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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1화


뭔가에 확 꽂혀본 경험 있는가?

단순히 ‘이거 재밌네’를 넘어서 깊은 인상을 받은 나머지 시간과 돈을 추가로 써본 적이 있냐는 뜻이다.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영화라면 감독판 관람, 게임이라면 아트북 구매, 웹툰이라면 미리보기, 가수라면 콘서트 가기…….

여기서 조금 더 나가면 파생 물건을 사는 것도 예시로 들 수 있겠다.

그래, 굿즈라고 부르는 것 말이다.

피규어, 슬로건, 뱃지, 인형…….

나는 단언하는데 인생에서 이런 데에 돈을 써본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는.

여기는 백화점.

성황리에 열린 팝업스토어는 이미 오전 10시에 백화점이 오픈하는 순간 대기표 배부가 끝난 상태였다.

그리고 나도 그 대기표를 받았고 말이다.

“오후 2시 30분 타임, 지금 입장 도와드리겠습니다!”

“아 드디어!”

“야, 얼른 가자.”

내 옆에 서 있던 해맑은 10대 청소년들이 신난 얼굴로 직원을 향해 뛰어갔다.

‘2시 30분… 맞네.’

최대한 모자를 눌러쓴 채로 줄에 섰다.

그러나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엥….”

“되팔인가.”

“업자 아냐?”

“…….”

정말 억울하지만 그럴 만도 하긴 했다.

이 줄에서 직장인으로 보이는 성인 남성은 나뿐이었으니까!

‘하…….’

나는 팝업스토어 입구를 보며 침음했다.

[어둠으로 온 탐사자여, 환영한다.]

‘미치겠네.’

검고 붉은 바탕에 각종 괴물 캐리커처와 오컬트적 요소, 그리고 기업과 종교, 정부의 상징물들이 교차하는 테마.

그야말로 청소년의 마음을 저격하는 세계관이 아닐 수 없다.

타이틀도 정말 예술이다.

[종말예언 : 어둠탐사기록]

허….

나는 한 손으로 눈을 가리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참았다.

‘내가 왜 이걸 회사에서 봐 가지고….’

<어둠탐사기록>.

최근에 아주 핫했던 인터넷 괴담 세계관이다.

왜, 사람들이 마음대로 참여해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집단지성 오픈소스 세계관 있지 않은가.

처음엔 모 유명 괴담에서 파생되어서 소소하게 학생들끼리 소문을 타던 것 같은데, 위튜브 알고리즘을 만나며 미친 듯이 세를 불려 갔다고 한다.

‘<어둠>이라 부르는 각종 괴현상을 탐사한 기록’. 이 컨셉의 괴담들.

결국 수백수천 가지의 이야기가 기록된 독립 위키가 되어서 내 눈에도 띄었다는 것이다.

‘…텍스트라서 회사에서 읽기가 너무 편하더라.’

그리고 회사에서 하는 건 일만 아니면 뭐든 재밌다고 했던가.

나는 그대로 이 세계관에 푹 빠져서, 기어코 내가 괴담 하나를 창조해서 올려보기까지 하는 지경에 빠진 것이다…….

대체 왜 이렇게 된 거지? 역시 도파민이라고는 없는 내 회사 생활이 문젠가?

게다가 이 <어둠탐사기록> 자체도 그렇다.

‘이렇게 커질 줄이야.’

지금 거의 중통령으로 위튜브에서 군림하는 대형 IP라고 한다.

그러자 기업이 냉큼 붙어서 수익을 창출하게 된 것이다.

그 일환이 바로 이 팝업스토어고 말이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거 위키에 15세 이용 권고 딱지도 붙어 있었잖아.’

왜 이렇게 애들만 많냐고.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까지 듣고 있자니 현타가 이만저만이 아니긴 하지만….

“업자 맞는 것 같은데….”

“야야, 조카나 뭐 사촌 사주실 수도 있잖아… 넘 그러지 말자.”

아니다. 내가 가질 것이다.

…사실, 지난주에도 왔었는데 내 앞에서 품절 돼서 못 산 굿즈가 있어서 또 방문했다…….

연차까지 썼다.

‘그땐 내 또래 여자분이라도 있었는데.’

