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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181화


…….

[들립니까?]

들린다.

브라운의 목소리.

고전적이고 유쾌하고 독특한 악센트.

[내 정성 어린 조언은 이미 준비되었습니다만, 아무리 좋은 조언도 들을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의미가 없지요.]

[그런 의미에서 먼저, 노루 씨의 현 상황을 노루 씨에게 제대로 소개할 필요가 있겠군요.]

…내 상황을 나에게 소개한다고?

나는 수화기를 들고, 점점 그 대화가 청각을 넘어 오감을 덮어씌우는 묘한 몰입감 속에 빠져들었다….

….

[보입니까?]

아.

보인다.

[오, 좋습니다. 그럼 소개합니다! 노루의 위대한 모험, 리조트편입니다!]

고전적인 밴드 사운드, 박수와 함께 막이 오른다.

그건….

‘나잖아.’

마치 시트콤을 되감기 해서 보여주듯이, 내가 이 유쾌 테마파크에 진입한 첫날부터의 나날이 상영되기 시작했다.

보안팀 유니폼을 입은 채 리조트 시설실에서 눈을 뜨는 나.

[재밌는 코스튬입니다! 제법 근사하지 않습니까? 벨트에 구속된 야수라, 전형적인 공포와 매혹이군요. 하지만 나쁘지 않습니다. 나쁘지 않아요….]

딩동! 딩동! 딩동! 딩동!

유쾌한 효과음과 함께 내가 했던 일들이 편집되어 지나간다.

[저건 당신이 이 리조트에 주인이 되던 순간입니다. 흐음, 마스코트의 데포르메가 다소 유치해 보입니다만… 좋습니다. 여긴 테마파크니까요!]

[직원 모두에게 노란 보타이를? 이런! 차라리 모조리 마스코트 탈을 씌우는 게 나았겠군요! 세상에!]

웃음소리.

[맙소사, 선물 공세와 무료 스파 시설까지? 이 세상 모든 우울한 종자들은 다 달려갈 만한 파격적인 프로모션입니다. 그 전에 이 리조트가 파산하지만 않는다면 말이지요!]

빠르게 편집된 장면들이 넘어간다.

유쾌한 말솜씨가 내 처절한 생존기를 마치 즐겁고 성공적인 리조트 운영기처럼 묘사하고 평가한다.

[죽었던 직원이 성공적으로 일어나 다시 근무를 시작합니다! 이렇게 노루 씨는 훌륭한 마스코트의 교훈 하나를 더 배웠군요.]

[‘사람은 고쳐 쓸 수 없으나, 직원은 고쳐 쓸 수 있다’!]

나는 기묘한 기분을 느꼈다.

‘…내가 저랬다고?’

이상한 느낌이었다.

결국 몰입이라는 건 내가 겪는 일이 아닌 것에 푹 빠지는 것이다.

즉… 거리감을 전제로 한다.

그리하여 회상 속 노란 마스코트의 행동은 내게 평가된다.

[하나 더! 리조트의 품격에 맞지 않는 자가 또다시 로비 밖으로 던져지는군요!]

나는 지난 며칠간 어느 순간부터 이용규칙과 근무수칙을 끝없이 추가하며, 리조트의 강력하고 섬뜩한 운영자로 거듭나고 있었다.

전형적인 유쾌 테마파크의 마스코트.

그건… 그건.

[보십시오. 당신의 철저한 투숙객 선별 과정을!]

리조트가 성공적으로 운영될수록 점점 더 강력해진다.

더 확장되고, 더 이용자가 많아지고, 평가가 좋고 매출이 오를수록 나는 안전을 넘어 불쾌감 유무로 운영 방침을 판단하기 시작했다.

‘잠깐만.’

위화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리고, 그리고… 마침내 내가 ‘몸’을 바꾸던 장면으로 이어진다.

회상 속 나는 보급형 마스코트로 의식을 옮겨 자연스럽게 리조트 안의 소요 사태-이성해 씨가 무당벌레 직원을 죽인 것을 수습하고 있다.

…이렇게 보니, 정말로 인간의 것이 아닌 관점이며 능력이었다.

[바로 이 장면이군요. 내가 노루 씨에게 주는 첫 번째 조언입니다.]

