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21화
피눈물 흘리는 마스코트들이 동공 없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가운데, ‘야 이렇게 된 거 너부터 사람 좀 죽여 봐라’는 요구를 받은 절체절명의 상황.
거짓말이 입에서 술술 나왔다.
“함정이라고?”
“예.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창문의 미친 마스코트들을 보지 않으려 애쓰며 ‘나 정말 번뜩이는 생각이 났어’의 표정을 유지했다.
“저희를 팀으로 묶어놓은 건 이 어둠입니다. 그런데 함부로 팀원을 죽여도 과연 괜찮을까요?”
사실 괜찮습니다.
“팀원 간에 거리가 떨어지는 것만으로도 목을 조르는 어둠입니다. 근데 죽인다면?”
그냥 시체 들고 다니면 됩니다.
그 과정에서 쫄보의 심장이 못 버티고 내가 토한 나머지 ‘이 새끼 고문관이네?’ 평을 받고 죽기 딱 좋은 자리로 재발령될 뿐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어마어마한 패널티가 있을 것 같습니다.”
“흠.”
나비 가면 아래 눈이 가늘어진다.
“못 죽여서 패널티를 받을 수도 있잖아?”
“반대로, 죽여서 전멸할 수도 있습니다는 겁니다.”
“…….”
“둘 다 가능성이 있다면 인원수를 보전하는 방향으로 고르는 게,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상대가 약간 동요했다.
나는 침을 삼키며 말을 덧붙였다.
“물론 결정은 대리님께서 내리시는 것이지만….”
“그래! 나, 나 죽이면, 어? 너도 죽는다고, 어, 어? 미친 새끼야! 너도 죽기 싫잖아. 그만….”
퍽.
나는 단호하게 연구원의 뒷목을 후려갈겼다.
기절시켰다는 뜻이다.
‘판 다 깔아뒀는데 왜 자연사하려고 난리냐고.’
눈치가 이렇게 없으니까 사내 도박이나 하지!
그새 제약이 풀렸는지 Y조 신입도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연구원의 팔다리를 놓고 있었다.
그 모습을 다 지켜본 A조 상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초조하게 기다렸다.
“너.”
“…….”
“이걸 후회하는 일이 없어야 할 거야.”
살았다.
“예, 물론입니다.”
A조 상사는 대꾸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내 점수가 상당히 깎인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일단 이 타이밍을 넘겼다는 거지.
[죽…….]
‘죽어’를 연발하던 내레이션은, 우리가 서로를 공격하지 않고 멈추자 어느새 잦아들었다.
깜박.
그리고 기차의 불빛이 점멸하는 순간.
“사, 사라졌습니다…!”
창문을 에워싸고 있던 마스코트들이 없어졌다.
남은 건 핏자국뿐.
“…….”
하지만 사라진 건 그뿐이 아니었다.
‘없다.’
기관사 마스코트도.
신나는 테마파크 음악소리도.
명랑한 하차 안내 음성도.
“…….”
끼익.
기차를 직접 손으로 밀고 나온 우리는, 기묘할 정도로 소리와 빛이 없는 내부를 보았다.
“…지뢰 밟은 것 같은데.”
“…….”
그건… 맞다.
나는 어둠탐사기록 하나를 다시 떠올렸다.
———————=
유쾌 테마파크 이용 지침서 (탐사기록 64번까지 적용)
4. 테파마크의 각 구역은 테마에 따라 색칠되어 있습니다! 처음 눈을 뜨는 곳이 바로 당신의 팀이 속한 구역이에요!
구역을 존중하세요. 구역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색깔을 보세요 마스코트의 심기를 거스르지 마세요 마스코트는 구역의 전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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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항이 괜히 있는 게 아니란 말이지….
테마파크의 색칠된 구역에서 그 마스코트에게 밉보이면, 해당 구역에서 ‘입장객’으로서의 존중을 더 이상 받지 못한다.
죽음의 술래잡기를 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지뢰를 안 밟으려고 핵을 누를 수는 없지 않겠는가.
‘마스코트의 요구는 점점 에스컬레이터식으로 올라간다고.’
보통은 맨 처음엔 간단한 걸 시켰다.
뭘 먹으라든가, 뭘 들라든가, 자기와 따듯한 포옹을 하자든가.
‘근데 첫 턴부터 살인을 시켜?’
그럼 다다음 어트랙션 탈 때 즈음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나은 취급을 받게 되는 것이다.
가령 ‘자신의 방광으로 풍선을 만드세요’ 같은 미친 짓을 시키는 것을 이미 탐사기록들에서 보았다….
그쯤 되면 마스코트의 영향력이 강해져서 거부하지도 못한다.
‘그러느니 죽지.’
여긴 죽느니만 못한 꼴이 되는 경우도 다반사인 괴담 세계관이라고.
그리고 지금도 탈출로가 없는 것도 아니다.
나는 침을 삼켰다.
‘튀면 돼.’