하필 사회인이라고는 자식 따라와 준 부모님밖에 없는 평일 오후 시간대가 걸려서 정말로 수치스러워서 도망갈 것 같지만, 참아보자.

‘아니, 내가 왜 이걸 참으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직원의 안내에 따라 스토어 안으로 입장했다.

직원이 동요하지 않은 것이 내 유일한 위로였다.

“우와!”

“야, 진짜 같이 생겼어.”

중학생들이 감탄하는 소리와 함께, 테마파크에 온 듯 제법 정교하게 잘 꾸며진 팝업스토어 내부가 보였다.

그리고 친절한 전시 테마 분류까지.

[백일몽주식회사]

[초자연재난관리국]

[무명찬란교]

이 괴담 세계관에선 기업, 정부, 종교라는 세 가지 거대 세력이 있어서, 각자 괴현상을 관측하고 확보하려 한다…는 설정이다.

‘처음엔 정부측 재난관리국 괴담들만 있었는데 이래저래 사람들이 많이 붙어서 신나다 보니 이렇게 된 거였던가.’

아무튼 이 팝업스토어에서는 그중에서도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던 것만 뽑아다가 모아놓은 모양새다.

다 뭉뚱그려서 인기 있는 캐릭터와 괴담 아이템들만 낸 게 대놓고 돈 노린 팝업이란 느낌이 났지만, 그래도 퀄리티는 괜찮았다.

‘그래. 내가 언제 이런 데를 와보겠냐….’

나는 시선을 무시하며 사려던 물건들을 빠르게 챙겼다.

지난주에 사려던 걸 거의 다 사서 담은 물건 중 인기 있는 것이 별로 없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되팔이로 오해하는 시선은 사라졌으니까.

“혹시 상품 담아가실 L사이즈 에코백 함께 구매하시나요? 5000원입니다.”

“예. 감사합니다.”

그리고 무사히 계산을 끝마쳤지만, 팝업스토어에서 바로 나가진 못하고 머뭇거리는 중이다.

나는 고개를 돌려서 계산대 옆에 사람들이 모여서 줄을 선 공간을 보였다.

[룰렛 이벤트]

:나만의 어둠탐사기록 캐릭터 만들기.

저거.

사실 지난주에도 봤었는데 차마 저거까지 줄 서서 참가하진 못하고 돌아갔었다…….

‘내일이면 이 팝업도 끝이라던데.’

내 사회적 체면과 등가 교환해도 괜찮은 건지 치열히 갈등할 때였다.

계산대에서 막 교대한 직원분이 날 보고 웃으며 말을 걸었다.

“룰렛 이벤트 오늘까지입니다! 혹시 참여해 보시겠어요?”

“…예.”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직원분….

“네! 그럼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아, 여기 서셔서…….”

직원은 민첩하게 거대한 검은 룰렛 앞의 줄로 인도했고, 덕분에 나는 자연스럽게 줄 끝에 설 수 있었다.

생각보다 줄은 빠르게 빠졌다.

나는 곧 맨 앞에 서서 무전기처럼 생긴 버튼 하나를 받게 되었다.

“그럼 먼저 럭키 룰렛부터 돌리겠습니다! 원하실 때 버튼으로 멈춰주세요.”

피리릭.

인위적인 효과음과 함께 룰렛판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칸마다 등수와 상품이 보인다.

내가 이미 구매한 굿즈와 전시품으로 판매하지 않는 굿즈, 그리고 뜬금없는 블루투스 이어폰까지….

물론 가장 큰 칸인 7등 상품은 그냥 작은 메모지 같은 것이다. 아마 저기 걸리겠지.

그래도 괜찮았다. 참여도 못 하고 그냥 돌아나갈 뻔하지 않았는가.

‘기대하진 말자.’

직원이 준 버튼을 신중히 누르면서도 그렇게 생각했다.

드르르르… 륵.

그러나 내 검은 룰렛은 천천히 멈추더니…… 놀랍게도 여기서 멈췄다.

가느다란 황금색 한 칸.

[1등]

: 어둠탐사기록 리얼굿즈 박스

“…!”

“헉! 축하드립니다!”

이거… 실화인가?

“와 미친!”

“진짜 좋겠다, 아 개부러워.”

뒤에서 비명과 탄성, 질투 섞인 목소리가 들리며 소란스러워졌다.