[집중해서 확인해 봅시다. 다만….]

테이프 소리와 함께 장면이 되감긴다.

[이번에는 다른 시점에서 봐도 재밌을 겁니다.]

리조트의 보급형 마스코트에게로 떠난 내 의식.

그리고 남은 건… 내 몸이다.

파란 구역으로 가는 게이트에 서 있던 노란 마스코트는 잠시 가만히 서 있더니, 곧 게이트에서 이용객들에게 풍선을 나눠주고 인사한다.

보급형 마스코트들처럼 말이다.

‘…!’

다행이다. 저기 그대로 있었구나.

파란 구역 게이트 옆에 있었으니 해코지당하거나 행방불명되진 않았을 것이다.

…내 몸도 보급형 마스코트처럼 취급될 수 있다는 것에 섬뜩함이 직후 몰려오긴 했지만.

어쨌든 엄청난 안도감이 순간적으로 몰려왔다.

이제 내 몸을 찾아와서 얼른 세레머니 의식을 진행하면 되겠다!

고 맙 …

[쉿! 조금만 더 감상해 봅시다.]

그러나 ‘조언’은 끝나지 않았다.

[어디 보자… 이제 등장하는군요. 오, 불결하고 무례한 침입자가!]

어지럽다.

회상이 빠르게 진행되더니, 곧 방금 벌어진 매직버니의 미친 게이트 습격으로 이어진다.

빨간 마스코트에게 고문당해 정신이 나간 실종자들이 울부짖고 빌며 미치광이가 된 채 죽는다.

처참한 지옥이었다.

[깜짝 습격이라! 긴장감이 고조되는 짜릿한 사건이군요. 오오! 당신의 대응도 아주 재밌습니다!]

한때 평범한 사람이었던 수많은 실종자 하나하나가 섬뜩한 몰골이 되어 빨간 마스코트를 부르짖고, 장난처럼 살해당하고, 빨간 마스코트로 다시 일어선다.

그리고 장면 속의 노란 마스코트는 분노한 채 그 빨간 마스코트의 시체를 도로 게이트 너머로 던져 위협했다.

구역을 침범당한 그 마스코트의 검은 그림자에서 기묘한 황금빛 가지가 울룩불룩 솟아났다가 사라진다….

…….

잠깐만.

분노했다고?

저 광경에 참담해하거나 공포에 질리는 게 아니라, 영역을 침범당한 분노가 먼저 솟아났다고?

이용자에게 벌을 주려고 했다고?

이 상 해

정말 그랬다.

섬뜩함이 등을 타고 차오른다.

결국, 나는 내 행적에 대한 평가의 결론을 내리게 된다….

-완전히 오염됐다.

나는 노란 마스코트로서 이미 이 리조트에 완전히 동화됐다.

탈출을 위해서 움직인다는 명목하에 어떻게든 리조트를 성공적으로 확장하려 든다.

그리고 안전을 위해 만들었던 리조트의 원칙, 예의와 품격에 도리어 지배당하고 있다.

…목적과 수단이 도치되고 있다.

이 상 해

나는 두 팔을 허우적댔다. 그리고 깨달았다.

왜 나는 아직도 오른팔이 있지?

여기 들어온 지 닷새째였다.

그런데 왜 내 오른팔은 아직도 잘 움직이고 있는 걸까.

내 오른팔을 흉내 내주는 도깨비불은 사흘마다 충전해야 하는데, 왜 반응도 없지?

내가 파란 구역 게이트 부근에 두고 온 내 원래 몸에서도 오른팔은 없어지지 않았다. 나는, 나는….

마스코트 탈 형태만 있어도 오른팔을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오싹한 깨달음이 등골에 흐른다.

‘대체 얼마나 마스코트에 잠식당한 거지?’

단순히 마스코트가 되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느냐가 아니라, 리조트가 성공적으로 운영될수록 이 잠식이 심해졌던 거라면….

[그렇습니다. 당신은 이 리조트의 마스코트 역할에 지나치게 충실했습니다. 그리고….]

[이미 늦었군요.]

[당신은 이제 임의로 그만둘 수 없습니다. 유쾌 테마파크의 일원인 겁니다.]

손이 떨렸다.