빨간 토끼, 매직버니의 구역에서 빠져나가 다른 마스코트의 구역으로 들어가면 이 어그로가 풀린다.
그러기 위해선… 어디 보자.
‘찾았다!’
나는 어두운 퇴장로 한편에 있는 것을 마침내 찾아냈다.
“저쪽에 뭔가 있습니다.”
“어?”
애초에 내가 이 어트랙션을 타려고 했던 이유도 이거다.
‘테마파크 색깔 지도!’
[~판타지랜드 컬러맵~]
이 어트랙션을 다 타고 나면, 맨 마지막에 나오는 출구에 각 마스코트의 영역을 보여주는 지도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빠르게 다가가며 중얼거렸다.
“지도군요. 이건 저희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 어째서입니까?”
언뜻 보면 실내 장식일 뿐이다.
어트랙션에서 판타지 랜드를 소개해 줬으니, 시각적으로도 한번 구현해 준 것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지.
그러나 포함된 정보는 어마어마하다.
“이 어트랙션의 내용이 기억나십니까?”
“아, 어, 그러니까, 이 테마파크 마스코트들이 땅을 두고 싸우는….”
“바로 그겁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어트랙션의 지도에는, 다른 마스코트의 구역이 표기되어 있을 겁니다.”
“…!”
어떻게 움직여야 최단 루트로 다른 색깔의 구역에 갈 수 있는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괴물한테 밉보인 것 같으니까 도망가자? 저걸 들고?”
A조 대리가 내가 업고 있는 연구원을 턱짓했다.
지금이라도 죽이자고 말이 나올 것 같아서 즉각 대답했다.
“연구 1팀 주임님은 지도를 확인하는 대로 깨워서 제대로 걷게 하겠습니다.”
“흠.”
제발 제 눈앞에서 해체쇼만 벌이지 말아주십쇼….
어쨌든 뭐라도 비전이 나오자 Y조 신입의 얼굴에 약간의 희망이 돌아왔다.
아마 나도 비슷한 얼굴이지 않을까.
‘제발 근처여라.’
나는 심호흡을 하며 재빠르게 지도로 다가가서, 확인을……,
“…….”
“…….”
“없…는데.”
어?
나는 다시 지도를 보았다.
그러나 그림은 변하지 않았다.
[~판타지랜드 컬러맵~]
표시된 테마파크의 내부 전경은 전부.
빨갛다.
[매직버니존] [매직버니존] [매직버니존] [매직버니존] [매직버니존] [매직버니존] [매직버니존] [매직버니존] [매직버니존] [매직버니존] [매직버니존]
모든 표지판마다 매직버니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아.”
[매직버니의 판타지랜드]
도망갈 곳은,
없다.
“…….”
“…….”
“이, 이거 뭔가 잘못된 거 아닙니까? 솔음 씨, 분명, 분명 아까 다른 마스코트들도 있었….”
“다 쫓겨났죠.”
“…!”
어트랙션 중에 들었던 내레이션이 자동적으로 떠올랐다.
-굴에 빠트리고 물에 빠트리고 절벽에서 밀고!
그렇다면….
“노란색, 파란색 다 죽이고 저 빨간 마스코트가 아예 여길 차지한 거네.”
“…….”
“그럼… 다른 색 장기말을 뽑았던 직원분들은,”
“글쎄.”
A조 대리가 어깨를 으쓱했다.
“전원 실종?”
“…!”
“그게 지금 중요해? 중요한 건….”
나비 가면 아래 눈이 다시 음험해졌다.
“네가 선택을 잘못한 것 같단 건데.”
“…….”
“걱정 마. 먼저 죽어야 할 정도는 아니니까.”
그 말뜻은 하나였다.
먼저 죽어야 할 다른 사람이 있다.
“지금도 늦었거든?”
“…….”
…반사적으로, 정신을 잃은 채 짐짝처럼 내 어깨에 매달린 연구원을 돌아본 순간.
지 루 해
“…!!”
“뭐, 뭐….”
지 루 해
머리에 울리는 소리.
지 루 해
어딘가 들어본 적이 있지 않나?
아, 토크쇼, 화요토크쇼다. 개편된 토크쇼에서 산제물 합창단의 죽은돼지머리가지르는비명같아동물동물이다마스코트!매지버매직버니가지루하시
“큽.”
나는 귀를 틀어막았다.
지 루 해
시선을 내렸다.
팔목에 걸린 입장권이 진동했다.
[(유쾌) 판타지랜드 탑승권 ■□□]
[(유쾌) 판타지랜드 탑승권 ■□□]
소리는, 여기서 나오고 있었다.
재 미 없 어
지이이이이익.
소리 진동에 찢어지기 시작한다.
입장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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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 테마파크 이용 지침서 (탐사기록 64번까지 적용)
1. 입장권 팔찌를 깨끗하게 쓰세요!
분실 및 훼손 시 당신은 더 이상 입장객이 아닙니다. 입장객이 아니면 불청객입니다. 도둑! 범법자! 끔찍한 처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니면
직원이 될래?
———————=
안 돼.