“와, 팝업 마지막 전날에 드디어 1등이 나오시네요!”

직원은 자기가 더 신나서 룰렛 뒤로 달려가더니 비닐 포장된 큼직한 박스를 들고 돌아왔다.

은박으로 거대한 심볼이 새겨진 검은 상자는 그 자체로도 제법 신경 쓴 제작품처럼 보였다.

나는 간신히 양손을 떨지 않고 그 상자를 받아들었다.

“…감사합니다.”

빨리… 빨리 자리를 떠서 얼굴이라도 때려봐야겠다. 이거 현실 맞나?

그 길로 당장 팝업스토어에서 나가려고 했으나, 직원이 붙잡았다.

“아! 저희 현장 제작 굿즈 증정해 드리려고 하는데요, 성함만 알려주시면 됩니다!”

성함? 어차피 내 개인정보는 포털 사이트 털리며 공공재가 된 지 오래다. 중요한 건 이걸 안전하게 집까지 가져가는 것뿐…!

“김솔음입니다.”

“네! 솔음님, 잠시만요.”

직원은 룰렛 옆에 있던 3D 프린터처럼 생긴 검은 자판기를 뚝딱뚝딱 작동시켰다.

팝업스토어를 위해 만든 건지 위에 설명 문구도 붙어 있다.

[어둠탐사기록 캐릭터 메이커]

아. 저게 룰렛 이벤트에 부제로 붙어 있던 그건가?

…‘나만의 어둠탐사기록 캐릭터 만들기’ 말이다.

정말로 청소년 취향이 아닐 수 없다…….

“이쪽에 성함을 넣어주세요.”

“……예.”

나는 한 손으로 굿즈박스를 꽉 잡고, 자판기의 패드에 내 이름을 빠르게 입력했다.

검은 자판기가 꽤 요란하고 음산한 오르골 소리를 내더니, 톱니바퀴를 돌리는 화려한 퍼포먼스를 했다.

그리고 작은 물건을 툭 뱉었다.

달칵.

익숙한 생김새의 그것을 주워들었다.

그건… 사원증이었다.

[백일몽 주식회사]

김솔음 사원

현장탐사팀

“와! 백일몽 주식회사네요. 저희 <어둠탐사기록>에서 가장 유명한 세 가지 세력 중 하나죠!”

“…….”

예. 압니다.

대충 말하자면 괴현상으로 사업하는 대기업 클리셰죠.

그리고 그중에서 현장탐사팀은…….

‘사망전대 같은 부서잖아.’

모 SF 드라마의 빨간셔츠 같은 소속 말이다. 뭣만 하면 괴현상을 탐사하겠답시고 들어가서 갈려 나가는 거다.

물론 그 덕에 네임드 캐릭터도 이 현장탐사팀 소속이 많았던 것 같다.

“와! 현장탐사팀 사원증이네요. 김솔음 사원님이 <어둠탐사기록> 세계에서 어떤 활약을 하셨을지 정말 기대됩니다!”

“예, 감사합니다….”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았지만 참았다.

‘정부 기관이나 사이비 종교 단체 사원증이 아닌 게 어디야.’

회사 사원증인 게 차라리 다행이었다.

조금 민망했지만, 직원은 하도 많이 말해서 내성이 생긴 건지 자본주의 사회의 직장인답게 태연했다.

어쨌든 이 사원증을 받는 것으로 룰렛 이벤트는 끝난 듯했다.

“감사합니다.”

나는 내 이름이 프린트된 사원증을 보고 침음했다.

‘이건… 이건 어디 안 보이는 데에 박아둬야겠다.’

아무리 그래도 내 항마력이 여기까지 버틸 수는 없는 것 같았다.

그 와중에 직원분은 신나게 물어본다.

“마음에 드세요? 소중히 간직해 주실 거죠?”

“네.”

“거짓말.”

……?

잘못 들었나 싶어서 고개를 들었다.

씩.

직원이 갑자기 나를 보며 입꼬리가 찢어지게 웃는다.

부자연스럽도록 위가 길어져서, 귀에 닿을 듯이…….

“…?”

그 순간.

갑자기 현기증이 머리를 덮쳤다.

“…!”

팝업스토어의 소란스러움이 사라졌다.

