제강이 청동 요원을 웃으며 응시한다.
“…….”
청동 요원이 말없이 그 모습을 보면서 재킷 안에 손을 넣는다.
기묘한 긴장감이 조성되었다.
그래.
‘여기… 사이코 제약 대기업 본사 한복판이라고.’
심지어 연구팀.
콜 버튼만 누르면 보안팀 직원들이 달려와서 ‘무단침입자’를 얼마든지 제압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보안팀 직원들은 이미 인간이 아닌 지경에 이르렀던 직원들인 만큼, 베테랑 요원이 두 명이어도 끔찍한 꼴로 제압당할 가능성은 충분했다.
한 마디로 사회적 상식이 통하지 않는 괴이한 적진의 한복판이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 미친 회사라면 공무원 몇 사람 정도는, 그냥 실종 처리해 버리고 실험체로 써버리는 것도….’
“아이고, 삭신이야….”
“…!”
그때, 바닥에 누워 있던 인영이 대놓고 골골대는 소리를 내며 쓱 일어났다.
긴장감을 다 깨트릴 정도로 능청맞은 태도였다.
‘최 요원!’
“아니 무서워서 누워 있을 수가 없네. 뭔 무단침입이니 뭐니… 아니, 괴담 나오다가 불시착한 것도 요새는 침입입니까? 세상에, 이거 야박해서 근무하겠나.”
최 요원은 몸을 일으키며 곽제강과 눈을 마주치며 씩 웃었다.
“우리 재난관리국은 안전 점검할 때 우연히 들어온 사람 봐도 그렇게 야박하게 굴진 않는데….”
“…….”
아, 그렇지.
애초에 백일몽 주식회사가 초자연 재난관리국을 진절머리내는 이유는 그들의 공명심이 쓸데없어 보인다든가 하는 게 아니다.
당연하지만 정부는 괴담의 소유권도 인정하지 않았다. 공식적으로는, 말이다.
그리하여 재난관리국은 백일몽 주식회사가 관리하는 괴담을 파악했는데 종결시킬 수 있어 보이면, 밀고 들어와서 끝내버리려 든다.
바로 ‘안전 점검’ 명목으로.
‘백일몽 입장에서는 재난관리국이야말로 원료 공급처 작살 내는 진정한 재난이라고 할까.’
덕분에 두 세력이 괴담에서 맞부딪히는 탐사기록은 너무 빈도가 번번하지 않도록 규칙까지 세워졌다.
재밌으니까 무분별하게 적는 기록이 많아질 뻔했기 때문이다.
…마치 이번 케이스처럼.
“자꾸 이러다가 서로 살벌해질까 봐 무섭네~ 그렇죠?”
말하자면 최 요원은 앞으로 개같이 귀찮게 굴 수 있다고 곽제강을 압박 중인 것이다.
그리고 두 세력의 베테랑들이 칼 없는 싸움을 하는 동안, 주목을 벗어난 청동 요원이 마치 아이들을 체크하는 것처럼 이쪽을 돌아보면서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 입 모양을 읽었다.
-가만히.
당근이죠.
‘입 닥치고 눈에 띄지 말자.’
여기서 내가 들키면 그때부터 일이 말도 안 되게 커진다.
청동 요원이야 내가 이 회사에서 죽은 척하며 잠적해 퇴사했다고 알고 있어서 신원을 보호해 주려는 거겠지만, 실제로는 그 정도가 아니니까.
‘스파이 업무하느라 사내에선 죽은 걸로 신원을 조작 중인 거라고.’
내가 연구팀에게 신원을 들키고 그 사실이 호 이사 귀에 들어가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득했다.
게다가 내가 자기 뒤통수치고 튄 줄 아는 청 이사에게 ‘김솔음’이 지금 사내에 있다는 게 들킨다면?
나는 침을 삼켰다.
‘…죽는다.’
아니, 죽느니만 못한 꼴이 될지도 모른다. 여긴 괴담이니까.
‘절대 들키면 안 돼.’
나는 아이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눈에 띄지 않고, 최대한 존재감을 감췄다.
어쨌든, 최 요원의 은근한 협박-계속 이러면 더 집요하게 너희 관할 괴담만 추적 점검한다-은 슬슬 결론으로 연결되고 있다.
“시민분들만 챙겨서 가보겠습니다. 뭐, 직원분들 구해드린 건 따로 감사 인사 안 하셔도 괜찮고요~ 하하하!”
깔끔한 중재안이었다.
그러나 곽제강은 미친놈이다.
“…아, 그렇지요. 시민을 위해 근무하시느라 언제나 공사다망하신 거 왜 모르겠습니까.”
