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206화
소원권.
기이한 배드 엔딩이 곳곳에 속출하는 이 괴담 세계관에서 내가 집에 돌아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
오직 이것만을 위하여 나는 백일몽 주식회사에서 버텼고, 스파이가 되는 것까지 버텼다.
그리고 지금, 마침내 소원권을 타낼 조건을 달성한 내게 눈앞의 호 이사가 가볍게 손바닥을 치고 있다.
내게 박수를 보내듯이.
짝짝짝….
“소원권, 정말 받게 되셔서 제가 다 기쁘네요.”
“…….”
“그런데 그런 생각 안 해보셨어요?”
박수가 멈춘다.
“사실 호 이사는 소원권을 줄 생각이 없었다면?”
“…….”
“솔음 님이 약속한 일을 해내시면 말을 바꾸는 거예요. 다른 걸 더 해내면 주겠다는 식으로. 그렇게 교묘하게 계속 미끼로 쓰는 거죠.”
호 이사가 빙그레 웃었다.
“그런 생각, 정말 해보신 적 없나요?”
“해본 적은 있습니다.”
안 하면 바보겠지.
사회에선 막상 일을 해주니 대금을 지불하지 않고 미루거나 떼먹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반대로 선금을 일단 받고선 일을 제대로 해주지 않는 경우도 수두룩하고 말이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소원권은 호 이사의 일방적인 약속이었다.
그리고 강자의 약속은 언제든 깨질 수 있다. 어겨도 패널티가 없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이사님께서는 약속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신다는 걸 압니다.”
“…….”
금제들.
호 이사는 ‘약속’을 형태로 상대를 옭아매는 부류의 괴이였다.
그래, 이제 와서 호 이사를 인간이라고 생각하면 그것도 바보일 것이다.
‘그리고 괴이에게 규칙은 중요한 요소야.’
괴담 문법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맥락상 기괴한 공포 분위기의 조성 및 희생자가 빠져나갈 구멍을 희망 고문처럼 주기 위해서겠지만….
어쨌든, 그렇기에 규칙은 도리어 호 이사가 그냥 사악한 인간일 때보다 믿을만하다.
약속을 지킬 수밖에 없을 확률이 높으니까.
‘여우상담실’ 속 상담 선생님의 신뢰성에 대해서 언급할 때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단언하던 호 이사의 태도를 떠올리면 더더욱.
다른 목적을 감춘 채 이용하거나 함정을 팔지언정 거짓 약속을 하진 않는다.
나는 표정 없는 호 이사와 마주 보았다.
“그러니, 본인의 입으로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실 거라 판단했습니다.”
“…….”
짝.
“그럼요!”
호 이사가 손뼉을 치며 웃었다.
“저는 항상 약속을 지킨답니다. 지키질 못할 약속은 하지 않죠…. 절대로.”
“…….”
“자, 그럼.”
호 이사가 테이블 아래에 두었던 서류 가방을 들어 올려, 그 안에 손을 넣었다.
“이제 소원권을 받으셔야죠.”
그리고 빛나는 것이 빠져나온다.
작은 유리병 하나.
“…!!”
여우상담실의 대기 공간. 그 안락한 장소에 황홀하고 비현실적인 오로라 같은 광채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이 작은 병 하나에서 나오는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압도적인 신비감.
소원권.
“솔음 님 거예요.”
“…….”
탁.
“어서요.”
나는 손을 뻗었다.
테이블 위, 차려진 소원권에 내 팔이 닿기 직전….
“아차, 잠시만요.”
호 이사가 빙긋 웃는다.
“한 병이 아니죠?”
“…!!”
탁. 탁.
미소 짓는 얼굴 그대로, 호 이사가 서류 가방에서 황홀한 색채의 유리병 둘을 더 꺼내어 올려놓는다.
총 세 병의 소원권.
‘맙소사.’
테이블 위로 은하수로 만든 파도 물결처럼 진주의 오리엔트 같은 빛이 일렁였다.
“…이건,”
“네. 함께 근무하신 다른 두 직원의 몫인 소원권이에요. 솔음 님께서 분명 그러셨잖아요? 다른 두 분도 이 일에 충분히 기여하셨다고요.”
맞다.
하지만… 이렇게 턱턱 내준다고?