눈앞이 검은 물감으로 뒤덮인 듯 어지럽게 출렁거리고, 붉고 푸르게 껌벅인다.

그리고 간신히 현기증이 가셨을 때.

세상이 온통 바뀌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백일몽 주식회사에 입사하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

나는 어느새 웬 대형 강연실의 구석에서 중앙 단상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와아아아!!

함성과 함께 단상의 대형 빔프로젝터 PPT에서 폭죽 효과가 터졌다.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

정장을 입은 사회초년생들이 박수와 함성을 예의 바르게 보내는 가운데 사회자로 보이는 사람이 싱글벙글 웃으며 PPT를 넘겼다.

누가 봐도 대기업의 신입 오리엔테이션 행사였다.

드디어 취업의 문을 뚫었다는 행복에 찬 얼굴들이 자부심과 긴장감에 들떠 있다.

[145:1의 경쟁을 뚫고 입사하신 우리 신입사원들은 충분히 자랑스러워하셔도 좋습니다! 하하! 그럼 이제부터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을 시작하겠습니다!]

“…….”

이게 뭐야.

나는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나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의자에 앉아 있는 상태란 걸 깨달았다.

옷차림은 정장. 저녁에 거래처 접대가 있어서 입고 나온 차림이었으나, 공교롭게도 이 강연장을 꽉 채운 ‘신입사원’들과 비슷한 모양새였다.

그 와중에 내 무릎에는 룰렛 이벤트로 수령한 굿즈박스가 얌전히 놓여 있다.

“저기, 혹시 그거 어디서 받으셨어요? 회사에서 나눠주는 건가요?”

“…….”

옆자리에 앉아 있던 신입사원의 질문에는 대꾸도 못 했다.

[여러분은 선택받은 합격자입니다!]

[사실 이번 신입사원 공고를 통해 모집한 인원 중, 아주 특별한 분들만 이 강연실 A룸에 모시고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게 되었는데요!]

[축하드립니다! 여러분은 적성 검사를 통과해 특수팀, <현장탐사팀>으로 배정되셨습니다.]

“벌써 발령이 났다고?”

“현장탐사팀? 백일몽 주식회사에 그런 곳이 있어요?”

“제약회사에 현장탐사…?”

“어, 왠지 듣기에는 유배당하는 곳 느낌인데? 본사 아니라 지사 아니야? 괜히 듣기 좋은 말로 우릴 홀리려고….”

사회자 몰래 수군대는 소리들이 전방위에서 들렸으나 집중할 겨를도 없었다.

낯익은 회사명과 팀명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백일몽 주식회사.

현장탐사팀.

……벼락 맞은 것처럼, 위키의 한 페이지가 떠오른다.

—–

[현장탐사팀] (백일몽 주식회사)

: <어둠탐사기록>에 등장하는 거대 세력, 백일몽 주식회사의 개발부 산하 다섯팀 중 하나.

소위 말하는 사망전대라고도 불리는 비운의 팀. 하지만 덕분에 괴담 쓰는 사람들은 재밌다.

—–

‘잠깐만.’

…이거, 내가 방금 참가한 팝업스토어 원작 괴담이잖아.

그렇다면 이다음에 벌어질 일은….

—–

무려 입사 오리엔테이션에서부터 데스 서바이벌을 시켜서 정규직을 거르는 미친 부서.

어둠탐사를 일반인이 하면 어떻게 되는지 환기해 줘서 꾸준히 인기 있는 위키 작성 소재이기도 하다.

—–

“……!”

“어, 뭐, 뭐 하시는….”

나는 당장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상황 파악이고 나발이고 밖으로 달려 나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다만 정식 채용에 앞서서 짧게 수습기간이 있는데요, 길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실무 적성만 판단해 절대평가로 진행됩니다.]

[물론 개개인의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선,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겠지요? 무임승차는 다 적발할 겁니다!]

쾅, 쾅쾅쾅.

강연실의 문들이 연달아 닫힌다.

‘망할!’

그 와중에도 <백일몽 주식회사>가 그냥 대기업 제약회사인 줄 아는 순진한 신입사원들은 아직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백여 명의 신입사원들이 사회자의 말을 경청하는 가운데, 사회자가 밝고 힘차게 외쳤다.