그가 서류철을 든 채 활짝 양팔을 펼쳤다.
“그럼 시민들만 챙겨 가시지요!”
“……!”
곽제강이 이쪽으로 걸어온다.
‘…!’
나는 황급히 숨을 낮추고, 정신을 차리지 않은 척 고개를 숙였다.
발걸음 소리.
뚜벅, 뚜벅.
가까워진다.
머리 위에서 들리는 소리.
“그런데 여기 이 오염체들은… 아무리 봐도 정상적인 우리 사회의 시민은 아닌 것 같은데.”
X발.
“여기 보십쇼. 아니, 귀 대신 아가미가 달려 있는데 우리 시민일 리가! 아, 여기는 팔이 하나 더 있고, 또 여기는….”
시선.
“오른팔이 없네.”
소름이 쭉 돋았다.
“아, 물론 오른팔을 사고로 잃어버린 불쌍한 민간인, 아니, 시민일 수도 있지만… 그건 검사해 봐야 아는 일이니까!”
신난 목소리.
“전체적으로 오염도 심하니, 저희가 딱 검사하고 시민분들을 추려서 안전히 보내드리겠습니다.”
‘시민’이 아니면.
자기들이 알아서 처리하겠다는 거다.
“그럼 공사다망하신 요원님들은 다른 일로 바쁘실 테니 퇴근하시고~”
여기서 청동 요원의 인내심이 끊긴 것 같다.
“허튼소리 그만하십시오.”
“허튼소리?”
젠장.
“재난관리국 요원님들 소관인지 확실하지 않다는 건데… 거참. 자꾸 이러시면… 그래. 우리 직원들 증언을 좀 들어보죠. 어이, 진 대리!”
옆에서 곽제강이 진나솔 대리를 흔들어 깨우는 소리가 난다.
그리고 짜증으로 가라앉은 건조한 목소리도.
“…뭐.”
“오, 깼네. 정예팀의 눈으로 보기에, 여기 애들이 다 선량한 민간인으로 보였남? 아니, 내가 억울해서 말이야!”
“과장님은 매일 억울하시잖습니까.”
하지만 진나솔 대리는 상황을 파악했는지, 유리한 사실만 담백하게 진술한다. 젠장!
“…그것들이 새끼인어입니다.”
“오!”
곽제강의 발걸음 소리가 부산스러워졌다.
“새끼인어! 이거 너무 재밌, 아니, 새로운 발견인걸. 그럼 사실… 선량한 민간인이 아니라, 어둠의 부역자 같은 거구만!”
“잠깐.”
최 요원의 목소리가 단호해졌다.
“그건 관리국에서 판단한 일이지, 민간 기업이 자체적으로 결론 내리시면 안 됩니다. 특히,”
보이지 않는데도, 느껴진다.
“당신 개인이 말이죠.”
압박감이.
“…….”
“…….”
“…하하, 의견이 갈리네요!”
짝. 곽제강이 박수했다.
그리고 약간 물러났다.
“말씀대로 제가 너무 섣불리 굴었던 것 같긴 합니다. 그럼… 일단 좀 쉬시면서 대화 다시 나누는 편이 어떻겠습니까?”
“…….”
두 요원은 상황을 계산하는 것 같았다.
아슬아슬하다.
안 돼.
‘여기서 갈등이 더 격해지면 안 된다.’
최대한 부드럽고 온전하게 빠져나가는 게 상책이다.
적대심이 직접 표출되면 가뜩이나 괴담에서 탈출하느라 지친 상황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그러니까….
“대화야 얼마든지 나눌 수 있죠~”
후우.
“저희는 여기서 아이들과 같이 쉬겠습니다. 하실 말씀 정리되면 오세요.”
“하하, 음. 알겠습니다.”
요원들은 절대로 시야에서 아이들을 떼어놓지 않겠다는 듯이 자리에 그대로 앉았고, 곽제강은 어쩔 수 없이 결국 자리를 뜨는 것 같았다.
하지만….
‘수작이 저걸로 끝나진 않겠지.’
나는 눈을 자연스럽게 떴다.
어느새, 마치 이동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는 듯 내 옆에 앉은 요원들이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들으라는 듯이.
“얼마나 걸립니까?”
“뭐~ 길어야 반나절이지.”
최 요원의 목소리에 한숨 섞인 여유가 돌아왔다.
“저런 자식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니고. 지원 올 때까지 잠깐만 있자고.”
다행이다.
아무래도 재난관리국에 연락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틈은 성공적으로 번 듯했다.
문제는….
“잠시만요. 저희 업무 좀….”