게다가 호 이사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보고하는 자리에 팀의 대표로 나오신 건 솔음 님이니, 수령도 대표로 하시는 게 맞는 것 같아서요!”
“……!”
잠깐만.
“제가 세 병을 다 수령해서… 다른 두 분께 한 병씩 드리라는 말씀입니까?”
“글쎄요.”
…!
“팀으로 보고하셨잖아요. 그럼 분배는 대표의 마음 아닐까요?”
“…….”
“저는 상관하지 않는답니다.”
호 이사의 눈에서 어두운 불꽃이 일렁였다.
하지만 다음 순간, 마치 없던 것처럼 빙긋 웃는 얼굴이 된다.
“이 소원권으로 솔음 님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던 소원이 꼭 이루어지시길 바라요.”
나는 입을 열었다.
“이사님께서는 사용하시지 않습니까?”
“…….”
호 이사가 잠시 나를 들여다보았다.
“그건 정규직 직원만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랍니다.”
“…….”
“안타깝게도, 임원은 계약직이라서요. 그런 약속이죠.”
호 이사의 손이 테이블 위로 마치 소원권을 매만지고 싶은 듯 살짝 손을 뻗었으나… 곧 다시 거둬졌다.
“그래서.”
“…….”
“가져가실 건가요? 아니면 나중에 가져가셔도 저는 괜찮답니다.”
세 병을 전부 수령하는가.
아니면 전부 보류하는가.
사실 내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예. 가져가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좋습니다!”
활짝 웃은 호 이사가 서류 가방에서 상자를 꺼내며, 테이블에 놓았던 소원권 병들을 하나하나 포장하기 시작했다.
“소원권 사용 방법은 상자에 동봉되어 있답니다! 한 병씩 넣어드릴게요.”
호 이사는 마치 영업 사원처럼 깔끔하고 빠르게 상자를 정리해 리본까지 묶어 봉투에 넣어 내 앞에 밀어주었다.
“여기요.”
“…감사합니다.”
나는 그 봉투를 잡아 들었다.
묘한 기시감이 스치는 것도 잠시.
‘…해냈어.’
마침내 손에 넣었다는 것이, 드디어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이 검은 종이 가방 안에 있다.
나는 소원권을 손에 넣었다.
“잘 들어가세요. 솔음 님. 또 연락드릴게요.”
머리가 멍해진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손을 흔드는 호 이사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여 보인 후, 여우상담실 대기 장소에서 나왔다.
끼익.
등 뒤로, 여우상담실 방으로 통하는 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를 들은 듯했다….
누군가가 들어간 듯이.
그리고 출입구에서 고개를 돌렸을 때엔, 이미 대기 장소 테이블엔 아무도 없었다.
남은 건 내 손에 들린 세 병의 소원권뿐.
“…….”
-오, 축하합니다. 친구! 이제 소원을 빌고 촛불을 끄면 되는 겁니까?
그렇게 쉽게 진행되면 좋겠지만, 문제는….
‘내 손에 두 병이 더 있다는 거지.’
잠시 후.
근처 카페.
‘이걸 어떻게 넘기냐.’
나는 자리에 앉아, 가방을 쥔 채 미친 듯이 머릿속을 돌렸다.
몇억짜리 수표를 가방에 넣고 무방비하게 외출한 기분이다.
가방 속에 들어 있는 소원권을 의식할 때마다 당장 꺼내서 마셔 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지만, 일단 할 일을 끝마쳐야 했다.
우선….
‘고영은 씨에게 연락해야겠지.’
어떻게든 우회적으로 물건을 전달할 방법만 생각해 내면 된다.
그럼 그 동기도 원하는 소원을 이루고 안전하게 퇴사할 수 있을 것이다. 더는 괴담에 들어가지 않아도 괜찮다.
그리고….
‘장허운 씨도 살릴 수 있어.’
누군가 소원권으로 장허운 씨를 살려달라고 소원을 빌어주기만 하면 된다.
모든 게 완벽했다.
그러면…, 그렇게 분배만 끝나면…….
‘나는 집에 가는 거야.’
불안과 기대로 심장이 뛴다.
나는 가방에 손을 넣어서, 상자를 매만지며 빨리 무슨 일부터 처리해야 하는지 떠올렸다.