나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려 했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정말로, 단 한치도 벗어날 곳이 없다. 도망갈 곳이 없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면 늦기 전에 자살하는 편이 나을 것 같….
-김솔음 씨.
이제 환청까지,
-김솔음 씨. 들립니까?
‘…….’
환청이, 아니다!
나는 고개를 치켜들었다.
허공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나, 귓가에 절대 환청이라고 오해할 수 없을 만큼 선명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 주인은….
“…조장님?”
-예.
도마뱀 과장, 이자헌 조장이다.
기시감이 드는 상황이다. 구도가 반대가 됐지만!
“어떻게 연락하신 겁니까?!”
-박민성 주임의 전용 장비를 이용 중입니다.
지 루 해
목소리가 중첩되며 빨간위대한매직버니의 소리가 흐려진다. 나는 내가 과호흡 직전까지 갔다는 것을 겨우 깨달았다.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노루 녀석 괜찮습니까? 너 살아 있는 거지?
-우리는 괜찮아! 방금 어트랙션 세 개 다 탔어!
D조가 전부 같이 있다. 어떻게 된 거지?
“세분, 같은 색 팀이 아니셨잖습니까?”
확실히 기억한다.
‘이자헌 조장만 파란 팀, 나머진 노란 팀이었어!’
-노루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중요합니다! 세 분은 다른 팀인데도 테마파크 같은 자리에서 눈뜨신 겁니까?”
짧은 침묵 후.
-아닙니다.
평온한 도마뱀 과장의 목소리가 대답했다.
-제가 두 명을 찾은 후 이동했습니다.
여러 질문이 머릿속에 동시다발적으로 떠올랐으나 가장 급한 건 이거다. 그러니까,
“…어디서 찾으셨습니까?”
-파란 구역 외곽입니다.
“…그럼 지금, 파란 마스코트의 구역에 계신 겁니까?”
재 미 없 어
-예.
전율이 흘렀다.
“지도에는 표기되어 있지 않은데, 혹시 어느 지점이 파란 구역인 겁니까?”
-모릅니다.
빌어먹을.
“구체적인 좌표는 몰라도 됩니다. 주변 어트렉션이라도 알려주십시오! 동서남북 표기라도 좋습니다.”
-그렇군요.
짧은 침묵 후.
-서쪽입니…….
뚝.
연락이 끊겼다.
“조장님?”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마도 전용 장비 이용 시간초과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추측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서, 서쪽??”
어느새 옆에서 필사적으로 같이 듣고 있던 Y조 신입의 얼굴이 망연해졌다.
A조 상사의 얼굴도 비슷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우리가 있는 곳이 서쪽인데?”
그렇다.
‘판타지 트레인’은 판타지 랜드 지도의 거의 서쪽 끝에 위치하고 있었다…….
숲으로 울퉁불퉁 둘러싸인 동쪽 반대편, 매끈하게 마감된 서쪽에는 성벽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성벽 바로 옆에 붙은 이 어트랙션.
판타지 랜드에서 이보다 더 서쪽은… 없다!
지 루 해
“아무래도 서로 다른 테마파크에 떨어진 것 같은데? 뭐 파란 마스코트가 이긴 시간선, 그런 거겠지. 어둠이 다 그렇지 뭐.”
서로 다른 곳에 떨어졌다?
아예 다른 평행 차원이라는 설정이다?
재 미 없 어
“아뇨.”
그럴 리 없다.
“이건 보드게임에서 파생된 어둠입니다. 같은 게임을 하는데 다른 판을 쓸 리는 없다는 겁니다.”
“야. 시끄러워.”
A조 상사가 서늘하게 대꾸했다.
“주절주절… 그럴싸하게 지껄여도 현실에 안 맞으면 버려야지.”
아니, 이건 추리가 아니라 귀납법이다.
수많은 사례가 있다는 것을 토로하고 싶지만, 절대 믿지 않을 것을 안다. 지금 필요한 건… 정답을 말하는 것뿐.
대체 ‘서쪽’이란 어디인가.
‘빨리, 빨리.’
생각하자. 분명 답이 있다.
나는 다시 판타지 랜드 컬러 지도를 보았다. 여전히 보이는 모든 구역이 붉게 칠해져 있다.
대관람차, 회전목마, 롤러코스터, 바이킹, 마법 궁전. 뭐 하나 빠짐없이 매직버니의 얼굴이 빨갛게 돌고 있다.
모든 놀이기구가…… 잠깐.
“…!”
지 루 해
잠깐만.
나는 지도를 다시 훑어보았다.
그리고 알아차렸다.
“…찾았습니다!”
“뭐?”
“다른 색깔 구역.”
이쪽이다.
나는 확신을 가지고 발을 옮겼다. 그 기세에 동조한 건지 희망을 느낀 건지 팀원들이 따라서 움직였다.
재 미 없 어
마스코트의 눈에 띄기 전에 빨리 가야했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기에, 한시라도 빠르게 어트랙션 밖으로 발을 내디뎠