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205화
편지는 담담했다.
미처 말씀드리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서 적어보고자 이 글을 씁니다.
마치 잠시 떠나는 사람이 남겨놓은 쪽지 같았다.
김솔음은 현무 1팀 대기실의 소파에 두고 온 예비용 안경에 대해 말하고, 본부 앞 자전거의 바람 빠진 뒷바퀴를 이야기하고, 아직 배송 중인 프린터 잉크를 알렸다.
인수인계라기에는 소소하고 단편적이다.
끊지 못한 미련 같은 것이 묻어나오려다가도 다음 단락에서 사라진다.
하지만 그 아무렇지 않은 듯한 글은 비슷한 기조를 유지하며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상태 그대로 의미심장한 권고로 넘어가기도 한다.
절대 재난관리국 신입이 알 수 없는 내용들.
…초자연 재난에 관한 조언.
사거리 세탁소의 다림질 구역에서 실크 소재의 옷을 입는 건 파란 원피스의 시민을 구조한 후부터는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을 겁니다.
혹시라도 입고 들어가는 요원분이 없도록 확인하면 좋겠습니다.
현무 1팀이 들어갔었던 괴담들이다.
마치 그가 파악하고 추리한 내용 같으나, 묘하게 이전부터 알았던 것 같은 확신 어린 말들이다.
그러나 걱정과 염려로 적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떨리는 눈이 그것들을 빠르게 훑는다.
그리고…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내용은 좀 더 개인적으로 들어간다.
금제가 걸렸던 날 밤의 일은 매우 완곡하게 당사자만이 특정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적혀 있었다.
아직도 금제에 걸려 있을 누군가를 배려하듯이.
이어서 자신을 몰아세우지 않고 꾸밈없는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배려한 청동 요원을 향한 감사와 사과가 이어진다.
그리고….
저는 그래도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
작별 인사로.
돌아가려는 시도조차 해보지 않고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 때문에 재난관리국 요원분들의 시간을 낭비하게 만든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 해서, 성실히 징계에 임하지 못하고 도망치듯이 퇴직해서.
“…….”
불편하시겠지만 제가 유용하게 여겼던 물건들을 동봉해 둡니다.
현무 1팀에서 사용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자신이 두고 간 아이템들의 성능과 효력이 자세히 적혀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혹시 해서 적어봅니다.
제가 현무1팀 대기실 화이트보드에 적은 글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찝찝하지만 힌트나 표식일까 싶어 지우지 못하실까 봐, 편안하게 지우셔도 괜찮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냥 충동적으로 남긴 글이며 다른 의미는 없습니다.
편지가 끝났다.
요원이 황급히 페이지를 앞뒤로 뒤집었다.
…뒷장 끝에 작은 글씨가 더 있다.
항상 감사했습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
편지를 읽던 자는 시선을 떨어트려서, 떨어진 아이템들을 보았다.
그리고 몸을 굽혀서 천천히 그 잡동사니같이 작은 것들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싸구려 사탕 같은 외양.
하지만 ‘좋았던 이전’으로 잠시 시간을 돌려 몸 상태를 회복해 주는 아이템.
출동구조반에서 더없이 유용하게 쓰일만한 것들이 바닥에서 반짝인다.
“…….”
“…….”
최 요원은 고개를 들었다.
현무 1팀 두 요원의 가라앉은 눈이 서로 마주쳤다.
지금 사라졌다면 아직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했을 확률이 높다.
“잠깐만. 요, 요원님들…!”
그들은 당황한 담당자를 데리고 대기실을 뛰어나갔다.
수정동굴을 수색하기 위해서.
그리고….
“…….”
방의 구석에 미동도 없이 서 있던 김솔음은 조용히 그들 뒤로 따라 걸어 나갔다.
종이 한 장만 손에 쥔 채.
요원들이 이 방에 들어오기 위해 열었던 문틈으로.
* * *
-우아하고 정중한 퇴장이로군요. 이런 방식도 나쁘지 않습니다.
“…….”
나는 조용히 쏟아지는 햇빛을 보았다.