일단은 안전한 공간부터….
지이이잉!
스마트폰이 울리고 메시지가 떴다.
[오늘]
[어디로 ㄱㅏ면 돼요?]
“…….”
경비반장.
오늘 해가 지고 저녁에 접선하기로 했었다.
‘정보를 듣기 위해서였지.’
하지만 이제는 정보가 필요하지 않았다.
유쾌연구소든 백일몽의 원천이든 간에 여기서 나가면 더는 중요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괴담 세계관에서 나간다는 건….
내가 이곳에서 만난 모두와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
나는 고민하다가 문자를 넣었다.
[여기서 뵀으면 합니다.]
그리고 저녁.
“음….”
나는 마감 시간이 늦은 모 유명 도넛 가게의 구석 자리에서 경비반장을 만났다.
보통 낮에 다 나가서 저녁엔 없는 도넛들을 미리 결제해 두고 지금 받아서.
도넛을 본 경비반장의 기력 없던 얼굴이 좀 밝아졌다.
“고마운데요….”
“아닙니다. 저야말로 그간 많이 도움을 받았습니다. 사실 이런 걸로 보답이 되긴 어렵습니다만…. ”
“아뇨…. 충분한데.”
경비반장이 약간 즐거운 얼굴로 도넛을 덥석덥석 입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폭탄 발언을 했다.
“그럼 정보 말인데요…. 유쾌연구소… 아직 우리 회사 지하에 있어요…….”
“……!!”
잠깐.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말 그대로인데… 음.”
경비반장이 나를 보았다.
“저기, 그쪽도 본 적 있는데….”
내가?
“음… 우리 처음 만났을 때… 그, 족자에 빨려 들어갔을 때… 지하 2층 화장실 갔잖아요….”
“…!”
“기억… 안 나요?”
난다.
실종된 이병진 과장의 행방을 쫓아서 지하에 내려갔을 때….
이상하게도 평범한 사무실이 쭉 늘어선 복도가 있었다.
-여긴 안전 장비나 시설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분명 그렇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노루 씨?
그래.
‘갑자기 착한 친구가 말을 할 수 있게 됐지…!’
사무실이 늘어선 기묘한 백일몽 지하는… 괴담 속이었다.
그리고 그 괴담이 사실… 유쾌 연구소였다고?
“어떻게… 안 겁니까?”
“음… 우리도 코드명으로만 부르고… 몰랐는데…. 겸열 안 한 서류를 찾아서.”
어깨를 으쓱한 경비반장이 말을 잇는다.
“어쨌든 더 지하로 내려가도… 똑같은 사무실 복도가… 계속 반복되거든요….”
“…완전히 같은 복도가 말입니까?”
“예. 똑같은 사무실…. 구조랑, 흠집까지 똑같아서 같은 장소는 맞는데, 그런데… 조금씩… 시간대가…… 다른 것 같기도?”
사람들이 담소를 나누는 소리, 열심히 회의를 하는 그림자들, 직원들이 무언가 챙기는 모습, 싸우는 모습, 먼지 쌓인 폐허 같은 사무실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갈 때마다 마치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이 전경이 바뀐다는 것이다.
끝도 없이.
“…어디까지, 지하가 있는 겁니까?”
“그걸 몰라서… 음. 직접 가본 건요… 23층이었던가…? 그 이하는… 못 가게 막아서….”
“…….”
“40층에… 내려갔다고 했던 보안팀이… 있던 것 같기도…? 그런데 죽어서… 음.”
“…….”
섬뜩한 묘사들이었다.
‘그 사무실들이….’
등골이 오싹해졌다.
대체 왜 유쾌연구소가 거기 있을까, 왜 괴담인 걸까, 그 위에 회사 건물을 세운 백일몽은 무슨 일을 벌이는 걸까. 이런저런 의문이 스치고 갔지만.
곧 그 모든 게 의미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떠날 거니까.
“…….”
“아.”
그리고 그 기색은 경비반장에게도 전해진 모양이다.
“이거, 필요 없어졌나….”
“…….”
경비반장이 모자를 눌러썼다.
“음, 그런 거면….”
그리고 백일몽 직원이 모든 것에 관심 없어진 이유로, 가장 합당한 것을 쉽게 추측해 냈다.