[자, 시작합니다!]

그 발랄한 목소리와 함께.

강연실의 불이 꺼졌다.

“…?”

“어?”

동영상이라도 틀어주려 준비하는 건가 싶은 건지, 아직도 신입사원들은 약간 의아해하는 정도다.

그럴 만도 했다.

‘취업했더니 갑자기 이딴 미친 일이 벌어질 거라고 예상했을 리가.’

가령.

갑작스럽게 주변 풍경이 스산한 지하철 열차 안으로 바뀐다든가.

[승객 여러분, 오늘도 심연교통공사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열차는 멈추지 않습니다.]

[최종 목적지까지 쾌적한 이동을 위해 안내방송에 귀를 기울여주시길 바랍니다.]

생전 들어본 적 없는 낯선 이름을 단 안내 멘트가 나온다든가.

“……!?”

“뭐, 뭐야 이게!?”

마치 강연실을 그대로 옮겨온 듯이 지하철 의자에 정장 차림으로 쭉 앉아 있던 신입사원들이 벌떡 일어났다.

당황할 만했다.

“저기요?”

“이거 VR 같은 건가? 진짜 이동한 거예요?”

그래도 아까까지 강연실에 있던 많은 사람이 그대로 있는 듯했다. 그래서 어딘가 안심이 된 건지 안일한 반응이 주류다.

지하철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회사의 흔적을 찾는다든가, 행사 사회자나 회사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이 없는지 찾는다든가 하는 식이다.

그리고 곧 적당히 상황을 파악한다.

“앞칸에 다른 사람들 계세요! 문은… 어, 문은 안 열리는데요, 이거?”

“무슨 신기술인가?”

나는 식은땀이 날 것 같은 기분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머릿속에서 벌써 무슨 괴담인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

[심연교통공사에 어서오세요]

: <어둠탐사기록>에 등장하는 괴담.

초기에 작성된 D등급 어둠 중 홀로 압도적인 탈출난이도를 자랑하는 미친 괴담. 그리고 영원히 고통받는 현장탐사팀

탐사는 총 ■■회까지 기록되었다.

—–

<심연교통공사에 어서오세요>.

척 보면 알겠지만, 한국 지하철을 소재로 하는 괴담이다.

-잠들었다가 깨보니 지하철 안. 마치 퇴근길 같지만, 어딘가 이상한 역명들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이런 도입부 말이다.

괴담의 먹잇감이 ‘지하철로 출퇴근을 해본 사람’이라는 포괄적인 기준이라, 직장인 대부분이 해당되어 읽는 이를 더 오싹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

‘그리고 이 괴담은… 백일몽주식회사 관할 어둠이지.’

아무래도 이 괴담으로, 백일몽 주식회사는 신입사원들을 ‘걸러낼’ 모양이었다. ……젠장!

“방탈출 같은 걸까요?”

“아니 무슨 탈모약 만드는 제약회사에서 영업직 신입한테 굳이 방탈출을….”

그때였다.

[이번 역은 슬픔, 슬픔역입니다.]

“…!”

“슬…픔?”

첫 번째 안내방송이 나왔다.

나는 숨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덜컥.

열차가 멈추고.

[스크린도어가 열립니다.]

문이 열린다.

마치 언제나의 일상 같지만.

[30초 후 출입문이 닫힙니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슬픔역이 최종 목적지인 승객께선 안내방송에 따라 내리셔야 합니다.]

익숙한 목소리가 안내문에 이상한 단어와 어구를 섞어 친절히 말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뭐라도 안심할 거리를 찾아 합리화하기 마련이다.

“밖에 봐봐! 그냥 지하철역이야!”

말 그대로다.

열차의 문밖으로 확실히 승강장의 모습이 드러났다. 좀 어둡고 습해 보이지만 어쨌든 평범한 지하철 역사처럼 보였다.

그에 반색하며 두세 사람이 문을 향했다.

아, 망할.

“안 나가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예?”

미치겠네. 나는 한숨을 참으며 빠르게 말했다.

“방금 슬픔역이라고 한 거 들으셨잖습니까. 한국에 그런 역이 어딨겠어요. 누가 들어도 이상합니다.”

“아…….”