연구팀이 그때까지 최대한 수작을 부릴 거란 점이다.
나는 가늘게 눈을 뜨고,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사람을 보았다.
안경을 쓴 다크서클 깊은 연구원이 현장탐사팀 직원들을 수습하고 치료를 받게 하며, 인터뷰실로 인도한다.
[이연화]
연구 1팀 대리.
명찰에 적힌 이름은 어둠탐사기록에서 확인했던 연구원이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위키에 언급될 만큼 특색이 있다는 거지.’
그 특색은….
백일몽에서 연구윤리를 의식하는 소수의 연구원 중 하나.
그게 태도로 드러나는 연구원이었다.
만일 이 상황이 아니었다면 좀 반가웠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마 일부러 곽제강이 보낸 것 같았으니까.
요원들의 경계심을 낮추기 위해서.
“저기, 아이들도 그렇고… 요원님들 기본적인 응급처치는 받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특히 아이들은 출혈이 심하고, 쇼크 상태인 애들도 있어서요.”
“…음.”
이걸 거절하긴 어렵지 않겠는가.
그 연구원에게 악의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기에, 재난관리국 요원들은 연구원이 내미는 회복 물약을 장비로 점검하고 오케이했다.
다만 본인들은 마시지 않았다. 단지 아이들은 꼬리를 뜯어내는 등 험한 일을 겪었으니 상황의 위급성 상 어쩔 수 없이 허가한 모양이다.
“마시렴.”
그렇게 자연스럽게 내게도 회복약이 돌아왔다.
여기 의료실에 배치되어 있는 보급형 빨간 포션.
‘오랜만인데.’
나는 양손을 받으려다가 한 손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왼손으로 받아 들었다.
그리고 물약을 마시는… 대신 그런 척하며 손목의 문신 안으로 액체를 수납했다.
‘혹시 날 알아보고 이상한 걸 준 걸지도 모르니까.’
그게 아니더라도 아이들을 ‘연구’하겠다고 무슨 수작을 부린 걸지도 몰랐다.
…분명 봤거든.
물약을 주는 연구원 몇몇이 신호를 주고받으며, ‘어딘가 다른’ 아이들에게 주는 물약을 고르는 것을 말이다.
‘치료약은 맞지만 뭘 살짝 섞어놨다든가 하는 거지.’
좀 강박일 수도 있지만 나쁠 건 없지 않은가.
다만 이 과정에서 뭔가 깨달았다.
움직이는 순간, 품에서 전에 없던 물건의 존재감이 느껴졌다.
‘…유리 호롱!’
오른팔에서 유리로 만든 호롱으로 돌아온 도깨비불이 내 겉옷 안에 들어 있었다.
“…!”
이거 걸리면 요원인 걸 들킨다.
다시 말하자면, 곽제강의 주목을 받기 딱 좋다.
‘안 돼.’
나는 선량한 민간인 어린아이인 척, 겁먹은 얼굴로 아이들 틈에 껴서 시선을 가린 채 문신에 유리 호롱을 수납하려 했다.
그러나 그 안의 도깨비불에게 격렬한 거부반응이 돌아왔다.
“…!”
문신에… 들어가기 싫다는 건가?
‘젠장!’
어쩔 수 없이, 나는 품이 큰 재킷으로 최대한 그것을 가렸다.
그리고 다시 자리에 앉아서 빈 유리병을 연구원에게 무서운 척 내밀었다.
그러다가 막 눈을 뜬 백사헌과 눈이 마주쳤다.
“…….”
“…….”
-아는 척하면 뒤진다.
-아, 예.
대충 그런 식의 눈 대화가 오갔다고 생각한다. 백사헌은 눈가를 떨면서 휙 앞을 보았다.
솔직히 날 밀고하고 승진하는 그림도 그려보지 않았을까 싶다만….
‘받아 갈 아이템이 있으니까 함부로 행동 못 하겠지.’
이득 계산을 철저히 하는 놈이니까.
나는 탈출 직전, 네크로노미콘을 읽기 위해 백사헌을 이동 수단으로 쓰며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제대로 하면 네 거야.
그리고 탐욕으로 녀석의 심장이 뛰던 것도 말이다.
‘좋아.’
조용히 버틸 수 있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충격으로 멍한 아이들의 상태를 살펴보며 가만히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그 순간.
“D조 귀환했습니다!”
연구실에 알림과 함께 새로운 인물이 입장한다.
나는 퍼뜩 고개를 들었다.
“아, 복귀하셨군요.”
“예.”
무감한 목소리.
그리고… 하얀 도마뱀 머리.
‘조, 조장님…!’
이자헌 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