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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188화


우주 쇼핑몰.

내가 거기서 쓴 돈이 얼마쯤 되더라.

품목을 하나하나 모두 기억하지 않더라도 몇억 단위라는 것은 쉽게 도출된다.

웬만한 수도권 아파트 전세 보증금만큼을 그 쇼핑몰에 박아서 온갖 아이템을 구매했었다.

그러고 나서 어느 날 받은 게 그 황금 카드였다.

나는 우주 쇼핑몰 VIP!

~감사 세포 동봉~

나는 저 감사세포라는 게 대체 무슨 뜻인지 감도 못 잡고 있었다.

오늘 이 순간까지는.

“고객님.”

고개를 들었다.

내가 혀 아래에 세포를 붙였던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후로 무엇을 했는지 희미하다.

그러니까… 잠깐 졸았나.

“고객님.”

잠시만요. 과장님. 제가 지금 상황 파악을… 잠깐.

고객님?

“과장님?!”

“아닙니다.”

나는 그제야 눈앞의 대상을 제대로 확인했다.

도마뱀이 나와 멀뚱히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과장님.”

“아닙니다. 고객님.”

두 번이나 확실한 부정의 표현을 들었다.

나는 다시 자세히 눈앞의 파충류를 보았다. 비늘 덮인 주둥이와 번뜩이는 세로 동공은 그대로였다.

근데 색이 다르다.

‘회, 회색이잖아.’

웬 회색 도마뱀이 방금까지 이자헌이 앉아 있던 자리에 앉아 있었다!

식탁 위에 내가 황급히 차려놓은 과자와 커피도 사라졌다.

나는 침을 삼켰다.

“누구십니까.”

“저는 우주 쇼핑몰의 판매 의사를 대행하여 나온, VIP 고객님의 개인 쇼핑을 도울 쇼퍼입니다.”

맙소사.

“쇼핑을 진행하시겠습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나는 아직 모텔방 식탁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맞은편에 앉아 있던 이자헌 과장은 웬 비슷하게 생긴 외계인으로 대체… 잠깐만.

우주 쇼핑몰 VIP 쇼핑?

설마… 지금 일종의 직원이 나와서 나에게 퍼스널 방문 판매 같은 걸 하고 있는 건가?

‘…과장님!’

방금까지 제가 완전 오염됐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잖습니까!

설마 오염에 좋은 아이템을 팔려는 빌드업이었습니까? 아니, 그거여도 일단 오염을 뺄 수 있다면 나쁘지 않긴 하다만!

나는 겨우 진정하고 자리에 다시 앉으며 재빨리 말했다.

“도마뱀 과장님과 대화하고 싶습니다.”

“백일몽 주식회사에서 과장 직급으로 근무 중인 이자헌이라는 개체를 의미합니까?”

나는 멈칫했다.

“그가 당신과 우호적인 관계를 쌓은 개체이기 때문에 심리적 안정을 위하여 필요로 합니까?”

“만일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문제가 없다는 것을 설명드립니다.”

도마뱀의 주둥이가 벌어진다.

“우리는 노루 씨를 알고 있으며, 그것은 이자헌 과장이 아는 것과 완전히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

“또한 우리는 당신과의 관계를 앞으로도 우호적으로 유지하고 싶습니다. 고객님.”

“…….”

기묘했다.

그러고 보니, 이자헌 과장은 자주 ‘우리’를 주어로 소개하거나 이야기를 꺼내곤 했다.

그리고 내가 썼던 버튼의 이름이… ‘우리가 도움’이었지.

우리.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연합입니다. 이자헌에게 말하는 것과 지금 당신 앞에 있는 개체에게 말하는 것은 모두 연합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대화가 점점 형이상학적으로 흐른다.

그러니까… 하나의 기억과 감정을 공유하는 기묘한 외계 생물의 집단….

‘이런 괴담도 있다고 듣긴 했는데.’

누가 외계인 상점 아니랄까 봐 SF적이다. 나는 머리를 부여잡고 말했다.

“그냥… 이자헌 과장님과 이야기하겠습니다. 지금 쇼핑할 마음은 없어요.”

“노루 씨.”

“……!”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하얀 도마뱀은 여전히 이자헌이 아닌 다른 개체다.

그러나 똑같은 말투로 말한다.

“당신은 도움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쇼핑의 형태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때 적절한 처치를 받으십시오.”

“…무슨 처치를 말입니까?”

“저는 쇼핑을 도와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존재합니다. 우주 쇼핑몰의 VIP 쇼핑을 시작하시겠습니까?”

동문서답이었다.

그러나 뉘앙스를 캐치한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쇼핑을 해야만 진행할 수 있다는 건가.

“…예.”

“알겠습니다.”

회색 도마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다음 순간.

식탁이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

왼쪽으로 끝없이 늘어나는 식탁의 위로 안개에 가려진 물건들이 올라온다. 그리고 그 물건의 앞을 서성이는 촉수들… 아니, 잠깐. 여기 대체 어디야?

“당신이 섭취한 세포를 통해 접근했습니다. 홈페이지 UI에 대한 컴플레인을 통해, VIP에게는 가장 친숙하고 편안한 공간에서 쇼핑이 가능하도록 서비스….”