“저, 이분 말씀이 맞는 것 같은데요. 좀 더 상황을 보시는 게…….”

눈치 빠른 한 사람이 내 말에 맞장구를 친다. 내 옆에 앉았던 신입사원이다.

그래서인지 나가려던 사람들이 더 갈팡질팡한다.

“그래도….”

“야, 문 닫힌다!”

그러나 문이 닫히는 소리에 마음 급한 몇몇이 돌발적으로 밖으로 뛰쳐나간다….

망했다.

[출입문이 닫힙니다.]

“아!”

“못 내렸네. 아 X발.”

역사에서 손을 흔드는 ‘내린 사람’들을 보고선 내리지 못한 사람들이 아쉬운 듯이 탄식한다.

심지어 나를 힐끗 보고 작게 욕설을 중얼거리는 사람도 있다.

이해는 간다. 낯설고 괴상한 상황에서 일단 뇌 빼고 도망치고 싶은 기분이겠지.

하지만 말이다.

“어어?”

“저거…….”

기괴한 광경이 펼쳐진다.

역사로 나간 사람들이 뒤를 돌아서 움직이려고 하자,

갑자기 역사 천장과 기둥에서 수많은 은빛 물방울이 솟아나 그들의 머리 위로 쏟아진 것이다.

투투투투툭.

마치 거대한 눈물 같았다.

그러나 수많은 은빛 물방울은 마치 녹은 쇳물처럼 인간의 몸에 쏟아지며 끔찍한 파열음을 만들었다.

비명. 비명. 경련.

정적.

유리창에 은빛 액체에 섞인 피가 튀었다.

[열차가 슬픔역에서 출발합니다.]

마지막으로 보인 창밖.

“…….”

오물과 핏물이 흥건한 스크린도어 앞에는, 신입사원들의 뭉개진 흔적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꿈틀거리며.

“아아악!”

“으악!”

오답자의 말로였다.

[목적지까지 쾌적한 이동을 위해 안내방송에 귀를 기울여주시길 바랍니다.]

공포로 오그라든 사람들 사이에서 드디어 비명과 고함이 얼룩지기 시작했다.

‘시작됐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괴담 속에 들어왔다고?

대체 내가 어쩌다 이 꼴이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확실히 괴담 속 회사 팀에 신입사원이 된 것 같다.

그것도 사망률이 대단히 높은 팀에.

‘실환가?’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다른 신입사원보다는 유리한 입장은 맞을 거다.

나야 이 괴담 위키 다 읽어봤지 않은가.

—–

3.2 탐사기록 (■■번까지 기록)

—–

대충 이런 수준까지 꽤 자세하게 기억이 난다는 뜻이다.

그리고 여기까지만 보면 전형적인 먼치킨 주인공 같다.

좋아하는 세상에 빙의해서 정보값의 절대적 우위가 주는 맛으로 이 상황에서 탈출하는 멋진 내 모습을 그려볼 수도 있을 것 같은가?

앞으로 기연과 아이템을 독식할 생각에 조금 자신만만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가?

그럴 수도 있다.

근데 문제가, 하나 있다.

아주 결정적인 문제가.

‘……나 X발 무서운 거 못 본다고!’

그렇다.

내가… 쫄보라는 점이다.

텍스트는 괜찮다. 흥미롭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미지화가 되는 순간부터 도저히 버티질 못하는 쫄보.

그것도 그냥 쫄보가 아니라, 친구 놈들 사이에서 개같이 놀림당할 정도의 쫄보!

-김솔음 썸녀가 공포영화 보자는데 못 봐서 거절한 거 실화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ㅅㅂ솔음아 넌 이름이 소름인데 공포영화를 못 보냐 엌ㅋㅋㅋㅋㅋㅋㅋ

-마 왔던 썸녀도 도망가겠다ㅋㅋㅋ

ㅋㅋ-

뒤질래?-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심지어 대낮에 회사에서 괴담을 읽을 때도 무서운 배경화면이나 BGM이 흐르면 데이터 끄고 텍스트만 뜨게 해서 읽게 할 정도의 쫄보!

내가 투고한 괴담에도 이미지 한 장 넣지 못했을 정도의, 겁쟁이 쉼터 장기거주자!

“…….”

양손으로 눈을 가렸다.

나는, 이미, 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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