‘이렇게 나왔나.’
최선을 다해서 안전하고 부드럽게 끝내려고 노력했지만… 사실 모르겠다. 재난관리국에서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그리고 현무 1팀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나는 아까, 스치며 지나쳤던 요원들의 얼굴을 괜히 떠올리려 하지 않기 위해 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수정동굴 밖으로 나와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서 고속열차를 타기까지 계속 조명을 꺼주었던 사회자에게 감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오, 별말씀을!
덕분에 이렇게 조용히 빠져나올 수 있었으니까.
안 들어줬다면, 더 복잡하고 감정적으로 힘든 방식으로 빠져나와야 했을 테니까….
“…….”
[열차가 곧 출발합니다….]
나는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내가 빠져나온 뒤 수정동굴을 얼마나 뒤졌을지, 남긴 아이템을 어떻게 처리할지, 재난관리국에서 나를 얼마나 수상쩍게 생각할지, 현무 1팀이 내가 대기실에 남겼던 글을 지울지….
대신 자려고 노력했다.
서울로 올라오는 고속철도는 다행히 탐라행의 공포를 불러일으키지 않았으며, 나는 간신히 잠에 들었다가 깼다.
그리고 혹시라도 추적당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현금으로 아무 모텔이나 잡아서 들어갔다.
쿵.
그러고 문을 닫고 나서야 정신을 가다듬고 정산을 시작했다.
그제야 현실감이 돌아온다.
‘……거의 다 두고 온 건가.’
소모품 아이템은 이제 한두 점만 남아 있다.
특히 우주 쇼핑몰에서 구매해서 안전이 보장된 것들은 많이 두고 왔다.
…아마도 더는 필요하지 않을 테니까.
‘나보다는 다칠 일이 더 많은 사람들이 쓰는 게 맞겠지.’
남은 건 장비 아이템 몇 가지와 문신들 정도다.
다만….
퐁.
내 품에서 작은 불빛 하나가 튀어나온다.
도깨비불.
“정말 이대로 계속 따라올 거야?”
세차게 동의하듯 불꽃이 위아래로 움직인다.
이 녀석은 끝까지 나에게 따라붙어서 서울에 올라왔다.
심지어 자기가 깃들어 있던 유리호롱도 두고 왔다.
추적당할 것을 염려했으니 이편이 덜 곤란하긴 했으나….
“다들 걱정할 텐데. 넌 관리국 소속이잖아.”
도깨비불이 마치 반박하듯이 반짝인다.
-…자긴 다 컸으니 괜찮다는군요. 맙소사. 이토록 끈질기고 멍청한 짐승이라니. 후우!
이어진 브라운의 마지못한 통역에 따르면, 느리지만 혼자서도 ‘충전’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영험한 벼락의 기운이 있다면 더 빠르게 회복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건… 구하기 어렵지 않을까.
아무튼 도깨비불의 의사는 더없이 확고한 것 같다.
“…그럼 잠시만 더 잘 부탁할게.”
도깨비불이 기쁘게 반짝이며 모텔을 한 바퀴 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곤란하기만 했던 건 아니다.
‘그래도 하나는 남았구나.’
내가 어떤 곳의 소속이었던 흔적이.
좋은 사람들과 지냈던 날들의 증거가… 말이다.
‘…조금만 간직하자.’
어차피 길지 않을 테니까.
나는 도깨비불을 한번 쓰다듬어 준 후, 녀석이 내 오른팔로 변하는 것을 놔두었다.
-이제 다시 자유의 몸이 됐군요, 노루 씨! 당신은 어디든 갈 수 있겠습니다. 어디로 갈 겁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사실 반대 아닐까.
초자연 재난관리국에 수배나 안 당하면 다행일 거고, 백일몽 주식회사에서는 이미 예전에 죽은 사람이다.
내가 연락하고 갈 수 있는 곳은 한정되어 있었다.
‘심지어 최 요원에게는 유쾌연구소의 꿈 배양실도 들켰지.’