“혹시… 소원권 탔어요?”
“…….”
나는 잠깐 갈등했으나,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경비반장의 입가에 약간의 미소가 떠올랐다.
순수한 축하.
“잘됐네….”
“…….”
“저기, 어떻게 쓰면 되는지는, 아는 거죠…?”
“…예.”
내 수긍에 같이 고개를 끄덕인 경비반장은, 조금 고민하는 듯하더니 물었다.
“그럼… 이번에는… 정말로 퇴사하는 건가……?”
내가 진짜 퇴사가 아니라, 위장으로 호 이사 밑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경비반장은 할 수 있는 질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
경비반장이 고개를 숙였다.
“저기, 나중에… 퇴사해도 혹시… 가끔 이야기나…?”
“…저도 그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안 된다.
나는 시선을 피했다.
“제 소원의 특성상,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아.”
경비반장이 말을 멈추었다.
“세상을 바꾸는… 소원?”
“……예.”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
역시 알고 있었나 보다.
그래, 정예팀 조장이었다면, 소원권에 집착이 강한 현장탐사팀 인원일수록 알고 있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지.
소원권의 본질.
소원권 마실 때 팁 없냐고?
없어. 그냥 마시고 소원 빌면 돼.
다 이루어져.
…적어도 네 입장에서는 말이지.
-정예팀 C조 대리의 조언 중
그러니까…. 이런 것이다.
만일 복용자가 어려지고 싶다고 빌면 어려질 것이다.
세금 문제없는 깨끗한 100억이 통장에 입금됐으면 좋겠다고 해도, 그렇게 될 것이다.
소원권 물약은 복용자의 상태만 바꾸는 건 마법의 요술램프와 다름없는 효능을 보였다.
하지만 말이다.
‘그 소원이 아주 거시적인 것이라면?’
나 개인의 상태를 변화시키는 것을 넘어서는 소원들 말이다.
가령 시점이 과거라고 하자.
‘부모님과 행복하게 살던 어릴 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하던 순간으로 가서 그를 말리고 싶어요’ 같은 소원들 말이다.
또는 대규모일 경우도 있다.
‘세상이 멸망하게 해주세요’, ‘모든 사람이 착해졌으면 좋겠어요’, ‘초전도체가 발명되게 해주세요’… 같은 것들.
나를 둘러싼 세상 자체의 개변을 원하는 소원이다.
물론 이럴 경우에도 물약은 효력을 발휘했다.
당신의 소원은 이루어진다. 다만….
당신의 입장에서만 그럴 뿐이다.
즉….
그런 세상으로 보내주는 것이다.
소원권은 대단히 개인적인 물약이며, 그 효능도 1인용 전능함이다.
소원을 이룬 사람은 세상에서 실종된다.
가끔은 남기도 하지만, 그건 소원을 제대로 빌지 못하고 실수한 경우이다. 혹은 의외의 빈틈으로 충분히 거시적이지 않아서 소원권이 감당할 수 있거나 말이다.
어쨌든, 어떤 경우에도 소원권으로 이 세상이 엄청난 변화를 맞지는 않는다.
사람만 이동할 뿐.
‘그래서 경비반장도 알고 있는 거지.’
세상이 바뀔 정도의 큰 소원이라면, 내가 아예 이곳에서 떠날 수도 있다는 것을.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
도넛을 다 먹은 경비반장을, 나는 마주 보았다.
시간이 다 되어간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응….”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카운터에 따로 부탁해 테이크아웃 포장을 해놓은 도넛을 경비반장에게 넘겼다.
빵칼만 덩그러니 든 여분의 종이봉투까지.
“혹시 제이 씨는 어떤 소원을 위해 이 회사에 들어오셨습니까?”
“…….”
경비반장이 텅 빈 봉투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잘… 기억이 안 나는걸.”
“…….”
“신경 쓰지 마요….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고.”
도저히 더 물어볼 수 없었다.
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인 후, 도넛 가게 앞에서 경비반장과 헤어졌다.
경비반장은 손을 흔들었다.
“…잘 돌아가.”
그렇게 끝났다.
나는 그림자를 통해, 경비반장이 우두커니 길거리에 꽤 오래 서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
돌아오는 길. 나는 생각했다.
…작별 인사들을 더 해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