[심지어 방금 참견 많은 전임자도 직접 쫓아내 버렸지요. 이제 이 리조트는 완전히 당신의 소유인 겁니다!]

그럼.

벗 어 나 ?

[오,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안 돼.

[그리고 마지막 공표만 이루어지면 모두가 이 사실을 알게 되겠지요. 곧 시작될 당신의 행사, 플라워 골든 리조트의 일루미네이션 말입니다.]

…마스코트 세레머니 의식.

마스코트 세레머니 의식은 플라워 골든 리조트가 어떤 마스코트의 구역인지 공표하고, 이용객들에게 공인받는 의식이다.

성공적으로 치르면 그 명성을 디딤돌로 삼아또 다른 시설을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세레머니 의식은 마스코트로서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이다.

그러니까 그 의식이 성공적으로 완성되는 순간….

-나는 완전한 마스코트로 공인받는다.

이 리조트의 완전한 주인.

모든 정체성이 물들어, 마스코트를 그만두고 분리될 찌꺼기 자아도 남지 않을 상황이 도래하는 것이다…!

‘안 돼.’

[흠. 동의합니다. 이런 케케묵은 리조트에서 여생을 보낸다니, 그런 재미 없는 일이 있을 수가!]

[노루 씨, 당신은 계속 재밌는 일을 경험하고 보여줘야 할 의무가 있는데 말입니다. 이건 당신이 친구에게 직접 약속한 사항입니다….]

친 구

[그래요. 내가 바로 당신의 친구입니다. 당신이 이곳에 방문하려던 목적!]

친절한 목소리가 안내한다.

[이곳에서 나가고 싶지요, 노루 씨?]

그렇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내 조언을 계속 듣는 편이 좋겠습니다. 수화기만 챙겨가도 괜찮답니다. 친구. 자, 어서 선을 뽑고 챙기세요. 그렇지….]

나는 떨리는 앞발로 수화기를 선을 뽑아 챙겨 들었다.

떨어진 수화기에서 여전히 목소리가 나온다.

[좋습니다…. 아주 좋군요!]

[그럼 이제 내 마지막 조언을 들려드리겠습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무려 이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마법 같은 해답입니다! 바로….]

목소리가 속삭이듯 낮아진다.

[직원 중 하나와 마스코트 자리를 바꿔치기하는 겁니다.]

……!

[새로운 마스코트를 만들어낼 필요도 없지요! 그냥 그가 당신을 흉내 내도록 만들면 됩니다.]

[그자가 당신 대신 의식을 치르게 하면, 결국 당신으로 오해받게 될 겁니다. 본래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면 그게 현실이 되는 법이니까요. 아, 정말 재밌겠군요!]

[누군가는 그 운명을 좀 안타까워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어차피 당신을 위해 존재하는 자 중 하나를 고르면 되지 않겠습니까!]

[당신에게 계약이 끝나는 날까지 영원히 사역하기로 맹세한, 이제 돌아갈 곳이 없는 두 직원 말입니다.]

들소.

무당벌레.

죽었다가 살린 자들.

[그렇습니다. 선택받은 그자는 당신의 마스코트의 직분을 성심성의껏 이어갈 겁니다…. 흠, 빨간 마스코트에게 산 채로 뜯어먹히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여 노루 씨 대신 마스코트 세레머니 의식을 진행하게 만들어봅시다!]

…….

[아주 쉽지요? 감히 짐작해 보자면, 이건 이미 결정된 사항이나 다를 바 없겠습니다….]

목소리가 고조된다.

[당신의 마음이 가리키는 하나, 그 이름을 말하자면…?]

…….

[노루 씨?]

없 어

[음?]

나는 후들거리는 몸을 일으켜서 시설실 문을 잡았다.

폐장까지 남은 시간은… 45분.

세 레 머 니

내 가

할 거 야

[…오. 설마 이 케케묵은 테마파크에서 여생을 보내겠다는 말은 아니겠지요, 친구? 이보다 더 당신의 재능을 발휘하기 합당하며, 더없이 근사한 직장도 매몰차게 거절한 당신이 말입니다….]

아 니 야

[그럼 다른 대안이 있습니까? 놀랍군요! 이 브라운의 조언을 거절할 정도로 대단한 방법이겠지요?]