“제가 지금 입 밖으로 질문했습니까?”

“예. 편안히 앉아서 쇼핑을 즐겨주십시오.”

도마뱀이 굉장히 프로페셔널하게 말한다. 아니, 잠깐만, 내가 세포로 접근 당했다는 건 대체 무슨….

“그럼 쇼핑에 앞서서 본인 확인을 진행하겠습니다. 이 상태로는 거래 의사의 명확한 확인이 어렵기에, 편안한 구매를 돕기 위해 구분하겠습니다.”

“구분이요?”

“예.”

끝없이 늘어선 식탁 자리에 사람들이 나타난다.

“…!”

안개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가까이 있는 자들일수록 희미하게 인상착의가 보였다.

마트 캐셔의 복장, 고급스러운 정장과 맵시 있는 장갑을 걸친 방송인, 교육서를 든 유치원 선생님,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

내가 겪었던 괴담들.

괴담 속에서 오염된 나.

“……!”

그리고 내 가장 가까이에 앉은 두 개체는 안개에 휩싸이지 않아 확실히 형체가 보인다.

나는 삐걱이며 고개를 돌려 확인했다.

노란 마스코트.

검은 고양이.

괜 찮 아

진 정 해

[이쪽]

내게 말까지 건다.

소름이 쭉 올라왔다.

그들의 식탁 앞에는 각자의 괴담을 상징하는 장식과 색이 더해져 있다. 나는 식탁에서 벌떡 일어나 도망치려….

“고객님. 당신은 지금 세포를 통해 우주 쇼핑몰과 연결된 상태입니다. 해당 심상은 정신의 투영일 뿐이며 실제로 인격과 자아의 분리가 이루어진 상태는 아닙니다.”

“…….”

“자기 자신을 필요 이상 경계하지 마십시오.”

“…제 오염을 형상화한 겁니까? 구매할 때… 의사결정에 참고하라고?”

“유사합니다.”

미치겠다.

나는 일단 도로 자리에 앉아 관자놀이를 눌렀다. 노란 마스코트가 안절부절못하며 챙겨주려고 했다.

환장하겠다.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무엇을 말인가.

“원활한 쇼핑을 위해 가까이 앉아 있는 심상들의 인상착의를 다시 한번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

나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건 조언이다.

그리하여 눈을 들어서 탁자를 채운 ‘나’를 보았다.

여긴어디지?혼란스럽다교육서를다시찾아오자교육서를버린건정말엄청난실수다

룩키마트에 어서오세요!

[졸업식이 곧 다시 시작된다. 나는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

-독특한 곳이다. 심층 취재해 가면 위대한 사회자님께서 내게 새 코너를 준비해 주실지도 몰라!

토할 것 같다.

그러나 그 거부감은 내가 아는 것들이기에 오는 것이다. 잘 알기에 상상할 수 있어서 오는 두려움이다.

하지만….

“…….”

나는 가까이 앉은 면면을 보았다.

안개에 휩싸이지 않아 비교적 선명히 볼 수 있는 인상착의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말이다.

“넌 누구지?”

내 옆에 앉은 거대한 마스코트에게 가려진, 바로 그다음 자리에 앉은 자.

거적때기 같은 낡은 천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처음 보는데.”

내가 모르는 나.

침 입 자

마스코트가 몸을 돌려 그자를 향한 시야를 틔워준다.

나는 더 확실하게 그 모습을 보면서, 그 미지의 내가 걸친 거적때기의 재질을 눈치챘다.

그건… 낡은 양피지였다.

“너.”

나는 낯선 를 보았다.

“그거 벗어.”

“…….”

식탁에 앉은 것이 천천히 양피지 거적때기를 머리에서 내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주홍색 청소복을 입고 있는 나.

-들켰네.

무명찬란교의 흉내장이가 나를 보고 머리를 뒤튼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쇼핑에 방해되는 것을 가리겠습니다.”

다음 순간.

식탁에서 청소복을 입은 내가 사라졌다.

“…….”

심장이 쿵쿵 뛴다.

“고객님. 방금 심상 속의 당신에게서 연상되는 것이 있습니까?”

“예.”

기억났다.

나는 인벤토리 문신 안에 손을 넣어서, 잊고 있던… 아니, 잊히도록 잠식된 물건을 꺼냈다.

둘둘 말린 낡은 양피지.

흉내장이 경전 4절

이야기 탈취자

내가 징계를 받고 회사 지하에서 청소하면서 만났던 흉내장이를 경비반장이 처치했을 때 나왔던 아이템.

무명찬란교의 신성법 조각.

이 아이템의 효력을 막기 위해 ‘포장지 12B357나’로 감싸두었던 것도 기억난다.

‘그리고… 탐라행 열차에서 방어를 위해 포장지를 풀어서 몸에 감쌌었지!’

그 후로 브라운의 심야토크쇼로 빠져들면서 이 무명찬란교의 신성법을 떠올릴 기회가 아예 없었다.

아니… 어쩌면 어느 순간부터는, ‘떠올리지 못하도록’ 내 서사가 조작되었을 수도 있지.