금제 때문에 그 배양실에 대해 재난관리국에 말하지 못하더라도 그 본인은 언제든 찾아올 수 있었다. 방지책을 마련할 것이지만, 조심해야 했다.
하지만 나도 대책 없이 빠져나온 것은 아니다.
‘계획은 있어.’
-과연!
…마음이 매우 불편한 계획이라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
“…….”
나는 문신에 집어넣어 두었던 휴대폰을 켰다.
2주간 방치된 연락들이 뜬다.
‘심문 중에 걸리지 않아서 다행이지.’
하마터면 영은 씨나 허운 씨의 정체까지 걸릴 뻔했다.
지산 마을에서 걸리자마자 문신에 휴대폰을 처넣어둬서, 그리고 유리 감옥에서는 문신이 기능을 잃어서 차라리 다행이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메시지 항목들을 내렸다.
주로 광고 문자였다.
하지만 그 사이, 몇 건이나 쌓인 지인의 연락도 있었다.
[저기]
[괜찮아요?]
[알아본 ㄱㅓ 언제 알려주면]
[저기]
[아픈 거면]
[문제 생겼으면 연락해ㅇㅛ]
경비반장이었다.
“…….”
왠지 기분이 이상하다.
이 사람한테는 계속… 걱정과 도움만 받는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금제 이후로 계속 연락을 못 했지.’
나는 고민 후에 답장했다.
[죄송합니다. 일이 좀 있었어요. 지금은 문제없습니다.]
그리고 갈등하다가 한 통 더 보냈다.
[정보 알아봐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혹시 내일이나 모레쯤 이야기 들을 수 있을까요?]
[맛있는 것도 먹고요.]
확인은 제법 빨랐지만 답장은 느릿하게 왔다.
[ㄴㅔ]
“…….”
이제 됐다.
지금부터는 할 일을 하러 갈 차례였다.
나는 행선지를 잡았다.
내키지 않지만, 이보다 더 나은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소원권을 준비해 주십시오.]
[원하시는 정보를 찾았습니다.]
호 이사에게.
* * *
“솔음 님, 돌아오셨군요!”
“…….”
나는 고개를 들었다.
익숙한 여우상담실의 대기 장소 테이블에, 웃으며 앉아 있는 호 이사가 보였다.
반사적으로 속이 술렁인다.
…내가 이 선택을 하는 것 자체에 대한 거부감.
금제까지 풀어준 누군가에 대한 배신 같다는 기묘한 죄책감.
그러나 동시에, 금제가 사라졌기에 좀 더 협상다운 협상을 할 수 있다는 이 모순적 상황에 대한 감상.
“소원권을 수령하러 왔습니다.”
“잠시만요. 이 이야기부터 드리고 싶네요.”
호 이사는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로 멋쩍은 듯이 말을 머뭇거린다.
더 소름이 끼쳤다.
“솔음 님의 사망에 관한 금제는 제가 좀 과했던 것 같아요. 당시 상황상 조금 감정적인 선택을 한 것 같아서 부끄럽네요….”
“…….”
“차라리 없어져서 다행이에요. 그렇죠?”
나는 대청봉 범장군이 벌이던 기묘한 굿판 같은 의식을 떠올렸다.
그때 은하제 대리의 몸으로 기괴한 반응을 하던 호 이사도.
‘…대리님이 궁금하거나 걱정돼도 묻지 말자.’
내 아는 척이나 걱정을 호 이사가 인지하는 게 도리어 은하제 대리에게 해가 될 확률이 높았다. 속이 뒤틀린다.
그리고 쉽사리 호 이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신중히 대답했다.
“상관없습니다. 금제와 상관없이 약속은 약속이니, 이사님과의 약속을 지키러 온 겁니다.”
“그래요? 불가능할 텐데.”
“…….”
“제가 요청했던 ‘멸형급 재난’이 정확히 뭔지도 모르시잖아요. 솔음 님.”
그렇다.
호 이사는 우리 스파이들이 강원도 지하의 비밀서고에 접근할 수 있게 되면 더 자세한 정보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미 호 이사가 요구하려던 게 뭔지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
“추측으로 찾아냈습니다.”