나는 시설사무실에서 비장하게 걸어 나왔다.

그리고 수화기에 선언했다.

내 계획을.

리 조 트

폭 파 할 거 야

[……?!]

당황한 듯 잠시 수화기 너머로 침묵이 흘렀다.

물론 전설적인 사회자는 금세 매끄러운 말을 쏟아낸다.

[맙소사. 노루 씨, 이 리조트가 파괴된다고 당신이 마스코트 직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세상에, 도리어 어마어마한 비용을 감당해야 할 텐데요.]

[그 파격적이고 쓸모없는 선택은 대체 어디서 나온 겁니까?]

쓸 모 있 어

그사이.

나는 파란 구역 게이트 쪽에 서 있는 내 몸을 이용해, 파란 마스코트와 대화를 끝냈다.

재 밌 을 거 야

친 구

[…오, 이런.]

좋아.

나는 심호흡 했다.

…해보자.

* * *

같은 시각.

플라워 골든 리조트의 야간 정원.

‘아, 아직도 있어…!’

매직버니들은 계속 응시한다.

귀여운 토끼 마스코트가 미동도 없이 플라워 골든 리조트의 정원을, 그 안의 직원들을 바라보고 있다.

“…….”

수십 구의 인형탈이 말없이 나를 쳐다보는 것.

이질적이고 섬뜩한 경험이다.

그 인형탈들이 사람 내장을 뜯어내며 웃는 것을 불과 몇십 분 전에 봤다면 더더욱.

몇몇 직원들은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다만, 이건 온전히 저 섬뜩한 응시 때문만은 아니었다.

“왜, 왜 안 오지??”

노란 마스코트의 부재!

그들을 모두 마스코트에게 ‘투숙객을 챙겨라’라는 직접적인 지시를 받았기에 근무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매직버니의 인형탈을 끌고 리조트로 달려간 그들의 고용주는 아직도 오지 않았다.

10분, 20분이 마치 한 시간처럼 흐른다….

“아니, 지금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아는 거겠죠?”

“40분입니다.”

“…….”

“폐장까지 남은 시간은 40분입니다.”

예…….

재난관리국 요원은 주춤주춤 도마뱀 가면을 쓴 백일몽 직원을 피해 팀장의 뒤로 숨었다.

팀장은 한숨을 참았다.

‘…여차하면 준비하고 있어야 하나.’

그녀는 품 안에 있는 사인검을 다잡았다.

그리고 전투를 준비하는 것은 그녀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백일몽 주식회사의 직원 중 몇 녀석은 몸을 푸는 듯한 동작을 하고 있었다.

도마뱀. 돌고래.

‘…한가락 하는 녀석들 같군.’

정예팀인가.

그녀가 날카로운 눈으로 그들 가면에 황금마크가 있는지 살피고 있을 때였다.

돌고래 가면을 쓴 자가 손뼉을 치며 손을 흔들었다.

“오셨네여!”

“…!”

정말이다.

저기, 리조트에서 노란 인형탈이 뒤뚱거리며 열심히 뛰어오고 있었다.

유리 황금꽃으로 뿔을 장식한 마스코트.

그 순간, 팀장의 등목에 소름이 쭉 올랐다.

‘…강력해졌다?’

그가 어딘가 모르게 더 강대한 존재로 느껴진다.

지배력 같은 것이 피부에 와닿는 듯하다….

그러나 외양의 차이는 없다.

‘뭐지?’

뭐라도 잡아먹고 왔나?

하지만 그 의심이 어쨌든 간에 노란 마스코트의 제법 상냥한 태도는 편하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직원들을 챙기듯 하나하나 돌아보더니, 모두가 무사한 것을 확인하자 우르르 다른 마스코트들을 불러 모아 섰다.

이 제

시 작

팀장이 손을 들었다.

“잠깐만.”

“…!!”

“티, 팀장님!”

“행사 끝나고 놀이공원 폐장하면 저게 온다며? 뭐 대비책 있어?”

노란 마스코트가 팀장을 돌아보더니, 손을 내민다.

괜 찮 아

그리고 가리킨다.

너 희

저 리 가

“…?!”

그렇게 폐장 30분을 앞둔 시각.

지연됐던 화려한 일루미네이션 행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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