‘…방금, 굿즈박스에서 무명찬란교에서 기원한 오르골을 받지 않았다면 아예 잊을 뻔했어.’

출신이 같은 아이템을 직전에 본 덕에 연상해 낸 것이다.

그리고….

“고객님. 양피지가 무언가를 삼키고 있습니다.”

“예.”

나도 보았다.

나는 이 양피지에 거의 녹아들고 있던 검은 원통형 무언가를 억지로 분리하듯 빼냈다.

만년필.

“…!”

백사헌에게 눈을 주고 역으로 받아냈던, 세광공업고등학교에서 나오는 세뇌용 아이템이다.

‘이것도 잊어버리고 있었어.’

나는 깨달았다.

아무래도 신성법은 이 만년필의 서사를 탈취하고 있던 것 같다.

그걸 통해서 힘을 키워, 어느 날 장악당한 나는 무명찬란교의 괴현상으로 완전히 침식….

…….

잠깐만.

‘내가 또 잊어버리고 있던 게 뭐가 있지?’

나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럴 만했다. 내게서는 이미 탈취된 기억일 테니까!

그렇다면….

“제가 그간 외계인 상점에서 구매한 아이템의 목록을 받을 수 있습니까?”

“예. 아이템의 행방을 찾으시려는 시도입니까?”

“…맞습니다.”

“그렇다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도마뱀이 나를 보았다.

“고객님께서 잊어버린 아이템이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당신은 이자헌 과장에게 완력 강화 장비를 제공받아 새로운 장비를 제작했습니다만, 제작된 이후의 행방이 모호합니다.”

“…!”

“이자헌 과장은 해당 사실을 당신에게 알리려 했으나, 단순히 고지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을 문제라는 것을 연달아 깨달았습니다.”

…기억난다.

-아이템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완력을 강화하는 효과인 겁니까?

-유사합니다. 전용 장비를 만들 때 부모 아이템으로 사용하십시오.

분명 그런 대화를 나눴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천천히 그 물건을 깨달아갔다.

‘…팔찌였지.’

은하제 대리님과 마지막으로 함께 백일몽 주식회사 별관에서 제작했던 물건이다.

그때 대리님은 불쑥 내 방에 나타났었다. …마치, 지금 모텔방에 나타난 이자헌 과장처럼.

하지만 그 장비를 제작 이후로 어떻게 했는지는… 완전히 기억에 없다.

사용할 법한 위기 상황이 몇 번 있었는데도 나는 떠올리지 못했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떠올리지 못할 것이다… 신성법 경전 조각에게 이미 먹혀버렸기 때문이다.

…섬뜩한 느낌이다. 나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기껏 빌려주셨는데.”

“괜찮습니다.”

이자헌 과장이 아니라고 했던 주제에 사과는 자연스럽게 받아 간다.

‘후우.’

진정, 진정하자.

일단 눈치챘으니까 다행이다.

‘흉내장이가 날 거의 잠식하기 직전이어서 수집기에 용액이 안 찼던 건가.’

심지어 내가 보안팀 특수부서부터 마스코트까지 온갖 괴이의 역할을 수행하며, 그들을 ‘흉내 내고’ 있기까지 했으니 효과는 배가 됐을 것이다.

…아마도, 그렇게 인간이 아니라 무명찬란교의 괴이로 판정받은 것 같다.

‘후우.’

덕분에 오염도 더 깊어진 것 같고.

나는 우울한 눈으로 탁자에 둘러앉은 괴이한 ‘나’들을 보았다.

고양이가 시뻘건 눈으로 나를 보며 탐탁지 않다는 듯이 꼬리로 식탁을 탁 치고, 마스코트는 풀이 죽은 듯 뿔을 축 늘어트린다.

그 외에도 각종 반응에 혼미해진다.

그리고 식탁에서 추방되긴 않지만, 흉내장이에 잠식된 부분도 여전히 내 안에 있을 것이다….

‘하.’

일단은, 하나씩.

나는 무명찬란교의 신성법 조각을 눈짓했다.

“이 양피지를 쇼핑몰에서 처분할 수 있습니까?”

“우주 쇼핑몰에서 매입하는 품목이 아닙니다.”

“혹시, 지금 식탁에 앉아 있는 제 오염들은 취급하십니까?”

“우주 쇼핑몰에서 매입하는 품목이 아닙니다.”

후우.

그래. 어느 쪽이든 인간에게 팔기엔 너무 위험해서 여기서 취급하는 품목은 아닐 것 같긴 했다.

‘하지만 이자헌 과장은 여우상담실 대안으로 이쪽으로 인도했다.’

그렇다면… 무언가 방법이 있다는 건데.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 ‘우리가 도움’ 버튼이 떠올랐다.

“그럼, 혹시 ‘연합’에 저들의 제거를 의뢰하는 건 가능합니까? 비용을 지불하고 말입니다.”

“예.”

“……!”

도마뱀이 나를 본다.

“고객님의 일부를 영구적으로 파괴하는 의뢰를 진행하십니까?”

하 지 마

위 험 해

잠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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