“…….”
“재난의 명칭만 알려주십시오. 만일 제가 가져온 정보와 일치하지 않는다면, 벌을 받겠습니다.”
어차피 호 이사에게는 위험부담이 없다.
말하고 금제를 걸든 벌을 주든.
어차피 상황이 변해서 이제는 내게 금제를 풀어줄 동료 요원이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좋아요.”
그럴 줄 알았다.
호 이사는 웃으며 깍지를 꼈다.
“그 초자연 재난의 명칭은 ‘세광특별시’입니다.”
“…….”
“아참! 여우상담실 밖에서 발음하려고 하지 마세요.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거예요.”
호 이사가 내 눈을 들여다본다.
“그래서.”
“…….”
“당신이 가져온 정보와 일치하나요?”
나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예.”
“…!”
“여기 있습니다.”
툭.
여우상담실 대기 공간의 테이블 위로 문서가 올라왔다.
“지금 말씀하신, ‘멸형급 초자연 재난’에 관한 서류입니다.”
“…….”
“확인해 보십시오.”
호 이사가 손을 뻗어서 종이를 들어 읽어내렸다.
그리고….
“……!”
종이를 덮었다.
호 이사는 표정이 사라진 채로 나를 응시한다.
“…어떻게 알아냈지?”
정답이었군.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실은 말이다.
알아낸 것이 아니다.
‘…이미 알고 있던 거지.’
그렇다.
내가 애초에 한 달 만에 정보를 가져갈 수 있다고 장담했던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을.
<어둠탐사기록>의 정보를 적는 것.
다른 스파이에게 도저히 설득하거나 해명할 길이 없어서, 그리고 호 이사에게 역으로 의심을 사서 끔찍한 일을 당할까 봐 우선순위에서 밀어둔 방법이다.
최대한 안전하게 가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판이 다 끝장난 이상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빨리 해야 했어.’
더 시간을 지체하면 재난관리국에서는 다른 스파이가 있는지 점검하고 색출하려 들 것이다.
영은 씨나 허운 씨가 걸리면 그 사람들은 영원히 소원권을 받지 못하고, 호 이사의 금제에 묶여서 이중으로 고통받게 될 것이다….
그 전에 내가 빠르게 선수를 쳐야 했다.
그러나….
“분명 어제까지 유리 감옥에 수감되어 계셨을 텐데, 이걸 어디서 알아내셨을까….”
“…….”
“거기서는 이런 정보를 보관하진 않을 텐데요.”
정답이다.
유리 감옥을 적재 중인 수정동굴 속에는, 당연하지만 귀중한 정보들을 보관하지 않는다.
죄수에게서 알아낸 정보를 토대로 초자연 재난 보고서만 갱신을 위해 가끔 작성되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보고서 업무용 비품은 몇 가지 있지.’
가령 이런 것 말이다.
아직 내용이 적히지 않은, 재난관리국의 초자연 재난 보고서 용지.
소재지 불명으로 처리된 유리 감옥에서 작성되기에, 보고서 형식에서도 담당 지부가 검열 처리된 포맷의 용지 말이다. 그러니까….
비밀 서고에 보관 중인 멸형급 재난에 관한 서류 내용을 인쇄하기에 가장 적합한 용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유리 감옥에 수감된 것이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을 습득할 기회가 된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호 이사의 앞에 대령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위키에서 읽은 것을 토대로 정보를 제한해 직접 만든 ‘세광특별시 문서’를.
“…….”
하지만 그걸 호 이사에게 말해줄 필요는 전혀 없다.
위험할 뿐이지.
‘나름대로 최후의 방비책은 갖추고 왔는데….’
식은땀이 등 뒤로 맺힌다.
그래도 말해야 한다.
“중요한 건 제가 약속된 정보를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다른 두 사람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확실히.”
“…….”
“이제 이사님께서 약속을 이행할 차례입니다.”
호 이사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좋습니다.”
“…!”
“축하드려요. 솔음 님. 소원권을 수령하시는 것을.”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